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유물이 뭐야? 그거, 먹는 거임?
아이들과 박물관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들은 안다. 아이들이 전시 작품에 스스로 집중하도록 만드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해치워야 하니, 전시 유물 자체보다는 그 아래 설명문을 베껴 적는 게 더 급하다. 뭔가 아주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박물관을 나서는 순간,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남았어?” 물어보면 줄행랑치느라 바쁘다. 저자는 아이들이 우리 유물을 좀 더 친근하게 여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물이어서가 아니라, 그 유물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져 주었으면 싶었고, 유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유리장 안에 갇힌 딱딱한 유물이 아니라 그 너머를 봐 주었으면 싶었다.
해당 유물이 만들어진 사회경제적 배경보다는 보는 이의 상상력을 함뿍 자극하는 이야기들을 먼저 실었다. 무령왕비 팔찌 안쪽에 새겨진 글자를 들여다보면서 왕비와 장인 “다리” 사이의 특별한 인연을 상상해 보는 것이나, 빗살무늬토기를 맨 처음 만든 이를 스티브 잡스에 설핏 빗대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유물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 책을 읽고 박물관에 간다면,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의 밀도가 두 배쯤 깊어질 것을 확신한다.
이것만은 알고 넘어가자, 서른 점의 유물
책에는 모두 서른 점의 유물이 나온다. 1부에서는 우리가 먹고, 입고, 살아가는 일상에 얽힌 유물 열다섯 점을, 2부에서는 제사나 예술 같은 영역에서 쓰였던 유물 열다섯 점을 다루고 있다. 어렵지 않은 말로, 재미있는 비유들로, 아름다운 우리 유물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이어진다.
역사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흉배 설명을 듣고 나면 흉배 하나만 보고도 그 사람이 문관인지 무관인지, 옆 사람보다 직급이 높은지 낮은지 알 수 있게 된다. 금이 쫙쫙 간 유리병을 어렵게 이어 붙여 사람들에게 보물이라고 내놓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많은 것들에 새삼 마음이 가기도 한다. 쇠로 만든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전쟁에 임했던 그 옛날의 장수들이 혼자 끙끙대며 옷 입느라 겪었을 어려움도 알게 된다. 쉽게 말해, 몹시 잘난 체하기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 되시겠다. 읽다 보면 놀라워서 입이 떡 벌어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우리 유물 이야기!
혼자만 알지 말고, 친구에게도 꼭 들려주자!
저자는 유물의 사진을 먼저 보여 주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게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입을 아, 벌리고 있는 호랑이 모양의 그릇(토기 호자)은 아무리 봐도 장식품 말고 다른 용도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게 남자 어른들의 휴대용 소변기라는 걸 알고 나면 콧구멍 아래 살포시 그어 놓은 호랑이 콧수염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일상용품에 이런 해학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이란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주사위처럼 생긴 십사면체 구슬(주령구)은 또 어떻고! 각 면에 적힌 글귀들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하하하, 웃지 않을 수 없지. 코끼리 코 잡고 몇 바퀴 돌라거나, 음악소리 없는 데서 춤을 추라거나, 옆사람 코를 꽉 비틀어 주라거나 하는 짓궂은 장난소리들이 가득하다. 얼큰해진 어른들이 주사위를 굴리면서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박물관장의 꿈속에 나타났던 돌짐승이 무령왕릉 발굴 현장에 떡하니 나타나 박물관장을 기함하게 만들었던 일화는 몇 번을 읽어도 신기하다. 이집트 미라의 저주에 버금가는 스펙터클한 발굴 일화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걸 이야기로 남기지 못하고, 제대로 전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유물들의 뒷이야기가 빛을 보지 못한 것일 뿐.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친구에게, 식구들에게 마구 떠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원래 유물의 쓰임새와 상관없이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마구 상상해 주었으면 좋겠다. 틀리면 뭐 어떤가. 틀리면 더 좋다. 어쩌면 어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풀 수 없었던 우리 유물의 진짜 비밀, 쓰임새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박물관은 지루하고 지겹기만 하다는 아이들에게 우리 유물의 생동감을 전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이상하게 자꾸만 박물관에 가고 싶네
해외여행을 가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필수 관람 코스다. 우리에게도 특색 있는 박물관, 소장 유물이 빼어난 박물관, 가치 높은 미술품을 소장한 미술관은 차고도 넘친다. 다만 해외여행을 갔을 때처럼 시간과 돈을 투자해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루브르박물관의 유물들은 줄줄이 읊을 수 있어도,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니 ‘백자 철화 끈무늬 병’이니 하는 우리 유물은 이름조차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제대로 가까이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고,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자꾸 가면 친해지고, 보고 또 보면 좋아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했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우리 유물을 대하는 태도에 이만큼 걸맞는 말도 없을 것이다.
