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3.1운동 100주년 기념 민족시인 5인 시집 -

고객평점
저자김소월 외
출판사항시요일, 발행일:2019/03/10
형태사항p.364 국판:23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89280239 [소득공제]
판매가격 18,000원   16,200원  (인터넷할인가:10%)
포인트 810점
배송비결제주문시 결제
  • 주문수량 

총 금액 : 0원

책 소개

3.1운동 100주년, 오늘 우리의 얼굴을 되비추는 이 한 권의 거울

1919년은 우리 역사에 기록된 가장 뜻깊고 역동적인 순간 중 하나다. 3.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를 수립함으로써(4월 11일) 민족과 국가의 근본을 다진 특별한 해인 까닭이다. 그로부터 백년이 흐른 오늘,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자 ‘시요일’에서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민족 시인 5인 시집>(미디어창비)을 펴냈다. 부제에서 밝히듯 우리 민족과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5인의 첫 시집을 한데 엮은 시선집이다. 우리 민족이 지닌 한의 정서를 가장 빼어나게 노래한 김소월과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자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이상화의 민족혼이 담긴 시를 한자리에 모았다.

김소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이상화
 한 권으로 읽는 민족 시인 5인의 첫 시집

 시집을 펴내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은 대상 시인과 시집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시요일 기획위원의 논의를 거치고 문단의 자문을 얻은 끝에 위 다섯 시인의 첫 시집 초판본인 김소월 <진달래꽃>(매문사 1925), 한용운 <님의 침묵>(회동서관 1926), 이육사 <육사 시집>(서울출판사 1946),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 이상화 <상화와 고월>(백기만 편, 청구출판사 1951)을 저본으로 삼아 총 282편(김소월 127편, 한용운 88편, 이육사 20편, 윤동주 31편, 이상화 16편)의 작품을 실었다.
이로써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혼」 「개여울」 「왕십리」 「산유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복종」, 이육사의 「청포도」 「절정」 「광야」, 윤동주의 「서시」 「자화상」 「길」 「십자가」 「별 헤는 밤」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등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시이자 독자들이 꾸준히 사랑해온 시인들의 대표작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원문에 충실한 해석, 믿을 수 있는 편집

 시집을 엮으면서 무엇보다 우선시한 것은 첫 시집 초판본과의 면밀한 대조와 해석이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해석본 시집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행갈이나 단어, 구두점 등에서도 원문에 충실함으로써, 출간 당시의 형태에 가장 가까운 작품을 대하는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하고자 했다. 근래 잇따라 출간된 복각본 외에 일반 독자로서는 원본을 접할 기회가 흔치 않은 형편을 감안하여 최대한 초판본 형태를 살리는 쪽으로 엄정한 편집 방침을 세웠다. 시인의 고유한 어휘나 방언 등을 살리기 위해 원문에 충실하되, 띄어쓰기와 단순히 표기법만 달라진 일부 단어는 현행 맞춤법에 따랐다. 이를테면 ‘차즈시면→찾으시면’ ‘니젓노라→잊었노라’ ‘안이닛고→아니 잊고’ ‘속으로나무리면→속으로 나무라면’ 등이(이상 김소월 「먼 후일」) 그 예다. 이 과정에서도 되도록 시인만의 운율이 이 훼손되지 않도록 고려했으며,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단어와 두 가지 이상으로 해석이 가능한 단어는 각주로 풀이를 달았다.

다음 세대 독자를 위해 새로 펴낸 한국 시 문학의 정수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는 저본으로 삼은 각 시인의 첫 시집에 한해서만큼은 기존의 여러 판본을 뛰어넘는, 정본에 가장 가깝고 원문을 충실하게 해석한 시집이라고 자부한다. 이 한 권의 시집을 통해서 젊은 독자들도 우리 시 문학의 정수를 쉽고도 깊게 감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뿐만 아니라 한 세기 전 암흑의 시대에 시와 실천으로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시인들의 고귀한 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귀중한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소월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

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

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

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지은이 : 한용운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10년 당시 모순과 부패가 만연하던 한국불교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개혁방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고, 그것을 1913년 발간함으로써 불교계에 일대 혁신운동을 일으켰다. 1914년 4월에는 고려대장경을 독파하고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1918년에는 본격적인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였다.

