책 소개
대만의 인문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이자 열독가인 탕누어.
21세기에서 2000년 전 춘추시대로 타임워프하다!
‘사서삼경’을 비롯한 중국의 13경 중 사학(史學)을 대표하는 텍스트인 『좌전』은 오늘날 중국문명의 뿌리가 되는 춘추시대의 역사를 파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좌전』은 공자가 집필한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春秋)』에 후대 학자가 주석을 붙여 집필했다. 일반적으로 좌구명이라는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이에 대한 설은 현재 분분하다. 중국 사상의 연원(淵源)은 공자를 포함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할 수 있는데, 이 제자백가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춘추시대의 인물 및 사건을 가장 정확하게 기술해놓은 바로 이 『좌전』인 것이다.
대만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이자 문화평론가인 탕누어는 이 책 『역사, 눈앞의 현실』에서 『좌전』에 담긴 세계상과 문화, 국가의 흥망성쇠와 개인의 욕망과 파멸 등에 얽힌 역사적 사례를 재연하고 해체하여 이제껏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탕누어가 문학가로서 전개한 고전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은 대담하고 혁신적인 발상이며, ‘사고의 전환’이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준다.
동시에 탕누어는 2000여 년 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보르헤스, 휘트먼, 레이먼드 챈들러, 한나 아렌트 등 세계적인 문학가, 사상가들의 사고와 철학, 인문학적 지식을 투영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허물어 지나간 역사를 지금 눈앞의 현실로 이끌어낸다. 탕누어에 따르면, 그것은 단순히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통념이 아니라 역사에는 인류의 다양한 ‘행위’와 ‘생각’이 반복 교차하며, 그 모든 사유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어떤 하나의 요소로 규정지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할까? 또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책 『역사, 눈앞의 현실』에서의 ‘눈앞’이라는 건 과거에 살았던, 지금을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누군가의 눈앞이다. 그것은 『좌전』을 쓴 역사가의 눈앞일 수도 있고, 탕누어의 눈앞일 수도 있으며, 이 책을 집어든 당신의 눈앞일 수도 있다.
이 각각의 시선은 하나의 도(道)의 빛이며, 그 빛은 역사의 한 지점에서 막히기도 하고, 투과되기도 한다. 때론 어느 곳을 비추기도 하고 때론 광막한 어둠 속에 가려져 있을 수도 있다. 역사는 결국 이 빛들이 종횡하고 교차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이 교차점들을 하나하나 관찰함으로써 우리가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고, 탕누어는 말한다.
『좌전』 속 춘추시대 역사에 대한 대담하고 혁신적인 해석!
탕누어의 놀라운 상상력과 깊은 성찰이 탄생시킨 ‘문화를 보는 새로운 힘!’
탕누어가 이 책 『역사, 눈앞의 현실』에서 첫 번째로 다루는 대상은 바로 자산이라는 인물이다. 『좌전』은 춘추시대 중소국가 중 하나인 노나라의 242년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좌전』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고, 인품이나 업적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건 정나라의 집정관이었던 자산이다. 중국이 강력한 통일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전, 여러 국가들이 난립했던 춘추시대에서 외교적 교섭은 한 나라의 존멸을 좌우하는 중요한 책무였다. 어느 누구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시대상황 속에서 자산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역사의 흐름을 읽어낸 인물이었다.
