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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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민왕기
출판사항달아실, 발행일:2019/03/30
형태사항p.143 46판:20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88710324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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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 편집장의 책소개

 사랑인 듯 사랑이 아닌 듯, 연애인 듯 연애가 아닌 듯
- 민왕기 시집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 편집 후기

1
달아실시선으로 민왕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아늑』을 2017년에 냈는데, 2년 만에 그의 두 번째 시집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를 낸다.

민왕기 시인은 전직 기자다. 그는 지금 전업 시인이지만 그러니까 백수이지만, 그가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그는 제법 오랫동안 모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와 정치부 기자 생활을 했다. 그가 기자를 때려치우고 백수가 되는 데에는 어쩌면 내가 일정 정도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그의 등을 떼민 것은 아닌지 싶어 미안할 때가 있다.

기자 때려치우고 시인이 되라고 그의 등을 떼민 데에는 나로서는 그만 한 이유가 있었다. 십여 년 전 처음 그의 시를 보았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충분히 좋은 기자이고 충분히 훌륭한 기자이지만 그보다 훨씬 좋은 시인이고 훨씬 훌륭한 시인이 될 재목이라는 것을. 결국 그는 기자를 때려치우고 전업 시인이 되었다.

그의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을 달아실에서 내게 된 데에는 그런 남모르는 까닭이 있다. 두 번의 시집을 달아실에서 내면서 민왕기 시인은 내게 빚을 졌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내가 민왕기 시인에게 빚을 진 셈이다.

2
민왕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아늑』이 민왕기 시인 특유의 감성 사전, 시로 풀어쓴 감성 사전이었다면, 이번 두 번째 시집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는 뭉뚱그려 말하자면 “새로운 연애 시집”이 되겠다.

연애인 듯 연애가 아닌 듯, 통속적인 듯 아닌 듯, 아리송하지만 연애 시집이 맞다.
만나자는 것인지 헤어지자는 것인지, 살자는 것인지 죽자는 것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연애 시집이 맞다.
당신이 좋다는 것인지 싫다는 것인지, 사랑한다는 것인지 미워한다는 것인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지만 연애 시집이 맞다.
본디 사랑이 그러하지 않던가. 사랑해서 죽겠다는 것인지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고, 너 없으면 죽겠다던 사랑(들)이 저리 명랑하게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또한 사랑이 아니던가.
동서고금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단어가 ‘사랑’이면서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새로운 단어 또한 ‘사랑’이 아니던가.

민왕기 시인의 이번 시집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는 그런 뜻에서 “연애 시집”이다.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주제인 ‘사랑과 연애’를 놀랍도록 새롭고 놀랍도록 낯설게 펼쳐보여 준다.
가령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는 시를 읽어보자. 당신의 사랑이 조금은 식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사랑이 조금은 진부해졌다고 생각한다면, 이 시가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애초의 사랑은 진즉 어디로 가고, 이제는 겨우 ‘사랑이라는 말’만 남은 것은 아닌지.

꿈마다 만나는 은밀한 여자가 있다

 어젯밤엔 틉, 이라는 이상한 열매를 주었고 오이보다 달고 참외보다는 달지 않은 외였다

 외의 움푹한 씨방 쪽을 베어 먹다가 점점 가를 씹으니 닭고기 맛이 나는 외였다

 여자는 누구인데 아름답고 틉, 이라는 외를 먹으며 웃고 있나

 뱀 한 마리 스르륵 지나가는 풀밭에 누워서

 열매 맛은 닭고기 맛, 여자가 꼰 다리 사이의 무수한 슬픔들을 추억한다

 꿈 밖에서는 착하기만 한 당신이 자고 있는데,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다

 이 방과 꿈 사이의 거리는 나와 거울 속 나 사이의 거리

 잠든 당신의 이마를 짚어주고 헛것인 거울 속은 어두워지기로 한다

 거울의 눈물샘이 어룽인다 꿈마다 만나는 여자가 있다

 포구의 방안에 파도가 친다

 추방된 자들의 몫으로 해변 하나 가지고, 기다려 본다
 검은 책을 펼친다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
―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 전문

3
그렇다고 이번 시집이 순전히, 온전히 ‘연애 시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민왕기 시인 특유의 감성 사전으로서 한층 더 두터워진 느낌도 갖게 된다. 첫 번째 시집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도 민왕기 시인은 평면적인 뜻을 지닌 숱한 단어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숨으로 생기를 얻은 단어들. 부피가 생기고 그 안에 피가 돌기 시작한 단어들. 그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일일 게다.

