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수없는

고객평점
저자정지윤
출판사항에이치투, 발행일:2018/10/24
형태사항p.223 A5판:21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89884927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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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비전향장기수’

이 책「바꿀수없는」은 현직 사진기자인 저자의 기획기사 ‘빨갱이 나를 소환하라’ 그리고 사진전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귀향’과 함께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다. 책에는 북으로 돌아가야 할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과 일상을 담은 사진들과 그들의 육성 인터뷰가 담겨 있다.

2018년 한반도는 북핵과 통일의 열기로 뜨겁다.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70년 비극적 분단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하며 두 손을 맞잡았다. 이를 지켜본 19인의 ‘비전향장기수’들은 낮은 탄식으로 화답했다. 선언문에 그들의 송환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전향장기수’는 자신의 정치적 사상과 신념을 그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와 격리되어 장기간 수감된 사람들을 말한다. 비전향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다.
1933년 일제에 의해 시행된 ‘사상전향제도’는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존재했다. ‘전향’이란 단어조차 일제의 사상검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변절’, ‘투항’, ‘굴복’ 등과 같은 자존심을 거스르는 말을 대신하여 당시 일제에 저항하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상가들을 회유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인 용어였다. 패전이후 ‘사상전향제도’는 원조였던 일본에서 폐지된다. 그러나 남한에는 남았다. 이승만, 박정희를 거치며 오히려 ‘강제전향’의 폭압은 절정에 달한다. 자신이 단순한 전향자가 아닌 동지를 팔아 살아남은 변절자였던 박정희는 형기를 마친 좌익수들이 사회로 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사회안전법’을 만들어 전향을 거부한 이들을 재판도 없이 구금하고 무자비한 고문과 폭력으로 ‘전향서’를 받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수백명의 좌익수가 도장을 찍었고 끝내 거부한 94명은 ‘비전향장기수’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들 94명의 ‘비전향장기수’가 감옥에서 보낸 햇수는 2854년에 이른다. 1인당 평균 31년의 징역을 살았다. 혹독했던 일제 강점기에 징역을 제일 오래 산 사람은 박열로 23년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장기수 넬슨 만델라는 27년을 복역했다. 한국의 ‘비전향장기수’의 평균 수감기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비전향장기수’ 중 최장 복역기간은 무려 43년이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잊혀진, 아니 기억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5.18과 민주화 투쟁이 있었다. 1993년 이인모가 북으로 송환되면서 비로소 ‘비전향장기수’들이 아직도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 1998년 7월 ‘전향서’가 ‘준법서약서’로 대체되고 ‘비전향장기수’ 대부분이 석방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상전향제도’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50년 넘게 존속한 셈이다.

미룰 수 없는 송환 혹은 귀향(歸鄕)

2000년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에 따라 이듬해 1차로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처 신청을 못했거나, 과거 강제로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로 30여명은 남한에 남아야 했다. 여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해외 언론의 취재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잊혀졌다.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2차 송환을 간절히 기다리던 이들 15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까지 19명이 남았다. 안타깝게도 올해 김동수씨가 타계하여 이제 18명만이 남았다. 이들은 체포된 후 짧게는 21년, 길게는 3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들의 복역기간만 해도 3백 64년이다.

28살 늦깎이 대학생은 10분의 전향 연설을 거부해 37년을 감옥에서 살았고 꽃다웠던 빨치산 여전사는 하얗게 머리가 센 노인이 되었다. 출소 후에도 ‘보안관찰법’의 감시는 계속되었다. 세상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빨갱이’ 중에서도 ‘골수 빨갱이’로 낙인찍힌 이들이 연고 없는 타향에 정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국을 떠돌았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이 생계급여에 의존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여름 폭염 속에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19인의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났다. 그들의 육성을 기록하고 사진기 앞에 세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만큼의 기록도 전무한 실정이었다.