자산은 집권 중후기에 형서(刑書)를 주조했다. 정나라 형법의 명문(明文)을 큰 솥에다 주조해 넣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했다. 여기에는 성문법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진보성’이 있는 조치로 봐야 한다. 그러나 자산의 이 조치는 당시 중요한 국제정치 이론가였던 진나라의 숙향에 의해 매서운 비판을 당한다. 그는 명문 형법 규정이 전체 사회의 근본적 규범을 크게 타락시킬 것이고 사람들이 이로부터 구체적인 행위에서 명문 형법의 몇 가지 조항만 피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말하자면 법률만 남고 도덕은 사라지거나 적어도 법률이 도덕 가치의 성장 공간을 압박하고 박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산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면서도 겸손하게 대답했다.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좌전』 「소공(昭公)」 6년)
자산 역시 숙향이 본 것을 봤고, 숙향이 걱정한 것을 걱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숙향은 진나라에 있었고 자산은 정나라에 있었을 뿐이다. 이 불행한 나라는 자산에게 숙향처럼 사치스러운 공간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생명 가운데서 어쩌면 자산이 믿고, 동경했으며, 젊고 깨끗한 마음에서 연원한 어떤 것들, 그리고 자산 역시 똑같이 품고 있던 응당 그렇게 되어야 할 세계상이 그가 정치 무대에 올라 정무를 돌보는 그 순간부터 모두 모질게 끊어야만 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좌전』에 기록된 자산의 행동이나 가치관 등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은 국가 간의 외교에서부터 세제, 형법의 제정에서 민간을 향한 복지제도에 이르기까지, 국가를 운영하는 모든 정밀한 기교와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탕누어는 이 자산이라는 인물을 통해, 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매 순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소국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그러한 현실은 오늘날 자신의 고국 타이완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한 개인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역사적 변이는 적어도 현실의 세계가 당위적 세계와의 충돌로부터 빚어진다. 이러한 역사의 본질적인 속성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때문에 2000년 전의 역사는 지나가고 묻혀 버린 과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눈앞의 현실과 다름없다.
『좌전』의 저자는 일반적으로 좌구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탕누어는 이에 대해 확답을 피한다. 그러면서 보다 중요한 통찰에 접근한다. 왜 『좌전』의 저자는 공자가 쓴 『춘추』에 주석을 달고 이야기를 덧붙여 책을 완성했는가? 『좌전』은 현실을 계속해서 기록한 역사 판본이 아니다. 공자가 집필한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를 새로 읽고, 학습하고, 사색하고 거기에 주석을 덧붙인 책이다. 단순한 역사라면 『춘추』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좌전』의 저자는 『좌전』을 완성함으로써 『춘추』에서 단순한 글쓴이에 불과했던 공자를 다시 새롭게 조명하고 회고하는 대상으로 바꾸어놓았다. 탕누어에 따르면, 『춘추』가 개화되지 않은 꽃봉오리라면 『좌전』은 활짝 핀 꽃이다. 다시 말해, 『좌전』의 저자는 노나라의 작은 국사를 천하의 역사로 바꾸어놓았다. 노나라의 역사 기록물 이름에 불과했던 ‘춘추’가 한 시대를 가리키는 명칭 및 시대 분할 방식으로 승격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것이 가능했을까. 탕누어는 그것이 노나라라는 변방 국가의 역사이기에 가능했다라고 결론 내린다. 탕누어에 따르면, 변방의 글쓰기는 인간의 시선을 막힘없이 광대하게 확장할 수 있고, 쉽게 용기를 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춘추』에 드러난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더해 『좌전』에서는 그 역사를 채워나가는 수레꾼이나 간장 장수 같은 사람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시적인 역사에 미시적인 역사를 빼곡하게 채워 넣음으로써 『좌전』은 하나의 완성된 역사이자 불멸의 역사서가 될 수 있었다.
『좌전』 속에는 무수히 많은 꿈 이야기가 등장한다. 역사와 꿈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과학의 시대인 현대에 이르러 꿈은 더더욱 현실의 세계와 동떨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좌전』에 등장한 무수한 꿈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의식이나 가치관과 같은 세계관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즉 『좌전』에 등장한 꿈이 갖는 메시지는 “꿈은 한 차례 ‘잠시’ 경계 밖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가 실제의 삶을 연습하도록 하고 그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이어나가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좌전』이 환상과 현실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내는 문학적 글쓰기와 다름없다는, 탕누어의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꿈은 인간의 육체와 함께 존재하고, 인간의 생명과 함께 존재한다. 마치 영원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우리는 우리의 꿈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라고 했다. 우리는 이처럼 당연히 낯설고,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꿈속 세계에 대해서 기이한 친숙함과 태연함, 거의 의심할 수 없는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곤 한다. 꿈의 자료는 다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고, 다시 탐색할 필요도 없이 늘 바로 이곳에 존재하면서 우리를 벗어나지도 않았고 또 우리에게 망각되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즉 그것들은 흡사 바로 우리의 현재인 것처럼 여겨진다.”
