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권행백 소설집 『악어』는 <바람이 깎은 달>, <악어>, <샤이 레이디> 등 총 세 편의 중편을 실었다.
<바람이 깎은 달>은 ‘큰엉’이라는 해식애를 품은 제주 해안 마을 ‘남원’을 배경으로 한다. 4.3과 이념 전쟁의 한복판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보말 할망’의 쓰라린 가족사를 배경으로 제주가 숨죽여 품어왔던 역사와 현실에서의 가족애를 어루만진다.
운영하던 공장이 연쇄 부도로 문을 닫은 주인공이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실의에 빠진 아내와 마지막 여행이라 맘먹고 찾은 두 달 여정의 제주살이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부가 묵은 민박집 옆집에는 ‘보말 할망’이라고 부르는 이웃과의 왕래 없이 혼자 사는 노파가 있다. 4.3의 소용돌이 속에 부모를 잃고 남겨진 어린 ‘보말 할망’ 남매. 다섯 살 터울의 오빠는 삶의 고달픔을 해결하기 위해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몇 해를 기다려도 귀국하지 않은 오빠를 잊은 채 괸당(친척)들의 정략적 결정으로 결혼 후 남매를 낳고 살던 보말 할망에게 낯선 사내들이 사진 한 장을 들고 들이닥치면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파란만장한 할망의 굴곡진 삶이 시작되는데…
<바람이 깎은 달>은 2018년 서귀포문학상을 수상했다.
타이틀 작품인 <악어>는 2018년 전태일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이다.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의 원시 부족 마을을 배경으로 악어가죽을 공급하는 한국 자본의 사업 확대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연과 문명, 자본과 권력의 갈등, 그리고 노동과 계급의 출현을 숨 가쁘게 그려냈다. 이야기 전개가 일핏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개성공단 폐쇄, 남북 갈등, 권력과 노동의 대결 등 결코 가공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지금 우리 삶의 모습들을 굵직하게 담아냈다. 작가는 몇 해 전 직접 찾았던 개성공단의 활기 띤 모습과 정작 당사자들은 이유조차 명백해 모른 채 일방적 문닫기를 강요당해 쫓겨난 기업과 현지 노동자들을 외면할 수 없어 소설로 그려냈다.
마지막 작품 <샤이 레이디>는 작가를 소설가로 등단시켜준 첫 소설이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탐구하던 작가가 아들을 앞세워 찾아 들어간 미얀마 산속 원주민들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늦깎이 소설가의 발로 쓴 이야기이다. 우연찮게 찾아간 소수 부족 마을이 자본으로부터 비켜선 해방구이길 간절히 소원했지만, 현대 문명과 자본은 인적 드문 산중의 소수 부족조차 그냥 두지 않았다.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는 한국에서의 실패한 삶을 뒤로하고 가족과 연락을 두절한 채 깊은 산중의 소수 부족 마을로 찾아든다. 몇 해 지나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들고 찾아 들어간 아들의 행로와 아버지에 대한 심정의 변화, 이어지는 연작 <마디>에 드러난 아버지의 삶을 통해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담담히 성찰하게 한다.
<샤이 레이디>는 2015년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했다.
부록으로 실은 <작가의 변-소설처럼 사는 법>은 작품 해석이 아니다.
오롯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탄탄대로 ‘명의’의 길을 박차고 소위 ‘돈 안 되는’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의 소회를 짧게 풀어 놓았다. 더불어 소설가 전업을 마음먹은 후 4년 만에 신춘문예 2관왕을 비롯 총 열한 차례의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고 20여 차례 최종심에 이르는 동안 익힌 소설쓰기 노하우를 기록했다.
수많은 문학 지망생들에게는 강단에서의 세밀한 이론 이상의 자극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 싶어 사족으로 달았다.
편집자 후기
권행백이 천생 이야기꾼인지야 익히 알았다.
잘 나가던 개업의이자 사회 활동가의 삶을 접고, 이후 십여 년의 세월을 ‘나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천착해 세상을 주유하고 돌아온 그였다. 그렇게 찾은 자신의 답을 ‘행백(幸白)’이라 이름 짓고, 이른바 ‘행백론’을 이야기로 풀어놓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소설가로 전업했다며 원고 뭉치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소설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아예 소설가가 되기로 작정했다 한다. 그러고 4년, 《한국소설》 신인상,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상, 신춘문예 2관왕,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 재외동포문학상, 서귀포문학상, 그리고 전태일문학상에 이르기까지 총 열한 차례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니, 이제 글쟁이로서도 인정받은 셈이다.
이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솜씨마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한두 해 묵혀두었던 그의 수십 편의 작품 중 우선 최근작 중편 세 편을 골라 첫 소설집을 엮어냈다. 늦깎이 소설가이니, 그의 이야기와 문장들이 팍팍한 삶의 중심을 지나는 지금 청년세대들의 감성, 특히 소설의 가장 큰 구매자인 이삼십 대 여성 독자들의 감성에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저어되는 바가 솔직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의 변에서 얘기한 것처럼, 작가의 소설은 엉덩이가 아니라, 발로 쓴 작품이었다. 작품의 모티브를 얻고 구상하는 내내 작가의 경험을 헤집어내며 괴로워했을 터이고, 글로 옮기면서 또 가슴 저렸을 이야기들은 비록 시대와 경험을 조금씩 달리할지언정 동시대 경험과 현실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표현과 소재에 있어서 주관적 평가야 독자에 따라 갈릴 수 있겠지만, 작가의 이야기 어느 한 귀퉁이도 현실에 걸쳐 있지 않은 이야기가 없으니 충분히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작가는 원고를 편집자에게 던져두고, 출간을 앞두고 있는 오늘도, 아들을 가이드로 앞세워 벗 삼아 사하라를 횡단하며, 또 다른 이야기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권행백
본명은 권용주.
내장산 기슭에서 태어나 전주고,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 한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에서 개업의로서, 한때 주위에서 ‘명의’로 불리기도 했고, 꽤 의미 있는 사회활동 및 방송 출연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삶을 단칼에 접고, 십여 년 세월을 돌고 돌아 ‘행백(幸白)’이라는 이름의 이야기꾼으로 돌아왔다. 그간의 성찰을 담은 몇 권의 과학 철학서로 입담을 풀어놓은 지 몇 해, 다시 수십 편의 중단편 소설 원고 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다. 천생 이야기꾼이자 글쟁이로서의 인생 후반을 만끽하는 그의 이야기의 끝이 어딘지, 앞으로의 행보가 자못 기대된다.
2013년 대표 에세이 『이기적 유전자 사용매뉴얼』(카오스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당선
2015년 단편소설 ‘샤이레이디’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2016년 신춘문예 2관왕
2017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 경북일보문학대전 금상, 재외동포문학상 우수상.
2018년 장편 『한옥마을 남쪽 사람들』(온하루출판사) 발표
2018년 중편 ‘악어’ 2018년 제26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
2018년 중편 ‘바람이 깎은 달’ 서귀포문학공모전 대상 수상.
기회 있을 때마다 ‘소설처럼 사는 법’을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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