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지성사의 대가이자 뛰어난 문예비평가 스타로뱅스키
‘빛의 세기’의 이면을 응시하다
스타로뱅스키, 주네브학파, 18세기
스위스 주네브 출신의 장 스타로뱅스키(1920~ )는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이지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인물이다. 탁월한 비평과 지성사/문학사에서 이룬 연구성과로 볼 때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문학과 철학, 의학, 음악, 미술, 건축 등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과 쉬운 독해를 거부하는 독특한 문체로 무장한 그의 저술을 번역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1980년대에 이미 문학평론가 김현에 의해 ‘주네브(제네바)학파’의 일원으로 소개되어 국내에 알려진 스타로뱅스키는 18세기 지성사의 대가이자 장자크 루소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동시대의 탁월한 문예비평가로 손꼽힌다. 프랑스 문학잡지 『크리티크』는 2004년 스타로뱅스키에게 헌정하는 특집호를 발행하면서 그를 “텍스트와 컨텐스트, 설명과 해석의 균형을 잃지 않는…… 가장 완전한 의미의 비평가”로 소개했고, 주네브학파 비평가 조르주 풀레는 자신의 책 『비평적 의식』에서 19~20세기를 수놓은 프랑스 비평가 18인을 논하며 스탈부인, 보들레르, 블랑쇼, 바르트 등과 나란히 스타로뱅스키에게 한 장章을 할애했다.
스타로뱅스키의 저서 중 이제까지 우리말로 번역된 유일한 책은 초기 대표작인 『장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이충훈 역, 아카넷, 2012)이다. 1957년에 주네브대학 박사학위논문으로 제출했던 저술로, 지금까지도 루소 연구의 필독서로 간주된다. 특이하게도 스타로뱅스키는 1960년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의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루소와 멜랑콜리, 문학과 의학은 이후 스타로뱅스키의 학문과 비평의 양대 축을 이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시기가 바로 ‘18세기’다. 18세기를 상징하는 계몽주의자가 루소이고, 이 ‘빛의 세기’에 음영陰影처럼 드리워진 정서가 바로 멜랑콜리다.
마르셀 레몽, 알베르 베갱 같은 주네브학파의 선구자들이 19세기 낭만주의와 보들레르를 현대적 정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스타로뱅스키는 그 기점을 더 뒤로 물려 ‘18세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감행한다. 『자유의 발명 1700~1789』(1964)와 『1789 이성의 상징』(1973)은 이러한 기획을 대표하는 역작이다.(이 두 책은 2006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합본으로 재발간되었다.) 두 책은 역사적 사건이나 추상적 담론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고 건축과 미술 등 당대에 실현된 구체적인 시각문화에 근거해 독창적인 시각으로 18세기를 재조명하며, 스타로뱅스키 저서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파격적이며 대중적인 책이기도 하다.
새로운 예술, 새로운 미학의 터전
“18세기에 덧씌워진 신화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자유의 발명』은 부르주아의 19세기가 덧씌운 오명을 걷어내고 18세기가 ‘발명’해낸 “최초의 자유”를 온전히 복원하고자 한다. 스타로뱅스키는 부르주아계급이 주도권을 쥔 19세기 유럽이 18세기를 우아하고도 경박한 시대로 ‘상상’했다고 본다.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계급이 갖게 된 불안과 허위의식이 ‘구체제’라는 신화를 등장시켜 ‘역사철학’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프랑스혁명 덕에 모든 것을 얻었으면서 정작 혁명을 세상에 악이 들어오게 된 틈으로 보았다.”(15쪽)
그러나 18세기는 계몽사상에 힘입어 인간의 타락을 가르치는 신학을 거부하고 인간 본성을 회복하여 감각적 삶과 감정에 관한 주제를 우선시했던 시대였다. 18세기는 ‘역사’라는 현대적 개념을 만들어냈거나 적어도 그 개념을 도입했던 시대이며, 동시에 ‘미학’이 독자적 학문으로 도약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계몽주의 이념이 당대의 예술작품에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추적하는 이 책에서 스타로뱅스키는 18세기가 보여준 다양성과 개성에 주목한다. 이 시기는 감각과 즐거움, 낭비와 호사의 예술적 경향이던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꽃피우고 그 반작용으로서 신고전주의와 민중적 양식이 대두되던 때였다. 17세기 고전주의에 근거한 질서와 균형, 통일성과 조화의 엄격한 기준이 완화되면서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예술은 세련되고 섬세한 표현을 내세우면서 한없이 가볍고 호사스러워졌다. 그러자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 경박하고 변덕스러운 예술에 엄정한 비판을 가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이상이 구현했던 순수 형식과 인간 본성으로서의 자유 이념의 회복을 주창했다. 빙켈만의 신고전주의가 대표적인 이념이며, 음악의 소나타와 교향곡이 이를 대표하는 예술 형식이었다.
