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스승 다시 교사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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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순우 외
출판사항현암사, 발행일:2019/03/02
형태사항p.328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2319797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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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동서양의 ‘스승’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통해
 오늘의 우리 교육과 교사에게 던지는 묵직한 충고


“어떻게 학교를 행복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덴마크의 행복한 학교 이야기에 흠뻑 빠진 어느 한국 학생이 던진 질문이다. 그럼 학교와 행복, 그리고 교육과 행복은 어떤 관계일까?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며 덴마크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일까?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학교가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의 삶도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학교에서 교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학교에서의 행복은 잠시 미뤄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간주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 합의는 어느새 학교는 행복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학생들 마음에 자리 잡게 했다. 그러면 학교는 정말 학생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불행한 곳인가? 교사는 학생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행을 강요하는 사람인가? 그러한 학생의 미래를 비추는 성인들의 사회는 행복한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 학생들이 미뤄둔 행복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교사는 어떤 방법으로 학교에서의 행복을 학생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까?
이 책은 풀 수 없는 문제처럼 여겨지는 이 질문들에 답하고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동서양의 역사 속에서 참다운 교육, 참다운 스승상의 원형을 찾아보고, 그것이 오늘의 우리 교육과 교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또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참스승은 누구인가
 지금 한국 교육은 중병을 앓고 있다. 특히 우리 문화 고유의 전통적인 사제 관계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학교의 현장에서 교사의 교육적 권위가 부정당하는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이와 함께 교사들의 심각한 일탈도 자주 지상에 오르내린다. 교육 그 자체의 의미를 뒤흔들 수 있는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개인적인 일탈인가, 아니면 오늘날 학교 문화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인가? 과연 그 해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필자들은 동서양의 역사 속에서 ‘참다운 스승상’의 원형을 찾아보고, 그것이 오늘날의 뒤틀린 사제 관계를 복원하는 모종의 씨앗이 될 수 있을지 자문한다. 논의는 동양학과 한국학, 서양철학 전반에 걸쳐 있다. 혹자는 참스승의 원형을 유학의 유위(有爲)적 삶에서 찾고, 어떤 이는 아득한 평원 너머의 노장적인 무위적 탈속 속에서 구하며, 또 다른 필자는 고대 희랍의 언덕 위에 선 철인의 성찰 속에서 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필자들이 제시하는 스승상은 서로 그 결을 달리하지만, 내면을 관류하는 공통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들이 찾는 참스승은 모두 그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참스승들은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교육의 현장에 뿌리내리려던 인물들이다.
그런데 저 현인들의 사유의 깊이와 삶의 진실성을 오늘 한국의 교육 현장으로 소환할 수 있다면 과연 왜곡된 교육 문화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필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지점이다. 과연 옛날의 격률들이 오늘 한국의 교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교사들은 더 이상 교실에서 지도자처럼 행동하거나 진리의 대변자 역할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물신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선생님의 도덕률에 귀를 기울이고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의 필자들은 이러한 협애한 근대성 담론에 강한 이견을 제기한다. 우선 잘못된 고전 읽기가 왜곡된 신화를 양산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일반 독자들로부터 가장 전근대적이며 봉건적이라고 통박을 당하고 있는 유학의 왜곡된 부분을 해명하고자 상당한 공력을 기울인다.

