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일생을 바쳐 남긴 풍석 서유구의 저술, 《임원경제지》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 선생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생활지식을 16분야로 나누어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서유구는 관념에 치우친 유학자들의 학문적 태도에서 벗어나 사람살이의 기본인 ‘건실하게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풀고자 민중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조선 · 중국 · 일본의 서적들을 풍부하게 참조하여 이 거작을 저술하였다.
《임원경제지》는 총 16개의 분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곡식 농사에 관한 기록인 《본리지(本利志)》, 식용 식물과 약용 식물에 관한 기록인 《관휴지(灌休志)》, 화훼농사에 관한 기록인 《예원지(藝苑志)》, 과실과 나무에 관련된 기록인 《만학지(晩學志)》, 옷감 재료의 생산과 그 만드는 법에 관한 기록인 《전공지(展功志)》,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보고 기상을 예측하는 방법을 기록한 《위선지(魏鮮志)》, 목축 · 사냥 · 어로에 관련된 기록인 《전어지(佃漁志)》, 솥과 도마로 대표되는 음식의 조리법과 재료의 효능에 관한 기록인 《정조지(鼎俎志)》, 쓰는 물건을 넉넉하게 한다는 뜻으로 건축과 일용품에 관한 기록인 《섬용지(贍用志)》, 몸을 양생하는 일과 관련된 기록인 《보양지(保養志)》,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으로 의학에 관한 내용을 적은 《인제지(仁濟志)》, 향촌의 의례에 관한 기록인 《향례지(鄕禮志)》, 교양 지식에 관한 기록인 《유예지(遊藝志)》, 문화생활에 관한 기록인 《이운지(怡雲志)》, 좋은 집터를 살피는 일에 관한 기록인 《상택지(相宅志)》, 경제와 상업 활동에 관한 《예규지(倪圭志)》가 그것이다.
《임원경제지》 14번 째 지(志) 《이운지(怡雲志)》, 문화예술 백과사전
《이운지》는 총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학 백과사전인 《인제지》 다음으로 분량이 많다. 《이운지》는 〈은거지의 배치〉, 〈휴양에 필요한 도구〉 〈임원에서 즐기는 청아한 즐길거리〉, 〈서재의 고상한 벗들〉, 〈골동품과 예술감상〉, 〈도서의 보관과 열람〉, 〈한가로운 삶의 일과〉, 〈명승지 여행〉, 〈시문과 술을 즐기는 잔치〉, 〈각 절기의 구경거리와 즐거운 놀이〉 로 총 10가지 대제목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10가지 대제목에는 다양한 소제목을 나열해 설명하고 있어 그 내용이 매우 방대하고도 다양하다.
총 권차 99~106으로 이루어진 《이운지》 중에서 권103과 권104를 엮어 《이운지》 3권으로 묶었으며, 〈골동품과 예술작품 감상〉(상)과 〈골동품과 예술작품 감상〉(하)로 구성되어 있다. 〈골동품과 예술작품 감상〉(상)에서는 골동품, 옛 옥기, 옛 도자기, 법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법첩은 옛 명필을 설명하면서 부록으로 한나라와 당나라 이전의 금석문과 수나라 당나라 이후의 비문을 탁본한 서첩, 우리나라의 금석문, 우리나라의 여러 묵적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어 〈골동품과 예술작품 감상〉(하)에서는 명화, 송나라와 원나라 이후의 그림 족자와 함께 부록으로 우리나라의 여러 화첩을 감상 등과 함께 자세히 서술하여 동양의 문화예술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백과사전이다.
‘이운(怡雲)’이라는 서명은 풍석이 중국 남조시대 양나라 처사인 도홍경(陶弘景)의 일화에서 ‘운(雲)’자와 ‘이(怡)’자를 따서 지은 것인데 ‘산중의 구름을 혼자서 즐긴다’의 뜻으로 “임원에 살면서 여가에 즐길 만한 일들”을 《이운지》라는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운지 서문에 보면 서유구는 임원에서 고상하게 사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한 가지 이야기를 인용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그 점이 매우 재미있다. 네 명의 사람이 상제에게 자신의 강녕(康寧)을 비는데, 앞의 세 명은 각각 “벼슬과 재산과 문장력”을 요구하였는데 상제는 모두 그 희망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네 번째 사람이 “임원에서 고상하게 수양하면서 세상에 구하는 것 없이 한 몸을 마치고 싶다”라고 하자 상제는 이마를 찡그리며 “이 혼탁한 세상에서 청복(淸福, 청아하고 한가롭게 사는 복)을 누리는 일은 불가능하니, 너는 함부로 구하지 말라. 다시 다음 소원을 말하는 것이 좋겠노라.”고 말하였다. 풍석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임원에서 고상하게 사는 일의 어려움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풍석은 아무 까닭없이 인륜을 도외시하고 은둔하거나, 허유(許由)와 한음(漢陰)의 일화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맑게 하여 고상함을 기르고 한가로이 소요하며 유유자적”하는 삶의 풍도를 보여주자 함을 이운지 서문에 밝히고 있다.
