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중국몽(中國夢)을 꿈꾸는 시진핑의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시진핑과 중국의 미래를 알려면 청태종 홍타이지를 살펴보라. 시진핑은 ‘홍타이지의 성공 역사’를 재현할 심산이다. 홍타이지는 중국 역사에서 집단지도체제를 독재체제로 바꿔 성공한 유일한 군주이며 선대에게 물려받은 작은 조직을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창업 2세 군주이다. 제2의 홍타이지를 꿈꾸는 시진핑, 400년을 건너뛴 그의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중국, 전인대 가림막 없는 반(半)공개투표, 참가자 99.8% 찬성, 헌법조문 몇 글자 수정!
이 파장은 컸다. 40년간 지속돼 온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허리가 부러졌고, 사라졌던 ‘황제의 망령’이 다시 대륙을 덮었다. 당초 2023년에 퇴임할 예정이던 시진핑은 ‘5년씩 두 번 연임’의 굴레를 벗고 적어도 2033년까지는 권좌를 지킬 생각으로 알려져 있다. 임기제한이 없는 최고 권력자의 미래는 외길이다. 결국 ‘독재자의 길’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이후 중국에서 독재자는 사라졌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이어받아 대륙을 지배하였으나 정교했던 덩은 ‘총구(중앙군사위 주석)’만 장악한 채 권력분점을 시도하였다. 당 총서기나 국가주석직을 사양한 덩은 살아생전에 권력을 장쩌민(江澤民)과 나누었다.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를 제한한 1982년 헌법은 덩의 ‘작품’이었다. 장쩌민이 국가주석에 올랐지만 정치권력은 7~9명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분점하였다. 이후 최고지도자인 국가주석은 10년 주기로 교체되었다.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쳐 시진핑이 등극하기까지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로 통치되었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 독재자라고 부를 만한 권력자는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
1인체제를 구축한 시진핑의 위험한 도박
시진핑은 달랐다.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정치적 라이벌들을 차근차근 솎아낸 시진핑은 마침내 집단지도체제를 무력화하고 1인체제를 구축하였다. 이어서 임기제한 마저 철폐하면서 사실상 황위(皇位)에 오르게 된 것이다. 시진핑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한 중국전문가는 2016년에 발간한 책에서 ‘시진핑이야말로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 시대를 열 지도자’라고 칭송하였는데 불과 2년 만에 스타일을 구겼다. 40년을 거슬러버린 시진핑의 행보에 대해 서방과 타이완?홍콩은 물론이고 대륙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독재의 문을 연 시진핑의 시도를 ‘시대와 민심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간단히 규정하는 것은 허전하다. 신중한 시진핑이 위험한 도박을 할 때에는 그만한 믿음과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시진핑의 정치 스승, 청 태종 홍타이지(皇太極)
새로운 황제를 꿈꾸는 시진핑의 도박이 성공할지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그의 의도는 짐작할 수 있다. “리더십이 안정되고 공고해야 중국몽(中國夢)을 이룰 수 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시진핑의 정치 목표인 중국몽(中國夢)은 ‘중국이 미국이나 유럽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서 전 세계를 이끌겠다.’는 야심의 표현이다. 횡적(橫的)으로는(동시대 서방적 시각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시진핑의 행보지만 종적(縱的)으로(중국 역사를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한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청(淸) 태종 홍타이지((皇太極)이다. 독재의 문을 열어 제친 시진핑의 의도는 ‘홍타이지의 성공역사를 재현할 심산’이다. 지나친 억측이 아니다. 중국 역사가 비록 길다고 해도 집단지도체제의 사례는 매우 드물다. 더욱이 집단지도체제를 독재체제로 바꿔 성공한 군주는 홍타이지가 유일하다. 2012년 집권 이후 통치구도 변경 문제에 몰두해 온 시진핑과 시자쥔(시진핑과 추종세력을 의미함)이 홍타이지의 사례를 포착했을 것이다.
