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역사 전쟁에서 기억 전쟁으로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과거 비극의 가해자와 공범자가 희생자로 둔갑하고, 누가 더 큰 희생자인지를 놓고 희생자와 희생자, 희생자와 가해자가 경쟁하는 웃지 못할 소극을 마주하고 있다. 가해자와 희생자, 희생자와 방관자, 희생자와 희생자 사이에서, 그리고 과거에 연루된 전후세대 사이에서 복잡다단한 기억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비극의 역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하는가?’
이 책은 그동안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탈민족 담론을 주도하며 한국 지식사회를 흔들어온 역사가 임지현 교수가 ‘기억 활동가’로 변신을 꾀하며 내놓은 것이다. 그는 ‘기억 연구(Memory Studies)’를 통해 홀로코스트,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어떠한 기억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피며, ‘기억’과 ‘책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기억 문화를 되돌아보고, 민족과 국경에 갇힌 기억을 넘어 전 지구적 기억의 연대로 나아갈 길을 찾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1.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이다"
- 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으로서의 ‘기억 연구(Memory Studies)’
‘기억 연구’, ‘기억 전쟁’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직 생소하다. 역사학 방법론이 문서와 기록을 근거로 산 자가 죽은 자를 심문하고 재단하는 데 치우쳐 있다면, 기억 연구는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 응답해 죽은 자의 억울함을 산 자들에게 전해주는 영매 역할을 자임한다. 문서와 기록이 중심이 된 공식기억보다 개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 있는 풀뿌리 기억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로써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기억 문화와 실증의 이름으로 진짜와 가짜, 가해자와 희생자로 나누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역사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기억 연구에서 ’증언‘은 왜 중요한가? 기억 연구는 기존의 실증주의적 역사 방법론에 회의를 품고 이를 성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대체로 힘 있는 가해자가 역사적 서사와 관련 문서를 독점하고 있는 데 비해, 힘없는 풀뿌리 희생자가 가진 것은 경험과 목소리, 즉 기억과 증언뿐이다. 그런데 증언은 불완전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부정확해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과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일본 우익들에 의해 ‘실증’의 이름으로 무시되거나 그 가치가 훼손되기도 한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증언은 문서와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정성’을 품고 있다. 저자는 “기억 연구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역사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증주의적 역사에 비추어 기억 연구에는 다른 무엇보다 윤리적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1961년에는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에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재판이 열렸다. 재판을 지켜본 연구자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에 주목했고, 이를 계기로 홀로코스트 연구는 문서 자료에서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서서히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 기억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히만 재판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증언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말이다. …… 이는 훗날 역사 연구에 ‘감정의 전회(emotionalturn)’라는 패러다임적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감정의 전회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실증주의적 방법론에 회의를 품고 이를 성찰하는 데서 출발했다. 문서만이 과거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라는 실증주의의 폭력에서 증인들을 보호할 장치들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그 밑에 깔려있었다. ―〈아우슈비츠의 아포리아〉 중에서
심리학자인 도리 라우브(Dori Laub)는 …… ‘지적 기억’ 대 ‘깊은 기억’이라는 대조법을 통해 ‘사실’과 ‘진실’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사건을 기록한 문서보다 부정확한 증언이 더 진정한 과거를 말해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1944년 10월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당시 “굴뚝 네 개가 폭파됐다”는 어느 생존자의 증언은 역사가들에게 거짓이라고 무시되어왔다. 이 증언은 폭파 현장에 굴뚝이 하나뿐이었던 사실과 분명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라우브는 오히려 사실과 어긋나기 때문에 이 증언이 더 진정성이 있다는 신선한 해석을 내놓았다. 라우브에 따르면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인간은 그것을 과장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굴뚝 하나가 사실에 부합하는 ‘지적 기억’의 영역이라면, 사실과 모순되는 굴뚝 네 개는 ‘깊은 기억’의 영역인데,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기억은 대개 ‘깊은 기억’에 속한다. 아우슈비츠 폭동을 목격한 생존자의 증언은 사실과 부합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어긋나기 때문에 더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이 일치하지 않는 이 재현의 역설은 증언과 문서 자료의 역사적 진정성에 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우슈비츠의 아포리아〉 중에서
2. 제대로 된 기억 문화를 위해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전 지구적 기억의 연대를 위하여
누가 더 큰 희생을 치렀는지 경쟁하는 희생자 민족주의와 나치의 공범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거나 일제 침략의 역사 위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의 역사를 덮어쓰는 등 기억의 정치가 난무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들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고, 터키계 독일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아르메니아 학살을 떠올리고,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가 파괴된 바르샤바 게토에서 흑인 노예들의 아우성을 듣는 등 뜻밖의 장소에서 생면부지의 기억들이 만나 소통하고 연대한다. 이렇게 민족과 국경에 갇혀 있던 기억들이 서로 만나 얽히고 경합하고 연대하는 ‘기억의 지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 제대로 된 기억 문화를 위해 무엇을 물어야 할까?