‘군사부일체’와 교학상장(敎學相長)
세간에서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용례를 사제 사이의 심리적 연대성보다는 수직적 서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특히 임금과 스승을 같은 선상에서 논의함으로써 임금과 신하 사이의 엄격한 위계가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관철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확산되었다. 유학에서의 ‘배움’이란 미성숙한 정신의 소유자인 제자가 좀 더 성숙한 선생으로부터 깨우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스승의 자리는 일종의 학문적 카리스마를 필요로 한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제자들은 겸손의 자세를 익히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할 사실은 전통 교육에서도 가르침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점차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공부가 익어가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동반자 관계이며, 서로가 서로를 해방해주는 관계로 이행해간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사례를 공자와 퇴계라는 두 거인에게서 찾는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학에서의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침과 배움이 자신 안에서 상호 성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퇴계가 보여준 스승상
 퇴계 이황은 운명하기 한 달 전 병이 깊어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되자 제자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랬던 퇴계가 죽음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제자들을 보고 싶어 했다. 그것은 자신의 생을 정리하던 퇴계가 제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정리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찾아오자 병중의 몸을 일으켜 어렵게 윗옷을 걸친 퇴계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 한마디였다.
“평소 그릇된 식견으로 제군들과 강론을 하였는데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이 마지막 말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기에 퇴계는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 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릇된 식견’이라는 말이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퇴계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 혹시 제자들에게 겸손을 표하기 위해 그랬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이 말을 한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부러 제자들을 불러놓고 겸손을 보이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퇴계의 이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즉, 퇴계는 그동안 제자들에게 강론했던 자신의 식견에 대해 진심으로 오류가 많았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퇴계는 자신의 학문이 깊어짐과 동시에 자신의 가르침이 매우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틀리고 잘못된 것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식견이 그릇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스승 퇴계는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아마 이런데도 계속 제자들을 지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했을 것이다. 퇴계가 생을 마감하는 즈음에 제자들을 불러서 이 이야기를 한 까닭은 일종의 양심선언으로서, 그동안 자신이 그릇된 식견으로 제자들을 가르쳐온 것에 대해 고백하지 않고 세상을 뜨는 것은 ‘사기’와 다름없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이를 고백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은 그동안 가르쳤던 모든 것이 참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식견에 대한 오류 가능성을 염려하면서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스승은 어찌해야 할까? 우선은 자신이 지금 알고 있는 최선을 찾아 가르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의 최선이 곧 참이 아니라 거짓일 수 있다는 오류 가능성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그리하여 오류가 발견되면 이를 수정한 또 다른 최선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스승은 오직 끊임없이 성찰하고 연구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퇴계는 항상 최선을 다해 가르쳤지만, 오류에 대한 수정을 서슴지 않는 스승이었다. 죽음의 즈음에 처한 퇴계에게는 더 이상 자신의 오류를 수정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가르쳤던 것들에 혹여 오류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승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맹신하거나 묵수하지 말고 제자들 스스로 그 오류를 찾아내 수정하라’고 말해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퇴계는 “평소 그릇된 식견으로 제군들과 강론을 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퇴계는 그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배움에 열중하였을 뿐이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태도야말로 제자들에게는 최고의 가르침이었던 것이고, 가르치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가르침이었기에 살아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진리, 혹은 진실 앞에 마주 선 동서양의 스승
 이 책에서는 또한 동서양의 사상적 거인이자 위대한 스승이었던 주자와 왕양명,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함께 만날 수 있다. 동서양의 철인들은 서로 다른 길을 향해 가고 있으나 묘하게 서로를 반조(反照)하게 한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현대 유럽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미셸 푸코를 통해서 소개된다. 푸코는 ‘파레시아’를 언급하는데 이는 진솔한 자기표현, 두려움 없는 말하기와 관련된 ‘진실 말하기’라고 할 수 있다. ‘파레시아스트’는 이 ‘진실을 말하는 자’를 일컫는다. 이는 역사적으로 소크라테스로 현현된다. 소크라테스는 삶의 교사다. 도저히 간파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의미이며 아무리 헤매도 정답을 찾을 길 없는 과제가 또한 삶이기 때문에 파레시아스트로서 소크라테스는 삶을 돌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온 삶을 다해 가르치고자 했던 바는 바로 ‘자기 자신을 배려하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 배려의 중요성을 각성하게 하고 우리가 진실과 맺어야 하는 관계를 일깨워준다.
급변하는 현대의 일상은 우리를 쉽게 관행에 빠져들게 하고 타성에 젖게 한다. 규격화되고 통제된 삶은 우리가 누구인지, 나 자신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대신 세계가 구성해놓은 ‘나’의 상에 우리 자신이 부합하는지 여부를 놓고 경쟁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고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에 대한 진실을 말해줄 파레시아스트가 필요하다.
인간은 본래 ‘위대한 존재’ 혹은 ‘신성(神聖)을 지닌 존재’라고 여기는 주자와 왕수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교육은 ‘별 볼일 없는 존재를 위대한 존재로 만드는 활동’이 아니라 ‘본래 위대한 존재가 현실에서 고스란히 그 위대성을 발현하게 하는 활동’이다. 학습자를 스스로의 힘으로 진리를 깨칠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는 ‘위대한 존재들’로 파악하였다는 점에서 이 두 사람도 푸코가 말한 또 다른 모습의 ‘파레시아스트’이다.

