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단재 신채호가 이순신 전기를 집필한 것은 1908년이었다. 놀랍게도 그보다 16년 앞선 1892년에 일본에서 최초로 이순신 전기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당시 메이지 시대 일본 해군도 이순신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래서 시바 료타로 같은 작가는 ‘이순신을 발견한 것은 메이지 일본 해군’이라는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이들이 이순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국의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그들은 세계의 해전사를 연구하면서 영국의 넬슨이나 네덜란드의 데 로이테르 같은 세계적인 해군 장수들도 이순신에 미치지 못함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하여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이순신 신화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같은 기록은 나중에 우리 작가들에 의한 이순신 전기 집필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모든 이순신 전기의 효시는 세키코세이가 저술한 《조선 이순신전》이다. 임진전쟁에 참가한 일본 수군의 전모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이순신을 조명하는 내용이다. 메이지 일본 해군 내의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문필가는 사토 데쓰타로와 오가사와라 나가나리였다. 이들 역시 이순신을 흠모하고 이순신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는 오가사와라 나가나리가 해군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제5장의 대부분은 이순신과 관계된 내용이다. 이 책은 해군 장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나중에 해군대학교 교장을 지낸사토 데쓰타로는 누구보다 이순신을 존경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 역시 자신의 이론을 집대성한 《제국국방사론》속에 이순신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있지만, 그가 이순신에 관해 가장 체계적으로 기술한 글은 1927년에 쓴 〈절세의 명장 이순신〉이다. 이들 3편의 글은 메이지에서 다이쇼 시대 일본 해군과 일본인들의 이순신관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기록이다.
이 책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는 이들 3편의 글을 묶은 것이다. 이순신 연구자, 근세 일본 연구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물론 일반 독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임진전쟁은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처절한 전쟁이었다. 그 서전緖戰은 불과 한 달 만에 한양이, 두 달 만에 평양이 일본군의 발굽 아래 짓밟히면서 시작되었다. 질풍과 같이 나아가던 일본군의 발걸음을 붙들어 세운 것은 이순신의 수군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내가 평생을 두고 경모하는 바다의 장수는 조선의 이순신이다.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잘 안다. 하지만 넬슨은 인격이나 창의적 천재성에서 도저히 이순신 장군에 필적할 수 없다.”
“후세의 누군가 이순신을 위해 붓을 쥐게 된다면 조선의 운명은 이순신 덕분에 회복될 수 있었음을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찬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의 붓 끝에서 먼저 나왔다. 일본군과 악전고투하며 싸우는 이순신을 오히려 왕은 시기하며 죽이려 했다. 그는 두 번씩이나 백의종군해야 했다. 죽어서도 온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순신의 행장과 유고를 묶은 《충무공이순신전서》가 정조 때 간행되기는 했지만, 일부 식자층과 남해 연안 백성들을 제외하고는 이순신의 이름은 점점 잊히고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을 명장으로 높게 평가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같은 일본 작가는 ‘이순신을 발견한 것은 메이지 일본 해군’이라는 말을 불쑥 내뱉었을 것이다.
이 책에 실은 《조선 이순신전》(1892)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모든 이순신 전기의 효시다. 임진전쟁에 참가한 일본 수군의 전모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이순신을 조명하는 내용이다. 이 소책자는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이순신 신화가 만들어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신채호의 《수군 제일위인 이순신》은 이 책이 출간된 지 16년 후에야 쓰였다. 《조선 이순신전》은 박은식의 《이순신전》(1915), 이윤재의 《성웅 이순신》(1931) 등 우리 저자들에 의한 이순신 전기의 집필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 정책을 취하면서 대륙 진출을 엿보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위협을 느낀 대상은 러시아였다. 이 책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의 해군력을 증강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 특히 한반도 남해안 항구의 지정학적 가치를 곁들이면서 임진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실패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럴수록 이순신은 홀로 일본 수군 전체와 맞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부각된다. 이순신을 나폴레옹에 맞서 영국을 구한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교한 최초의 문서도 이 책이다.
메이지 일본 해군 역시 이순신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 선두에 섰던 사람은 해군 내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문필가였던 사토 데쓰타로佐藤鐵太郞와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長生였다.
사토 데쓰타로는 육군 중심의 국방전략에 맞서 해군 중심의 해주육종론海主陸從論을 설파하는 데 앞장섰다. 해군대학교 교관을 지내며 일본 해군의 전략 수립에 큰 영향을 끼친 사토 데쓰타로는 이순신을 깊이 연구하고 경모하였다. 자신의 이론을 집대성한 《제국국방사론》(1908)에서 그는 이순신을 ‘실로 명성이 세상을 뒤덮을 만한 해군 장수’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1892년 처음 집필한 《국방사설》에서부터 이러한 생각을 가다듬어왔다. 그의 이순신에 대한 경모는 임진전쟁 당시 일본 수군의 작전과 패인을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었다. 사토 데쓰타로가 중장으로 진급한 이후 1927년에 집필한 〈절세의 명장 이순신〉은 이순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가장 잘 정리해 보여주는 글이다. 뿐만 아니라 메이지에서 다이쇼 시대 일본 해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편 오가사와라 나가나리는 일본 해군을 대표하는 문필가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전쟁사 편찬에 관여하였으며, 해군대학교 교관을 지냈다.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는 해군대학교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제5장의 대부분은 이순신과 관계된 내용이다. 이 책은 해군 장교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이순신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그가 1898년에 펴낸 《제국해군사론》에도 이순신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일반인을 독자로 한 이 책 역시 일본 내에 이순신을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메이지 일본 해군이 이순신을 연구한 이유 역시 자국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그들이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며 임진전쟁의 실패를 되새기는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퇴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 후 이순신에 대한 온당한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는 데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의 이순신 연구에 일정 정도 힘입었음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사토 데쓰타로
1866~1942. 육군 중심의 국방전략에 맞서 해주육종론海主陸從論을 주창한 메이지 시대 일본 해군의 대표 이데올로그이자 전쟁사 연구의 대가. 러일전쟁시 쓰시마 해전의 승리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해군대학교 교장, 귀족원 의원 역임. 《제국국방론》 《제국국방사론》 등의 저서가 있다.
지은이 : 세키코세이
세키코세이는 필명으로 판단되며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세키코세이惜香生를 필명으로 사용하고 1887년부터 1891년까지 조선에서 근무한 일본 외무성 관리 오다기리 마스노스케小田切万?之助라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오다기리 마스노스케는 상해 총영사를 지내고 《조선》이라는 책을 펴냈다.
지은이 : 오가사와라 나가나리
1867~1858. 메이지 시대 일본 해군을 대표하는 문필가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전쟁사 편찬에 참여하고, 해군대학교 교관을 지냈다. 해군대학교 강의를 책으로 엮은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와 《도고원수상전東鄕元帥詳傳》 등의 저서가 있다. 해군 중장으로 예편하였으며, 쇼와 천황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목 차
절세의 명장 이순신 - 사토 데쓰타로
이순신, 조선의 운명을 구하다
조선 이순신전 - 세키코세이
조선의 안녕은 이순신 덕분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원정 - 오가사와라 나가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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