이 책「바꿀수없는」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질지언정 자신의 신념을 거짓과 바꿀 수 없었던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생존기다. 저자는 “그들은 역경을 이겨낸 만큼 강했다. 그리고 풍파를 겪고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담담하게 전해준 그들의 증언은 화석에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듯 생생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지금도 집요한 전향 공작을 이기지 못해 쓴 '전향서'가 뼈아픈 실수라며 자책했고, 어떤 이는 옆에 앉은 남한의 아내 앞에서 북한 아내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북에 두고 온 코흘리개였던 아들이 환갑이 넘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평균나이는 87세, 대부분 오랜 감옥살이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어 언제 세상을 등질지 알 수 없다. 이제 18인이 되어버린, ‘비전향장기수’ 19인의 마지막 소망은 모두 같았다. 북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송환’이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북으로 가기를 원하는 분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강제전향제도의 악령을 떨쳐버리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꿀 수 없는 

 수 십 년을 0.75평 차디찬 감옥에 살면서도 지켜야 할 정치적 신념은 무엇일까. 현실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북한의 민낯이 알려진 뒤에도 바꿀 수 없는 그 신념이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70~80년간 세월의 흔적이 배인 그들의 초상을 보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이 책「바꿀수없는」의 저자는 23년차 현직 사진기자다. 그의 사진은 따뜻하지만 군더더기가 없다. 인물과 일상의 공간을 치장 없이 담아낸다. 저자는 이 책의 부제가 된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귀향’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다. 책에 실리지 못한 사진들도 함께였다.
전시장을 찾은 사진 속 주인공은 “가족들도 제 사진을 둬서는 안 된다고 버렸는데… 거울로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사진으로 마주하니 쑥스럽다.”고 했다. 그는 일생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

단칸방을 찍은 사진 한 장에 그의 고단한 삶이 있다. 남쪽에서 이룬 가족사진, 구식 달력, 오래된 시계, 약봉지, 신문 더미와 책 뭉치가 노인의 키보다 높게 쌓여있다. 한 평 남짓의 정원, 통일구호가 내걸린 사무실, 병실의 침상과 어두운 건물 복도에서 마주한 그들은 늙고 병 들었다. 초상 사진 속에서도 더러는 지팡이에 의지해 있거나 환자복을 입고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다. 하지만 검은 막 앞에 홀로 선 그들의 눈빛만큼은 끝내 전향하지 않은 신념과 자존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은 사진처럼 정직했다. 붉은 것을 붉다고 했다. 내 안의 생각을 속이지 않은 죄. 거짓을 말하지 않은 죄. 과연 그것은 정치적 신념이었을까?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 끝내 살아남아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낸 이들이 묻는다.

당신에게는 ‘바꿀수없는’ 무엇이 있습니까?

편집자 리뷰

1. Time Machine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라고 말했던 허버트 조지 웰스는 ‘타임머신’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문학작품의 소재로 등장시켰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떠나거나 시간을 초월하여 먼 미래로 여행하는 이 흥미로운 개념은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웰스 이후로 수많은 작가들이 타임머신 혹은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그들의 작품에 형상화시켰다. 지금도 연간 수 십 만대에 이르는 타임머신이 상상 공장의 생산라인을 빠져나와 각각의 사연을 안고 무한의 시간대로 출발한다. 타임머신의 무엇이 대중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는 것일까? 그 내면에는 시간이라는 절대불가역의 조건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공포 그리고 현재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바꿀 수 없는’ 타임머신에 갇혀버린 이들이 있다. 2018년 넌픽션이다. 한반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비전향장기수’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한반도에는 36년의 식민지배 끝에 해방이 왔고, 전쟁이 있었다. 그들은 타임머신에 강제로 태워졌다. 세상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독재와 4.19가 있었고 다시 독재와 5.18이 있었다. 민주화투쟁이 있었고 몇 번의 정권이 교체 되었다. 그 지난한 세월동안 그들의 시간은 정지되었다. 육체는 감금되었고 신념은 봉인되었다.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은 두 살 혹은 네 살인 채 박제된 기억으로 남았다. 이 책은 멈추어버린 그들의 시간을 찍었다.

