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조선 후기 원예 취미의 모든 것!
18세기 원예문화의 수준과 풍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
《화암수록》은 원예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 화훼백과다. 유박은 일생과 전 재산을 원예 취미에 바칠 정도로 화훼 가꾸기에 열을 올린 선비였다. 그는 화훼의 종류, 별칭, 습성, 열매, 향기, 기를 때의 유의점 등 원예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정리해 화훼의 등급을 나누었으며, 짧게 평을 다는 한편, 꽃의 개화 시기를 월별로 정리하고, 화훼에 대한 각종 글을 지어 수록했다.
정민 교수가 《화암수록》의 저자를 밝히는 과정에서 발굴한 다양한 자료를 더해 최초로 《화암수록》 원문을 밝혀 출간한다. 《화암수록》은 조선 초기 강희안의 《양화소록》과 더불어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원예서로 손꼽히지만, 두 저작은 300여 년의 간극이 있다. 이 책의 출간으로 마침내 조선의 원예문화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 평생을 원예 취미에 골몰한 화훼 ‘덕후’, 화훼백과를 쓰다!
18세기가 되면 일상에서 기호를 드러내고 취미 활동을 즐기는 것이 더 이상 비난을 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호나 취미에 관한 서적을 뒤져 그에 대해 정리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 하나의 지적 활동으로 인정받았다. 강희안의 《양화소록》과 함께 조선 시대 2대 원예전문서로 꼽히는 《화암수록》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온 저작이다.
저자 유박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화훼를 가꾸며 지냈는데, 말년에는 살림살이를 탕진할 만큼 화훼수집에 몰두했다고 한다. 사시사철 몇십 년을 꽃과 함께하다 보니 그의 거처인 ‘백화암(百花菴)’은 당대 여러 문인의 글에 등장하기도 한다. ‘백화암’은 또한 사시사철 온갖 꽃이 만발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세하는 것은 포기했어도 원예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았던 유박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원예 취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망라해 《화암수록》을 썼다.
그는 사람들이 외래종이나 조정에 바치는 품종만을 귀하게 여기고, 멋대로 훌륭한 꽃과 보통의 꽃을 나란히 둔다며 당시 화훼문화의 병폐를 지적했다. 또한 당대 이미 고전으로 자리 잡은 《양화소록》이 주로 중국의 사례를 많이 참조한다는 점을 안타까워했으며, 조선에서 원예에 관심은 높아졌으나 여전히 화훼의 지위와 체계는 온전히 정립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그 나름의 기준으로 화훼의 등급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다.
그는 화훼를 다섯 종씩 아홉 등급으로 나누고, 꽃을 부르는 각종 명칭과 키우는 법, 꽃말, 열매의 생김새, 맛과 향, 보관법 등 화훼의 특성을 꼼꼼히 정리했으며, 그중 스물두 가지 꽃에 대해서는 따로 여덟 자나 네 자의 간략한 평을 달았다. 지금은 흔히 쓰이는 방식이지만 개화 시기를 월별로 정리한 것 또한 그가 최초이다. 여기에 원예를 소재로 한 유일한 연작시조 〈화암구곡〉, 〈매농곡〉 그리고 한글로 적은 〈촌구〉 등을 비롯해 꽃을 소재로 한 다양한 글을 함께 수록했으니, 《화암수록》은 화목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의 집에 기이한 화훼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비록 천금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구하였고, 바다에서 온 배가 감춰두고 있는 것을 엿보아 만 리 떨어진 데 있는 것이라도 반드시 가져왔다. 여름에는 석류, 겨울에는 매화, 봄에는 복사꽃, 가을에는 국화를 길러 네 계절 내내 꽃이 끊이지 않았다. 치자는 희고 난초는 푸르며 규화, 즉 접시꽃은 붉고 원추리는 노라니, 오색 가운데 검은색이 빠진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태곳적 둥지를 엮어서 열매를 따 먹으며 살 수는 없고 무하향(無何鄕)을 세워 그 그늘에서 잠들 수도 없지만, 여기에 낡은 집이 있으니 바로 해묵은 건물일 뿐이었다.