그러나 스타로뱅스키는 이 시기에 두 상반된 예술 경향이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하고 길항하면서 수많은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고대와 현대의 경쟁, 이탈리아 양식과 플랑드르 양식의 경쟁(회화), 고전주의와 고딕주의의 경쟁, 멜로디와 화성의 경쟁(음악), 영국식 정원과 프랑스식 정원의 경쟁 같은 수많은 경쟁이 이 시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기존의 지배적인 장르가 쇠퇴하고 새로운 장르가 발명되었다. 이 ‘다양성’이 18세기 유럽 예술의 매력이자 성취였고, 특정 유파의 틀로 가둘 수 없는 예술가들의 무한한 ‘개성’이 이 시대의 특징이었다.
그리하여 신화와 종교에서 끌어낸 주제를 거대한 화폭에 담아내는 역사화보다 당대 풍속을 다루는 장르화, 개인의 개성을 포착하여 재현해내는 초상화 장르가 유행했다. 새로운 장르에는 새로운 시학이 필요하듯, 18세기는 ‘미학’이 빛을 본 시대였다. 빙켈만을 비롯해 바움가르텐의 『미학』(1758), 칸트의 『판단력비판』(1790)이 모두 이 시대의 산물이었다.
스타로뱅스키는 18세기의 회화 작품들에서 19세기의 인상주의는 물론 20세기의 초현실주의 경향까지 읽어낸다. ‘카프리치오’ ‘상상의 풍경’ 경향을 설명하며 ‘자동기법’과 ‘해석된 타시즘’을 떠올리는 대목이 특히 그러하다.(198~199쪽) 그는 예술사가들이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18세기가 사실은 온갖 현대적인 예술 운동과 이념의 토대였음을 밝혀낸다.
혁명의 빛과 어둠의 회귀
스타로뱅스키는 『이성의 상징』에서 18세기의 또다른 ‘신화’를 벗겨낸다. 바로 ‘1789년’ 프랑스혁명의 신화다. 스타로뱅스키는 혁명이라는 사건 자체에서 한 발 물러나 당시 예술의 여러 면모를 있는 그대로 조망해본다. “1789년에 빛을 본 예술작품 대부분은 혁명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이 작품들은 혁명이라는 사건 이전에 구상되었고, 긴 호흡의 의도로 준비되었기에 저 뜨거웠던 나날의 열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252쪽) 그렇지만 “1789년의 예술가들은 혁명에 주목했든 무시로 일관했든, 혁명을 승인했든 단죄했든…… 프랑스혁명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253쪽)
스타로뱅스키는 1789년의 모든 정신, 모든 예술작품을 ‘혁명적/반혁명적’으로 나누는 단순한 이분법을 거부한다. 그는 차라리 빛과 어둠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이 시대 예술을 설명한다. 18세기는 당대에 ‘빛의 세기’라 불렀다. 이때 빛Lumi?res은 편견과 미신의 어둠을 밝히는 ‘지식’이라는 의미다. 또한 봉건체제의 불평등을 일소하는 혁명의 빛이다. “암흑을 눌러 이기는 빛, 죽음 한복판에서 다시 태어나는 삶,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세상 등의 은유는 1789년 무렵에 보편적으로 부각되던 이미지다.”(293쪽)
그러나 어둠은 곧바로 회귀한다. “어둠이 물러서면서 나타난 혁명의 빛은 그 어둠의 회귀와 맞서야 한다. 어둠은 혁명의 빛 내부까지 위협한다. 혁명의 빛이 세상에 스며들 때는 어떤 저항에 직면한다. 이 저항은 무기력하게 남아 있는 사태,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반항적 의지가 한데 어우러져 빚어진다.”(309쪽)