2. Photograph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킨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찰나의 빛과 어둠, 그 경계를 포착하는 침묵의 미학이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시간은 저자의 카메라에 담기기 이전에 이미 정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진들에는 콘트라스트가 거의 없다. 빛과 어둠 중에서 그들 삶의 대부분이었을 어두움만이 트리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캡션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에 김동수 선생이 돌아가셨다. 인천의 박종린, 광주의 서옥렬, 음성의 김동섭 선생은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 나주의 이두화 선생도 거동이 어려워 곧 요양원으로 갈 예정이다. 이분들은 모두 80대에서 90대에 이르는 고령인 데다가 오랜 옥고와 전향공작 과정에서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과 암 투병에 시달리고 있어서 언제 세상을 등질지 알 수 없다.”
-김혜순 민가협양심수후원회장 추천사 中
그들의 삶과 정신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도 육체는 늙고 병들어 마지막을 가늠하기 힘든 순간을 맞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양심이 이들을 외면하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3. Profile
처음 떠나온 길은 각기 달랐다. 인민군에 입대해 전쟁 중에 포로가 되거나 자진해서 또는 쫓겨서 빨치산이 되기도 했고 어린 아들과 아내를 뒤로하고 당의 임무를 받고 남파되기도 했다. 그러나 체포된 후 그들의 시간은 모두 같았다. 6~70년 전의 일이었다. 평균 30여년에 이르는 감옥살이를 했다. 몇 줄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과 전향공작반의 집요한 공작을 견뎌야 했다. 짐승의 시간이었다. 대부분은 그 폭력의 고통을 이기지 못했다. 강제로 날인했던 전향서는 무효를 선언하였으나 병으로 장애로 육체에 각인된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혁명가로, 전사로 빛나던 청춘은 짧았다. 감금당한 채 머릿속의 생각을 바꿀 것을 강요받았던 감옥살이는 길었다. 출소 이후 버려진 연고 없는 땅에서도 감시와 제한은 계속되었다. 끝없는 감옥이었다. 그럼에도 신념은 바꿀 수 없었다. 거짓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곤궁한 삶의 여정은 깊게 패인 주름살 골짜기마다 묻었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은 모두 한결 같았다. 피붙이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송환’이다.

4. Unconvertible
류기진 선생은 인민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11년의 옥살이를 하고 60년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93세인 그는 북으로 돌아가 전역신고를 하고 싶어 한다. 이광근 선생은 공작원으로 남파되어 사형 선고 후 무기로 감형되었다가 22년을 전향공작에 시달리다 출소하였다. 故 김동섭 선생은 중국해방군으로 장개석 군과 싸웠고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빨치산 활동 중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되었다. 문일승 선생은 출소 후에도 감시를 피해 다니느라 1차 송환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김교영 선생은 어릴 적 고향집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사를 알 수 없지만 이두화 선생의 오빠들이 생존해 있다면 아흔 일곱과 아흔 셋의 나이다. 서옥렬 선생이 길을 떠날 때 아들은 세 살과 다섯 살이었다. 허찬형 선생은 식민지 17년, 인민군 3년, 빨치산 3년, 감옥살이15년 후에 51년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18살에 남로당 비밀당원이 된 양원진 선생은 늘 빨간색 옷에 한반도 배지를 가슴에 차고 다닌다. 최일헌 선생은 두 살배기 아들과 임신한 아들을 두고 남파되었다. 60년 전의 일이다. 남편을 따라 빨치산 전사가 되었던 박정덕 선생은 요양원에 있다. 오른쪽 다리가 없다. 박희성 선생은 16개월 된 아들을 두고 왔다. 그 아들이 올해 쉰여덟이 된다. 박순자 선생은 아직도 빨치산 시절의 꿈을 꾼다. 오기태 선생이 북에 두고 온 자식들 이름은 춘자, 정자, 성일이다. 막내는 이름을 짓지 못하고 내려왔다. 박종린 선생은 감옥에서 25년 출소해서 35년을 살았다.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한다. 거기에 딸과 사위, 손자와 손녀가 있다. 김영식 선생은 전향서를 쓰고도 27년을 복역했다. 2001년 고문에 의한 강제 전향은 무효이므로 이를 취소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양희철 선생은 10분간의 전향연설을 거부했다가 37년의 옥살이를 했다. 이들의 모든 꿈이 이루어져 2차 송환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김동수 선생은 이제 돌아가지 못한다. 부산의 한 사찰에 안치된 유해만이 북의 아내와 딸에게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고장 난 타임머신에 가두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바꿀 수 없었던 것은. '비전향장기수’

