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관계’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예의와 존중을 갖춰 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 입장을 바꿔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입장 바꿔 생각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임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이들 역시 ‘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힘들게 뭐가 있겠어?’라고 입장 바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더 힘들지요. 어른들의 입장에서만 사고하고 규정과 영역을 만듭니다. 어른들이 어린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적은 언제쯤일까요.
이묘신의 『안이 궁금했을까 밖이 궁금했을까』는 시인이 어린이의 입장이라면 지금의 생활이 어떠했을까, 반추해보는 시입니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특별할 것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이지만, 반대로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달리보이는 것들을 단명한 메시지를 던지듯 말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보며 엄마가 말한다
-고산병 걸리겠네
고등학교 1학년 누나가 맞장구친다
-고삼병 그거 무섭다는데
스마트폰에 빠진 형이 말한다
-데이터 없어서 짜증나
그 소리 듣고 엄마가 씩씩거린다
-나쁜 놈, 데이트 없는 게 내 탓이야?
- 서로 딴소리
『안이 궁금했을까 밖이 궁금했을까』는 매일 매일의 일상이 이제는 지겹도록 익숙해진 소통의 부재, 자기 말만, 서로 딴소리하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이런 익숙해진 소통 부재의 세상을 아이들만의 예리한 관찰과 날카로운 풍자로 치유하려고 한다. 인간, 자연 혹은 사물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간이 의지하는 존재를 존재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인간의 편의로 왜곡시키는 것을 따뜻한 동시인의 동심으로 풀어내고(있으며), 우리 스스로 시인의 동시를 읽음으로 스스로를 반추할 수 있게 한다.
이묘신 시인은 우리가 의지하는 일상을 돌아봄으로 좀 더 여유로우며 배려할 수 있는 동심을 되찾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 아래 지나가다
거미줄에 걸렸다
얼굴과 머리에 붙은 거미줄
짜증내며 떼어냈다
나는 오늘
남의 집 한 채를 부쉈다
- 「미안해 거미야」 전문
우리가 아무렇게나 지나치는 거미라는 작은 생물은 어쩌면 거미줄이 삶의 전부일수 있다. 산이나, 산책길, 집 어두운 곳에서 언제든 만나게 되는 거미줄은 그저 귀찮고, 징그럽고, 더러운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마구 헤집어 놓거나 무너뜨려 버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귀찮은 것이지만 거미의 입장에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조금만 입장을 바꿔보면 부끄러운 일이 된다. 반추를 함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일상을 함께 공유하며 살기 위한 작은 마음이 생긴다.
학교 입학하기 전에
너무 많은 공부 시키지 않기,
학교 가서도 학원은 하나 이상 보내지 않기,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지 않기,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기!
제발 이런 것도
법으로 만들어주면 안 돼요?
- 「제발」전문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최고의 공부며 학교인데, 그 ‘놀이’를 할 수 없으니 아마 아이들은 아주 간절할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다 어린이 너희들을 위해 학원을 보내고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는 것’이라고 어른들만의 논리로 아이들을 돌려세운다. 아이들의 입장은 결코 헤아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의 입장을 한번쯤 되돌아 본 사람이라면 동심을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아이들이 어른으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동심이 중요하다. 동심은 어른들이 배려하고 입장바꿔 생각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지극히 이기적 인간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행동과 규제, 논리는 아이들의 동심뿐만 아니라, 어른에게 남아 있을 순수함과 평화, 동심도 사멸하게 한다.
창호지문에 손가락
구멍이 나 있다
안에서
밖이 궁금했을까?
밖에서
안이 궁금했을까?
- 「절에 갔더니」전문
『안이 궁금했을까 밖이 궁금했을까』는 ‘안’과 ‘밖’의 극명한 차이, 즉 창호지 사이로 존재하는 그 차이를 말하지는 않는다. 안에서 밖으로, 또 밖에서 안으로의 호기심과 최소한의 배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궁금하다고 벌꺽벌꺽 문 열지 않는다. 아마도 궁금증도 아이들에겐 따뜻한 궁금증이 있나보다.
『안이 궁금했을까 밖이 궁금했을까』는 현재 소통의 부재와 배려하지 않는,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는 일상의 모습만을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반추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실되고 없어지고 있는 동심의 낯선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안이 궁금했을까 밖이 궁금했을까』는 어쩌면 아이들을 위한 동시라기보다 누구든 읽고 반추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쓰여졌는지 모른다.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고, 소통하면서, 반추하는 삶이 위로 받을 것이다. 분명『안이 궁금했을까 밖이 궁금했을까』는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고기를 잡는 게
어부의 일
작은 물고기
알 밴 물고기
놓아주는 것도
어부의 일
- 「어부의 일」전문
어부의 진짜 일은 고기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잡은 고기를 놓아주는 것도 미래를 내일을 생각하는 어부의 진짜 일 일 것이다. 반추할 수 있는 삶을 살고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다.
길에 떨어진
벙어리장갑
두 짝을
살포시 포개놓았다
따뜻한 손
만들어놓았다
주인 빨리 만나라고
기도하는 손
만들어놓았다
- 「장갑」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묘신
1967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2002년 MBC 창작동화 대상에서 단편 동화 「꽃배」로 수상하고, 2005년 동시 「애벌레 흉터」 외 5편으로 제3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동시 「응, 그래서?」가 실렸으며, 현재 청주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동시집으로 『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 『너는 1등 하지 마』등이 있고, 청소년시집 『내 짧은 연애 이야기』와 그림책 『우물우물 임금님』, 『후루룩 후루룩 콩나물죽으로 십 년 버티기』가 있다.
그림 : 강나래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여자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그린 책으로 『우리 동네 이야기』, 『위풍당당 박한별』, 『사랑하니까』, 『엄마보다 이쁜 아이』, 『바퀴 달린 모자』, 『모두모두 꽃이야』 등이 있습니다.
목 차
시인의 말
1. 얘들아, 손님 왔다
눈사람
얼음나무
얘들아, 손님 왔다
도시의 불빛
미래엔
나무의 말
풍선 때문이다
멧돼지 넋두리
의젓한 몽몽이
쥐가 될까 새가 될까
햄스터
떠돌이 고양이에게
바닷가 펜션 앞에서
할인
어떤 음악
코뿔소
강아지들 회의
2. 서로 딴소리
변명
할미 이름은 아냐?
서로 딴소리
한글 떼고 났더니
웃기는 말
형제는 닮았다
바뀐 노래
시계를 걸어둔 이유
인증샷 시대
잘 먹겠습니다
보호구역
지우고 싶은 말
통역이 필요해
자판기 부엌
우리 학교 소나무
셀카 성형
할머니가 변했다
3. 미안해 거미야
숙제
머리만 믿지 않기
미안해 거미야
걱정
수어
꽃씨 도둑
제발
팔짱
때문이다
중독
아픈 은방울꽃
빠른 것만 좋아하는 아빠
괜찮아 괜찮아
고 작은 씨앗이
어미새
요리사
이름
4. 북극곰의 여름나기
‘미리’ 라는 말
이제 알겠다
북극곰의 여름나기
문과 벽
어부의 일
안아주는 나무
낙엽도 집이 있다
길
판다 사진
나중에
갯벌 체험
장갑
절에 갔더니
오후 네 시
모퉁이
마세요
경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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