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있어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불교이다.
불교는 세계의 주요 종교 가운데 하나이지만, 종교성을 초월하여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현대 인류와 첨단문명의 폐해로 병들어 가고 있는 사회를 구제할 사상으로 주목받은 지 오래다. 최근에는 명상으로 대표되는 불교 수행의 이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중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미네소타주립대에서 불교철학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도 많은 수 수업 시작 전 행해지는 짧은 명상 시간을 그 어느 순간보다 인상 깊어 하는 듯하다.
학생들이 매시간 수업 시작할 때 나의 지도로 연습해 온 5분 동안의 입정(入定)을 정말 좋아한다는 점이 언제나 나를 반갑고 놀라게 한다. 입정이 너무 좋아 집에서도 매일 연습하며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만들었다는 학생도 여럿이다. - 276쪽
그러나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불교 수행의 실천적인 면뿐만 아니라 불교철학을 이해하려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지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적 개념들은 현대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에 난해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인지 불교를 공부함에 있어 ‘어렵다’는 불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철학 좀 한다는 사람도 난해한 붓다의 철학
불교철학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는 초심자뿐만이 아니다. 불교의 열렬한 신도들에게도, 철학 좀 한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도 불교철학에 관한 해결되지 않은 질문은 따르게 마련. 단박에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한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난관’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도래하고 만다. 더욱이 매번 그렇게 부딪히는 것들이 불교의 핵심 교리라니 더욱 힘이 빠진다.
· 깨달아 열반에 들어 해탈하지 못하면 생사를 반복할 것이다. 그럼 윤회는 과거 언제 무엇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 붓다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를 설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수행자가 어떻게 열반에 들 수 있는가?
· 깨달음엔 그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 무엇을 알고, 무엇을 깨닫는단 말인가?
· 해탈이 곧 육도윤회의 굴레를 끊는 것이라면, 깨달은 자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 깨달음에 대한 집착도 집착이긴 마찬가지! 깨달음은 가능한 일인가?
‘무아’, ‘윤회(輪廻)’, ‘연기(緣起)’ 등의 기본 교리부터 불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지인 ‘깨달음’, ‘열반(涅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실 이들의 사전적 의미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들 교리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파고 들수록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아마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지난 몇 십 년간 견지해 온 어떤 ‘굳건한 관념’과 부딪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교철학 강의의 학생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동안 개개인에게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들, 예를 들어 ‘나’라고 부를 수 있는 불변의 존재(영혼)가 있다는 믿음, 모든 현상에는 꼭 알려진 시작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우리의 삶은 정해진 운명대로 흐른다는 관념 같은 것은 붓다의 철학과 충돌하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러한 의문들이 강의를 거듭할수록 촘촘하게 제기되는 미국 대학생들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가장 기초적인 것을 가장 보편적인 개념으로 따져 읽기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의 저자 홍창성 교수는 우리 불교계에서 꽤 유명한 인사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브라운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특히 지난 2015년에 시작되어 국내 불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깨달음 논쟁’ 당시 그 누구보다 많은 분량의 글(8편)을 기고하며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처럼 불교계에서 주목받는 저자이지만, 작은 원력으로 개설한 먼 미국 땅에서의 불교철학 강의는 여의치 않았을 것 같다. 저자는 강의 첫 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수업에 참가한 사람 가운데 백인이 아닌 사람은 교수인 나밖에 없었다.’
짐작컨대 이 말은 불교의 ‘불’ 자도 모르는 학생들로 가득한 강의실을 바라보며 느끼는 묘한 기분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결국 저자는 ‘아무런 배경지식을 전제하지 않고, 기초적인 교리로부터 어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강의를 진행해야 했다.
“우리는 최소한 평생 같은 이름을 쓰지 않는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름을 바꾸곤 한다.”
“같은 생각,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지 않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치적?종교적 신념은 변하고, 애인들도 변심할 수 있다.”
“생긴 모습은?”
“굳이 성형수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며 외모가 변한다. 주로 덜 아름다워지는 쪽으로.”
“그럼 DNA는?”