여기 소개된 서른 점 가운데 마음에 드는 딱 한 가지 유물을 정해서, 몇 번이고 보러 가는 것도 괜찮다.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갈 때, 그 지역의 박물관에는 꼭 들러 보자고 약속하는 것도 좋다. 사진만 보고 쓰임새를 유추해 보는 것도 좋고, 이미 알려진 쓰임새 말고 다른 쓰임새는 없을지 거꾸로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저자가 소개해 놓은 여러 방법들을 알뜰히 써먹어 보자. 우리 유물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와 함께 생각의 뼘이 한층 자란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역사책 기획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왜 그렇게 생각해?-작은 철학자가 만난 10인의 동양 사상가』, 『철의 시대-철과 함께 한 인류의 역사』, 『중국사 편지』, 『일본사 편지』,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 『티베트에서 만난 파란 눈의 스승-세계사 속 두 사람 이야기(동양편)』, 『징비록, 임진왜란을 낱낱이 기록하다』, 『백범일지-독립을 향한 열정의 기록』 등이 있습니다.
목 차
들어가며
1부 먹고 입고 살아가고: 의·식·주·행
“볼일이 급하니, 호자를 대령하라!”―호자
“암행어사, 출또요~!”―마패
이번엔 무슨 벌칙이 나올까?―주령구
금 간 무늬까지 아름답네!―유리병
이렇게 무거운 걸 입고 싸웠다고?―판갑옷과 투구
보물선을 찾아라―신안선 고려청자
나를 지켜 주세요―호랑이 모양 띠고리
옷에 수놓은 동물만 봐도 누군지 알아―흉배
용이 되고 싶은 물고기―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
두 다리 멀쩡한데 도대체 왜?―남여와 초헌
이렇게 하면 끈 잃어버릴 걱정은 안 해도 되지!―백자 철화 끈무늬 병
스티브 잡스가 신석기 때 사람이라면 이걸 발명했을 거야!―빗살무늬토기
숲과 어울리는 집을 지으려면―청자 암막새와 수막새
물난리 대비도 과학적으로―수표와 수표교
세상의 중심은 바로 우리!―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2부 다음 세상으로 평안히 가게 해 주세요 : 종교·예술·상징
이 무덤은 건드리지 마!―무령왕릉 돌짐승상
다리가 왕비를 위해 만든 거야―무령왕비 은팔찌
우리는 본디 삼국시대부터 다문화사회―괘릉 무인석상
내가 여기 다녀갔노라!―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향이 피운 구름 속 세상이야말로 진짜 이상향―백제 금동대향로
정교하고 빼어난 고려청자의 백미―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
글자에도 힘이 있다면―‘물 수水’ 자 부적
나무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듯―금관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금동반가사유상
저승 갈 때도 주인을 따라가야 했던 하인―기마 인물형 토기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다보탑과 석가탑
이곳에선 돌기둥마저 아름다워라―부석사 당간지주
진리의 소리를 멀리 더 멀리―성덕대왕 신종
절대음감 세종대왕―편경
하늘이시여!―농경문 청동기
참고 문헌
유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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