1919년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불교계측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도 맡았다. 1919년 7월 10일에는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요구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란 논설을 집필하여 명쾌한 논리로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3.1운동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석방된 뒤에도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민족경제의 육성과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운동에 앞장섰다.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뜻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지은이 : 이육사 
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이가호와 허길 사이에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의 형제 중 다섯째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월북 이후 1950년대 초 숙청당한 이원조다. 어릴 때 조부 이중직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에 신학문을 접한 보문의숙을 졸업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대학 상과에 입학해 7개월간 다녔다.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었다. 일본 경찰이 장진홍이란 인물은 물론 단서조차 잡지 못하자,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진범을 조작해 법정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육사를 비롯해 원기·원일·원조 등 4형제가 함께 검거되었다. 원기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미결수 상태로 1년 반을 넘겼다. 그때의 수인번호 264에서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 1월 3일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이활(李活)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1935년 정인보 댁에서 시인 신석초를 만나 친교를 나눴다. 같은 해 다산 정약용 서세 99주기 기념 ≪다산문집(茶山文集)≫ 간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신조선사(新朝鮮社)의 ≪신조선(新朝鮮)≫ 편집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했다.

1940년 4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충칭과 옌안행 및 국내 무기 반입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모친과 맏형 소상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네이이구(內一區) 동창후퉁(東廠胡同) 1호에서 옥사했다.

지은이 : 윤동주 
어둠에 별이 있다. 시인 윤동주의 세상은 어둠이었고 별이었다. 감수성이 남다른 그는 작은 바람에도 일렁인다. 윤동주는 시를 통해 상처입은 마음을 치료하게 한다.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자신은 물론 삶을 돌아보게 하며 스스로의 회개와 반성의 시간을 만나게 한다. 어둠을 보면 우린 빛낼 줄 안다고 말했다. 윤동주는 바로 그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의 색을 짚어보게 한다. 나를 있게 한 오늘과 내일을 연계하며 삶을 승화시키는 바람 그리고 기원이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모이게 한다. 손에 손을 들던 그 바람을 아는 동주는 그대로 꽃을 만들고 별을 만들고 바다로 넘치게 했다. 오늘을 기억하고 아픔을 함께하며 모두의 내일을 만나게 할 “별 헤이는 시간”을 찾아 나서게 한다.


지은이 : 이상화 
1901년 대구에서 부친 이시우와 모친 김신자의 2남으로 출생했는데, 가정은 부유했으나 7세 때 부친이 별세해, 어머니의 인자하고 후덕한 성정과 백부 이일우의 엄격한 훈도 밑에서 성장했다. 백부 이일우는 인품과 재력을 갖추었으며, 민족정신을 선도하고 국민 계도에 앞장선 지사로서, 이상화로 하여금 가내에 설치한 사숙에서 한문 수업을 받게 했다. 백부를 통해 이상화는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많은 감화와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상화의 형인 이상정이 독립 운동가로 활동하게 된 것 또한 이러한 가계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이상화는 17세에 현진건, 백기만, 이상백 등과 함께 대구에서 ≪거화(炬火)≫라는 습작집을 프린트판으로 발간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대구에서 백기만과 더불어 독립운동 거사 모의에 참여하나 사전에 누설되어 서울로 피신, 박태원의 하숙에 기거하게 된다. 이해 10월 서한보의 장녀 서온순과 결혼했다.

1922년, 빙허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白潮)≫ 동인이 된 이상화는, 시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To___> <나의 침실로> <이중의 사망> <마음의 꽃>을 게재하게 된다. 이들 시에는 식민지의 암울한 시대 현실에서 오는 좌절, 권태, 우울, 애수 등이 불덩이 같은 정열로 분출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상화는 열린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프랑스 유학의 기회를 얻기 위해 도일했는데 도쿄 체류 기간인 1923년, ≪백조≫ 3호에 발표한 <나의 침실로>는 문단에 대단한 주목을 불러일으킨다. 상화의 <나의 침실로>는 “낭만적 상상력과 유미주의의 극한” 또는 “낭만적 에로티시즘의 정화” 또는 한국 데카당스 문학의 전형으로 미학적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에는 당시 이상화가 대구에 본처를 둔 상태로 유보화와 사랑에 빠진 일 등 20세 초 청년기에 체험한 사랑과 열정, 일제의 질곡 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강박 관념, 불안 심리, 성애의 원죄 의식이 상징적으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백조기에는 ‘데카당이즘’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면서 절망을 다룬 시편들을 주로 창작한다.

