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유기견 화이트의 새 이름
나는 공주라는 멋진 별명을 갖고 있는 하얀 색 푸들, 화이트야!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 왔다가 나만 남았어. 성준이가 여기 캠핑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거든.
그런데 성준이가 길을 잃었나 봐. 며칠 째 꼼짝 않고 기다렸는데 돌아오지 않았어. 배가 너무 고파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동네로 내려갔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나를 괴물이라고, 너구리라고 놀려. 나의 자랑인 새하얀 털이 얼마나 더러워졌으면 저렇게 놀리는 걸까?
나 정말 상처 받았어. 하지만 솔이는 내가 강아지인 걸 용케 알아봤어. 그나마 다행이야.
그렇다고 뭐 솔이가 나를 좋아하는 거 같지는 않아. 동네 할아버지가 ‘일루 와, 밥 먹자’라고 해서 밥 먹으러 갔더니, 정말 배고파서 갔는데 글쎄 솔이가 이렇게 말하지 뭐야.
“얘들아, 오늘부터 얘 이름은 일루와야! 알았지?”
맙소사, 일루와라고? 아니야, 난 화이트야! 성준이네 공주, 화이트라고!
『일루와 아이스크림』은 바닷가 작은 동네에 버려진 유기견 화이트가 새로운 집을 얻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화이트는 낯선 환경 속에 홀로 떨어져 심신이 점차 망가져간다. 하지만 생명을 소중히 보살피는 동네 할아버지와 밝고 유쾌한 솔이를 만나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어둠 속에 웅크린 유기견 화이트가 바라 본 솔이의 세계
작가 윤재인은 화이트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화이트가 유기견이 된 후 마주치게 되는 사건들과 그에 따른 감정의 소용돌이를 독자가 직접 강렬하게 느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온 강아지 화이트는 거친 바깥 생활 때문에 겉모습이 괴물처럼 변하자 즉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을 피해 더러운 쓰레기통으로 뛰어들 만큼 피해의식도 커진다. 화이트 스스로 자신을 쓰레기와 동일시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렇게 화이트가 밑바닥까지 추락해버린 순간, 갑자기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다. 쓰레기통 벽의 비좁은 틈새로 작은 희망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화이트가 유기견이라는 걸 알게 된 솔이가 할아버지에게 머뭇머뭇 말하는 대목이다.
“그, 그럼 일, 일루와 우리 집으로 데려가도 돼요?”
집? 집이라고?
화이트의 마음속으로 솔이가 스며든다. 쓰레기통의 비좁은 틈새를 비집고 솔이의 마음이 화이트에게 전해진다. 바로 그 순간 화이트는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고 솔이를 주목한다. 그날부터 화이트는 캠핑장으로 돌아가 성준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점점 늦추게 된다.
유치원에 다니는 솔이는 알레르기가 심해 늘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만, 쾌활하고 유머러스하다. 솔이의 주도로 화이트가 ‘일루와’로, 다시 ‘일루와 아이스크림’으로 이름이 바뀌는 과정은 엉뚱하면서 유쾌하다. 화이트의 이름이 새롭게 바뀔 때마다 둘의 관계는 더욱 더 깊어진다.
화이트를 그리지 않고도, 화이트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그림
일러스트레이터 오승민은 ‘어둠’과 ‘빛’을 이용한 섬세한 수채화로, 화이트와 솔이의 세계를 대비시켰다. 화이트의 세계는 어둡고 차갑게, 솔이의 세계는 밝고 따스하게 표현했다.
또한 거의 모든 장면을 화이트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렸다. 화이트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풍경으로 가득 채운 것이다. 키 작은 푸들이 한껏 위축되어 웅크리고 바라볼 때는 무엇이 보일까?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 볼 때는? 위험을 피해 달리고 있을 때는?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위협하는 나뭇가지와 돌진하는 아이들, 설렘 가득한 아이의 눈망울, 두 팔을 벌린 할아버지, 자신을 향해 다정하게 웃고 있는 얼굴들……. 화이트의 모습은 화면 속에 보이지 않지만, 독자는 화이트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화이트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세계는 낯설고 신선하다. 오승민의 그림은 1인칭 텍스트가 의도했던 유기견의 외로움과 낯섦, 두려움과 슬픔, 안도와 신뢰감 등의 감정을 더 생생하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첫 장면, 유기견 화이트는 어둠 속에 웅크린 채 환하게 빛나는 솔이의 세계를 엿본다. 솔이 친구는 화이트를 보고 괴물이라는데, 독자는 화이트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화이트의 시점에서 그려진 이러한 장면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대체 주인공은 얼마나 흉측하게 생긴 거야? 그리고 정체가 뭐야?
그러나 1인칭 시점 그림의 가장 큰 효과는 앞서 말했듯이 독자 스스로 유기견의 입장이 되어 깊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피해 처음 쓰레기통 속에 숨어 있을 때와 책의 종반부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쓰레기통에 숨어 있을 때는 똑같은 쓰레기통 속에 숨어 있지만, 화이트의 감정은 전혀 다르다. 화이트의 표정도 다를 것이다. 오승민은 이 두 장면 모두 화이트가 아니라 화이트의 눈에 들어오는 인물들을 묘사하면서, 독자 스스로 화이트가 되어 이러한 감정을 직접 생생하게 느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일루와 아이스크림』의 클라이맥스는 화이트가 솔이의 손가락에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살그머니 핥는 장면이다. 오승민은 화면 가득 밝고 따스한 행복이 흘러넘치게 표현했다. 화이트가 ‘일루와 아이스크림’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얻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둘은 아름답게 일렁이는 빛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 이제 화이트는 어둠 속에서 완전히 빠져 나온 것일까?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재인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상자를 찾아서>로 등단했습니다. 창작 그림책 《찬다 삼촌》 《눈이》《미나렐라》 《서울》 《할아버지의 시계》 《할머니의 아기》 《손님》, ‘외계인 셀미나의 특별임무’시리즈 《우주 평화의 밤》 《그만 좀 먹어, 초코루다!》 《오라 마녀의 초대》 《위대한 쭈랑 장군》 《도리깽이 되고 싶어》, 아기 그림책 《으앙으앙》 들에 글을 썼습니다.
그린이 : 오승민
세종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했고,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그림책 과정을 수료했어요. 《꼭꼭 숨어라》로 2004년 한국안데르센그림자상 가작과 국제 노마콩쿠르 가작을 수상했어요. 《못생긴 아기 오리》는 2007년 BIB 브라티슬라바 비엔날레에 선정되어 전시되었고, 《아깨비의 노래》로 2009년 볼로냐 국제 도서전 한국관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었어요.
창작 그림책 《찬다 삼촌》을 비롯해 《열두 살 삼촌》, 《귀신 은강이 재판을 청하오》, 《후쿠시마의 눈물》, 《길고양이 방석》, 《미소의 여왕》, 《왕할아버지 오신 날》, 《호랑이를 탄 엄마》, 《오늘 피어난 애기똥풀꽃》, 《바다사자의 섬》, 《비닐봉지풀》 들과 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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