이 책에서는 ‘가해자가 어떻게 희생자로 둔갑하는가?’, ‘민족주의는 어떻게 공범자를 희생자로 만드는가?’, ‘전사자 숭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선량한 학살자는 있을 수 있는가?’, ‘죽음을 무릅쓰고 탈영한 자들은 죽기 살기로 싸운 자들보다 비겁한가?’, ‘국적이나 민족을 기준으로 가해자와 희생자를 나누는 것은 정당한가?’ 같은 날 선 질문들을 던지며 전후 기억의 문제를 직시한다.
이러한 성찰적 질문이야말로 민족과 국경을 넘는 기억의 터를 만들고, 전 지구적 기억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힘이다. 이로써 전후 역사를 풀뿌리 기억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희생자의 억울함을 풀고,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10월 24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색다른 비(碑)의 제막식이 열렸다. …… 이 비는 특이하게도 나치의 군사재판에 희생된 오스트리아인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였다. …… 전후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인들은 자신들을 ‘히틀러의 첫 번째 희생자’로 기억해왔다. 그러나 이 기억은 조작된 것이다. 통계를 보면 적어도 인구 비율상으로는 오스트리아인들이 독일인들보다도 더 적극적인 히틀러 협력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흥미로운 것은 오스트리아인들이 스스로를 ‘히틀러의 첫 번째 희생자’라고 규정하면서도 히틀러의 군대에 복무한 자국 병사들을 의무를 다했다거나 심지어 영웅적이었다고까지 여겨왔다는 점이다. 반면 히틀러의 군대에서 탈영한 병사들은 ‘전우를 버린 배반자’로 인식해왔다. 그런 오스트리아가 수도의 중심부에 탈영병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는 것은 어쨌거나 사회적 기억에 변화가 있었다는 징표이다. ―〈전사자 추모비와 탈영병 기념비〉 중에서
폴란드인은 때때로 소극적 방관자를 넘어 그 이상으로 행동했다. 나치점령기 폴란드에서는 숨어 있는 유대인을 밀고하거나 사라진 유대인 이웃의 재산을 탐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심지어 유대인을 사냥하듯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일명 슈말초브니치szmalcownicy)도 있었다. 더욱이 일반 범죄자를 대상으로 거리의 치안을 담당하는 폴란드인 ‘청색 경찰’의 존재는 폴란드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조직적으로 나치에 협력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일부나마 폴란드인이 홀로코스트의 공범자였다는 사실은 희생자 민족이라는 폴란드의 역사적 이미지에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파시즘에 영웅적으로 맞서 싸운 사회주의 전사들의 나라라는 폴란드의 국가적 이미지도 크게 흔들릴 것이었다. 이들에게 홀로코스트에 협력한 과거는 자기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아니라 침묵하고 말소해야 할 기억이었다. ―〈공범자가 된 희생자〉중에서
히틀러와 나치 수뇌들에게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면 곤란하다. 동유럽의 학살 현장에서 실제로 유대인을 죽인 것은 나치 수뇌부의 펜이나 명령이 아니라 평범한 독일 병사의 소총이었다. 구조가 사람을 학살할 수는 없다. 오직 사람만이 사람을 학살할 수 있다. 나치의 학살 기계도 현장에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없다면 작동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학살 명령을 내린 권력자뿐만 아니라 학살 기계를 작동시킨 아주 평범한 실행자에게도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평범한 독일인’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평범한 사람’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 나는 (나치의) ‘101 예비경찰대대’의 평범한 아저씨들이 유제푸프에서 저지른 유대인 학살과 그에 얽힌 기억을 힘들게 돌아보는 내내 광주를 생각했다.
