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도서출판 걷는사람의 세 번째 희곡선 이보람 작가의 『소년B가 사는 집』이 발간되었다. 이보람은 2013년 <그날>로 데뷔한 이후 2014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선정됐으며, 근래 대학로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극작가이기도 하다. 2014년 초연된 『소년B가 사는 집』은 현실 사회의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는 이보람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 소년 범죄자와 그 가족에 대한 주위의 냉담한 시선을 그리다
-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묵직한 감성 담은 작품
『소년B가 사는 집』은 열네 살 때 친구를 죽이고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출소한 주인공 ‘대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년B는 친구를 살해한 열네 살 대환의 분리된 자아이다. 『소년B가 사는 집』의 특징이라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주변의 냉담한 시선과 더불어 ‘악마의 집’으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는 대환의 집에는 아이들이 던진 돌이 날아들기도 하며 집 앞의 가로등조차 제대로 수리를 해주지 않아 해가 지면 늘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모든 상황을 수용하며 지역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대환이 아버지의 ‘믿음’ 때문이다. 대환의 아버지는 대환을 비롯해 가족 모두가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윤아 아빠는 대환이를 용서하지 않은 걸까?
엄마 무슨 소리야 그게?
윤아 그렇잖아. 여기에는 김대환이가 그 친구랑 다니던 학교도 여전히 있고, 그 사건 현장도… 바로 뒷산이고… 동네 사람들도 여전히 우리만 보면 죽일 듯이 노려보는데…… 아빠는 꼭 괴롭히는 것 같잖아. 네가 한 짓을 똑바로 봐라. 이러면서.
엄마 …… 아니야. 그냥…… 네 아빠는…… (말을 고른다) 그러니까…… 순진한 거야.
윤아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순진?
엄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겠지.
윤아 엄만 안 믿어?
- 『소년B가 사는 집』 부분
대환의 살인사건에 가장 크게 반응한 이는 대환의 ‘엄마’이다. 대환의 현장검증을 지켜본 엄마는 “현장검증 때…… 당신은…… 안 보길 잘했지. 나는… 지금까지… 그날 거기에 간 걸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몰라. (중략) ……난… 정말… 대환이를 보면서… 내가 터무니없는 애를 낳았구나…….”라며 모든 상황을 자책한다.
엉망이 된 현실에서 대환의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려고 한다. 대환의 아빠는 대환에게 자동차 정비를 가르치며 망가진 대환의 내면을 보듬고, 엄마는 새로 이사 온 여자가 진행하는 ‘부모 교육’ 수업을 통해 대환의 불안한 정서에 다가가려 한다. 대환의 누나 윤아는 대환이 살해한 지호네 가족이 제주도에 있음을 우연히 알게 돼 용서를 구하고자 가족과 함께 제주 여행 계획을 세운다.
냉담한 현실에 가족 모두가 묵묵히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대환은 자신의 분열된 자아 소년B와 치열한 대립을 하고 있다. 뒤틀린 욕망으로 표현되는 소년B는 대환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다. 이런 자아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대환은 끊임없이 발버둥치게 된다. 대환은 용서받고 싶다는 희망을 가진 동시에 자신을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로 각인하며 소년B와 대항한다.
대환 난 살인자야.
소년B 내 이름은 김대환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불쌍한 척 서 있지 마. 짜증 나니까. 재판은 끝났어. 넌 교도소에서 나왔다고. 사람들이 널 함부로 대하는 걸 왜 참고 있는 거야?
대환 그게 내 죗값이랬어.
소년B 그런 어른들이 하는 말을 믿어? 생각해 봐. 널 계속 욕하면서도 끊임없이 너에 대해 이야기해. 그런데 그중에 지호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내 말을 들어봐. 사람들은 널 계속 살인범으로 만들고 싶어해.
대환 어째서?
소년B 불안하니까.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니까. 그래서 너 같은 미친놈이 필요한 거야. 그래야 자신들은 선하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
대환 …… 난 변하고 싶어.
소년B 너 혼자 노력하면 뭐하냐고. 사람들이 널 잊을 거 같아?
대환 하루였어. 딱 하루였어. 그게 내 전부는 아니잖아.
소년B 그래서? 그러면 없던 일이 되나?
- 『소년B가 사는 집』 부분
용서는 모든 가해자가 원하는 최고의 면죄부이다. 그렇기에 불가능에 가깝다. 대환에게 살해당한 지호네 가족이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윤아는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그들을 찾아가 함께 용서를 구하자고 엄마에게 말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그런 윤아를 다그치게 된다.
엄마 시간 지나면, 죽은 애가 살아 돌아온다디?
윤아 엄마.
엄마 그래, 나 엄마야. 나도 엄마야. 그 마음을 내가 모를 것 같아? 누가 내 새끼를 그렇게 죽였으면 난 당장 달려가서 그 살인범을 찢어 죽였을 거야! …… 용서? 바라는 것도 하는 것도 다 위선이야!
- 『소년B가 사는 집』 부분
사과하는 입장도, 그 사과를 받아들여 용서하는 입장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성경 속 ‘야곱의 씨름’ 일화를 통해 이보람 작가는 말하고 있다. “죽음을 각오한 인간의 의지는 신의 뜻을 꺾을 수 있다, 그러니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고 했어. 그런데 난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 그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 어쩌면…… 네가 해야 할 싸움은 그런 싸움일지도 몰라.”(관찰관과 대환의 대화 중)라며 대환과 대환의 가족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쉽지 않은 길인지 예시하고 있다.
이보람 작가의 『소년B가 사는 집』은 디테일한 설정에서 전해지는 섬세한 감정선이 압도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어두컴컴한 일상을 견디는 가운데 『소년B가 사는 집』은 어떤 미화나 포장 없이 현실적인 감각으로 살인 사건의 ‘가해자’를 조명한다. 모든 사건의 사례가 이 작품과 맞물릴 수는 없겠지만 『소년B가 사는 집』을 통해 우리가 가진 편견의 폭력성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가톨릭대학교에서 심리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극작을 전공했다.
2013년 <그날>로 데뷔, 2014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선정됐다.
주요 작품으로 <소년B가 사는 집>, <여자는 울지 않는다>, <네 번째 사람>, <네가 있던 풍경>, <기억의 자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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