이 책「바꿀수없는」은 현직 사진기자인 저자의 기획기사 ‘빨갱이 나를 소환하라’ 그리고 사진전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귀향’과 함께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다. 책에는 북으로 돌아가야 할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과 일상을 담은 사진들과 그들의 육성 인터뷰가 담겨 있다.

2018년 한반도는 북핵과 통일의 열기로 뜨겁다.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70년 비극적 분단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하며 두 손을 맞잡았다. 이를 지켜본 19인의 ‘비전향장기수’들은 낮은 탄식으로 화답했다. 선언문에 그들의 송환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전향장기수’는 자신의 정치적 사상과 신념을 그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와 격리되어 장기간 수감된 사람들을 말한다. 비전향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다.
1933년 일제에 의해 시행된 ‘사상전향제도’는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존재했다. ‘전향’이란 단어조차 일제의 사상검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변절’, ‘투항’, ‘굴복’ 등과 같은 자존심을 거스르는 말을 대신하여 당시 일제에 저항하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상가들을 회유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인 용어였다. 패전이후 ‘사상전향제도’는 원조였던 일본에서 폐지된다. 그러나 남한에는 남았다. 이승만, 박정희를 거치며 오히려 ‘강제전향’의 폭압은 절정에 달한다. 자신이 단순한 전향자가 아닌 동지를 팔아 살아남은 변절자였던 박정희는 형기를 마친 좌익수들이 사회로 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사회안전법’을 만들어 전향을 거부한 이들을 재판도 없이 구금하고 무자비한 고문과 폭력으로 ‘전향서’를 받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수백명의 좌익수가 도장을 찍었고 끝내 거부한 94명은 ‘비전향장기수’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들 94명의 ‘비전향장기수’가 감옥에서 보낸 햇수는 2854년에 이른다. 1인당 평균 31년의 징역을 살았다. 혹독했던 일제 강점기에 징역을 제일 오래 산 사람은 박열로 23년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장기수 넬슨 만델라는 27년을 복역했다. 한국의 ‘비전향장기수’의 평균 수감기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비전향장기수’ 중 최장 복역기간은 무려 43년이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잊혀진, 아니 기억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5.18과 민주화 투쟁이 있었다. 1993년 이인모가 북으로 송환되면서 비로소 ‘비전향장기수’들이 아직도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 1998년 7월 ‘전향서’가 ‘준법서약서’로 대체되고 ‘비전향장기수’ 대부분이 석방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상전향제도’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50년 넘게 존속한 셈이다.

미룰 수 없는 송환 혹은 귀향(歸鄕)

2000년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에 따라 이듬해 1차로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처 신청을 못했거나, 과거 강제로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로 30여명은 남한에 남아야 했다. 여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해외 언론의 취재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잊혀졌다.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2차 송환을 간절히 기다리던 이들 15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까지 19명이 남았다. 안타깝게도 올해 김동수씨가 타계하여 이제 18명만이 남았다. 이들은 체포된 후 짧게는 21년, 길게는 3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들의 복역기간만 해도 3백 64년이다.