- 유득공, 〈금곡 백화암 상량문〉 중에서(196쪽)
2.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원예서, 마침내 제 모습을 찾다
《화암수록》에는 지은이의 개인 정보를 파악할 만한 직접적인 자료가 실려 있지 않다. 그 때문에 처음 소개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 강희안이나 송타(1567~1597)의 저술로 잘못 알려져왔다. 이 책에 실린 유박의 시조가 송타의 것으로 오해된 채 2002년 수능시험에 출제되었을 정도다. 오랫동안 오해가 바로잡히지 못한 것은 《화암수록》의 원문을 확인할 길이 없었던 데다 저자인 유박에 대한 정보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민 교수는 각종 문집을 뒤져가며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마침내 《화암수록》 원문을 확인할 수 있었고, 유박의 저작임을 확신했다. 2003년에 논문을 발표해 저자를 유박으로 바로잡고 《화암수록》의 원예문화사적 의의를 밝히긴 했지만, 번역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 마침내 온전한 모습으로 내놓게 되었다. 역자는 최초로 원문을 밝혀 실은 것은 물론이고, 저자를 찾는 과정에서 발굴한 각종 문집 속 백화암에 대한 글을 부록에 실었다. 유박은 역적 집안 출신으로, 현실의 한계를 절감하고 출세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으나 유독 꽃에 대해서만큼은 명성에 상당히 집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당대 이름 있는 문인들에게 굳이 백화암에 붙일 시문을 청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유득공·채제공·이용휴·목만중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백화암에 부치는 글을 보내왔다. 덕분에 우리는 이 글들을 통해 당대 문인들의 교유 관계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화암의 풍경 및 원예 취미의 수준을 더욱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3. 원예문화사에서 주목할 만한 기록을 만나다
유박은 화훼 중에서 매화를 최고로 꼽았다. 《화암수록》에는 오언절구 30수, 칠언절구 34수, 오언율시 20수, 칠언율시 33수, 오언배율 1수 등 모두 118수의 한시가 실려 있는데, 매화를 읊은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매설〉 등의 글을 살펴보면 그도 세속의 명예로부터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당대 사람들은 꽃 속에 묻혀 사는 그를 보며 신선이 따로 없다고 부러워했지만, 정작 그는 알아주는 이도, 이룬 것도 없이 꽃 속에서 늙어가는 자신의 삶을 연민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유박은 자신의 정열을 쏟을 수 있는 유일한 분출구로서 원예 취미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고, 《화암수록》을 쓰는 데 더더욱 열정을 바쳐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열정은 책에 실린 안습제와 주고받은 두 통의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편지는 몇몇 화훼의 품제를 정하고 평할 때, 그 기준이 합당한지에 대해 논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유박이 《화암수록》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치열히 고민했는지 보여준다. 또한 논의의 내용을 통해 당대 원예 취미의 수준도 짐작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여기에서 무궁화가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사형은 “우리나라는 단군이 나라를 열 때 무궁화가 처음 나왔으므로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컬을 때면 반드시 근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이 무궁화만이 우리나라 옛날의 봄날을 누렸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근대 시기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인식되는 배경을 이해하는 데 유일한 기록이다.
이제 백화암 주인의 〈화목품제〉를 살펴보니, 그가 자리를 정하고 순서를 배열한 것이 한나라 때 삼척이나 주나라의 구장 제도와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었다. 비록 꽃으로 하여금 제 스스로 등급을 매기게 하더라도 또한 이보다 낫지는 않을 터이니 어려운 일이라 할 만하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백화암의 주인은 인재를 선발하는 역량이 있었으나 시대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꽃을 빌려 이를 구실 삼아 펼쳐 보였다.”
- 이용휴, 〈백화암의 화목품제 뒤에 제하다〉 중에서(174~175쪽)
작가 소개
지은이 : 유박
본관은 황해도 문화(文化), 자는 화서(和瑞), 호는 백화암(百花菴)이다. 강희안(姜希顔)의 저작이나 송타(宋柁)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던 원예서 《화암수록(花菴隨錄)》과 연시조 〈화암구곡(花菴九曲)〉의 저자이다. 몰락한 소북 집안 출신으로 평생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채 황해도 배천(白川) 금곡포(金谷浦) 일대에서 살았다. 화훼 취미가 남달라 거처를 백화암이라 이름 짓고 온갖 화초를 가꿨다. 《화암수록》은 폭넓은 원예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원예 경험을 살린 조선 후기 원예문화의 주요 저작이다.
옮긴이 :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18세기 지성사에 관심을 두어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관련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살핀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의 지식경영과 발굴 자료를 정리한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 『다산 증언첩』, 『다산의 제자 교육법』을 펴냈다.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청언소품집으로는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 어록 청상』, 『성대중 처세 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체수유병집』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 정리한 『새문화사전』,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살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썼다. 그리고 『한시 미학 산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썼다. 출판문화대상, 우호인문학상, 지훈국학상, 월봉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옮긴이 : 손균익
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강사로 재직 중이다. 〈연산군 대 난언亂言 사건을 통해 본 사회 기층의 정치의식〉, 〈복수사건의 처결을 통해 본 조선 초기 지배질서의 확립〉 등의 논문을 썼다.
옮긴이 : 강진선
한양대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 재학 중이다. 〈〈관독일기〉에 나타난 이덕무의 《중용》 독서와 그 의미〉 등의 논문을 썼다.
옮긴이 : 민선홍
한양대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2019년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 재학 중이다.
옮긴이 : 최한영
한양대 국문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2019년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 재학 중이다.
목 차
서문
서설 조선 후기 원예문화와 《화암수록》
1부
화목구등품제
강인재의 화목구품을 붙이다
화암구등
화품평론
스물여덟 가지 벗의 총목록
증단백의 열 가지 벗을 붙이다
화개월령
구등 외 화목을 붙이다
2부
화암구곡·매농곡·촌구
화암만어
화암기
매설
안사형에게 답하는 편지
안사형이 애초에 보낸 편지를 여기 붙이다
죽은 셋째 딸을 보내는 제문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배율
안사형에게 부치다
부록
백화암의 화목품제 뒤에 제하다 _이용휴
백화암에 부쳐 제하다 _이용휴
우화재기 _채제공
백화암기 _이헌경
백화암기 _목만중
유 사문의 백화암에 부쳐 제하다 _정범조
겨울밤 금곡의 유 처사에게 주다 _우경모
금곡의 처사 유박의 백화암에 제하다 _우경모
금곡 백화암 상량문 _유득공
백화암부 _유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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