권5과 권6의 〈골동품과 예술 작품 감상〉은 동양의 골동품, 옥기 및 도자기, “법첩”이라는 제목 아래 각종 금석문과 각첩, 묵적 등의 서예, 그림, 족자, 화첩 등을 망라하여 동양 예술의 진수를 자세하게 적었다. 권5 〈골동품과 예술 작품 감상〉 상편은 구리·옥·도자기로 만든 각종 골동품과 금석문, 묵적 등 서예 작품에 관한 온갖 사항을 다루었다. 각종 골동품과 관한 사항은 모두 중국 문헌을 인용하였고, 조선의 골동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모범이 되는 글씨라는 뜻의 법첩은 먼저 “친필은 거의 없다”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여 종이라는 특성상 파손되거나 손실, 분실이 그 어떤 골동품에 비해 쉬워 그 결과 친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희소성으로도 서첩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 법첩을 재료, 모조품과 진품을 구별, 인장 위조의 어려움, 표구하는 법, 좀이 쏠지 않게 않는 기술인 풀 쑤는 법, 그림 씻는 법, 서화를 불로 펴는 법, 보관법, 원본을 손상없이 펼치는 법, 법첩을 수집했을 때 얻을 수 있는 5가지 이익까지 법첩에 대한 A to Z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뒤이어 부록에는 중국과 조선에 남아 있는 실제 작품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소개하였으며, 이 작품들의 작자와 작품의 유래, 특성, 내용, 가치, 위조 여부, 비평, 고증 등의 요소를 더해 설명하였다.
권6의 〈골동품과 예술 작품 감상〉 하편은 “명화”를 다루고 있다. 먼저 풍석은 그림을 수집하는 사람을 호사자(好事者)와 감상자(鑑賞者) 둘로 구분하며 감상자를 호사자 위에 두고 있다. 감상자는 그림을 독실하게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록을 두루 살피고, 마음으로 깨닫기도 하며,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사람으로 수집품이 모두 정교한 작품이라 평하였다. 그러면서 재력이 있어 원래는 열렬하게 좋아하지 않으면서 풍류와 운치를 드러내는 데에 목적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안목을 빌리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명화”에 대해 적는데 앞서 먼저 호사자와 감상자로 나누는 풍석의 안목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먼저 그림 보는 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몇 가지 단서를 제시하고 단서들이 그림에 나타나 있을 때 그 그림이 잘 된 그림인지 잘 못 된 그림인지를 구분하였다. 또 그림을 감상할 때에 그림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나, 필치, 작가의 의도 등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림의 진품은 더이상 전하지 않으며 화폭으로 쓴 비단도 시대마다 다르고 옛 그림은 색도 다르니 그 사실을 알면 진품과 모조품의 구별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그림을 수집하는 방법, 밑그림 또한 무심코 그린 곳에 자연스러운 빼어남이 있어 밑그림도 생의(生意)가 활발한다면 보물처럼 소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 당(唐)을 포함하여 송(宋), 원(元), 명(明)의 유명 화가들의 전문 분야를 간략하게 품평하였다. 그림 훼손을 줄이는 장황법, 그림을 잘 걸고, 잘 보관하고, 잘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주의 사항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또 미불(米芾)과 조맹부(趙孟頫)를 포함한 송나라와 원나라 이후의 그림 족자 51점, 조선 최고의 그림인 김정(金淨)의 〈이조명화도〉, 정선(鄭敾)의 〈춘산등림도〉 등 조선 화첩 19점을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작가와 작품 내용, 예술적 가치, 화가의 특성 등을 해설하였다.
이운지 3권은 중국과 조선을 통틀어 예술 분야의 총체를 엿볼 수 있는 서적으로 서유구의 감상자(鑑賞者)로서의 면모가 돋보이는 “글로 쓴 도록”을 방불케 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서유구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이며 본관은 대구이다. 대제학 보만재 서명응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서호수의 아들이다. 영조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된 후 좌부승지,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사헌부대사헌, 예문관대제학,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다가 늦은 나이에 전라도관찰사, 수원부 유수를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경화세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학을 이어 특히 농학(農學)에 큰 업적을 남겼다. 가문의 개방적인 학문 기풍과 방대한 장서의 열람, 뛰어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방면에 식견과 경험을 쌓았다. 젊은 시절 정조의 치세 때에는 규장각에서 많은 편찬 사업에 참여했고, 방폐기간 동안의 여러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했다.