28살 늦깎이 대학생은 10분의 전향 연설을 거부해 37년을 감옥에서 살았고 꽃다웠던 빨치산 여전사는 하얗게 머리가 센 노인이 되었다. 출소 후에도 ‘보안관찰법’의 감시는 계속되었다. 세상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빨갱이’ 중에서도 ‘골수 빨갱이’로 낙인찍힌 이들이 연고 없는 타향에 정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국을 떠돌았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이 생계급여에 의존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여름 폭염 속에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19인의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났다. 그들의 육성을 기록하고 사진기 앞에 세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만큼의 기록도 전무한 실정이었다.

이 책「바꿀수없는」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질지언정 자신의 신념을 거짓과 바꿀 수 없었던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생존기다. 저자는 “그들은 역경을 이겨낸 만큼 강했다. 그리고 풍파를 겪고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담담하게 전해준 그들의 증언은 화석에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듯 생생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지금도 집요한 전향 공작을 이기지 못해 쓴 '전향서'가 뼈아픈 실수라며 자책했고, 어떤 이는 옆에 앉은 남한의 아내 앞에서 북한 아내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북에 두고 온 코흘리개였던 아들이 환갑이 넘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평균나이는 87세, 대부분 오랜 감옥살이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어 언제 세상을 등질지 알 수 없다. 이제 18인이 되어버린, ‘비전향장기수’ 19인의 마지막 소망은 모두 같았다. 북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송환’이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북으로 가기를 원하는 분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강제전향제도의 악령을 떨쳐버리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꿀 수 없는 

 수 십 년을 0.75평 차디찬 감옥에 살면서도 지켜야 할 정치적 신념은 무엇일까. 현실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북한의 민낯이 알려진 뒤에도 바꿀 수 없는 그 신념이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70~80년간 세월의 흔적이 배인 그들의 초상을 보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이 책「바꿀수없는」의 저자는 23년차 현직 사진기자다. 그의 사진은 따뜻하지만 군더더기가 없다. 인물과 일상의 공간을 치장 없이 담아낸다. 저자는 이 책의 부제가 된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귀향’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다. 책에 실리지 못한 사진들도 함께였다.
전시장을 찾은 사진 속 주인공은 “가족들도 제 사진을 둬서는 안 된다고 버렸는데… 거울로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사진으로 마주하니 쑥스럽다.”고 했다. 그는 일생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

단칸방을 찍은 사진 한 장에 그의 고단한 삶이 있다. 남쪽에서 이룬 가족사진, 구식 달력, 오래된 시계, 약봉지, 신문 더미와 책 뭉치가 노인의 키보다 높게 쌓여있다. 한 평 남짓의 정원, 통일구호가 내걸린 사무실, 병실의 침상과 어두운 건물 복도에서 마주한 그들은 늙고 병 들었다. 초상 사진 속에서도 더러는 지팡이에 의지해 있거나 환자복을 입고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다. 하지만 검은 막 앞에 홀로 선 그들의 눈빛만큼은 끝내 전향하지 않은 신념과 자존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은 사진처럼 정직했다. 붉은 것을 붉다고 했다. 내 안의 생각을 속이지 않은 죄. 거짓을 말하지 않은 죄. 과연 그것은 정치적 신념이었을까?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 끝내 살아남아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낸 이들이 묻는다.

당신에게는 ‘바꿀수없는’ 무엇이 있습니까?