목련이 지는 아주 짧은 생일지라도 사랑은 사랑으로 피어났다

 거기, 내가 비파를 켜면 달 뜨는 모래톱이 바람을 켜고
 또 한 바다 너머 비파반도가 있다는 황해도 쪽으로 개밥바라기별, 적적한 뭇별들 밤을 켰다

 엉덩이를 까고 우리가 처음 사랑했을 때처럼 달은
 환한 봉우리를 켰고 계절이 다 가버리도록, 그대를 기다려 나는 찬 우물을 켰다

 물개 떼들이 야옹거리는 소리 들리는, 염소 떼가 구름염소가 되고
 나뭇가지들이 저녁에 황금가지가 되는 그곳에서 나는 기억을 흐리고 불을 켰다

 섬을 돌다가는, 이 섬에선 낮배도 타고 밤배도 탄다는 아낙들의 말에
 웃었다 산수유꽃처럼 웃던 당신을 떠올렸다

 목련이 지는 아주 짧은 생일지라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바꿀 수 있었다

 비파곶 하늘에 일곱 개의 비파가 떠오른다는 물목이 되고 싶었다

 나를 향해 무엇도 쏟아지지 않는 이 나라에도 빛은 오고
 너를 향해 무엇도 쏟아질 것 없는 세상에도 별은 있고

 나무가 버린 목련의 한 잎, 두 잎처럼
 무심한 이 세계를 둘만의 바다로 삼고, 비밀의 비밀이 되고 싶었다
― 「비밀의 비밀처럼」 전문

 당신의 연애가 좀 더 뜨겁길 바란다면, 다시 새롭길 바란다면 일독을 권한다. 무심한 이 세계에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싶다면, 둘만의 부피를 지닌 단어를 만들고 싶다면 또한 일독을 권한다.

■ 시집 해설 중에서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삶은 다른 곳에 있다.” 이것은 비단 초현실주의 시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도 내 삶의 본질은 이곳이 아닌 저 너머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시를 쓰는 작법도 읽는 독법도 길은 여러 개나 도달하는 곳은 같을지 모른다. 민왕기의 시를 읽으면 그가 낭만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걸 알겠다. 그는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말과 소리의 뉘앙스, 그리고 고적한 장소를 찾아 떠돌고 스스로 유폐되려 한다. 말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고 그 말을 통해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중략)

아련한 것, 저 어둠 너머의 세계, 혹은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에 온전히 숨어 있을 거 같은 아름다움을 찾는 게 낭만주의라는 걸 게다. 첫 시집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도 두드러진 경향은 말의 느낌과 감정을 통하여 도달하는 낭만 세계다. 그 세계는 아스라하고 둥글고 스산하며 ‘닿을 곳 없이 잃을 것 없는’ 세계이며 ‘어깨와 무릎이 함께 희미해지고 미련도 없고 끝도 없는’ 곳을 기웃거리며 소망한다. 그의 시는 금방 사라질 것 같거나 있었어도 있을 거 같지 않은 분위기를 잘 만든다. 「호텔 캘리포니아 게으른 태양 아래」나 「듬돌이라는 국숫집」, 「해안 이발소에 숨어서」, 「남해 해변 심야 백반집」처럼 거기에는 그가 유폐되고 싶은 장소가 한 몫을 한다.

 (중략)

