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계엄군 총 ‘씩스틴’은 왜 광장에 남았을까?
광장에서 길어 올린 평화와 연대,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
작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단순한 대립 구도를 벗어나 개인의 행동을 결정짓는 내면 변화와 세세한 결들을 깊이 있게 그려냄으로써, 피해자인 시민들의 저항과 아픔을 더욱 호소력 있게 드러내는 한편, 가해자의 고백과 증언 역시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아야 하며 그것이 화해와 연대로 나아가는 길임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바로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인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리는 ‘평화와 상생’의 길이기도 합니다. 가해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폭력은 멈추며, 그곳에서 화해와 평화가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나무 도장》의 작가 권윤덕이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낸 광주 5·18 그림책
올해로 서른아홉 번째를 앞두고 있는 ‘광주의 오월’. 마흔 번째가 다 되어 가도록 아직 광주의 오월은 아프고 시립니다.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헬기를 이용한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과 계엄군의 성폭력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제정된 ‘5·18 진상규명특별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고, 그 와중에 이미 법적·역사적으로 평가가 끝난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북한군이 광주 시민들을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라고 왜곡하거나 ‘5·18 유공자는 괴물’이라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게 현실입니다. 진상 규명은커녕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몰이해와 왜곡이 난무하는 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민주 영령과 유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는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테지요. ‘광주의 오월’을 끊임없이 얘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평화를품은책에서는 그동안 ‘오월의 상처’를 함께 나누고 다시 평화와 인권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광주 5·18 그림책(최유정의 《나는 아직도 아픕니다》, 홍성담의 《운동화 비행기》)을 꾸준히 펴내 왔습니다. 그럼에도 ‘광주의 오월’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더욱 진전된 시각으로 새롭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권윤덕 작가의 《씩스틴》은 신군부 세력의 민주화운동 탄압과 유혈 진압에 맞서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한 ‘5·18 민주화운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해자의 입장이었던 계엄군 총 ‘씩스틴’이 시민들의 힘을 느끼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신념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저항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더욱 설득력 있게 그렸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와 아픔을 딛고, 밝고 화사하고 희망이 넘치는 그림책으로 재탄생된 것이지요.
작가는 씩스틴이 마음의 갈등을 느끼면서 시민과 함께하기로 결정을 내리는 과정까지 내면의 변화를 시적인 글과 풍부한 상징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더 깊이 있게 해석하고 더 새로이 상상하도록 이끕니다. 면지 무늬부터 총의 무늬, 스피커에서 퍼져 나가는 색동빛 원과 차도 위의 노란 중앙선, 광장과 하얀 씨앗망울이 상징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읽어 나가다 보면, 그림책이 주는 무한한 상상력과 또 다른 감동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씩스틴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쏘았다
책 속의 주인공인 ‘씩스틴’은 세상에 갓 나온 M16 소총입니다. 특수 부대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킨 ‘빨갱이 폭도’를 소탕하라는 임무를 완수하러 광장으로 가지요. 시위자는 간첩, 빨갱이, 폭도들이고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불순 세력이 있다고 교육받은 씩스틴의 눈에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사회를 혼란케 하는 ‘빨갱이 폭도’로 보입니다. 강경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에 따라 씩스틴은 골목 끝까지 쫓아가 폭도들을 해치웁니다. 적과의 용감한 총싸움을 기대했던 씩스틴에게는 맨손의 폭도를 해치우는 것이 시시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토록 가차없이 작전을 수행했는데도 폭동이 사그라들기는커녕 더 많은 폭도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옵니다. 최루탄을 마구 퍼붓고 장갑차로 위협해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뭉쳤지요.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위대가 계엄군을 에워싸자 씩스틴은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총알이 지급되고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향해 총을 발사하지요. 잠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서서히 아스팔트 바닥 위에 고꾸라져 있는 할아버지 모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곧이어 어느 학생의 책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필통, 으스러진 검은 안경, 널브러진 베이지색 구두 한 짝 들이 보입니다. 씩스틴은 자신이 처음으로 쏜 대상이 ‘사람’이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합니다.
씩스틴의 저항, 발포 명령을 거부하다
그런데 폭동이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여긴 순간, 몇 사람이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광장으로 튀어나옵니다. 문방구 아저씨, 가구 공장, 청년, 교련복을 입은 학생이 쓰러집니다. 몇 사람이 달려나와 쓰러진 사람을 데려가고, 또다시 몇 사람이 광장으로 달려나옵니다. 발포와 다시 달려나오는 상황이 거듭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씩스틴은 명령에 따라 그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도 사람들이 제발 다시 달려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음이 점점 흔들리면서 자신이 겨누고 있는 사람들 얼굴도 마구 흔들립니다. 급기야는 그들이 자신의 총열 속으로 빨려 들어와 내 딸을, 트럭에 실려 간 내 친구들을, 장사 나온 우리 엄마를, 회사 간 우리 신랑을 못 봤냐고 차갑게 묻는 환청까지 들려옵니다. 곧이어 씩스틴의 눈앞에 크림빵을 손에 든 어린 여자아이와 교련복을 입은 채 끌려간 학생들, 시장에서 채소 팔던 푸근한 아주머니, 갓 결혼한 새색시와 새신랑의 행복했던 일상이 떠오릅니다. 그제야 씩스틴은 자신이 적으로 여기고 무차별적으로 발사한 사람들이 ‘빨갱이 폭도’가 아니라 실은 소중한 일상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 바로 ‘시민’이었다는 사실을 뚜렷이 깨닫게 됩니다. 그 진실을 깨닫는 순간, 씩스틴은 이제 더 이상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쏠 수가 없어 총알을 허공으로 날려 버립니다. 발포 명령을 거부한 것이지요.