편집자 리뷰

1. Time Machine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라고 말했던 허버트 조지 웰스는 ‘타임머신’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문학작품의 소재로 등장시켰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떠나거나 시간을 초월하여 먼 미래로 여행하는 이 흥미로운 개념은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웰스 이후로 수많은 작가들이 타임머신 혹은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그들의 작품에 형상화시켰다. 지금도 연간 수 십 만대에 이르는 타임머신이 상상 공장의 생산라인을 빠져나와 각각의 사연을 안고 무한의 시간대로 출발한다. 타임머신의 무엇이 대중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는 것일까? 그 내면에는 시간이라는 절대불가역의 조건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공포 그리고 현재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바꿀 수 없는’ 타임머신에 갇혀버린 이들이 있다. 2018년 넌픽션이다. 한반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비전향장기수’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한반도에는 36년의 식민지배 끝에 해방이 왔고, 전쟁이 있었다. 그들은 타임머신에 강제로 태워졌다. 세상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독재와 4.19가 있었고 다시 독재와 5.18이 있었다. 민주화투쟁이 있었고 몇 번의 정권이 교체 되었다. 그 지난한 세월동안 그들의 시간은 정지되었다. 육체는 감금되었고 신념은 봉인되었다.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은 두 살 혹은 네 살인 채 박제된 기억으로 남았다. 이 책은 멈추어버린 그들의 시간을 찍었다.

2. Photograph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킨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찰나의 빛과 어둠, 그 경계를 포착하는 침묵의 미학이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시간은 저자의 카메라에 담기기 이전에 이미 정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진들에는 콘트라스트가 거의 없다. 빛과 어둠 중에서 그들 삶의 대부분이었을 어두움만이 트리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캡션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에 김동수 선생이 돌아가셨다. 인천의 박종린, 광주의 서옥렬, 음성의 김동섭 선생은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 나주의 이두화 선생도 거동이 어려워 곧 요양원으로 갈 예정이다. 이분들은 모두 80대에서 90대에 이르는 고령인 데다가 오랜 옥고와 전향공작 과정에서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과 암 투병에 시달리고 있어서 언제 세상을 등질지 알 수 없다.”
-김혜순 민가협양심수후원회장 추천사 中
그들의 삶과 정신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도 육체는 늙고 병들어 마지막을 가늠하기 힘든 순간을 맞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양심이 이들을 외면하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3. Profile
처음 떠나온 길은 각기 달랐다. 인민군에 입대해 전쟁 중에 포로가 되거나 자진해서 또는 쫓겨서 빨치산이 되기도 했고 어린 아들과 아내를 뒤로하고 당의 임무를 받고 남파되기도 했다. 그러나 체포된 후 그들의 시간은 모두 같았다. 6~70년 전의 일이었다. 평균 30여년에 이르는 감옥살이를 했다. 몇 줄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과 전향공작반의 집요한 공작을 견뎌야 했다. 짐승의 시간이었다. 대부분은 그 폭력의 고통을 이기지 못했다. 강제로 날인했던 전향서는 무효를 선언하였으나 병으로 장애로 육체에 각인된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혁명가로, 전사로 빛나던 청춘은 짧았다. 감금당한 채 머릿속의 생각을 바꿀 것을 강요받았던 감옥살이는 길었다. 출소 이후 버려진 연고 없는 땅에서도 감시와 제한은 계속되었다. 끝없는 감옥이었다. 그럼에도 신념은 바꿀 수 없었다. 거짓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곤궁한 삶의 여정은 깊게 패인 주름살 골짜기마다 묻었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은 모두 한결 같았다. 피붙이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송환’이다.