동양의 스승,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두 길
 대부분의 서구 사회에서는 유교보다는 불교와 노장사상이 더욱 환영을 받는다. 유교는 국가체제나 전략의 문제를 논의할 때 유용하고, 개인적인 구원이나 심리적 안정을 원할 때는 노장사상이나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유학이 다분히 구성적 사유의 형식을 띠고 있다면, 노불 사상은 해체적 사유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은 노장사상에 경도된다.
장자는 지식을 가르쳐주는 ‘유위(有爲)적 교사’라기보다는, 학생 자신의 ‘무용지용’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무위(無爲)적 교사’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유학자들은 장자 철학이 지나치게 반사회적이
 고 반인륜적이라고 공격한다. 이 복잡다단한 삶과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도덕적 의지와 욕망이 있어도 쉽지 않은데, 어떠한 인위적 의도와 의지도 배제한 채 자연적 흐름에 순응하는 무위의 철학으로는 세상에 대한 참다운 사랑과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자는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학생들로 하여금 외부의 유용/무용의 판단을 떠나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온전함’과 만나는 계기를 갖게 하라고. 학생들이 이러한 기회를 갖게 된다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교사’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선불교의 스승론’은 또 어떠한가. 이 생(生)은 가유(假有)이고 묘유(妙有)인데, 이것을 깨닫는 주체가 곧 마음이며 그 마음에 찌든 무명(無明)의 굴레를 벗어 던지는 것이 불교 공부론의 핵심이다. 이렇게 큰 가르침을 인도해줄 스승은 그렇게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스스로 깨치기 위해 쉼 없이 정진하는 선사의 모습, 이를 일상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아낌없이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사의 모습이 오늘의 우리 교육 현장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교사의 ‘권위’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의미심장한 메시지
 나치에 저항하고 전체주의에 맹렬히 반대하던 아렌트가 교육은 ‘새로움’과 ‘전통’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권위’가 발현되어야 할 영역이라고 주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렌트는 ‘권위’의 역사적 해석을 논의하면서 특히 로마 시대를 주목한다. 아렌트는 연장자들과 원로원이 지니고 있던 ‘권위’를 ‘배의 바닥짐(ballast)’으로 비유했다. 원로원은 배의 중심을 잡는 ‘평형수’나 사물이 항상 평형을 이루게 하는 ‘중심력’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어떤 것 없이, 그리고 ‘전통’의 도움 없이, ‘권위’가 부재한 상태에서 ‘새로움’은 더해질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아렌트는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에서 사라져 저희들만의 ‘무리’에 남겨진 상태를 교육적 권위 상실에 따른 위기로 단언했다. 어른에게서 분리된 아이들은 스스로를 관리하고 지시할 권한을 지님으로써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폭력’을 통해 ‘순종’을 강요당하고, ‘구속’에 의해 ‘자유’를 억압당한다. 아이들만이 존재하는 그곳에 그들 모두의 새로움이 더해지도록 균형을 잡아줄 ‘권위’는 없다. 자유와 자율을 확대할 수 있는 참된 ‘권위’가 작동하는 어른들과의 세계에서만 아이들은 자신의 새로움을 시작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권한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내려놓는 순간 ‘자발적 복종’으로서의 ‘권위’가 작동한다. 자율적 복종에 의한 ‘권위’만이 모두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도의 구심점은 기성세대로 대변되는 어른들이나 교육자의 권한을 늘리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새로움’으로 세계를 ‘증대’시키자는 데 있다는 점이다.