광장에서 피어오른 민주주의, 하얀 씨앗망울
잠시 후, 계엄군 총에 맞아 쓰러진 학생의 핏물 위에서 작고 하얀 망울이 하나둘 피어오릅니다. 무기처럼 딱딱하지 않고 솜털처럼 부드러운 하얀 씨앗망울 하나가 가까이 날아와 씩스틴의 총열 안으로 슬며시 들어옵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집단 발포에 일부 시민들이 스스로 무장을 하고 거센 저항을 이어가자, 계엄군은 도심 외곽으로 퇴각하기에 이릅니다. 씩스틴은 갈등을 느끼며 머뭇거립니다. “계엄군이 광장으로 다시 쳐들어올 거야. 헬기와 탱크까지 몰고 밀려올 거야.” 씩스틴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읽은 씨앗망울이 말합니다. “그래도 광장에는 시민들이 점점 많아질 거야. 그것이 우리의 무기야.” 결국 씩스틴은 씨앗망울과 함께 광장에 남기로 결심합니다.
평화와 연대,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
계엄군이 물러간 뒤 며칠 동안 광장엔 그 어느 때보다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계엄군과 격렬하게 맞서 싸운 현장을 정리하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돌보고, 피를 흘린 사람들에게 헌혈을 하고, 아주머니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 주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음료수를 내오느라 바쁘고, 여공들은 시신을 정성껏 닦아 주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서로 아낌없이 나누었지요. 민주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시민 자치제가 실현된 것입니다. 씩스틴은 그런 사람들 속에서 작은 씨앗망울들이 눈부시게 광장 가득 피어오르는 모습을 봅니다.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계엄군은 나를 지키고, 나는 계엄군을 지킨다.’고 굳게 믿었던 씩스틴은 이제 ‘시민이 나를 지키고, 나는 시민을 지킨다.’는 확신을 얻기에 이릅니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본래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씩스틴은 알고 있습니다. 결국엔 자신도 씨앗망울 속에서 잠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다
작가 권윤덕은 몇 년 전 광화문광장에서 넉 달 넘게 매주 열린 촛불 집회를 보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촛불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이 평화적인 집회와 대비시켜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된 광주 시민들의 저항과 5·18의 정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지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와 군인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한 폭력을 휘둘렀을까? 누군가 민주적인 절차 없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폭력을 휘두른다면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선한 의지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작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단순한 대립 구도를 벗어나 개인의 행동을 결정짓는 내면 변화와 세세한 결들을 깊이 있게 그려냄으로써, 피해자인 시민들의 저항과 아픔을 더욱 호소력 있게 드러내는 한편, 가해자의 고백과 증언 역시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아야 하며 그것이 화해와 연대로 나아가는 길임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바로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인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리는 ‘평화와 상생’의 길이기도 합니다. 가해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폭력은 멈추며, 그곳에서 화해와 평화가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은유와 상징으로 더 확장된 민주주의 정신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꽃할머니》, 제주4·3을 그린 《나무 도장》에 이은 이 그림책은 현대사의 비극, 국가 폭력을 다룬 3부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의 두 권이 국가 폭력의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와 제주4·3의 아픔을 간직한 소녀의 내력을 깊이 있고 감동적인 서사적 이야기로 풀어 나갔다면, 《씩스틴》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타임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가해자의 입장과 심리를 시적이고 간결한 글로 담백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런 반면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은 대작에 가까울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구석구석 은유와 상징이 가득 들어 있어 그림 ‘읽는’ 맛을 더해 주지요.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면지 무늬부터 씩스틴의 내면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총의 무늬, 씩스틴의 눈에 비친 사람들 모습, 스피커에서 퍼져 나가는 색동빛 원과 선의 청각화, 도로 위 노란 중앙선의 자유로운 흐름, 하얀 씨앗망울과 광장의 은유 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읽어 나가다 보면, 그 처절하고 치열했던 5·18 광장에서 피어났던 숭고한 민주주의 정신과 연대,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소중한 가치가 ‘하얀 씨앗망울’처럼 우리 사회 가득히 눈부시도록 피어올라, 진정한 평화의 길로 가는 징검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 소개
1960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나 서울여자대학교 식품과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미술을 통해 사회참여 운동을 해 오다가 1995년 첫 그림책 《만희네 집》을 출간하면서 그림책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1998년부터 산수화와 공필화, 불화를 공부했으며,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그림책에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품으로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만희네 글자벌레》, 《시리동동 거미동동》,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일과 도구》, 《꽃 할머니》, 《피카이아》 들이 있습니다. 2010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과 CJ그림책상, 2013년 일본군 ‘위안부’ 유공 여성가족부장관상, 2014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청강문화상’, 2018년 《나무 도장》으로 ‘제1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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