서유구가 지은 16개의 주제를 지(志)로 하여, 113권으로 구성된《임원경제지》는 농업, 목축, 어업, 양잠, 상업 등의 생산 전반과 의학, 음식, 주거, 선비가 알아야 할 일상 실용지식 등의 생활 전반을 담은 방대한 양의 생활 백과전서이다.
그 밖의 저술로는 정조의 명으로 조선에서 출판한 도서의 목판을 조사한《누판고》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때는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고구마 재배법을 기록한 《종저보》를 간행하였다. 이 밖에도 개인 문집으로 《풍석고협집》, 《금화지비집》, 《번계시고》, 《금화경독기》와 전라도관찰사와 수원유수시절의 업무일지인 《완영일록》과 《화영일록》이 전한다.
옮긴이 : 임원경제연구소
고전 연구와 번역, 출판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이다. 문사철수(文史哲數)와 의농공상(醫農工商) 등 다양한 전공 분야의 소장학자 40여 명이 회원 및 번역자로 참여하여, 풍석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를 완역하고 있다. 또한 번역 사업을 진행하면서 축적한 노하우와 번역 결과물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 및 단체들과 교류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번역 과정과 결과를 통하여 ‘임원경제학’을 정립하고 우리 문명의 수준을 제고하여 우리 학문과 우리의 삶을 소통시키고자 노력한다. 임원경제학은 시골 살림의 규모와 운영에 관한 모든 것의 학문이며,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실천적 방책이다.
목 차
이운지 권제5 怡雲志卷第五 임원십육지 103 林園十六志一百三
골동품과 예술작품 감상(상) 藝翫鑑賞(上)
1. 골동품 古蕫
1) 옛 동기의 명칭 論古銅器名
2) 옛 동기의 무늬 論古器畫紋
3) 관지(款識) 論款識
4) 옛 동기의 색 論古銅色
5) 동기의 두께 論厚薄
6) 구리비린내 論銅腥
7) 정(鼎)의 크기 論鼎大小
8) 밀랍 모형 論蠟模
9) 옛 동기의 잡귀 쫓는 효능 論古器辟祟
10) 하·상·주의 동기 제작 기술과 제도 論三代工制
11) 역대의 동기 제작 기술과 제도 論歷代工制
12) 선덕(宣德) 연간(1426~1435)에 제작된 동기 論宣德年製
13) 옛 동기 위조하기 論僞古銅器
14) 옛 동기의 용도 論古銅器具取用
15) 옛 동기 보수법 補古銅法
16) 옛 동기 씻는 법 洗古銅器法
2. 옛 옥기(고옥기) 古玉器
1) 옥색 論玉色
2) 옛 옥기의 두 종류 古玉二品
3) 역대의 옥기 제작기술과 제도 論歷代工制
4) 아름다운 수석이 옥(玉)과 혼동된다 論美石亂玉
3. 옛 도자기 古窯器
1) 시요(柴窯)·여요(汝窯) 論柴、汝二窯
2) 관요(官窯)·가요(哥窯) 論官、哥二窯
3) 여러 지방의 도자기 論諸州窯
4) 도자기의 양식 論窯器樣式
4. 법첩(法書, 명필 모음집) 法書
1) 친필은 거의 없다 論眞迹難存
2) 서첩은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論書帖當珍重
3) 남쪽지방과 북쪽지방의 종이와 먹 論南北紙墨
4) 법첩의 진품과 모조품 論法書眞贗
5) 인장은 위조할 수 없다 論印不可僞
6) 표구(배첩)법 裝裱法