청나라의 실질적 창업군주 홍타이지를 통해 현대 중국의 작동원리 이해
홍타이지와 그가 걸어간 족적을 진지하게 공부하다 보면 시진핑의 ‘이해 못할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지도부의 향후 행보도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원형(原型)은 만주족(滿洲族)이 세운 청나라 시대에 이미 완성되었고 만청(滿淸)의 실질적 창업군주는 홍타이지이다. 현대 중국의 작동원리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만청의 역사, 그 중에서도 창업주인 홍타이지 시대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400년 전 만주(滿洲) 거친 땅에서 몸을 일으킨 ‘강인한 족속’의 리더 홍타이지 이야기는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의 미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중국이란 용(龍)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21세기는 중국시대이다. 2014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10조 3천 500억 달러, 17조 4천억 달러의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고 4조 8천억 달러인 세계 3위 일본의 2배 이상이다.(한국은 2014년 1조 4천 500억 달러였다.) 2019년에는 중국의 GDP가 20조 달러를 넘어서며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IMF는 예측하고 있다.(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이미 2014년 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력 외에 군사력과 외교력, 우주과학기술 등 총체적 국력도 미국에 비견할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14억 대국의 굴기는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다. 승천하는 용(龍)의 기세 그대로이다. 유사 이래 수천 년을 ‘중국의 이웃’으로 살아온 우리역사에서도 이 정도의 변화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사건이다.
현대 한반도인들은 대국굴기의 파장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은 덩치로 ‘이웃의 큰 나라’를 어떻게 다룰지는 과거의 조상들도 깊이 고민했던 주제이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맞서 싸우다 실패했다. 신라와 고려는 자주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였다. 조선은 중국을 내면으로 존경하며 깊숙이 섬겨 ‘신속(臣屬)의 도리’를 다하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중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홍타이지와 만주족에게 배우는 교훈
굳이 중국을 상대할 교훈까지 아니더라도, 만주족의 성공역사는 그 자체로 조망할 가치가 충분하다. 우선, 비슷한 잠재력을 지닌 형제민족의 위대한 스토리에서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만주족 이야기는 우리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란 점에서도 충실한 이해가 필요하다. ‘만주족의 성공 비결’은 ‘조선의 실패 원인’과 상통(相通)하기 때문이다.
같은 오랑캐였지만 순이(順夷)였던 조선과 180도 다른 꿈을 키웠던 역이(逆夷),만주족의 결단은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된다. 그런데 만주족이 견지한 오랑캐 정신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용략(勇略)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구자적 역할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 지도자는 이 책의 주인공격인 ‘아이신교로 홍타이지(愛新覺羅 皇太極, 애신각라 황태극 1592~1643)’이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1637년 1월 30일 삼전도 들판에서 조선 왕(인조)을 무릎 꿇렸다. 그 결과 홍타이지는 ‘한반도 정복자’라는,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킬 수 없는 인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였다. 한반도와 악연으로 맺어졌지만 우리는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의 실력은 평시가 아니라 난세에 드러나는 법이다. 오랑캐의 용맹에다 지략까지 겸비했던 청태종 홍타이지는 중첩된 위기, 암울한 현실을 뚫고 신생국 후금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다. 홍타이지는 독립국을 목표로 삼았던 창업주 누르하치의 작은 노선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질적인 고양과 규모 확대를 통해 물려받은 소국을 강대한 제국으로 재창조하였다. 이런 점에서 홍타이지는 ‘창업주를 능가한 2세 경영’의 전범을 보여준 셈이니 현대 기업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타이지, 만주족의 미래 비전을 제시
소수의 만주족이 대륙을 성공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진 인물은 이 책의 주인공 홍타이지이다. 그런 점에서 ‘만주족 성공역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홍타이지는 1626년 부친 누르하치가 타계하고 금국 한(金國 汗)의 지위를 계승한 지 10년 만인 1636년 대청제국으로 국체(國體)를 확대변경하고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흐른 1643년 9월 21일(양력), 중원 정복의 대계(大計)를 마련한 뒤 세상을 떠났다.