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진재로 1924년 봄,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한 이상화는 1925년 2월, 무산 계급 문예 운동 단체인 ‘파스큘라’에 참석하고, 1925년 8월 결성된 카프에 가담하면서 창작기의 절정기를 이룬다. 이상화는 1925년부터 1926년 사이에 시 34편, 평론 7편, 단편 2편, 감상문 4편 등 50여 편의 각종 시문을 남겼다. <가장 비통한 기욕> <이해를 보내는 노래> <빈촌의 밤> <조소> <가상> 등에는 일제의 압제와 착취 아래서 신음하는 조선인들의 빈궁상을 보여 주면서 당대 현실의 모순과 저항의식을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화는 <무산 작가(無産作家)와 무산 작품(無産作品)>과 같은 급진적인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카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이렇게 이상화의 한계 지워진 계급투쟁 의식은 <가상> <조소>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비를 다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26년 가을, 연인이었던 유보화가 폐병으로 사망하자 1927년, 이상화는 향리인 대구로 낙향해 카프나 중앙 문단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서울 생활을 청산한 이상화는 대구에서 실의와 절망의 나날을 보내며 애정 행각을 벌이고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해 작고하기까지 14년간 침묵기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1928년 6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신간회에서 출판 간사직에 있던 이상화는 여러 차례 가택 수색을 당하고 구금되기도 했다. 낙향기에서 보여 주는 이러한 침체는 그가 처한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상화가 1934년 ≪조선일보≫ 경북 총국을 경영했으나, 1년 만에 문을 닫은 것도 실의와 좌절의 한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37년 3월부터 약 3개월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형 이상정 장군을 만난 후, 이상화는 새로운 의식으로 전환해,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면서 사회에 봉사하게 된다. 이에 대륜중학의 건립에 이상화의 숨은 공로가 지대했다고 전한다. 이상화의 이러한 사회적 헌신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어버린 민족의 광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충정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그의 아호 ‘백아(白啞)’는 어둡고 불구적인 식민 치하의 고통을 실의와 자조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40년, 이상화는 사회적 활동을 그만두고 칩거하며 춘향전 영역, 국문학사, 프랑스 시 평역 등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1943년 4월 25일, 불치의 병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타계한다. 

목 차

김소월 『진달래꽃』(매문사 1925)

먼 후일
 풀따기
 바다
 산 위에
 옛이야기
 님의 노래
 실제(失題)
님의 말씀
 님에게
 마른 강 두덕에서
 봄밤
 밤
 꿈꾼 그 옛날
 꿈으로 오는 한 사람
 눈 오는 저녁
 자주 구름
 두 사람
 닭 소리
 못 잊어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꿈
 맘 켱기는 날
 하늘 끝
 개아미
 제비
 부엉새
 만리성
 수아(樹芽)
담배
 실제(失題)
어버이
 부모
 후살이
 잊었던 맘
 봄비
 비단 안개
 기억
 애모
 몹쓸 꿈
 그를 꿈꾼 밤
 여자의 냄새
 분(粉) 얼굴
 아내 몸
 서울 밤
 가을 아침에
 가을 저녁에
 반달
 만나려는 심사
 옛낯
 깊이 믿던 심성(心誠)

 님과 벗
 지연(紙鳶)
오시는 눈
 설움의 덩이
 낙천(樂天)
바람과 봄
 눈
 깊고 깊은 언약
 붉은 조수(潮水)
남의 나라 땅
 천리만리
 생(生)과 사(死)
어인(漁人)
귀뚜라미
 월색
 불운에 우는 그대여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황촉불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훗길
 부부
 나의 집
 새벽
 구름
 여름의 달밤
 오는 봄
 물마름
 우리 집
 들도리
 바리운 몸
 엄숙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밭고랑 위에서
 저녁때
 합장(合掌)
묵념
 열락(悅樂)
무덤
 비난수하는 맘
 찬 저녁
 초혼(招魂)
여수(旅愁)
개여울의 노래
 길
 개여울
 가는 길
 왕십리
 원앙침
 무심(無心)

