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아름다운 민화풍 그림과
따뜻한 글로 빚어낸 우리 책(冊) 이야기”
순이와 연이,
두 아이의 마음을 이어 준 책
‘책’이란 무엇일까요? 글이나 그림을 종이에 새겨 엮은 것? 누군가의 말, 혹은 생각을 정리해 기록한 것?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참 어렵습니다. 아마 책의 형태와 종류도 제각각이고, 책에 담긴 내용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일 거예요. 먼 옛날 책이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책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고 있답니다.
책고래마을 서른 번째 그림책 《책》은 조선 시대, 책을 통해 가까워지게 된 두 아이 이야기예요. 연이와 순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지요. 양반집 아이인 연이네 집에는 책이 아주 많아요. 말동무가 되어 주려고 순이가 찾아왔는데도, 연이는 아는 채도 않고 책 속에 파묻혀 있어요. 평민인 순이는 방에 한가득 쌓여 있는 책이 신기하기만 했어요. 연이가 책을 보는 동안 순이도 그 옆에 앉아 책을 읽었지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두 아이는 책에 푹 빠졌어요. 그러던 하루는 연이가 종이를 잔뜩 펼쳐 놓고 무언가를 적었어요.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순이는 연이가 지은 글을 읽고 또 읽었어요.
책을 나누어 읽고, 이야기를 지으며 연이와 순이는 차츰 가까워져요. 신분도 다르고 살아가는 형편도 다르지만, 책은 두 아이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줍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책이 흔치 않았어요. 양반이나 부자 들이나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러던 것이 영·정조 대에 이르러 평민들도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기 시작했지요. 양반이었던 연이는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겠지만, 평민이었던 순이에게는 책이라는 물건이 낯설기만 했을 거예요. 그러니 책 속에서 만난 세상은 더없이 놀랍고 재미있었겠지요. 연이 곁에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 즐거워지고, 그렇게 둘은 마음이 통한 거예요.
오늘날 책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아진 탓일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책에는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자라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어요. 연이와 순이, 두 아이가 만들어 가는 가슴 푸근한 《책》 이야기로, 책에 대해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신분이 다른 두 아이의 만남, 그리고 책
무언가에 푹 빠져 있으면 다른 것은 주의를 끌지 못해요. 누가 불러도 들리지 않고, 눈앞으로 뭐가 왔다 갔다 해도 보이지 않지요. 온몸과 마음을 한곳에 오롯이 집중하게 됩니다. 《책》 속의 연이는 ‘책’에 빠진 아이였어요. 온종일 책만 읽고 책에 파묻혀 잠이 들곤 했어요. 그래서 순이가 와서 말을 걸어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답니다.
순이는 연이에게 말동무가 되어 주라고 해서 찾아온 아이예요. 그런데 연이는 순이가 아는 체를 해도 책에 얼굴을 묻은 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마음이 상할 법도 한데, 순이는 연이를 채근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어요. 연이가 다 보고 밀쳐 둔 책을 보면서 말이에요. 책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순이는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연이는 책만 보았어요. 순이도 그 옆에 앉아 책을 읽다가 돌아가곤 했어요. 하루는 연이가 책 한 권을 순이 앞으로 쓱 밀었어요. 집에 가져가도 된다면서 말이에요. 순이는 하늘을 나는 듯 기뻤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이번에는 연이가 종이를 잔뜩 펼쳐 놓고는 글을 적고 있었어요. 썼다, 지웠다 고개를 갸웃갸웃 하면서요. 이야기를 짓고 있었던 거예요. 순이는 연이가 지은 글이 신기해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순이는 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산길을 오가며 본 예쁜 꽃과 알록달록 나비 이야기, 연못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동무처럼 따라오는 새 이야기……. 책을 보던 연이의 눈길이 슬그머니 순이에게로 향합니다. 순이는 연이가 책을 읽는 동안 쉬지 않고 종알종알 이야기를 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순이가 연이네 오는 마지막 날이 되었어요. 농사일이 바쁜 엄마 대신 동생들을 돌봐야 했거든요. 순이가 떠나고 나자 연이는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글자가 자꾸 도망을 갔어요. 순이가 궁금한 연이는 책을 덮고 순이네 집을 찾아 나섰지요.
책을 읽는 즐거움,
이야기를 짓는 즐거움
연이는 순이가 오는 걸 알면서도 책에 코를 박고 있었어요. 순이를 대하기가 멋쩍어 그랬을 수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책이 재미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림을 가만히 살펴보면 연이의 몸짓에서, 눈길에서 순이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순이 모르게 힐끔 쳐다보기도 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순이도 그런 연이의 마음을 알아챘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연이가 아는 체를 하지 않아도 곁에 앉아 책을 보고, 바깥세상 이야기도 종알종알 들려주었지요.
연이와 순이는 신분의 차이가 있어요. 연이는 양반집 딸로 바깥에서 동무들이랑 놀기보다는 집에서 책을 보며 지냈지요. 한편 순이는 형편이 녹록치 않은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랐어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아이는 어느 순간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다가섭니다.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고 함께 지어 낸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순이가 연이네 집으로 가면서 보고 들은 것들은 연이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어집니다. 연이가 순이네 집으로 가서 보고 함께 겪은 일들은 연이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지요.
《책》은 한국화를 전공한 지현경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예요. 10여 년 전 민화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마음에 씨앗을 품고 있던 이야기지요. 서양 사람들도 한눈에 반했던 ‘책가도’를 그리면서 작가는 하루는 연이가 되고, 하루는 순이가 되어 이야기를 키웠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민화의 느낌이 잘 살 수 있도록 한지에 커피로 직접 물을 들였지요. 한지 전체의 색이 고르게 하기 위해서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은은한 바탕색을 낼 수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책 읽기를 숙제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애쓰며 읽어 나가는 것이 ‘책’이 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연이와 순이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책이 갖는 본연의 가치 중 하나는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요? 《책》을 읽는 어린이와 어른들도 ‘책’이 주는 기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 소개
디자인을 전공하고 민화를 배우며 그림책을 읽고 쓰고 그리는 일이 행복한 그림책 작가입니다. 그린 책으로 《소원의 나비》, 《엄마 언제 와?》, 《나비 공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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