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이야기에서 태어났다 - 플레이백 시어터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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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조 살라스
출판사항글항아리, 발행일:2019/03/15
형태사항p.289 A5판:21
매장위치예술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67356026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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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당신의 이야기가 무대가 될 때 삶은 비밀을 드러낸다
 자기 삶의 장막을 열어 보인다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일단 용기를 내기만 하면 진귀한 경험이 다가올 것이다

 사례 1: 일레인의 경우

 일레인이라는 일흔 살의 여성은 드라이브를 하던 중 한 젊은 남자에게 즉흥적으로 함께 수영을 하자고 제안한다. 수영복이 없었던 두 사람은 맨몸으로 물에 뛰어들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뒤로 처절한 순간이 닥친다. 두 남녀가 뭍으로 나올 때 일레인은 젊은이와 달리 늙어가는 자신의 몸을 수치스러워하며 직면해야 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연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일레인: 우리 같이 수영해요.
남자: 수영복이 없는데요?
일레인: 아, 괜찮아요. 저도 없으니까.

일레인 역을 맡은 배우는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던진다. 차가운 물속에서의 수영, 물장구를 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음악 또한 그들의 즐거움과 자유분방함을 따라간다. 그 후 이어지는 클라이맥스. 젊은 남자는 수월하게 뭍으로 나오지만 일레인은 그를 따라 나올 수가 없다. 남자가 일레인을 도와 물 밖으로 끌어올려준다. 그때 서로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의 길고 긴 순간. 젊은 몸과 나이 든 몸이 서 있다. 그 순간 일레인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일렁임이 배우의 얼굴과 음악 속에 녹아든다. 극이 마무리된다.
배우들은 그녀의 경험에서 핵심적인 사건을 추려 형태를 부여하려면 이야기 감각이 필요했다. 극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배우들은 일레인의 내적 경험에 대한 외적 현현으로서 두 남녀가 마주한 순간의 지속 시간을 실제보다 훨씬 길게, 최대한으로 늘려서 보여주었다. 그러곤 장면은 그대로 마무리되었다. 일레인의 말을 통해,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맥락상의 정보를 통해 배우들은 이 이야기가 나이듦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을 우아함과 유머감각으로 직면하는 것에 관한 일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레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극화되는 것을 바라보며 맘껏 웃고, 두 손을 움켜쥐었으며, 배우들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관객들도 이야기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장면의 호탕한 웃음 속에서도 그 순간이 갖는 심연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있었다. 일레인은 시간과 변화, 젊음과 나이듦, 아이와 같은 즉흥성과 가슴 저린 한계에 대해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가 공감한 깨달음 속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사례 2: 네 아이의 엄마 레인의 경우

 레인이라는 젊은 여성이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마음에 두지 않은 채 텔러석으로 걸어나온다. 자기가 삶에서 어떤 기로에 서 있으며, 미래에 대한 여러 선택지를 탐색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컨덕터는 레인이 몇 년 후의 삶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컨덕터의 직관적인 질문에 레인이 응답해나가면서 점차 생생한 그림이 펼쳐진다. 레인은 자신이 유명세를 떨치는 성공한 공연예술가로,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공연을 막 끝낸 후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자녀가 몇 명이죠?” 컨덕터가 묻는다.
“네 명이요”, 레인은 주저 없이 답한다. 아이들 모두의 나이와 이름까지도.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요?”
 “다정해요. 장난기도 많고요.”
(…)
장면이 끝났을 때 레인은 눈물을 닦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답한다.
“아, 정말 저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저렇게 되길 바랍니다!”

레인은 플레이백 무대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다. 그럼에도 뭔가 얻을 게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워크숍의 친밀하고 따뜻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들려준 레인은 그룹 전체의 집단적 창조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했고, 이런 창조성은 배우와 관객들에게 풍부한 상상의 가능성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혼자였다면 그녀는 자기 꿈에 생명을 불어넣지도,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구체화할 시나리오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플레이백 시어터를 본 많은 사람은 이렇게 묻곤 한다. “그래서 연극이야, 치료야?” 이들은 휴지로 눈물을 훔치는 레인과 같은 사람을 보고, 고통과 상실을 털어놓는 이들을 보며, 저 멀리 있는 화려한 배우가 아니라 재능이 뛰어나지만 흔히 연극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배려 어린 태도의 공연자들을 보게 된다. 치유와 예술은 공히 플레이백이 가진 목적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례 3: 양천구 외국인 노동자 P씨의 경우

2018년 여름 끝 무렵 양천구청 교육관 1층에 1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였다.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온 노동자들. 한국에 온 지 수년이 돼 한국말을 꽤 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아 두 명의 통역사가 함께했다.
이야기와 극을 이끄는 컨덕터가 청중을 살피며 물었다. “오늘 이야기를 해주실 분 있나요?”
한 남자가 손을 든다.