시간의 흐름이 현대보다 느렸던 전통시대에 홍타이지가 다스렸던 17년의 세월동안 만주국의 발전 속도는 참으로 눈부시다. 자립기반을 마련하지 못해 앞날이 캄캄하던 북방의 소국이 어찌하여 전 대륙을 정복하는 최강국으로 성장하였는가? 필자는 ‘최고 지도자의 역량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국가든 단체든, 기업이든 모든 조직은 최고 리더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리더의 수준이 곧 조직의 수준이다. 뛰어난 리더였던 홍타이지는 만주국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강점인 전쟁수행능력을 100% 활용하는 ‘오랑캐다운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한 다음 흔들림 없이 추진하였다. 아울러 새 나라가 나아갈 국가비전(대륙 정복)을 분명히 제시하여 부하들과 후계자들이 한길로 달리도록 안배하였다.
홍타이지, 창업주를 능가하는 2세 경영
답답하고 암울한 처지에서도 홍타이지는 대국 명나라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적이 100배나 크고 강할지라도 만주의 사내들을 당해내지는 못한다.’는 기백으로 맞서 나갔다. 만주국을 홀대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빚을 갚겠다는 투지를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다. 홍타이지가 이룩한 성과, 창업주를 뛰어넘은 2세경영의 실적은 사극(史劇)이 아니라 현대극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갖추었다. ‘창업주를 능가하는 창업정신’이야말로 홍타이지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하라
만주족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17세기 초 대륙을 정복하기로 한 홍타이지와 만주국 지도부의 결단은 용감하고도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하던 시절에도 만주족 리더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100배나 많은 인구에 경제력에서도 월등한 중국에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정복을 하겠다는 야심찬 국가목표를 세웠고,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그리고 온갖 도전을 물리치고 자신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만주족의 역사, 특히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를 거쳐 강건성세까지 200여 년을 반추해 보면 ‘위대한 성공’의 비결은 분명해진다. 상대가 아무리 크고 강해도, 사안이 아무리 위험해도 두렵지 않다는 오랑캐의 기백, 스스로의 강약장단(强弱長短)을 파악해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는 지략, 그리고 앞사람의 업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창업정신의 견지, 세 가지로 귀결된다. 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가진 힘을 마음껏 발산하는 새로운 긴장의 시대, 상대적 소국들에게 필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보는 창, 부끄러운 역사를 직시하여 조망하자
조선은 병자호란 때 한번 망한 셈이다. 오랑캐라고 얕봤던 족속에게 짓밟혀 수백 년간 부끄러워했다면 우리는 실패원인부터 스스로의 약점까지 철저히 분석했어야 마땅하다. 한반도와 악연으로 맺어졌지만 지금 우리는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에게 치욕을 안긴 ‘기분 나쁜 원수’로 단정해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4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만큼 병자호란의 굴욕을 제어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다. 만주족을 라이벌로 여길 필요성은 사라졌고, ‘오랑캐에 항복했다’는 마음의 상처도 아득한 옛 기억일 뿐이다. 이제라도 홍타이지와 만주족의 혈관이 펄펄 뛰던 시대상과 조선을 침공한 배경, 당대 동아시아의 국력 동학(動學)을 객관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보는 창(窓)이기 때문이다.
대국굴기에 맞설 ‘오랑캐 정신’의 재발견
‘집단사유(集團思惟)의 차이’, 조선의 지배층이 즐거이 명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면 만주의 지도부는 반대로 명을 정벌하고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키웠다. 조선은 중국을 ‘하늘(天)’로 보고 섬기려 한 반면 만주족은 정복할 ‘땅(地)’으로, 지배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충효의 유교이념이 구현되는 예의지국을 건설함으로써 작은 중화(小中華)가 되기를 희망했던 조선은 오랑캐이면서도 오랑캐 근성을 버린 이른바 순이(順夷), ‘착한 오랑캐’였다. 스스로를 좁은 울타리에 가뒀던 탓에 조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잠재능력 이하로 작아지고 약해져갔다.
