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혁명의 전야, 또는 두 번째 혁명의 전야
「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국주의 세계 전쟁이 불러일으킨 첫 번째 혁명이 일어났다. 이 첫 번째 혁명은 분명 마지막 혁명은 아닐 것이다.”(259쪽)
차르가 지배하던 전제정권을 타도하고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은 해, 1917년.
레닌 전집 065권인 이 책은 인류 최초의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1917년 초에 레닌이 쓴 글들을 담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인 1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러시아 민중들은 왕과 지주, 자본가에 맞서 2월 혁명을 일으켰다. 전쟁과 빈곤에서 벗어나 해방을 얻기 위해, 억압하는 자들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역설적이게도 민중의 희망이 된 러시아 혁명을 낳았다. 절망의 끝은 희망이라는 명언을 증명하는 역사적인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분노한 민중들 앞에서 차르는 퇴위를 선언했으며,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임시정부는 지주와 자본가,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주의자들이 한편으로는 연합하고 한편으로는 힘을 겨루는 상태였다. 이 임시정부를 다시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이 온전히 권력을 잡는 10월 혁명으로 가기까지, 1917년 한 해에만 레닌이 쓴 글들이 300편이 넘는다. 레닌은 혁명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글들을 써서 혁명을 촉구하고 민중들을 독려했으며, 이 책에는 1917년 1월부터 레닌이 귀국을 위해 봉인열차를 타기 직전인 3월까지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혁명 전야에 씌어진 이 글들에는 혁명에 대한 기대와 떨림, 긴장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숙명과도 같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전쟁 전부터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하에서 전쟁은 필연이며, 사회주의자와 노동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 발발 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전쟁 와중에 집필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레닌 전집 063권)에서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인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라고 밝힌 바 있다. 자본의 집중과 독점이 극대화되고, 이로 인해 자본의 모순이 극에 달하게 되면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체제를 갈아엎기 위해 혁명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이러한 정세에 힘입어 2월 혁명이 일어나고, 러시아 민중은 혁명의 첫 단계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달성한다. 당시 레닌은 망명자 신세로 스위스에 머물고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혁명적 상황이 빚어져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위원회가 구성되었다는 내용이 담긴 첫 전보를 받자마자 언론에 보내기 위해 쓴 글이 바로 이 책의 표제작「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이다. 먼 타국에서 러시아의 혁명 세력을 지도하기 위해 조국으로 보낸 이 다섯 통의 편지에서 레닌은 가장 먼저 2월 혁명의 성격을 규정한다. 레닌에게 2월 혁명은 차르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부르주아와 노동자계급이 합세한 혁명이었다. 전자는 임시정부로, 후자는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로 대표된다.
부르주아는 2월 혁명 이후에도 제국주의 열강들과 함께 제국주의 전쟁에 충실했고, 노동자계급은 빵과 자유, 평화를 위해 투쟁했다. 이처럼 러시아에서는 10월에 볼셰비키가 주도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 이중 권력이 존재하는데, 레닌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 소자본가를 대변하는 임시정부에 대항하여 투쟁할 것을 주장한다. 사회주의자와 노동자계급은 오로지 소비에트로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에서 혁명이 가장 먼저 발생했을까?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전쟁 당사국들도 많은데 왜 유독 러시아였을까?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혁명의 위기가 차르의 러시아에서 가장 먼저 터져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의 무질서가 가장 극심했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장 혁명적이었기 때문이다.”(268쪽)
레닌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장 혁명적일 수 있는 역사적 배경으로 1905년 첫 번째 혁명의 경험을 꼽고 있으며, 그후 1907~14년의 반동기 또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단련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진단한다. 이미 1905년 혁명 당시에 러시아에는 노동자와 병사 소비에트가 존재했었다. 단 1917년에는 1905년과 달리 노동자와 병사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소비에트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는 군대라는 물리력을 노동자계급과 통일시킴으로써 혁명 세력의 힘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은 이념이 아닌 실재하는 물리력에 기반한다는 것을 혁명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이행기 전략, 또는 사회주의 혁명
“이제 우리는 혁명의 첫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차르 체제와의 ‘싸움’에서 구치코프-밀류코프의 지주·자본가 제국주의와의 ‘싸움’으로 이행하고 있다.”(319쪽)
당시 러시아의 혁명은 두 번째 혁명으로 이행하는 중이었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 “조직이야말로 이 국면의 슬로건이다”(308쪽)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조직은 일상적이고 합법적인 조직, 즉 당, 노조, 협동조합과 같은 조직이 아니라 “봉기의 기관, 혁명적 통치의 기관”(309쪽)으로서의 조직을 말한다. 이것은 1871년 파리 코뮌과 1905년 러시아 혁명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였다. 이 조직은 당시에 이미 병사와, 가난한 농민 등 여러 피착취 근로인민을 대표하는 소비에트로 확장, 발전하고 있었다.
레닌은 이러한 이행 단계에서 사회주의자에겐 “혁명 정부가 필요하다. 우리는 (일정한 과도기 동안) 국가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와 무정부주의자들의 차이점이다”(310쪽)라고 말한다.