“한국 생활이 힘들었나요?”
 “첫 번째 회사는 힘들었죠. 사장님이 무섭기도 하고 제때 월급을 안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경찰한테 도와달라 했고, 누군가가 중간에서 제 이야길 전해줘 더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만족해요.”

이 이야기를 유심히 들은 배우 네 명과 한 명의 악사가 공연을 시작한다.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를 두고 사장 역을 맡은 배우는 손가락질하고 때리고 언어폭력을 가한다. 주인공은 낙담하다가 사장에게 따져묻기도 하지만 실직을 할까봐 두렵고 이국땅에서 쫓겨날까봐 불안한 기색을 잘 드러낸다. 이때 악사가 온갖 악기로 불안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연주를 한다. 모두들 숨을 죽인다. 절정에 달한 순간 다행히 주인공 옆에서 손길을 내미는 배우가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마침내 회사를 옮겨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극이 마무리된다.
관객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느끼면서 극에 몰입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무겁지 않았다. 관객 전체가 같은 외국인 노동자로서 주인공의 이야기에 삶이 불어넣어지고, 그것이 섬세한 극으로 공연되자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배우들이 보인 따뜻한 연민은 미학적 품위를 보여줬다. 관객들 역시 이날 플레이백 시어터를 처음 보면서 묵언의 눈빛으로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그리고 거기엔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희망이 한 줄기 빛처럼 비쳐왔다.

이야기,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우리 삶은 태어나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자기 삶의 처음과 끝을 인식할 수 없다. 내 출생은 나 자신의 의지로 정할 수 없으며,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 무엇도 확정지을 수 없고 그 어떤 의미도 찾아낼 수 없다, 이야기가 없다면.
삶은 무작위적이고 방향성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불규칙하고 무정형한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 우리 삶에서 특정한 곳에 처음과 끝을 부여해 일정한 경험을 구분해내 이야기로 직조하는 행위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밑바닥에는 가장 중요하고도 깊은 이야기가 깔려 있다. 내 이야기가 타인에게 전달되어 공유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에 발붙이고 있다는 장소감을 얻게 된다.
1970년대 중반 조너선 폭스와 조 살라스 등이 고안해낸 플레이백 시어터는 현장에서 직접 관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즉흥으로 극화하여 상연하는 연극을 일컫는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이 전 세계로 퍼뜨린 플레이백 시어터의 역사와 원리, 형식, 철학을 망라하고 있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하고도 개인적인 이야기야말로 예술적 소재라고 본다. 수많은 사람이 경험하듯 파편화된 존재 속에서, 즉 사람과 장소의 연속성이 희박해지고 수많은 사람이 종잡을 수 없는 의미를 찾아 헤매는 현실 속에서 플레이백 시어트는 판단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플레이백 시어터에서는 단순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세밀하게 준비된 제의적 형식과 미학적 감각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의미를 끌어내고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배우들은 타인의 이야기 속 역할을 통해 새로운 존재 방식을 시도하면서 성격의 한계가 유연해지거나 혹은 자신의 성격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플레이백 시어터를 아직 겪어보지 않은, 혹은 이제 막 입문한 초심자에게 건네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입문서이기도 하다. 조 살라스는 단순히 관객으로서뿐만 아니라 텔러로, 배우로, 컨덕터로, 악사로 독자들을 플레이백 시어터의 세계에 초대한다.

