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바람직한 어린이, 교사, 학교의 모습을 그리다
이준식 시인의 동시는 단순하고 담백하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앞세우는 대신, 눈길이 닿는 대상을 지극한 눈길로 오래 바라본다. 눈길이 먼저 가닿는 대상은 다름 아닌 어린이다.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에는 청소 시간에 빗자루를 들고 장난치는 천진한 어린이가 있고(「청소 시간」), 술래잡기하면서 복도를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서서 첫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어린이가 있고(「첫눈」), 졸업식에 모여서 다 같이 환하게 웃는 애틋한 어린이들이 있다(「졸업 사진」). 또 축구하고 노래하고 발표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 그리고 그 무엇도 아닌 ‘나’한테 밑줄을 쳐 주는 어린이가 있다.
교과서나 문제집에만 밑줄 치지 말고 // 내가 축구하는 모습에도 밑줄 쳐 줄래. / 내가 노래하는 모습에도 밑줄 쳐 줄래. / 내가 발표하는 모습에도 밑줄 쳐 줄래. / 내가 웃는 모습에도 밑줄 쳐 줄래. // 그냥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 ― 「밑줄」 전문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시인은 자연스럽게 어린이와 함께 생활하는 교사의 모습을 자주 그린다. 학생의 생활을 살피느라 밥 먹으면서 쉬지 않고 떠드는 선생님을 묘사하고(「급식 시간」), 6학년이 신발 끈도 제대로 못 묶는다고 가볍게 타박하면서도 기꺼이 끈을 고쳐 매 주는 선생님의 모습도 담아낸다(「신발 끈」). 이준식 시인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어디에 숨었나」는 특히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체육 하러 / 운동장에 간 사이 // 게시판에 아이들 그림을 붙이다 / 압정 하나를 떨어뜨렸다. // 체육 시간 / 다 끝나 가는데 // 어디에 숨었는지 / 보이지 않는다. // 사물함도 들어 보고 / 책상 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 이리저리 쓸어 봐도 안 보인다. // 압정 하나가 / 교실 문을 못 열게 한다. ― 「어디에 숨었나」 전문
시인은 교사와 어린이들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어린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학교’라는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어린이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지 넌지시 이야기한다. 시인이 동시에 그려 놓은 것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린이와 그들을 아끼는 교사가 어우러져서 즐겁게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란 모두가 꿈꾸고 그리는 바람직한 이상향이지 않을까. 어린이 독자들은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를 읽으며 ‘학교’라는 공간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집
시인은 어린이들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본다. 가족 간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처럼 어쩌면 너무나 당연시해서 오히려 시선이 머물지 않는 풍경을 오래 바라보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발견한다. 특히 어린 삼 형제의 모습을 담은 동시들은 덤덤한 듯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엄마, 아빠가 / 누워 있습니다. // 그 사이로 / 형서 / 형온이 / 형민이가 / 들어갑니다. // 잠깐 사이에 / 온 집이 따뜻해집니다. ― 「따뜻하다」 전문
세 살 형민이가 / 뛰다가 넘어졌습니다. // 큰형이 달려와 / 형민이 바지를 털어 주고 // 작은형도 뛰어와 / 혼자 일어난 형민이한테 엄지 척 합니다. // 형민이가 울 틈을 주지 않습니다. ― 「삼 형제」 전문
시인의 동시에서는 특별한 시적 기교를 찾기 어렵다. 그저 어린이들의 모습을 받아 안으려는 태도가 느껴질 뿐이다. 그 겸손한 태도는 동시 속 아이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품으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에 훈훈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이 독자들은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에 담긴 가족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자기 가족의 얼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가정과 학교 밖으로 확장되는 시선
가정과 학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이준식 시인의 따스한 눈길이 미더운 것은, 그 눈길이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다가가기 때문이다. 이준식 시인은 바람과 빗방울과 새가 잠시 머물다가 지나가는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포착해 낼 만큼 섬세한 눈을 가진 시인으로(「그만큼」), 아파트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며 페인트칠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을 오래 지켜보기도 한다.
아파트 페인트칠하는 / 아저씨들이 옥상에 모였다. // 밧줄이 몸에 맞는지 / 빠뜨린 장비가 없는지 / 꼼꼼하게 살펴본다. // 준비를 다 마치고 / 박 씨 아저씨가 갖고 온 /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 서로 얼굴을 보면서 / 말없이 악수 한번 하고 / 자기 자리로 가기 전 // 가만히 / 하늘을 올려다본다. ― 「기도」 전문
시인은 순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이웃의 삶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는 이웃의 삶을 동시로 옮길 뿐이다. 그 눈길이 마치 카메라 렌즈처럼 맑고 투명해서 오히려 시선을 잡아끈다.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를 읽은 어린이 독자들도 순수하고 맑은 눈길로 학교를 오가는 길에 마주치는 이웃의 삶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준식
1980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교대를 졸업했습니다. 2010년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울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린이 : 이시누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으며 현재 출판, 광고, 교육, 사회 공헌 등의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씨, 경제 좀 아세요?』 『똥 누고 학교 갈까, 학교 가서 똥 눌까?』 『데이터로 과학하기』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목 차
제1부 학교를 빛낸 인물들
학교를 빛낸 인물들
급식 시간
층간 소음
청소 시간
신발 끈
손수건 돌리기
부채 놀이
어디에 숨었나
고무찰흙 아이
김영철 아저씨
공기놀이
수학 시험 치다가
졸업 사진
단소
텅 빈 교실
제2부 나를 어떻게 보고
나를 어떻게 보고
살다 보면
안 들어가는 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또
짝사랑
약속
교환 일기
운동장
봄날
먹구름
받아쓰기
밑줄
첫눈
제3부 다 데리고
부모님 동의서
그때는
다 데리고
1학년 형서
일곱 살 형온이가 혼나고 나서 울면서 하는 말
따뜻하다
첨성대
딱 걸렸다
패자 부활전
우리 할아버지는
엄마 생일
가위바위보
아기 눈에 내가 비치면
삼 형제
제4부 숲속의 새
그만큼
품다
동무
숲속의 새
지름길
소나기
해의 넋두리
매미
가랑잎
기도
늙은 개
미세 먼지 ‘매우 나쁜 날’ 학교 방송
오이꽃
먼 길
소망 우체통
해설|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순한 시_남호섭
시인의 말|시(詩)끌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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