남녀 간의 정욕에 관한 이야기도 『좌전』에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탕누어는 정욕과 인간의 신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행위와 사유를 본능으로만 환원해 해석하는 건 조악하거나 나태한 태도라고 못박는다. 모든 행위에는 당대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으며, 『좌전』에 등장하는 정욕에 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춘추시대는 말 그대로 역사의 초기 시대이며, 남녀의 결합에는 소박한 생물적 특징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것은 곧 종족을 늘리는 일이었다. 끊임없는 전란으로 인해 인간의 사망비율이 ‘정상’보다 훨씬 높았기에 근친상간이나 정절을 지키지 않는(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경우도 흔했다. 이는 역사를 조망함에 있어 중요한 태도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탕누어는 말한다.
“역사 읽기는 우리에게 인지 상의 함정을 쉽게 제공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대형 시간의 껍질을 벗겨 내거나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작업을 통해 감춰진 인간의 어떤 ‘원형’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는 진정한 육체만 남고, 식욕과 성욕만 남아서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를 회복하게 된다.”
다시 말해, 탕누어는 『좌전』에 등장하는 정욕의 사례를 통해 몇 천 년 간 이어진 인류의 독특한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현상에만 집중하는’ 단순한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헉슬리의 표현처럼 “인간은 예측하기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예측하기 어려움’을 하나의 틀 속에 가두려 할 때 역사는 의미를 상실하고 인류는 퇴보한다.
『좌전』에는 후대에 ‘미병지회’라 불리는 회맹에 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일종의 정전협정 혹은 평화회의로도 볼 수 있는 이 회맹은 당대의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것은 바로 회맹이 벌어지고 말 그대로 춘추시대가 종료되기까지 7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의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초의 기록이었던 공자의 『춘추』에는 이 대목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좌전』에 이르러서야 시간 순서에 따라 사안의 진행 층위, 회맹 참여자들의 생각 등을 정확하고 긴밀하게 묘사했다. 여기에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자 했던 『좌전』 저작자의 강한 신념이 들어 있다. 동시에 이 부분에 이르러 저작자의 다른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좌전』의 저자가 본래의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역사 현장의 기본적인 의도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한 점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좌전』이 탄생한 진정한 이유다. 『좌전』은 세상 사람들의 기억을 회복시켜 주는 방법으로, 『춘추』를 탄생시킨 당위의 글쓰기와 대조하며, 스승인 공자의 신중하지만 정련된 문자를 다시 새롭게 닦아서 반짝반짝 빛을 내도록 만들었다.”
즉 『좌전』은 『춘추』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공백을 채워 넣음으로써 후대가 자칫 상상으로 여길 수도 있는 사건들을 구체화하여 생명을 불어넣었다. 『좌전』에 기이한 묘사들 혹은 역사서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짓말 같은 사건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것은 독자를 위해 사실을 과장하거나 억지로 해석해 흥미를 유발하거나 재미를 가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각색도 윤색도 없이 사실 그대로를 생생하게 재현한 것이다. 『좌전』의 저자는 벤야민의 “마치 어린 아이가 방금 꺾은 신선한 꽃을 한 아름 가득 당신에게 바치는 것과 같다”라는 말처럼 순수한 사실만을 추구했다. 작가가 줄곧 견지했던 그러한 태도와 노력이 『좌전』이 위대한 역사서로 남게 하는 데 주춧돌이 되어주었다고 탕누어는 평가한다.
춘추시대 200여 년은 ‘충돌’이 끊이지 않는 시대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왜 충돌이 발생했느냐가 아니다. 충돌은 그냥 ‘닥쳐왔을’ 뿐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충돌이 없었던 때가 있었는가. 탕누어가 관심 있게 바라보는 건 바로 이 충돌이 춘추시대라는 ‘계단’에 당도한 후 어떤 변화를 발생시켰는가에 관해서다.