“DNA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부가 변한다. 화학 물질 또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변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한편 DNA를 구성하는 입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입자들로 교체된다. 사람 몸의 모든 세포는 각각의 세포 주기에 따라 죽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가지고 있는 어휘의 수도 변하고, 정서도 변하며, 의지나 감각 능력 등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인지적 기능이 변한다.” - 32쪽
이 책의 강의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위의 ‘무아’에 관련된 질문과 답의 예시처럼 불교철학을 논리적으로 ‘따져 가며’ 바라본다는 점이다. 본래 합리적인 걸 추구하는 미국인들답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이 앉아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다. 더욱이 어려서부터 서양철학의 사고방식을 교육받고, 그로써 평생을 살아온 이들 아니던가. 물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경향은 미국의 경우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게다가 서구적 사고방식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 책에 담긴 미국 대학의 강의 내용이 국내 독자들에게도 유효한 까닭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뛰어넘는 공통된 질문,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본 불교철학
불교경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빨리어 경장에는 『밀린다팡하』, 즉 『밀린다왕문경』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에도 『나선비구경』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 이 경전은 인도 승려 나가세나 존자와 그리스인인 밀린다왕 사이의 불법 토론이 그 주된 내용이다.
서로 다른 철학적 관점을 가진 동양인과 서양인 간의 불법 토론은 21세기에 이루어지고 있는 미네소타주립대 불교철학 강의의 풍경과 닮았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강의에서 제기되어 저자를 즐겁게도, 때론 난감하게도 만들었던 학생들의 질문들이 과거 나가세나 존자에게 제기된 질문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학생의 질문]
불교는 윤회를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윤회를 주제로 한 영화도 몇 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윤회가 가능합니까? 영혼 대신 윤회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 49쪽
[밀린다왕의 질문]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윤회가 가능하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54~55쪽
시공을 뛰어넘어 제기된 공통된 질문들은 비록 미국의 학생들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불교를 접해 온 우리이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잘 이해하지 못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그 날카로운 질문을 만날 때마다 ‘찔끔’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찔끔할 태세다.
저자는 위 질문의 답으로 나가세나 존자의 그 유명한 촛불의 비유와 같은 불교적 맥락을 제시하고, 예로 들며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과거 붓다가, 그리고 나가세나 존자가 답했던 고전적인 맥락만으로는 현대의 청중을 완벽하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강의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은 불교철학의 주요 내용을 강의함에 있어 서양철학의 관점을 도입한다는 점이다. 사실 저자의 전공 분야는 서양철학이다. 이는 불교철학을 강의하고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데 있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서양철학의 걸출한 인물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버트런드 러셀 등의 이론(시각)과 붓다의 그것을 비교?분석하는 대목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영국 공리주의 철학의 기본 원리에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불자들의 삶을 대입하기도 하고, ‘공(空)’의 번역어인 ‘emptiness’가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 ‘공’을 하나의 실체로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과 함께 바라보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근기’에 알맞은, 어쩌면 ‘방편’이 될 수 있는 개념을 통해 붓다의 철학을 더욱 선명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미국의 대학생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
이 책에서 저자는 그동안의 강의에서 학생들이 제기한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을 적극적으로 인용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첨예한 토론과 논증을 비롯해 불교계에서도 아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철학적 난제에 대한 제언 등을 덧붙여 이 철학에세이를 완성한다.
이 책은 어쩌면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독자들에게 적합한 책일지 모른다. 특히 동양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불교 공부를 해 오며 어떤 난제에 도달한 이들에게 더욱 좋다. 하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미국의 대학생들도 그랬듯이 초심자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더욱이 때론 위트 있고, 때론 진지한 저자의 문장은 물리지 않는다.
불교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린 마음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네들은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에 들어와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워 좀 달리 생각할 기회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한 학기 동안 불교를 통해 새로운 인생관과 새로운 세계관을 한번 마음껏 경험해 보기 바란다.” - 33쪽
우리가 가진 어떤 고정관념은 세상을 편협하게 보고 판단하게 함으로써 제한된 삶을 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형이상학, 심리철학은 물론 불교철학 분야의 연구를 활발히 이어오고 있는 저자의 ‘불교철학 강의’는 우리의 오래된 관념과 오해를 뛰어 넘어 현실을 좀 더 넓고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불교를 알아갈수록 자신의 철학적 신념과 부딪혀 지친 독자라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라.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난제들의 힌트를 발견하곤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서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oorhead)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형이상학과 심리철학, 불교철학 분야의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다.
저자는 지난 2015년에 시작되어 국내 불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깨달음 논쟁’ 당시 누구보다 많은 분량(8편)의 글을 기고하며 논쟁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후 월간 『불광』, 『불교문화』를 비롯한 매체에 불교철학 관련 글을 연재하였으며, SNS에서 ‘Yumaa Hill’이라는 필명으로 국내 독자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불광출판사)를 부인이자 동료 교수인 유선경 교수와 공역하였고, 함께 저술한 『생명현상과 불교』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Buddhism for Thinkers(사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를 집필 중이기도 한 저자는 마음과 물질세계의 관계를 주제로 한 전공 분야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 오고 있으며, 불교의 연기緣起의 개념으로 동서양 형이상학을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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