하지만 만주족은 100배가 넘는 인구에다 비교할 수 없이 부유하던 명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격차에 기가 죽지도 않았다. 역이(逆夷), ‘나쁜 오랑캐’를 자처했던 만주족은 스스로를 작지만 강한 족속으로 단련시켰던 까닭에 어느 순간 조선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존재로 성장했던 것이다. 두려워할 만한 상대를 겁내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 바로 ‘나쁜 오랑캐 정신’이다. 이웃대국이 굴기(?起)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요구되는 이념이기도 하다.
책속의 책에는 조선의 입장에서 본 병자호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636년 병자년 12월, 12만 8천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넌 청 태종 홍타이지는 이듬해 1월 30일 서울 송파구 삼전도 들판에서 조선 왕을 무릎 꿇렸다. 인조가 무릎을 꿇기까지의 과정을 국서로 음미할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 때로는 급박하고, 또 때로는 대책 없는 명분으로 어지러웠다. 치열했던 회담 과정을 날짜별로 살펴보는 기회를 이 책을 통해 가져보자.
작가 소개
지은이 : 장한식
서울대학교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와 동(同)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고, 베이징특파원을 지냈다. 귀국 후 뉴스제작부장과 경제부장, 사회부장, 해설위원, 편집주간, 전략기획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자는 중국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통로로 만주족과 접촉하였고 그들의 역사와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국이 굴기하면서 역사문제나 영해, 영토문제 등으로 우리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가하는 상황에서 만주족의 ‘오랑캐 정신’은 소국이 대국을 어떻게 대할 지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만주족 이야기’를 썼다. 나라의 크기로 상하(上下)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며 작은 나라도 꿋꿋한 의지와 실력이 있다면 능히 큰 나라에 맞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 2015년 출간한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이다. 개정판에서는 시진핑 정권의 형태가 과거 홍타이지의 성공 역사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적시하는 등 현재 상황과의 비교 부분을 추가해 흥미를 더하였다.
저자는 과거에서 미래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는 견지에서 역사문제에 제법 천착해 왔던 바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를 출간하였고, 대한민국 해양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을 저술하였다.
목 차
프롤로그 - 왜 홍타이지인가? _ 5
시진핑의 위험한 도박|시진핑의 정치적 스승, 청 태종 홍타이지|‘나쁜 오랑캐’ 만주족의 대궐기|중국이란 용(龍)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만주족의 성공 비결, 오랑캐 전략|홍타이지, 역사가 숨긴 한반도 정복자
Ⅰ 은(銀)의 축복 … 누르하치 후금 건국 _ 25
1 _ 은이 뒤흔든 16∼17세기 동아시아 _ 27
백은(白銀) 대박, 동서무역 확대|은의 중국 유입과 은본위제(銀本位制) 확립|은의 유입과 여진사회의 변화|백은의 반격, 중국의 위기