“응당 우선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은 모종의 안정적인 질서였지 총체적인 무력을 제한하거나 총포와 탄약으로 조례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안정적인 질서를 확립하고 그것을 수호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근본적인 체제를 설계하고 발명하는 것 그리고 인간의 신분, 지위, 행위를 확인하고 약속하는 것 외에도 역으로 ‘폭력’을 필요로 한다.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통제할 수 있고 독점할 수 있는 폭력을 필요로 한다. 춘추시대 200년 동안이나 그 이전 시대에 이런 사유 방식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렇지만 춘추시대만 해도 국가 간의 ‘충돌’은 아직 살육이라는 흉악한 면모를 드러내지 않고, 적을 격퇴하고 축출하고 굴복시키는 본래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도 이와 같은 경향을 보였다. 즉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 살육이나 멸절(滅絶)과는 전혀 달랐다. 이후 이어진 전국시대에는 전 세계가 ‘충돌’ 상태에서 ‘전쟁’ 상태로 진입했고, 인간의 죽음이 전쟁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며, 전쟁의 가혹한 불길이 도저히 잡히지 않는 시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춘추시대의 ‘충돌’이 의롭거나 정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좌전』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전쟁이나 국가 간의 분쟁을 처리하는 정치가들의 사례를 통해 ‘전쟁’이라는 존재 자체의 무용함과 그것이 가져오는 비극적 결말의 폭력성을 부각하고 있다. 말 한 필로 끝난 전쟁이나 국경에 사는 두 여인이 뽕잎을 따다가 다투다 국가 전쟁으로 커진 경우처럼 『좌전』에 등장하는 무수한 ‘충돌’의 사례는 궁극적으로 이 전쟁이라는 것을 낭만적이고 의롭게 해석하려는 인류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전쟁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혐오스럽고 부당하다. 탕누어는 이처럼 전쟁을 부정해온 정신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고귀한 역사 인식이라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현실 속에 확실히 남아 있는 전쟁은 경솔하게 부추겨서도 안 되고 장난처럼 발동해서도 안 된다. 몇 천 년 동안 인간은 각종 방법을 다 생각하고 사용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즉 한 차례로 끝낼 교묘한 방법이나 해결 방안 또는 소위 ‘한 번의 다스림으로 다시 혼란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만 인간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면서 사태에 따라 그때그때 임시로 대응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가장 좋은 모습은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보검을 물속에 빠트렸다. 그는 보검을 떨어뜨린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 뱃전에 표시를 한다. 하지만 강물은 속절없이 흐르고 배는 절망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강 건너편에 닿았을 때 그 보검은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좌전』은 세월의 뱃전에 새긴 『춘추』의 흔적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시간 순서 및 구체적인 디테일과 인간의 이야기를 복원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의 서술을 회복한 책이다. 그것은 ‘정확한’ 역사 판본을 비뚤어진 현실 세계 위에 놓음으로써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은 완전히 무질서해 보이는 춘추 세계에서 하나의 질서를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탕누어에 따르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엄정한 시비 분별과 모종의 보편적인 진리 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틈이 존재하며, 거기에는 이 세계를 끊임없이 변화시켜 가는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인간의 삶은 이 시간이라는 무형의 존재 위에서 끊임없이 종횡하고 교차하며, 반복되거나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띠기도 하면서 쌓여 간다. 그리고 때론 소멸되기도 하면서. 목전에 옳았던 것이 미래에도 여전히 옳을 거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세계를 구성하는 건 행동하는 사람이지 운동하는 원자가 아닌 것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섭고 불확정적인 것은 바로 시간이며, 인간 역시 그 시간 속에서 예측 불가한 삶을 살아간다.
2000여 년 전, 중국에 존재했던 노나라라는 작은 나라의 역사는 21세기의 우리로 하여금 시간에 대한 고도의 경각심을 갖게 한다. 인간은 목전의 어떤 일을 주목하지만 동시에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서 탈출해 어떤 먼 곳에 자리 잡고 교차하고 연속되는 시선으로 자신의 위치와 전체를 조망한다.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광막한 역사의 흐름에서 인간이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고 똑바로 나아가게 하는 이정표이다.
탕누어는 말한다.
