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백치천재를 탄생시킨 문제작
영화에 생략된 포레스트 검프의 진짜 이야기
“캉디드와 허클베리 핀을 닮은, 포레스트 검프의 특별한 인생 이야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관통하는 팩션 장르의 신기원을 열어젖히며 모던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원작 소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1994년 개봉 이후 제67회 아카데미 상 시상식에서 6관왕에 오르고 흥행 면에서도 <라이언 킹>에 버금가는 실적을 거뒀으며, 이에 힘입어 원작 소설 역시 미국에서만 2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즉 영화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인데, 이것만으로는 이 소설이 출간 25년이 지난 지금도 아마존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유를 오롯이 설명하기 힘들다.
무엇이 이 소설을 세월의 부침을 이겨내고 모던 클래식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일까? 영화와의 차이점을 짚어보며 소설만의 특별한 매력을 알아보자.
바보만도 못한 멀쩡한 인간들의 세상에 대한 유쾌한 블랙 유머 펀치
영화는 “엄마는 늘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초콜릿을 먹게 될지 모르니까요…”라는 명대사로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 두 작품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백치는 초콜릿 상자가 아니야.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인내심을 잃고, 인색하게 대해. 사람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말하지. 그치만 내가 장담하는데, 늘 그런 건 아니야.” (본문 9쪽)
이는 포레스트 검프가 백치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휘둘려 살아온 여정을 축약한 것으로, 영화보다 훨씬 거칠고 험악한 현실의 세계를 암시한다.
그런데 소설 속 포레스트 검프는 운동신경 못지않게 지적 능력도 뛰어난 (흔히 ‘서번트 증후군’으로 불리는) 백치천재다. 생전 공부한 적 없는 고급 수학 방정식을 쉽게 풀어내는 놀라운 능력 때문에 NASA에 파견돼 우주비행사로 선발되고, 하모니카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클럽 밴드에 발탁되고 음반사와 계약까지 맺는가 하면, 우연히 체스판에 끼어들었다가 세계 정상급 그랜드마스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5천 달러의 상금을 거머쥐는 등 기상천외한 활약상이 펼쳐진다.
또한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명문 대학 풋볼 팀에 스카우트 된 이후 베트남전 영웅, 핑퐁 외교 영웅에 이어 마침내 사업가로 승승장구하기까지, 영화 속 검프는 그저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한 천하제일의 행운아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 속 검프는 여전히 뭐가 뭔지 세상 물정 잘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나름대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결정적 계기는 베트남의 육군병원에서 만난 댄이 제공한다. 역사 선생님 출신(애국자 집안 출신이 아니라)인 댄과 친구가 된 검프는 그로부터 인생 및 역사의 의미, 우주를 관장하는 자연법칙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차츰 세상에 눈뜨게 된다.
“포레스트, 난 솔직히 네 정신의 깊은 데서 타오르는 호기심의 불꽃을 봤다. 기회를 놓치지 마라, 친구. 이제까지는 물결에 휩쓸려 왔지만, 이젠 그 물결이 널 위해 흐르도록 만들어라. 여울과 장애와 싸워라. 절대 굴복하지 말아라.” (본문 105쪽)
물론 그렇다고 검프가 갑자기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나갈 뿐이다. 그런데 남들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멍청한 짓 같기만 한 그 선함과 순진무구함이 오히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렇듯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만화적 캐릭터 설정에 대해, 작가는 쿼큰부시 박사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설명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바보를 등장시키는 목적은 더블 앙탕드러의 장치를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바보가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독자에게 어리석음의 더 큰 의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때때로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대한 작가는 바보로 하여금 주요 등장인물들 가운데 하나를 조롱하게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들을 깨닫게 한 것이지요.” (본문 139쪽)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두고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자유와 변화를 갈망하는 진보 세력을 조롱하고 보수적 가치를 설파한다는 이유로, 다른 한편에서는 천하의 바보 천치를 내세워 위대한 역사를 만든 보수적 가치를 희화화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가한다. 어쨌거나, (영화가 아니라) 소설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한 개인의 인간 승리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달고 태어난 핸디캡 하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물씬 풍겨나기 때문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그 극단적인 예일 뿐.