플레이백 시어터를 펼치는 사람들

 플레이백 시어터 현장에는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과 그 관객들 중에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무대로 나오는 텔러, 텔러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연 전반의 진행을 이끌어가는 컨덕터, 그리고 텔러의 이야기를 구현해줄 배우들과 악사, 조명감독이 있다. 이 연극을 꼭 전문 공연장에서 할 필요는 없다. 학교 교실, 교회, 교도소 구내식당 등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다.
플레이백 시어터 배우들은 준비된 각본이나 미리 짜인 구성 없이 현장에서 텔러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적으로 연기한다.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텔러는 컨덕터의 진행에 의해 자신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의 역할을 해줄 배우를 직접 선택한다. 이 선택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배우는 자기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알 수 없다. 학대받는 어린이, 낙태 시술을 받는 여성,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 등 감정적으로 매우 힘든 역할을 맡아야 할 때도 있다.
컨덕터는 플레이백 시어터에서 공연자들의 협업을 조율하고 연출하는 지휘자이자, 관객과 텔러, 그리고 공연자들을 연결하는 전도체 역할을 한다. 행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컨덕터는 이야기가 흐름을 잘 타도록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나간다. 이외에도 음악과 조명으로 극의 감정과 분위기를 구현해내는 악사와 조명감독이 있다.
플레이백 시어터라는 장 안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텔러뿐만 아니라 공연을 하는 이들 모두가 스토리텔러가 된다. 텔러가 말하는 때로는 어설픈 설명을 듣고 이야기의 정수를 파악해 즉흥적으로 이야기 형태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연극을 선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장면으로 구현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텔러와 관객들은 치유와 감동을 받는 한편, 그 작업을 수행하는 배우들은 타인의 삶에 몰입하고 공감을 극대화함으로써 자기 삶이 축복이라고 느낀다. 이렇듯 플레이백 시어터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 혹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더 큰 이야기

 이 책은 그 자체로 조 살라스라는 텔러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서 저자는 각각의 텔러에 의해 들려지는 개별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플레이백 시어터라는 만남의 장 자체에서 더 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플레이백 시어터로 말미암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헤어지는 순간까지 일어나는 일들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레이백 시어터를 다루는 이 책 또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플레이백 시어터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이 책에 등장하는 삶 속에 매혹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에 공감하며 치유를 받을 수도 있고, 플레이백 시어터 특유의 미학적인 형식에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책을 덮은 후에는 플레이백 시어터 연극을 보러 가는 관객이 될 수도, 혹은 플레이백 배우, 컨덕터, 악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듯 이야기는 우리 삶에 의미를 만들고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리고 플레이백 시어터는 그러한 이야기의 힘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가장 친절하고 아름다운 통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 살라스
1970년대 중반 동료이자 배우자인 조너선 폭스와 함께 개인의 이야기를 즉흥으로 극화하여 상연하는 플레이백 시어터를 창안했다. 그 후 현재까지 플레이백 시어터 공연자로, 미국을 비롯한 27개국 이상에서 플레이백을 가르쳐온 교육자이자 공동체 속의 대화 및 변화를 위한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뉴욕주 허드슨밸리에 거주하고 있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작가로서 『다이애나와 춤을』을 출간했으며, 단편소설 「리츠에서 기다리며」는 2013년 미국 최고 도서상USA Best Book Award 앤솔러지(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또 다른 단편소설 「그 후」는 2013년 푸시카트 상 후보에 올랐다.
살라스는 플레이백 시어터에 관해 수많은 글을 발표하고 두 권의 책을 펴냈다. 그중 한 권이 플레이백 시어터의 역사, 원리, 형식과 철학을 망라한 『우리는 모두 이야기에서 태어났다Improvising Real Life』로 일본,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 중국, 러시아 등 8개 국어로 출간됐다. 다른 한 권은 문제를 겪는 아동들과 진행한 플레이백 시어터 및 음악치료 프로젝트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나의 노래를 부르자Do My Story, Sing My Song』이다.
허드슨 플레이백 시어터의 창립자이자 예술감독으로서 살라스는 현재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인 ‘괴롭힘은 이제 그만!No More Bullying!’과 이민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이민자 이야기Immigrant Stories’ 등에 주력하고 있다.


옮긴이 : 허혜경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사회운동, 평화운동 단체 등에서 활동했다. 2000년대 중반 연극을 통한 개인의 성장과 사회 변화를 화두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해에 합류해 플레이백 시어터 배우이자 악사, 교육자로 살아가고 있다.

목 차

서문: 다음으로 이야기해주실 분?_로베르토 구티에레스 바레아

1장 첫 시작: 우리 자신 안팎으로 더 깊이 파고들기
2장 이야기 감각: 생존하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다
3장 장면, 움직이는 조각상, 페어
4장 플레이백 배우가 되려면: 타인의 삶을 구현하기 위한 조건
5장 컨덕터의 역할: 모두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끌어가기
6장 악사가 구축하는 감정들
7장 현존, 표현 및 제의
8장 플레이백을 통해 치유한다는 것
9장 소외된 이들 그리고 공동체 속으로
10장 세계 속의 플레이백

출간 20주년에 부쳐
용어
부록
옮긴이의 글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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