“우리가 바로 시간이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물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탕누어
1958년 타이완 이란(宜蘭)에서 태어났다. 타이완대학(臺灣大學) 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타이완 최고의 문화비평가이자 전방위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대만의 프랑수와 사강’으로 불리는 유명 소설가 주텐신(朱天心)의 남편이기도 한 그는, 매일 아침 아홉 시에 집을 나와 인근 카페에 들어가 커피 향기 속에서 책읽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보낸다. 탕누어는 만년필을 이용해 직접 원고지에 글을 쓴다. 이 책 『역사, 눈앞의 현실』은 매일 8000자를 쓰고, 그중 300자만을 남기는 그의 독특한 집필방식에 의해 탄생한 책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의 모든 사물과 현상, 이름과 사조를 독서와 연관시켜 사유함으로써 새로운 인문학적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끝(盡頭)』 『세간의 이름(世間的名字)』 『독자시대(讀者時代)』 『독서 이야기(閱讀的時代)』(한국어판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문자 이야기(文字的故事)』(한국어판 『한자의 탄생』) 등이 있다.
옮긴이 : 김영문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혔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연구재단 박사후과정에 선발되어 베이징대학에서 유학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중한사전』을 교열했고,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문선역주』(공역) 완역본을 출간했다. 경북대, 대구대, 서울대 등지에서 강의했다. 현재 청청재(靑靑齋) 주인으로 각종 인문학 관련 서적을 번역·저술하며 여러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노신의 문학과 사상』(공저) 『근현대 대구·경북 지역 중국어문학 수용사』 등이 있고, 대표 역서로 『중국역사 15강』 『루쉰전집』(전20권, 공역) 『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 『정관정요』 『자치통감을 읽다』 『독서인간』 『동주열국지』(전6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부문’ 최종후보) 『문선 역주』(전10권, 공역) 『루쉰, 시를 쓰다』(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루쉰과 저우쭈어런』(문광부 우수교양도서) 등이 있다.
목 차
서문 적어도 먼저 그걸 진실이라 믿자
제1장 왜 자산인가
스러져가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다 / 너무 정확했기 때문에 그 감각이 아주 준엄했다 / 더 이상 작은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 어떻게 세계로 진입해야 할지 모른다 / 개인에서 국가에 이르는 관용 과정
제2장 저자를 상상하다
원래 문자로 기록된 것이다 / 책과 저자에 관련된 한 가지 토론 / 더더욱 ‘한 사람의 작품’처럼 보인다 / 그가 좌구명이라면 / 이미 주공을 잃어버린 노나라 / 학교나 도서관 같은 노나라 / 꽃으로 만발하다
제3장 2000년 전의 한 가지 꿈
진정으로 떠나오지 못한 귀신 세계 / 정확하면서도 황당한 예언 / 모두 천명을 경청해야 하는 시대 / 당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 상아의 문과 소뿔의 문을 통과하다 / 정 목공 어머니의 꿈 / 꿈과 대낮의 경계 지점
제4장 『좌전』에 기록된 근친상간 사건
하희, 특히 신공 무신 / 하나의 근친상간 공식 / 인간의 관계를 어지럽히다 / 일종의 부적절한 정욕일 뿐이다 / 정욕만으로 그칠 수 없다
제5장 한 차례의 회맹, 한 명의 군주와 한 명의 노인
미지, 불신, 공포 / 당위적 주장에서 현실 속 진상으로 다시 돌아온 『좌전』 / 회맹 후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 공자 위에서 초 영왕 건에 이르기까지 / 조무, 한 노인의 죽음
제6장 아주 황당한 전쟁
말 한 필로 결말이 난 전쟁 / 이오라는 사람 / 백성과 사대부의 극단적인 의견 / 전쟁은 아직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 소위 충돌 상태 / 한 가지 정당한 전쟁
제7장 음악 혹은 악
정나라의 일곱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나 / 음악과 문자가 교차하는 곳 / 『악경』도 틀림없이 여기에 있었으리라 / 사실 반음악적인 것이었다
제8장 뱃전에 새긴 흔적
분명하게 시간을 기록하다 / 한 구절 / 한 글자 / 가장 두려운 것은 시간이다 / 『춘추』 편찬은 공자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 가장 좋은 사람, 가장 좋은 사물은 여기에 있지 않다
옮긴이의 글
공자의 운명, 좌씨의 역사, 탕누어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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