영화에 생략된 포레스트 검프의 기상천외한 활약상
당연한 말이지만,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휴먼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영화에는 빠진 사건들이 많다. 영화에 반해 원작을 읽었다가 빈약한 사건 전개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영화 못지않은, 어쩌면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검프, 마오쩌둥의 목숨을 구하다 : 미국 탁구 대표팀에 선발되어 중공으로 간 검프는 어느 날 강가로 바람 쐬러 갔다가 수영 중인 마오쩌둥을 발견한다. 마오쩌둥은 물속에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실은 구해달라고 손을 흔드는 거란 사실을 알아차린 검프가 뛰어들어 그를 구해낸다. 그러자 미 국무부 요원인 윌킨스 씨가 “미합중국에 가장 좋은 일이 그 개자식이 익사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임을 몰랐단 말이냐”며 검프를 꾸짖는다. 검프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난 그저 옳은 일을 하려고 했을 뿐인걸.”
*검프, 우주로 나가다 : 백치 같은 짓을 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끌려간 검프는 탁월한 수학 실력에 놀란 의사들에 의해 NASA로 보내진다. 그리고 화성 탐사를 위한 훈련 비행에 발탁되어 우주선에 태워진다. 여자 군인과 오랑우탄과 함께. 그들은 지구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하나, 오랑우탄이 미쳐 날뛰는 바람에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 지구로 불시착하고 만다. 그런데 하필 그들이 떨어진 곳은 식인 풍습을 가진 원주민들이 사는 뉴기니였으니….
*검프, 상원의원에 출마하다 : 버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우 잡이에 뛰어들었다가 사업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정계 사람들이 검프를 상원의원에 출마시킨다. 출마 연설에서 그가 뜬금없이 외친 “나 오줌 마려” 발언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당선이 확실한 것처럼 보였으나, 언론사들이 그의 백치 같은 과거 행각들을 폭로하면서 위기에 처하는데….
*제니와의 재회, 그 다른 결말 : 영화에서 검프는 불치병에 걸린 제니와 아들을 돌보기 위해 제니와 결혼한다. 소설에서 세상에 환멸을 느낀 검프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여행을 떠났다가 제니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녀로부터 꿈에도 모르고 있던 자기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검프는 그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열망에 휩싸이게 되는데….
작가 소개
지은이 : 윈스턴 그룸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앨라배마 주 모빌(포레스트 검프의 고향인 바로 그곳)에서 자랐다. 앨라배마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미 육군에서 4년간 복무했으며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다. 『포레스트 검프』를 비롯한 그의 초기작들은 대부분 베트남전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논픽션 『적과의 대화』는 1983년 퓰리처 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가 1994년 영화로 제작되어 빅 히트를 기록하면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제67회 아카데미 상 시상식에서 6관왕에 오르고 흥행 면에서도 <라이언 킹>에 버금가는 실적을 거뒀으며, 원작 소설 역시 미국에서만 2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995년 속편인 『검프 회사』를 출간했으나 영화사와 작가 간의 저작권료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영화화되지는 못했다.
소설가 못지않게 역사 저술가로서도 유명해서 미국독립전쟁, 남북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역사적 사건에 관한 논픽션을 다수 펴냈으며, 2011년 하퍼 리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 정영목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현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옮긴 책으로 『로드』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책도둑』 『미국의 목가』 『에브리맨』 『울분』 『포트노이의 불평』 『굿바이, 콜럼버스』 『네메시스』 『죽어가는 짐승』 『달려라, 토끼』 『제5도살장』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등이 있다. 『로드』로 제3회 유영번역상을, 『유럽 문화사』로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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