―〈1942년 유제푸프와 1980년 광주〉 중에서
2013년 7월 30일,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기억 활동가들이 미국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앞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 왜 하필 글렌데일이었는지 물어야 한다. 이는 해외에서 가장 큰 아르메니아인 공동체가 글렌데일에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아마도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이 글렌데일의 아르메니아인들로 하여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 일본군 ‘위안부’의 기억이 미국의 버건 카운티와 글렌데일에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나 미국 노예제, 홀로코스트 등의 기억과 만난 것은, 이 기억이 민족의 기억을 넘어서 트랜스내셔널한 보편 기억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뗀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일본군 ‘위안부’,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미국의 노예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이 실제 역사 속에서 만난 적은 없겠지만, 생존자들과 그 자손들은 글렌데일의 소녀상 프로젝트나 버건 카운티의 ‘위안부’ 기림비처럼 그 아픔을 기리는 기억 속에서 만났다.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와 일본군 ‘위안부’〉 중에서
2006년 11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 접수된 조선인 B·C급 전범 86명 가운데 83명이 ‘일본의 전쟁 책임 전가행위에 따른 피해자’로 위원회로부터 인정을 받음으로써, 한국 사회의 공식 기억에서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자가 되었다. 전범으로 몰려 처벌받은 조선인 군무원들을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자로 기억하려는 한국 사회 공식 기억의 논리는 자기방어적이다. …… 개별 가해자가 민족의 이름으로 희생자 집단에 숨어 희생자로 둔갑하는 기억의 마술은 위험한 속임수다. 식민지 피지배 민족 혹은 피점령 국가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개인의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국적이나 민족을 기준으로 가해자와 희생자를 나누는 기억의 코드는 위험천만하다. …… 지원병으로 나갔다 돌아오면 순사나 면사무소 서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제국의 제도를 타고 넘으려 했던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청년들에게 ‘친일파’ 딱지를 붙이자는 게 아니다. 조선인 군무원이든 지원병이든 개개인의 가학행위를 따지지 않고 어쨌든 식민지 조선인이므로 그들도 모두 피해자였다는 주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을 모두 친일행위자로 몰거나 반대로 피해자로 뭉뚱그리는 양극단은 모두 풀뿌리 기억에 대한 공식적 기억의 폭력이다. ―〈경계의 기억, 기억의 경계인〉 중에서
한국 언론이 《요코 이야기》에 과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일본=가해자’ 대 ‘한국=희생자’라는 이분법이 흔들리는 상황에 당혹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 그려진 ‘가해자 한국인’이라는 이미지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을 저해하는 데 대한 불편함도 있었을 것이다. …… 한국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보여준 과잉반응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했다. 《요코 이야기》가 ‘한국 때리기’에 맛들인 일본의 우익 출판사에서 일본어로 번역·발간된 것이다. 결국, 한국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일본 사회에서 히키아게샤 이야기(引揚者物語)의 풍요로운 문학적 유산에 가려 아무런 존재감이 없던 《요코 이야기》를 부각시킨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억 공간에서 작동하는 한일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 관계가 이렇게 그 비밀을 슬그머니 드러냈다. ―〈수난담의 기억 정치〉 중에서
3. 전후세대는 어떻게 전쟁,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와 마주하는가?
―전후세대에게 ‘기억의 책임’을 묻다
역사는 지금 우리와 상관없는 과거일 뿐인가?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와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은 야만의 시대의 이정표일 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인가? 전후 세대는 과거로 인해 만들어진 오늘의 혜택을 입고 있으므로 어떠한 형식으로든 과거와 연루되어 있다. 따라서 전후 세대에게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은 없지만, 지금 여기에서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고 성찰하고 또 그 성찰의 기억을 지키고 끊임없이 재고해야 할 ‘기억’의 책임이 있다.
서구의 식민주의와 나치즘, 홀로코스트, 아파르트헤이트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한국 사회에도 식민지배, 일본군 ‘위안부’, 베트남 전쟁, 민주화 운동 등 ‘기억의 책임'을 고민해야 할 과거의 비극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우리가 비극에 대한 기억의 책임을 어떻게 지고 나갈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전후 세대가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찾아가는 공론의 장을 제공한다.
기억 전쟁에서는 ‘집합적 유죄’의 논리로 가해 민족 전부를 단죄하거나 피해 민족 모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집단 심성이 그야말로 완강하다. 독일의 전후 세대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이유는 그들이 독일인 혹은 일본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스라엘이나 폴란드, 한국의 전후 세대는 참으로 떳떳하다. 희생자 민족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강의 도중 학생들한테서도 그런 태도를 발견할 때가 적지 않다. 그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양민 학살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지를 묻는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도 20여 년이 지나 태어난 세대이니, 까마득한 옛날 일을 책임질 수 없다고 답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나는 다시 묻는다.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잔학행위에 대해 자네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왜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끝난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한 통치에 대한 책임을 묻는가?”