 진달래꽃
 삭주구성(朔州龜城)

 춘향과 이도령
 접동새
 집 생각
 산유화
 꽃 촉불 켜는 밤
 부귀공명
 추회(追悔)
무신(無信)
꿈길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하다못해 죽어 달래가 옳나
 희망
 전망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금잔디
 강촌
 첫 치마
 달맞이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한용운 『님의 침묵』(회동서관 1926)

군말
 님의 침묵
 이별은 미(美)의 창조
 알 수 없어요
 나는 잊고저
 가지 마셔요
 고적한 밤
 나의 길
 꿈 깨고서
 예술가
 이별
 길이 막혀
 자유 정조(貞操)
하나가 되어 주셔요
 나룻배와 행인
 차라리
 나의 노래
 당신이 아니더면
 잠 없는 꿈
 생명
 사랑의 측량
 진주
 슬픔의 삼매(三昧)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은
 행복
 착인(錯認)
밤은 고요하고
 비밀
 사랑의 존재
 꿈과 근심
 포도주
 비방
?
님의 손길
 해당화
 당신을 보았습니다
 비
 복종
 참아 주셔요
 어느 것이 참이냐
 정천한해(情天恨海)
첫 키스
 선사(禪師)의 설법
 그를 보내며
 금강산
 님의 얼굴
 심은 버들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참말인가요
 꽃이 먼저 알아
 찬송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廟)에
 후회
 사랑하는 까닭
 당신의 편지
 거짓 이별
 꿈이라면
 달을 보며
 인과율
 잠꼬대
 계월향(桂月香)에게
 만족
 반비례
 눈물
 어데라도
 떠날 때의 님의 얼굴
 최초의 님
 두견새
 나의 꿈
 우는 때
 타고르의 시(GARDENISTO)를 읽고
 수(繡)의 비밀
 사랑의 불
‘사랑’을 사랑하여요
 버리지 아니하면
 당신 가신 때
 요술
 당신의 마음
 여름밤이 길어요
 명상
 칠석(七夕)
생의 예술
 꽃싸움
 거문고 탈 때
 오셔요
 쾌락
 고대(苦待)
사랑의 끝판
 독자에게

이육사 『육사 시집』(서울출판사 1946)

황혼
 청포도
 노정기(路程記)
연보(年譜)
절정
 아편
 나의 뮤즈
 교목(喬木)
아미(蛾眉)
자야곡(子夜曲)
호수
 소년에게
 강 건너간 노래
 파초
 반묘(斑猫)
독백
 일식(日蝕)
해후
 광야
 꽃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

서시(序詩)
자화상
 소년
 눈 오는 지도
 돌아와 보는 밤
 병원
 새로운 길
 간판 없는 거리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
 십자가
 바람이 불어
 슬픈 족속
 눈 감고 간다
 또 다른 고향
 길
 별 헤는 밤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씌어진 시
 봄
 밤
 유언
 아우의 인상화
 위로
 간(肝)
산골 물
 참회록

이상화 『상화와 고월』(백기만 편, 청구출판사 195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단조(單調)
반딧불
 이중의 사망
 가을의 풍경
 이별을 하느니
 쓰러져 가는 미술관(美術館)
서러운 해조(諧調)
역천(逆天)
가장 비통한 기원
 말세의 희탄(希歎)
청년
 무제
 그날이 그립다
 금강 송가(金剛頌歌)

역자 소개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반품 배송비 부담자
단순변심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상품의 불량 또는 오배송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환불안내
진행 상태 결제완료 상품준비중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어떤 상태 주문 내역 확인 전 상품 발송 준비 중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환불 즉시환불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환불시점
결제수단 환불시점 환불방법
신용카드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신용카드 승인취소
계좌이체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계좌입금
휴대폰 결제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포인트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환불 포인트 적립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환불불가
상품군 취소/반품 불가사유
의류/잡화/수입명품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계절상품/식품/화장품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가전/설치상품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자동차용품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CD/DVD/GAME/BOOK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내비게이션, OS시리얼이 적힌 PMP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