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우리도 그들처럼,
처절한 삶과 죽음이 만들어 내는
초원의 이야기”
치열함과 처절함이 존재하는 곳, 초원
초원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삶
끝없이 펼쳐진 초록 물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 물가에 몰려들어 느긋하게 목을 축이는 물소 떼……. 소란하고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초원’을 갑갑한 현실로부터 한 걸음 비껴 서 있는 이상적 공간으로 떠올리곤 합니다.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쉼이 필요할 때 생각나는 ‘고향’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막상 초원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의 치열함과 처절함이 존재하는 곳이지요.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는가 하면,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형제끼리 물고 뜯으며 경쟁하기도 합니다. 또 우두머리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무리를 이끌고 쏟아지는 뙤약볕 길을 수십 킬로미터씩 이동해야 하지요. 약한 동물은 강한 동물의 먹잇감이 되고, 강한 동물은 더 힘이 센 동물에게 죽임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지요. 초목이 우거진 대신 높다란 빌딩 숲이 무대인 것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 우리가 자란 곳
책고래마을 스물일곱 번째 그림책 《초원》은 초원에 대한 이야기이자, 초원을 이루는 수많은 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태어나서 자라고, 함께 목을 축이며 달리다 결국 사라지기까지.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다시 움트기까지. 초원에 사는 생명들의 삶과 죽음을 그려 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잔인할 수도 씁쓸할 수도 있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곳이 바로 ‘초원’이지요. 작가는 마치 초원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그곳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줍니다. 주인공을 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 하나하나가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지요. 치타, 하이에나, 얼룩말, 물소 들의 덤덤한 표정과 달리 오히려 평온할 것 같은 초원의 풀들은 거친 질감으로 표현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글은 역동적인 그림과 대비되어 더욱 서정적으로 다가옵니다. 초원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합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벅찬 순간에도,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이빨에 당한 초식동물의 절명의 순간에도 작가는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저 기록하듯 ‘내가 태어난 곳 네가 자란 곳’, ‘그저 사라지다가’라고 적을 뿐입니다.
이제 막 서른을 넘어선 작가의 녹녹치 않은 속앓이가 담긴 그림책
《초원》은 우미정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서른을 이제 막 넘긴 작가의 녹녹치 않았던 속앓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을 텐데 작가는 꾹꾹 눌러서 담백하게 적어 냅니다. 여백이 많은 글은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요. 행간에 감추어진 수많은 이야기, 미처 적지 못한 마음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회색빛 초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지금 생의 어디쯤에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걸까?’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걸까?’
요즘의 많은 그림책이 그렇듯이 《초원》은 그림책 독자의 영역을 한층 넓힌 작품입니다. 아주 어린 유아가 아니라면 충분히 함께 볼 수 있는 이야기이지요.
메마른 대지를 건너 마침내 다다른 초원
처음 책장을 펼치면 마른 대지를 건너는 물소 무리가 보입니다. 빽빽하게 화면을 채운 물소들이 향하는 곳은 아마도 ‘초원’일 것입니다. 화면 끝으로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황량하리마치 메마른 땅을 무사히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어딘가에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매서운 눈으로 무리를 노리고 있는 녀석이 있겠지요. 물소들은 어느 때는 천천히, 어느 때는 빠르게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 걸음을 옮깁니다.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고단함을 씻어 내고, 마침내 도착한 초원. 먼저 온 동물들이 풀을 뜯으며 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납니다. 새끼를 낳는 어미 소의 모습조차 담담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새끼의 하얀 몸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이내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새끼는 어미를 따르지요.
거침없이 온 초원을 적시는 비,
비가 그친 곳에 다시 움트는 생명
초원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어미 뒤를 쫓던 새끼는 점점 자라고, 다른 녀석들과 함께 달리고 냇가에서 목을 축이며 초원을 누빕니다. 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삶이 그러하듯 죽음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옵니다. 천적의 사냥감이 되어,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덧없이 사라져 갑니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지만, 마음 한편이 애잔해 옵니다. 그것도 잠시, 무리는 죽음을 뒤로 하고 다시 생을 이어가지요.
초원에 다시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한낮의 사냥감으로 배를 채운 표범은 나무 위에서 느긋하게 밤을 만끽하지요. 적막을 깨고 풀을 흔들어 깨우는 바람소리, 곧 비가 올 듯합니다. 비는 거침없이 온 초원을 적시고, 비가 그친 그곳에 다시 생명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또 그들은 달리고, 날아서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살이가 여러 모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요즘입니다. 힘들고 지친 마음 툭 내려놓고 한 발짝 비껴 서서 이 멋진 그림책 《초원》을 한 번 펼쳐 보는 건 어떨지요.
작가 소개
그림이 그리고 싶어 ‘꼭두일러스트교육원’에서 공부를 하며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곳 특히 자연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걸 좋아하며, 그림으로 재미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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