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내가 쓸모없다고?
난 쓸모가 많단 말이야!”
커다란 구멍이 났지만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빨간 보자기
때로는 망가지고 고장 나서 버리려던 물건이 유용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다 해져서 입을 수 없는 옷이 멋진 가방을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하고, 음료수를 마시고 남은 병은 꽃을 담은 화분이 되어 거실을 환하게 해 주기도 해요.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제 몫을 해 나가지요.
책고래마을 시리즈 서른두 번째 그림책 《빨간 보자기》 속 보자기도 구멍이 나고 해져 쓰레기통에 버려질 처지였어요. 노아는 보자기를 가리키며 “넌 더 이상 필요 없어!”라고 소리쳤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보자기가 훨훨 날아가더니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게 아니겠어요? 사나운 개에게 쫓기던 노아에게는 신비한 망토가 되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붕 위로 달아날 수 있게 해 주고, 고물상 할아버지의 헐렁한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허리띠가 되어 주었어요. 자동차 밑에서 곤히 자고 있는 고양이에게는 포근한 이불이 되어 주었고요. 보자기가 하는 일을 지켜보던 노아는 큰 소리로 외쳤어요. “빨간 보자기야! 넌 아주아주 쓸모가 많아!”라고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어요. 또 모든 것이 처음처럼 새것일 수도 없지요. 쓰다 보면 닳기도 하고, 고장이 나기도 해요. 겉으로 보기엔 쌩쌩해 보여도 가만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 모자라기도 하고, 흠집이 있기도 해요. 그렇다고 하찮게 대해서는 안 되지요. ‘빨간 보자기’처럼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그렇지요.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어요. 한참 살피고 가까이 다가서야만 비로소 보일 때가 많지요. 그 사람이 어떤 재주를 지녔는지, 혹은 어떤 자리가 알맞은지 말이에요. 섣불리 재고 가늠하기보다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아야 하지요. 특히 한창 자라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빨간 보자기》는 우리가 자칫 지나치기 쉬운 ‘쓸모’,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쓸모’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지요. 아이와 함께 가슴 한편이 푸근해지는 ‘빨간 보자기’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노아에게는 빨간 망토로,
고물상 할아버지에게는 빨간 허리띠로……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든 장난감이자,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주방에 걸린 갖가지 조리 도구부터 방에 있는 물건들까지. 어느 때는 말벗이 되고, 어느 때는 나에게 특별한 힘을 주기도 하지요. 《빨간 보자기》에서 노아에게는 보자기가 그런 물건이었을지도 몰라요. 실컷 가지고 놀다 보니 그만 커다란 구멍이 났겠지요. 속이 무척 상했을 거예요. 당장 내다 버리고 싶을 만큼이요.
“너를 버릴 거야. 구멍 난 보자기는 쓸모가 없거든.”
보자기를 쓰레기통에 휙 던지는 노아. 그런데 빨간 보자기가 껑충 뛰어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자기는 쓸모가 많다면서요. 노아는 고개를 저으며 보자기에게 재차 “넌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라고 했지요. 둘이 실랑이를 하는데 동네에서 가장 사나운 개가 노아에게 달려들었어요. 깜짝 놀라서 달아나는 노아에게 빨간 보자기가 훨훨 날아가 망토가 되어 주었어요. 노아는 망토를 펄럭이며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지붕 위로 사뿐 날아올랐지요.
멀리 고물상 할아버지가 종이를 가득 싣고 끙끙 지나가고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헐렁한 바지가 엉덩이까지 내려와 있었지요. 빨간 보자기는 훨훨 날아가 단단한 허리띠가 되어 주었어요. 고물상 할아버지는 멋쟁이 신사가 되었답니다.
빨간 보자기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날아갔어요. 자동차 밑에 들어가 잠이 든 고양이에게는 포근한 이불이 되어 주었고, 거센 바람이 불어 뒤뚱뒤뚱 부러질 듯 흔들리는 모과나무에게 날아가 전봇대에 꽁꽁 붙들어 매었지요.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지붕 위에 있었던 노아는 빨간 보자기가 한 일을 모두 보았어요. 그리고 마음을 다해 큰 소리로 외쳤지요.
“빨간 보자기야! 정말정말 미안해. 넌 아주아주 쓸모가 많아.”
조금 모자라고 흠이 있다고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김용삼 작가는 동시를 짓듯 정감 어린 동네의 풍경을 따뜻한 글로 표현했어요. 세상 구석구석 낮은 곳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 씀이 이야기 곳곳에서 전해지지요. 여기에 반성희 작가의 재치 있고 세련된 그림이 더해져 읽는 내내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됩니다. 요즘은 사라진 골목 풍경을 그리기 위해 반성희 작가는 이곳저곳 다니며 배경이 될 동네를 찾았다고 해요. 딱 요만한 아들을 키우며 보자기로 슈퍼맨 놀이도 하면서 신나게 그림을 그렸지요. 김용삼 작가의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면서요.
노아는 단지 구멍이 났다는 이유로 보자기가 쓸모없다고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면 우리도 노아처럼 행동할 때가 많아요. 조금 닳거나 부서졌다고 해서 쓰레기통에 던지고,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지요. 다른 쓰임새가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말이에요. 그런가 하면 비슷비슷한 물건을 여럿 가지고 있다가 싫증이 나면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쉽게 버리지요.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몰라요.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둘러보며 애정과 관심을 갖기는 어렵지요. 무엇이든 ‘빨리, 빨리’ 해야 하는 요즘, 멈추어 서서 천천히 돌아볼 여유도 없어요. 물건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점점 가벼워지고 쉬워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대상을 깊이 살피고 헤아리는 태도는 여전히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합니다.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 주고, 나아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지요. 특히 몸과 마음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꼭 익혀야 할 지혜이지요.
《빨간 보자기》 속에 담긴 이야기는 길지 않지만,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해서 말이지요. 또, 아이들이 어떤 ‘눈’,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게 되지요.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용삼
남녘 시골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자주 다른 곳에서 살지만 머문 자리를 잊지 않습니다. 가장 잘하는 일은 뒷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죠. 장난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사랑합니다. 사춘기 즈음 시를 쓰기 시작했고 사춘기 끝무렵 그림을 그렸습니다. 종종 책을 펴내거나 어쩌다 그림 전시회를 엽니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아빠가 철들었어요》, 《발가락 양말 가족》이 있고, 그림책 《책가방을 멘 예똘이》, 《바보 삼이》가 있습니다. 아저씨로 살고 있지만 장래 희망은 소년입니다. 계획은 순조롭습니다.
그린이 : 반성희
계원예대에서 멀티미디어디자인을 공부했으며, 졸업 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습니다. 그림책과 단행본 등 다양한 매체에 그림 작업을 해 왔습니다. 그린 책으로 《마해송》, 《도련님》, 《난 뭐든지 금방 싫증 나》, 《더더 더순이와 덜덜 덜식이》, 《별 헤는 아이, 윤동주》, 《동전 구멍》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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