그룬트비의 ‘삶을 위한 교육’
덴마크 사람들이 누리는 좋은 삶의 상징이자 교사들에게는 ‘물과 공기 같은’ 존재인 니콜라이 그룬트비(1783~1872). 그룬트비 교육론의 출발점은 ‘개인’이다. 어떻게 하면 개인의 필요와 개인에게 잠재된 지적?정서적 능력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는 이러한 교육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교육은 개인의 삶에 도움을 주고, 삶에 대한 자각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룬트비가 말한 ‘개인’은 교육을 통해 개인적인 자각을 얻음과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와 자연스럽게 연대하고 주체적인 관계를 맺을 줄 아는 개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삶을 위한 교육’은 교육에 대한 그룬트비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다. 그룬트비에게 교육은 현실 생활에 도움을 주고, 일상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개인을 성장시키는 활동이다. 그룬트비는 ‘삶이 먼저고, 그다음에 배움이 따라와야 한다’고 했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질문과 배움의 필요성을 기반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삶에서 생겨나는 필요성에 의해 촉발된 진정한 배움은 온화하며 부드럽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움의 내용이 각 개인의 삶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육의 바탕에는 지식이나 배움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룬트비에게 살아 있는 말인 모국어는 인간의 가치와 덕의 근원이 된다. 죽은 언어를 이론적?기계적으로 암기시키는 교육 활동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깨우칠 수 없다. 그룬트비는 살아 있는 말을 통한 모국어 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말을 하고 글을 읽는 능력 이상의 것을 배우게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는 살아 있는 말을 통해 학생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 느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학생이 동료 학생, 교사와 살아 있는 말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학생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내면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지은이
 김민재 충북대학교 교수
 김세희 고려대학교 강사
 김언순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김은미 전주교육대학교 강사
 김자운 공주대학교 강사
 심은하 양수중학교 교사
 이권재 대한검정회 이사장 및 성균관 부관장
 이우진 공주교육대학교 교수
 정미량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정해진 고려대학교 강사
 조나영 상명대학교 강사
 한재훈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작가 소개

엮은이 : 정순우 
경북 출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버클리 대학교 및 캐나다 UBC 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파리 7대학 강의교수를 지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장 및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2013년 현재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후기 교육사와 지성사 분야에 관한 약 40여 권의 공저서, 10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조선조 선비들의 사유 방식과 삶의 태도를 다양한 시선으로 헤아려 보고, 그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공부의 발견>(2007), <도산서원>(공저, 2001), <지식 변동의 사회사>(공저, 2003), <東亞傳統敎育與學禮學規>(공저, 2005), <서당의 사회사>(2013) 등이 있다.

 

엮은이 : 정미량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유학생사, 중국 조선족 교육사, 한국 다문화 교육 문제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다. 향후 연구 관심 분야도 해외 유학생사, 중국 조선족 교육사 사례 연구, 한국 다문화 교육 및 외국인 학교 문제에 대한 정책적 방안 탐색 등이 될 것이다.
주요 저서로는 『1920년대 재일조선유학생의 문화운동: 개인과 민족, 그 융합과 분열의 경계』(2012), 『한국의 다문화주의: 가족, 교육 그리고 정책』(2011, 공저), 『열풍의 한국 사회』(2012, 공저), 『사건으로 한국 사회 읽기』(2011, 공저), 『인문학의 싹』(2011, 공저), 『우리나라의 1945년 이전 국가수준 교육과정』(2010, 공저) 등이 있다.

목 차

머리말 - 스승에 관한 동서양의 대화 / 정순우

1부 동양 -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두 길
 유학의 스승 -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구도자
 신유학의 두 스승 - 주희와 왕수인
 장자의 교사론 - 성찰하는 자유인
 선불교의 스승 - 제자의 따귀를 때리는 스승

2부 한국 - 도덕에서 경쟁으로의 전화(轉化)
조선의 사제 관계 - 동도(同道)의 길을 걷는 지기(知己)
조선의 스승 담론 - 현실에서 미래를 향해 기도하는 자
 개화기의 근대 교사 - 국가화된 인격자
 기본권으로서 공교육과 교권

3부 서양 - 진실, 현실 그리고 삶과의 동반
 푸코의 ‘파레시아스트’와 교사
 그룬트비의 교사론 - 삶을 위한 교사
 아렌트의 교사론 ? 교육적 권위와 새로운 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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