―〈에필로그〉 중에서
한 독일인 친구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있다. 살아생전에 자기 어머니가 끔찍이도 소중히 여기던 어떤 도자기에 대한 기억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친구는 그 도자기가 옆집의 유대인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면서 싼값에 내놓은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에게 유대인 이웃이 남기고 간 그 도자기는 이 평범한 가족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치의 범죄에 연루되었음을 보여주는 힘겨운 기억의 물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해주는 내내 그 친구의 얼굴에서 곤혹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친구의 곤혹스러움은 ‘연루된 주체’로서의 전후 세대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사건과 자신의 실존적 관계를 고민할 때 생기는 딜레마 같은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성찰적 기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한다. 그의 곤혹스러운 고민은 과거에 연루된 전후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 비극을 기억할 책임을 어떻게 지고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전후 세대인 그의 고민이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 곤혹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며 기억의 주체로서의 그, 곧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 〈에필로그〉 중에서
4. 임지현 교수의 학문 후반전, ‘기억 연구자’이자 ‘기억 활동가’로
1999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출간한 이래 줄곧 역사학계에 강한 지적 자극을 던져온 역사학자 임지현. 폴란드 근현대사와 유럽 지성사에서 출발해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로 학문적 관심을 넓히며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국사의 해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등 탈민족주의 담론을 주도해온 그가 이번에는 ‘기억 연구’를 통해 진짜와 가짜, 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의 회색지대를 누비며, 전후세대의 역사적 책임을 돌아본다. 민족주의 기억을 탈영토화해 국경을 넘어서는 기억의 연대를 지향하며 서구 중심의 기억 연구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차원의 기억 문화를 탐색하는 데 학문적 주안점을 두고 ‘역사가’에서 ‘기억 활동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 책은 …… 죽은 자들의 신원(伸?) 요청에 대한 나름의 응답이다. 지난 몇 년간 기억 연구를 진행해오면서, 역사가로서의 내 작업은 ‘기억 활동가’의 작업이라고 생각해왔다. 나 스스로를 역사가보다 기억 활동가라고 자리매김할 때도 많다. 그러나 죽은 자의 억울함과 원한을 풀어줄 ‘영매’의 수준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영매는커녕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타자의 고통을 껴안고 그것을 내 정의로 삼기에는 인간이 덜 된 탓이다. 지금부터 반성한다고 해도 이미 늦은 감이 있다. 다만 가능성이 무한한 후학들이 죽은 자들의 신원 요청에 응답하는 기억 활동가로 나아가는 데 이 책이 밟고 올라설 만한 디딤돌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지현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며,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창립 소장이다. 바르샤바 대학, 하버드-옌칭연구소,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베를린 고등학술원, 파리 2대학, 빌레펠트 대학, 히토츠바시 대학 등에서 초청·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글로벌 히스토리 국제네트워크(NOGWHISTO)’ 회장, ‘토인비재단’과 ‘세계역사학대회’ 등 국제학회의 이사로 있다.
폴란드 근현대사와 유럽 지성사에서 출발해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로 학문적 관심을 넓혀온 그는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국사의 해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등의 독창적 연구를 통한 신선한 문제의식으로 한국 지식사회의 담론장을 흔들었다. 현재 그는 민족주의적 기억을 탈영토화해 초국적 연대를 지향하는 동아시아의 기억 문화를 탐색하는 데 학문적 실천의 주안점을 두고, ‘역사가’에서 ‘기억 활동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수십 편의 학술논문 외에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문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오만과 편견》, 《세계사 편지》,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펴냈고, 《근대의 국경과 역사의 변경》, 《대중독재》 1~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등 다수의 책을 엮고 우리말로 옮겼다. 국외에서는 《Palgrave series of mass dictatorship》 총서(총 5권)를 책임 편집했으며, 미국·일본·독일·폴란드·프랑스 등 해외 유명 저널에 50여 편의 논문을 기고했다.
목 차
프롤로그 기억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다
1부 기록에서 증언으로
1.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2. 아우슈비츠의 아포리아
3. 홀로코스트, 법정에 서다
4. 부정론자 인터내셔널
2부 실존의 회색지대
1. 전사자 추모비와 탈영병 기념비
2. 공범자가 된 희생자
3. 희생자가 된 가해자
4. 영웅 숭배와 희생자의 신성화
5. 아우슈비츠와 천 개의 십자가
6.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서
7. 1942년 유제푸프와 1980년 광주
3부 국경을 넘는 기억들
1.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와 일본군 ‘위안부’
2. 안네 프랑크와 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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