2 _ 백두산 인삼전쟁 만주의 승리 _ 51
1595년 조선-건주(建州) 인삼외교|조만(朝滿) 인삼전쟁, 만주가 주도하다|농본국(農本國)과 중상국(重商國)의 차이
3 _ 상인에서 장군으로 … 누르하치의 굴기 _ 67
추장의 아들, 무역으로 입신하다|누르하치의 기병(起兵)|만주 땅의 칙서전쟁(勅書戰爭)|욱일승천(旭日昇天) 누르하치 ‘여진통일’ 박차
4 _ 400년 만의 만주 독립 … 성과와 한계 _ 87
후금 건국, 사르후 전투 승리|명의 경제봉쇄와 후금의 요동 장악|한족의 반발, 만주국에 켜진 ‘빨간불’|원숭환의 등장 … 넘지 못한 영원성
Ⅱ 홍타이지 내부개혁, 후금의 재탄생 _ 105
5 _ 홍타이지, 지략으로 집권 성공 _ 107
“천하를 훔친 도적”|궁정의 외톨이, 실력으로 중망(衆望) 얻다|불타는 권력의지로 한위(汗位)에 오르다
6 _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로 최악 위기 돌파 _ 121
대명(對明) 평화제의로 시간을 벌다|한인 포용정책, 요동 농사 재개|급한 불끄기 ‘정묘 동정(東征)’
7 _ 중국식 체제정비, 절대권력 확보 _ 135
팔왕공치(八王共治) 폐기, 남면독좌(南面獨坐) 관철|팔기 개조, 군사력 장악|유교식 관료제 도입, 한인(漢人) 지식층 포섭|한군기(漢軍旗) 신설 …‘요동한인(遼東漢人)’의 등장
8 _ 만주 제일주의 구축 _ 153
‘여진’을 버려 ‘만주’를 얻다|만주문자(滿洲文字) 개량|복식·두발 ‘민족 정체성’ 강조|라마불교로 범(汎)북방 사상통일
Ⅲ 전쟁으로 국가 발전 … 오랑캐 전략 시동 _ 169
9 _ 철기(鐵騎)에 홍이포, 수군 더하니 천하무적 _ 171
10만 철기군단 구축|홍이포(紅夷砲) 입수|수군(水軍) 확보
10 _ ‘돈을 버는 전쟁’ … 약탈로 경제부흥 _ 187
전체 인구의 10%가 군대였던 나라|전쟁은 취업, 약탈은 봉급|이윤 높은 전쟁산업 … 강해지는 만주국
11 _ 몽골 장악 … 활로 찾은 중원 공략 _ 207
명을 능가한 군사강국 북원(北元)|왕족간 결혼 장려 … 만몽 연대 강화|막남몽골 정복과 중원 공격 새 루트 확보|릭단칸 제압, 전세국새(傳世國璽) 획득
12 _ 조선 정벌 … 대명체제(大明體制) 끝장내기 _ 223
대명체제 종식 알린 국제이벤트|친정(親征) 승부수로 황제권위 회복
Ⅳ 천명(天命) 내걸고 중국 정복 _ 233
13 _ 황제국 대청(大淸) 창건, 시대교체 선포 _ 235
대원옥새 입수 ‘하늘의 뜻’ 선전|몽골대칸(大汗) 승계|대청제국(大淸帝國) 출범
14 _ 끝없는 ‘벌(罰)’ 골병든 명나라 _ 247
외곽을 때려 중심을 허문다|1627년 영금(寧遠·錦州)전투 실패, 벌명(伐明)작전 변경|제1차 중원 공격(1629년 10월~1630년 2월)과 원숭환의 몰락|대릉하성 포위전 성공(1631년 8월~10월)|중원 3연전(1634년, 1636년, 1638년)에 중국 ‘그로기’|송금(松山·錦州)전투 승리(1640년 3월~1642년 4월)|‘일방적 약탈’ 제5차 중원 공격(1642년 10월~1643년 7월)
15 _ 도적떼를 키워 천하를 뒤흔들다 _ 271
북중국의 대기근과 도적떼 출현|만주의 잇단 침공과 도적떼 확산|유적(流賊)의 창궐|토벌전 실패와 ‘유적 세상’ 도래
16 _ 차도살인 전술로 산해관을 넘다 _ 295
이자성 북경 진공, 명나라 멸망|홍타이지 사망, 도르곤(多爾袞) 집권|이자성 제압, 북경으로 천도|‘도적 소탕’ 명분으로 천하제패
에필로그 - 만주족의 중국 경영 268년 _ 317
책 속의 책-병자호란, 피할 수 있었던 어리석은 전쟁 _ 327
배경-외교의 실패 … “전쟁으로 결판내자”_ 329
서인(西人)정권 등장, 원리주의 강화|갈등 관리 실패…높아가는 전운|준비 없는 결전론 득세|만주국의 최후통첩 무시
과정-군대와 붓대의 싸움 … 조용한 전쟁, 시시한 승부 _ 355
신속 진격 vs 빠른 도주 …‘전투 없는 전쟁’|포위당한 남한산성, 치열한 내부싸움|국토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최후의 일격 ‘강화도 함락’
결과-무릎 꿇은 조선, 천자(天子)가 된 오랑캐 _ 377
휴전회담 실기, 항복조건 악화|삼전도(三田渡)의 ‘굴욕’
결론-화이론(華夷論)이 부른 비극_ 409
참고문헌 _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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