이제 예술가들은 이 ‘어둠’의 힘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 대표적인 화가가 프란시스코 고야이다. 『이성의 상징』은 고야의 그림으로 문을 열고, 한 편의 ‘고야론論’으로 끝맺는다. “1789년에 이상을 추구하는 추상화抽象化를 거부한 유일한 화가” 고야는 신고전주의에 완전히 등을 돌린 채 색채와 음영에 몰두했고 “마네와 표현주의, 20세기에 나타난 대담한 시도들의 천재성과 고독함을 선행해서 보여주었다.”(425쪽)
프라고나르의 그네 그림(94쪽)처럼 고야의 그림에서는 감각적 삶의 밝게 빛나는 풍요로움에도 ‘검은 이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유주의자이자 계몽사상가들의 친구였던 고야는 “이성이 잠들었을 때 태어나는 그로테스크한 형상들을 대놓고 보여주었다.”(435쪽) 고야의 대표작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은 에스파냐에 들어온 프랑스 혁명군이 시민들에게 발포하는 그림이다. 빛인 줄 알았던 것이 어둠, 역사의 폭력이 되어버렸음을 고야는 목격한다. 그러나 어둠에 휩싸인 이 그림에서 빛은 희생자 무리, 그중에서도 평범한 한 인물을 확고하게 비춘다. 그것은 죽음으로도 파괴되지 않을 ‘도덕적 자유’의 빛이다. “내적 감정에서든 형식의 창안에서든 최고의 자유는 물질 및 사건의 숙명성을 받아들이고 그 도전에 충실하게 응전할 줄 아는 화가들만이 실현할 수 있는 법이다.”(440쪽)
자유와 이성의 이면
『자유의 발명 1700~1789 / 1789 이성의 상징』에 등장하는 두 단어 ‘자유’와 ‘이성’은 계몽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스타로뱅스키는 이 두 개념을 앞세우기보다 정념, 즐거움, 의지, 숭고, 멜랑콜리, 노스탤지어, 불안, 어둠 등의 주제들이 ‘자유’와 ‘이성’을 어떻게 감싸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이성과 정념, 의무와 즐거움, 질서와 광기가 개별 예술가들 안에서 어떤 식으로 혼재하고 공존했는지를 섬세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로코코 예술의 밝고 경쾌한 화려함 속에도 멜랑콜리와 폐허와 죽음의 이미지는 미묘하게 공존해 있었다. “[18세기 화가들인] 앙투안 바토의 공원, 프랑수아 부셰의 규방,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사육제에는 모두 낙원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의 낙원은 다가올 몰락을 예감하는 멜랑콜리로 은밀히 변형되었고 어김없이 쾌락에 따라붙는 탈선으로 이미 죽음을 바라보는 낙원이다.”(16쪽)
스타로뱅스키는 화려한 외양과 일시적 즐거움의 이면에서 다시 멜랑콜리를 발견한다. 전원의 축제를 그린 바토의 그림에서, 과르디의 경이로운 풍경화에서, 마냐스코와 위베르 로베르의 폐허 그림에서 멜랑콜리를 찾아낸다. 그 멜랑콜리한 열광을 보면 우리가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존재이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여러 세대가 사라졌듯이 우리도 그렇게 사라질 운명임을 배우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사물들의 현전에 몰두했던 18세기 초의 경향에서 이제 세기 말이 되면 ‘부재’의 경험과 표현으로 넘어간다. 계몽사상가들이 몰두했던 자연과 사회, 야만과 문명의 대립이 뒤섞이면서 예술은 기억 대신 망각을, 명성 대신 익명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기에 신고전주의는 위대한 원칙의 승리를 널리 퍼트리기 위한 형식을 탐구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둠을 추방하고자 했던 이 예술의 정점은 어둠의 회귀를 불안해하고 두려워했던 고야 같은 화가였다.