4. Unconvertible
류기진 선생은 인민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11년의 옥살이를 하고 60년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93세인 그는 북으로 돌아가 전역신고를 하고 싶어 한다. 이광근 선생은 공작원으로 남파되어 사형 선고 후 무기로 감형되었다가 22년을 전향공작에 시달리다 출소하였다. 故 김동섭 선생은 중국해방군으로 장개석 군과 싸웠고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빨치산 활동 중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되었다. 문일승 선생은 출소 후에도 감시를 피해 다니느라 1차 송환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김교영 선생은 어릴 적 고향집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사를 알 수 없지만 이두화 선생의 오빠들이 생존해 있다면 아흔 일곱과 아흔 셋의 나이다. 서옥렬 선생이 길을 떠날 때 아들은 세 살과 다섯 살이었다. 허찬형 선생은 식민지 17년, 인민군 3년, 빨치산 3년, 감옥살이15년 후에 51년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18살에 남로당 비밀당원이 된 양원진 선생은 늘 빨간색 옷에 한반도 배지를 가슴에 차고 다닌다. 최일헌 선생은 두 살배기 아들과 임신한 아들을 두고 남파되었다. 60년 전의 일이다. 남편을 따라 빨치산 전사가 되었던 박정덕 선생은 요양원에 있다. 오른쪽 다리가 없다. 박희성 선생은 16개월 된 아들을 두고 왔다. 그 아들이 올해 쉰여덟이 된다. 박순자 선생은 아직도 빨치산 시절의 꿈을 꾼다. 오기태 선생이 북에 두고 온 자식들 이름은 춘자, 정자, 성일이다. 막내는 이름을 짓지 못하고 내려왔다. 박종린 선생은 감옥에서 25년 출소해서 35년을 살았다.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한다. 거기에 딸과 사위, 손자와 손녀가 있다. 김영식 선생은 전향서를 쓰고도 27년을 복역했다. 2001년 고문에 의한 강제 전향은 무효이므로 이를 취소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양희철 선생은 10분간의 전향연설을 거부했다가 37년의 옥살이를 했다. 이들의 모든 꿈이 이루어져 2차 송환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김동수 선생은 이제 돌아가지 못한다. 부산의 한 사찰에 안치된 유해만이 북의 아내와 딸에게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고장 난 타임머신에 가두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바꿀 수 없었던 것은.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지윤 
1995년부터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다. 23년 동안 사건, 사고 현장을 취재하였고 사진기획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풍습과 생활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잡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뉴스 사진을 넘어 역사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비전향장기수, 제주 4.3 70주년, 쌍용차 해고노동자, 난민인권 기획 등 지금까지 50여 편의 다큐멘터리 사진기획을 진행했다.

■수상 2006년 한국보도사진상/ 2007년 한국보도사진상, 액설런트 사진기자상
2011년 한국보도사진상/ 2015년 현장의 사진기자상/ 2016년 한국보도사진상
2018년 한국 편집기자가 선정한 올해의 사진상
■경력 2008년~2015년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아카데미 사진 강의
■개인전 2018.10 귀향(歸向)_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展-갤러리 류가헌. 서울

 

목 차

추천사 |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송환 / 한홍구 ? 004
추천사 | 돌아가야 할 방문객들 / 김혜순 ? 010
작업노트 018

 70년간 전역하지 못한 인민군 소위 / 류기진 선생
73세, 가장 나이어린 장기수 / 이광근 선생
 병상에 누운 ‘백두산 호랑이’ / 김동섭 선생
 내 마음은 이미 통일이 되어 있다오 / 문일승 선생
 잡지 속에 담은 어머니 / 김교영 선생
 전장에 나선 김일성대학 여학생 / 이두화 선생
 쌍무기수의 부치지 못한 편지 / 서옥렬 선생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 허찬형 선생
 한반도 배지에 담긴 통일의 염원 / 양원진 선생
 지팡이 늦은 걸음으로라도 / 최일헌 선생
 꽃잎은 바람에 지지 않고 / 박정덕 선생
 좁은 감방에서 27년, 넓은 감방에서 20년 / 박희성 선생
 잊혀진 여전사 / 박순자 선생
 막내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 / 오기태 선생
60년의 기다림 ‘송환’ / 박종린 선생
 다큐 속 아련한 그의 눈빛 / 김영식 선생
 진통제 맞으며 꾸는 꿈 / 강 담 선생
10분과 맞바꾼 37년 / 양희철 선생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 故김동수 선생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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