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가장 익숙한,
그래서 가끔은 낯선 ‘가족’
아침에 방을 나서면 매일같이 마주치는 가족, 자주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익숙하지만, 슬쩍 눈을 마주할 때마다 소리 없는 대화가 오간다. 그 대화 속에는 서로에 대한 바람과 서운함 등 다른 공동체의 사람들 간에는 느껴지지 않는… 가족만의 특별하고 묘한 감정들이 담겨 있다. 가족은 사랑으로 탄생되지만 사랑은 어느새 서로에 대한 기대를 만들고, 그런 기대에 못 미치는 서로의 모습에 실망과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제3자가 보면 아무렇지 않은 작은 일들로 가족들은 싸우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하며 갈등을 겪는다.
작가는 그러한 가족의 모습을 ‘토라지다’라는 단어에 함축에 그려낸다. 그렇게 토라진 가족이 집을 나서서 서로가 너무나 다른 사람인 것처럼 각자의 공간에서 지내는 모습은 여느 다른 공동체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익숙하게도 각자의 공간에서 나와 저녁이 되면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께 모여 저녁을 맛있게 먹는다.
내게 ‘가족’이란 서로 닮아 있고, 가장 애정 어린 존재들의 영역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때로는 가장 낯설고 먼 지역이기만 하다. 그래서 때로 그들은 소리 내어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돌처럼 침묵하며, 차갑게 얼어붙기도 하고, 집 밖에 머물면서 각기 다른 계절의 체온을 몸에 익힌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같은 온기를 나누고 같은 밥상을 나눈다. 비록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처럼 감동적인 화해를 선언하거나 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허기진 마음을 다독여주는
가족이 가진 따스함
아침부터 뿔뿔이 밖으로 나간 가족들은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그때야 비로소 가족들은 하나둘 집으로 향한다. ‘꼬르륵! 꼬르륵!’, ‘쪼록쪼록! 쪼로록!’ 배꼽시계에 반응하는 막내를 보고 조약돌같이 앉아 있던 형이, 고양이처럼 숨어있던 누나가 움직인다. 깃털 같은 할머니의 몸에 힘이 들어가고, 엄마는 엄마의 자리로, 아빠는 아빠의 자리로! 어느새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마련되어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함께 밥상에 둘러앉는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먹는 것처럼 따뜻한 온기를 나눈다.
토라졌던 가족이 화해하는 데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집 나간 아들이 며칠 있다 집에 들어와서 밥 먹는 모습을 보고, 부모가 “밥 먹으니 됐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특별히 서로를 용서하거나 화해하지 않아도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 다다른 독자들은 어느 주말 아침, 가족들과 시끄럽게 싸웠다가도 어느덧 가족 옆에 찾아온 평온함에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 추억이 자연스레 떠오를지도 모른다.
회화적인 그림과 시적인 글
이 책은 아침부터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가족들이 집 밖에 머물면서 각자가 지닌 감정 세계를 계절의 색채에 덧입혀 풀어낸 작품이다. 짧지만 감각적인 작가의 말투는 토라진 가족들이 처한 각각의 상황들에 대한 몰입을 높이고, 빛의 강약과 온도, 감정의 변화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그림은 평범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평범치 않게 풀어냈다.
시적인 텍스트와 한 폭의 회화 작품처럼 그려진 그림은 페이지를 넘겨 볼 때마다 눈앞에 갤러리 전시장이 펼쳐진 듯하다. 책의 전반부에선 환상적이면서도 정밀한 묘사로 가족들이 가지는 개개인의 감정을 표현했다면, 후반부 가족이 차례로 집으로 향해 가는 그림들은 전반부와 다른 과감한 붓질과 색상, 그리고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 가져다주는 장면 연출을 통해 토라졌던 가족들의 기분이 점점 풀어지는 느낌을 담아냈다.
그리고 집에 모여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게 식사하는 장면은 눈앞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는 듯 생동감을 안겨 주며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준다.
작가 소개
경기도 일산의 한 동네에 나의 길이 있습니다.
바쁘지도 않으면서, 아침마다 나는 그 길을 달려갑니다.
바람이 휘~익 불겠지요.
그 바람에 낙엽들이 까르르 웃으며 구릅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길이 있습니다.
느긋하게 길을 가다가 나를 쓰윽 돌아봅니다.
개는 개의 길이 있습니다.
산책 나온 개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봅니다.
그러나 딱히 궁금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한 번도 대놓고 묻는 법이 없어요.
나는 속으로 ‘안녕?’이라고 짧게 인사를 하고는 나의 길을 달려갑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러 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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