레닌은 그 국가를 이렇게 묘사한다. “입헌군주제 국가부터 가장 민주적인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가 도처에 만들어놓은 그런 종류의 국가는 아니다. …… 1871년 파리 코뮌과 1905년 러시아 혁명의 경험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국가권력 기관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 가운데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모든 층들을 조직하고 무장시켜야 한다.”(310~1쪽)
레닌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민의 의용군을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에게,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모든 근로인민에게 필요한 의용군은 어떤 것인가? 진정한 인민의 의용군이다. 첫째로 전체 주민, 모든 성인 남녀 시민으로 이루어지고, 둘째로 인민의 군대의 기능과 경찰 기능과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공공질서 및 공공행정 기관의 기능을 겸비한 의용군인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의 유형이다!”(314~5쪽)
레닌이 말하는 인민의 의용군은 자본주의의 군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용병이 아니라 자신과 인민의 운명을 지키고 창조하는 조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용군은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의 집행기관이 될 것이며, 인민의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전체 인민의 조직일 것이기 때문이다.”(315쪽)
머나먼 곳에서 부쳐진 편지
레닌이 말했듯이 혁명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역사와 사회는 필연의 산물이기에 혁명 세력은 철저한 준비와 계획 속에서 혁명에 임해야 한다. 레닌은 4월 귀국 후 인민의 절대적 지지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 투쟁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10월 혁명을 통해 외세와 자본의 지배로부터 독립된, 인류 최초의 자주적이고 혁명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이 또한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귀국 전부터 레닌은 두 번째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고, 핵심고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다. 노동자.민중의 조직인 소비에트를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 말이다.
레닌은 스위스에서 러시아로 떠나기 전날, 미완성으로 남은 다섯 번째 편지를 쓴다. 이 편지들은 머나먼 동쪽 그의 조국을 향해 보내졌지만, 다음의 메시지를 현재의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공간 들을 지나온 듯하다. ‘혁명은 철저한 계획과 실천 그리고 노동자?민중 스스로의 조직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본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인류 최초의 성공한 노동자계급 혁명인 러시아 혁명을 지도하여 소련의 초대 국가원수가 되었다.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1870년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로드니키 운동에 참여했던 맏형 알렉산드르가 차르 암살 혐의에 연루되어 1887년 처형당한 것을 계기로, 반차르 운동과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다. 같은 해 가을 카잔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불법집회에 참석했다가 제적당하고, 그후 추방된 혁명가들과 사귀면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서를 탐독했다. 1891년 최고 점수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893년까지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1895년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조직했으며,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0년 국외로 망명, 독일 뮌헨에서 플레하노프, 마르토프 등과 함께 《이스크라Iskra》를 창간했다. 러시아 정부의 탄압 때문에 런던에서 열린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당 대회에서 당원 자격 문제를 놓고 플레하노프, 마르토프, 트로츠키와 맞서 직업적 혁명가주의를 관철시킴으로써 볼셰비키(다수파)가 되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귀국했으나 혁명의 실패로 1907년 다시 망명하여 주로 스위스에 머물면서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다가, 1917년 2월 혁명 직후 독일의 봉인열차를 타고 귀국했다. 같은 해 10월 무장봉기로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정권을 수립한 다음, 1919년 제3인터내셔널인 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을 결성했다. 1924년 1월 21일 저녁 고리키에서 뇌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발전시켜 레닌주의를 확립했으며, 세계를 해석하는 틀을 만든 마르크스를 뛰어넘어 세계를 변혁하는 실험에 최초로 성공했던 인물이다.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고, 세계 각국의 혁명운동과 사회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옮긴이 : 이정인
오랫동안 비정규직 노동운동과 《사회주의노동자신문》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붉은글씨》라는 잡지를 발간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틈틈이 책을 번역하는 일도 하며, 옮긴 책으로는 『브리태니커 필수 교양사전: 근대의 탄생』『정보는 아름답다』『프라하-작가들이 사랑한 도시』『바다의 별』『숲을 지나가는 길』 등이 있다.
목 차
부르주아 평화주의와 사회주의 평화주의
보리스 수바린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국제사회주의위원회와 모든 사회주의 정당들에 제언하기 위한 테제
V. A. 카르핀스키에게 보내는 편지
베른의 국제사회주의위원회 위원인 샤를 넨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투쟁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
1905년 혁명에 대한 강연
H. 그로일리히의 조국 방위 옹호에 대한 열두 개의 짧은 테제
중립 방위
세계 정치의 전환
통계와 사회학
가상의 늪지파인가, 진짜 늪지파인가?
전쟁 문제에 관한 결의안의 수정안
어느 사회주의 당의 한 짧은 시기의 역사
테제 초고, 1917년 3월 4일(17일)
러시아로 떠나는 볼셰비키에게 보내는 전보
《폴크스레히트》에 보내는 편지
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
포로수용소에 있는 우리의 동지들에게
러시아 혁명과 만국 노동자의 임무
러시아 혁명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임무
공화파 국수주의자들의 속임수
해외협의회, 중앙위원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결정
스위스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고별 편지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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