이렇듯 빛과 어둠이 변증법적으로 교차하던 18세기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현대보다 더 현대적인 시대, 환희와 불안이 양립하던 시대, 이제는 잊혀져가는 현대적 정신이 탄생한 시대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장 스타로뱅스키
프랑스 문학사 및 지성사의 대가이자 뛰어난 문예비평가. 1920년 스위스 주네브에서 태어나 주네브대학에서 문학과 의학을 공부했고, 1949~1954년 주네브대학병원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정신분석학 임상의로서 프로이트를 깊이 연구했다. 1958년 주네브대학에서 『장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지성사 교수로 부임한다. 1960년엔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루소를 ‘투명성’과 ‘장애물’ 사이를 부단히 오간 작가로 부각한 박사논문은 출간 즉시 루소를 읽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루소 연구의 고전으로 꼽힌다. 이후 스승인 마르셀 레몽과 공동으로 루소 전집을 편집한다. 레몽과 장 루세, 알베르 베갱, 조르주 풀레 등과 함께 ‘주네브학파’의 일원으로도 꼽힌다.
문학과 의학,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를 넘나드는 연구 궤적은 그의 저작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타로뱅스키에게 루소(문학)와 멜랑콜리(의학)는 연구와 비평의 출발점이자 근간이다. 보들레르의 시를 멜랑콜리의 관점으로 훌륭히 분석한 『거울에 비친 멜랑콜리』(1990)를 비롯하여 멜랑콜리라는 주제는 스타로뱅스키의 거의 모든 저술에 등장하며, 이를 집대성한 책이 『멜랑콜리의 잉크』(2012)이다.
계몽주의의 이념이 당대의 예술작품에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추적한 『자유의 발명 1700~1789』(1964)과 『1789 이성의 상징』(1973)은 18세기 유럽의 예술과 철학사상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빛의 세기’의 이면을 독창적으로 읽어낸다.
그밖에 주요 저서로는 자신의 문학 사상과 방법론을 개진한 『비평의 관계』와 『곡예사의 초상』(1970), 소쉬르 연구서 『말 아래의 말』(1971), 광기의 발현을 다룬 『세 개의 분노』(1974), 18세기 연구 논문집 『악 속의 약: 계몽주의 시대 비판과 정당화』(1989),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용어의 역사와 문학적 수용사를 다룬 기념비적 저서 『작용과 반작용』(1999), 오페라와 현대 회화를 논한 비평서 『매혹적인 여인들』(2005), 루소 연구 논문집 『비판과 유혹』 및 디드로 연구 논문집 『디드로: 어느 악마의 지저귐』(2012),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연구 및 비평을 모은 『세상의 아름다움』(2016) 등이 있다.
옮긴이 : 이충훈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파리4대학에서 「단순성과 구성: 루소와 디드로의 언어와 음악론 연구」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8년 현재 한양대 프랑스학과 부교수이다.
스타로뱅스키의 『장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디드로의 『백과사전』『미의 기원과 본성』『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농아에 대한 편지』, 사드의 『규방철학』, 조르주 페렉의 『생각하기 / 분류하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책을 펴내며
자유의 발명 1700~1789
I 18세기 인간의 공간
II 즐거움의 철학과 신화학
III 불안과 축제
IV 자연의 모방
V 노스탤지어와 유토피아
1789 이성의 상징
1789
I 결빙
II 베네치아의 마지막 불꽃
III 밤의 모차르트
IV 혁명의 태양 신화
V 원칙과 의지
VI 기하학적 도시
VII 말하는 건축, 영원한 말
VIII 선서: 다비드
IX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
X 로마와 신고전주의자
XI 카노바와 부재하는 신들
XII 어둠과의 화해
XIII 고야
참고문헌
연보
해설: 빛과 그 이면―스타로뱅스키의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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