해변은 빠져 죽기 힘들 만큼 얕아서 밤에 죽으러 왔던 사람들이
 결국엔 물을 걷다 지쳐, 백사장으로 걸어 나와 하룻밤씩 자고 간대

 다음날은 신비롭겠지, 바닥까지 보이는 물속에
 물고기가 놀고
 바다 너머에는 이 세상이 아닐 것 같은 비양도가 보일 테니까

 구름은 이상하지, 죽으러 왔는데 더 있고 싶을 만큼 희어서

 아, 눈부시다 그 말이 나오면 눈물이 터져서
 못된 것 다 털어낼 수 있대
― 「듬돌이라는 국숫집」 부분

 세상에 졌다고 생각하거나 고통이 지나쳐 어깨가 빠지고 다른 생각이라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막막함의 나날일 때, 죽기 전 먹으면 도저히 죽을 수 없는 음식도 있고, 풍경도 있을 거 같아서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듬돌’을 오래 입속에 굴려보면 믿음직한 어깨 혹은 거대한 바위 같은 침묵이 떠오른다. ‘듬돌’이라는 말이 있고 그 말에는 더 이상 살 것 같지 않아서 아니 살고 싶지 않아서 살게 되는 역설의 파라다이스가 있다. 그곳이 협재 해변이라는 현실이든, 비양도가 보이는 해변이든, 말의 결에 기댄 이상적인 해변이든, 그 “해변은 빠져 죽기 힘들 만큼 얕아서 밤에 죽으러 왔던 사람들이 / 결국엔 물을 걷다 지쳐, 백사장으로 나와 하룻밤씩 자고 간”다는 곳. 다음 날은 늘 신비로울 것만 같다.
그러면 당신은 모란이 되고 그런 모란에 기댄 햇살이나 저녁이나, 끄적거리는 글은 아무리 사소하고 무료할지라도 아름답다. 아니 사소하고 무료하기에 더 아름답다. 사랑을 나누고 난 후에 찾아오는 단잠 같다고 할까. 비로소 내 안에 짐승이 잠자고 세상을 선한 눈으로 맞설 수 있는 기운이 날 것 같다.

 (중략)

시집에 돈을 숨기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비밀이 되겠지

 거기 무엇이 있을 거라고 다들 믿지 못할 테니까

 가장 좋았던 시의 자리에 돈을 숨기고 며칠을 자면
 만 원짜리 한 장에 사람이 스며 시를 품게 될 것

 슬픔의 문장을 품고 있던 지폐는 조금 더 낡아가고
 슬픈 사람 아니라면 손댈 수 없는 돈이 되어갈 테지

 고통이라는 까마득한 문장이 스민 시집은 또 어떤지

 슬픔도 꺼내 쓰기 어려운 문장이 새겨져 있을 테니
 고통에 무너지지 않을, 먼 훗날만이 꺼낼 수 있는 돈이 될 테지

 아름다운 나라의 지폐에는 시가 새겨져 있다지만
 여긴 아직 멀어, 금고는 비싸고 그래도 시집은 팔천 원, 거기 돈을 묻어두면 안전하니까

 비상금도 되고 통행료도 되는 돈을 숨기고, 훌쩍 그늘의 상점으로 건너갈 수 있지
― 「그늘의 상점」 전문

 이 시집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함민복 시인의 시처럼 시집 가격에 너무 헐하다고 타박하다가도 국밥 한 그릇 값에 이르면 또 울컥해지는 시집에 배인 쓸쓸함이나 울음 같은 걸로 그늘이나 한 평 살 수 있으려나. (끝)

― 한승태 시인의 해설 「공중에 떠돌던 말에 」 중에서

■ 달아실출판사는…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

 

작가 소개

민왕기
1978년 춘천에서 태어났다. 단국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2015년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늑』(2017년),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2019년)가 있다. 현재 부산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목 차

농협 김용석 33000
시인의 말

1부
 바닷가에 빗물 하나 내려앉아
 바닷가 모래언덕
 공중에 떠돌던 말
 모란 위 옥탑방
 호텔 캘리포니아 게으른 태양 아래
 여름엔 완당을 풀어 마신다
 해안 이발소에 숨어서
 듬돌이라는 국숫집
 공터를 가진다는 것
 저녁마다 무사가 되어
 한 사람의 일
 자두가 자두일 때
 흰 무가 있는 저녁
 남해 해변 심야 백반집
 골목을 나오며
 그늘의 상점
 물고기의 하느님이 되어

2부
 너의 조금
 이불이 익어간다
 고해하기 좋다
 해변과 사슬과 머리
 뜻밖에도 나비는 날아와서
 신경정신과 앞에 사랑하는 둘이 있다
 어린 사람에게
 측백의 저녁
 뒤척이는 당신의 등을 쓸며
 다시 구름이 어린다
 낙원이 쏟아진다
 골똘한 안경
 슬픔이라는 빌미
 눈동자의 안부
 밤바다 건너 무량하다는 말
 회고적 가을
 난투극은 아름다워
 골몰과 골몰이 불행히도
 악의 조금

3부
 부두에서 보낸 한 철
 비밀의 비밀처럼
 왜 밤이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
 아가미
 나는 지금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다
 야비는 미
 폐가의 모스부호들
 결국, 그때 네가 거기 있었고
 나는 남방의 술집들을 다 돌아다녔다

해설_한승태
 공중에 떠돌던 말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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