7) 법제 풀 만드는 법 造法糊法
8) 씻는 법 洗法
9) 불로 펴는 법 烘法
10) 보관법 藏法
11) 펼치는 법 展法
12) 법첩 수집의 5가지 이익 五益
13) 【부록】한(漢)·당(唐) 이전의 금석 【附】漢、唐以上金石
석고 石鼓∣형악비衡岳碑∣진태산비秦泰山碑∣역산명嶧山銘∣한(漢) 한명부(韓明府) 수공묘(修孔廟) 예기비(禮器碑) 漢韓明府修孔廟禮器碑∣노상(魯相) 사신(史晨) 공사공자묘비(供祀孔子廟碑) 魯相史晨供祀孔子廟碑∣노상(魯相) 을영(乙瑛) 치공자묘졸사비(置孔子廟卒史碑) 魯相乙瑛置孔子廟卒史碑∣화산비華山碑∣경군명景君銘∣곽유도비郭有道碑∣하승비夏承碑∣조경완비曹景完碑∣공주비孔宙碑∣위(魏) 권진비(勸進碑) 魏勸進碑∣위(魏) 수선비(受禪碑) 魏受禪碑∣봉공선(封孔羨) 축공자비(祝孔子碑) 封孔羨祝孔子碑∣후위(後魏) 장맹룡비(張猛龍碑) 後魏張猛龍碑∣연주(兗州) 수공자묘비(修孔子廟碑) 兗州修孔子廟碑∣후주(後周) 화악비(華嶽碑) 後周華嶽碑∣당(唐)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唐孔子廟堂碑∣성교서비聖敎序碑∣오장군비 吳將軍碑∣구성궁(九成宮) 예천명(醴泉銘) 九成宮醴泉銘∣도인선사비 道因禪師碑∣증(贈) 태사(太師) 노국(魯國) 공선공비(孔宣公碑) 贈太師魯國孔宣公碑∣술성송 述聖頌∣화악정향비 華岳精享碑∣동주(同州) 성교서기(聖敎序記) 同州聖敎序記∣자은(慈恩) 성교서기(聖敎序記) 慈恩聖敎序記∣왕청원충사비 王淸源忠嗣碑∣소림사비 少林寺碑∣숭양관비 嵩陽觀碑∣단행침비 段行琛碑∣주공사(周公祠) 영천비(靈泉碑) 周公祠靈泉碑∣경룡관(景龍觀) 종명(鍾銘) 景龍觀鍾銘∣수무후사기 修武侯祠記∣벽락비 碧落碑∣신행선사비 信行禪師碑∣운휘장군비 雲麾將軍碑∣다보탑(多寶塔) 감응비(感應碑) 多寶塔感應碑∣규봉(圭峯) 선사비(禪師碑) 圭峯禪師碑∣불공선사비(不空禪師碑) 不空禪師碑∣현비탑비 玄秘塔碑∣대지선사비 大智禪師碑∣초금선사비 楚金禪師碑∣이원량(李元諒) 무공소덕비(懋功昭德碑) 李元諒懋功昭德碑∣진운(縉雲) 성황묘비(城隍廟碑) 縉雲城隍廟碑∣신천명 新泉銘
14) 【부록】수(隋)·당(唐) 이후의 각첩(刻帖, 비문을 탁본한 서첩)
계첩 稧帖∣악의론 樂毅論∣동방선생찬 東方先生讚∣황정경 黃庭經∣차선첩 借船帖∣십칠첩 十七帖∣징청당첩 澄淸堂帖∣필진도서후 筆陣圖書後∣예학명 瘞鶴銘∣낙신부 洛神賦∣지영(智永) 천문(千文) 智永千文∣여남공주명 汝南公主銘∣구양(歐陽) 소자천문(小字千文) 歐陽小字千文∣손과정(孫過庭) 초서(草書) 서보(書譜) 孫過庭草書書譜∣장진첩(藏眞帖)·율공첩(律公帖) 藏眞、律公帖∣성모첩 聖母帖∣하팔청감첩 賀八淸鑑帖∣장사사첩 長史四帖∣쟁좌위첩 爭坐位帖∣협주별가첩 峽州別駕帖∣녹포첩 鹿脯帖∣음부경서 陰符經序∣서현(徐鉉) 전서 천자문 徐鉉篆千字∣승원첩 昇元帖∣순화각첩 淳化閣帖∣담첩 潭帖∣여릉첩 廬陵帖∣청강첩 淸江帖∣검강첩 黔江帖∣무강첩 武岡帖∣오진첩 烏鎭帖∣복청첩 福淸帖∣풍양첩 澧陽帖∣채주첩 蔡州帖∣팽주첩 彭州帖∣대관첩 大觀帖∣속각첩 續閣帖∣강첩 絳帖∣여주첩 汝州帖∣소흥(紹興) 국자첩(國子帖) 紹興國子帖∣무릉첩 武陵帖∣순희(淳熙) 수내사첩(修內司帖) 淳熙修內司帖∣순희(淳熙) 비각속첩(秘閣續帖) 淳熙秘閣續帖∣종정이기(鍾鼎彛器) 관지첩(款識帖) 鍾鼎彛器款識帖∣박고당첩 博古堂帖∣여지루첩 荔支樓帖∣사서당첩 賜書堂帖∣예장첩豫章帖∣이왕첩 二王帖∣갑수당첩 甲秀堂帖∣성봉루첩 星鳳樓帖∣백일첩 百一帖∣보진재첩 寶晉齋帖∣옥린당첩 玉麟堂帖∣군옥당첩 群玉堂帖∣봉서첩 鳳墅帖∣세채당첩 世綵堂帖∣천첩(泉帖∣동서당첩(東書堂帖∣보현당첩(寶賢堂帖∣하장첩(河莊帖∣정운관첩(停雲館帖∣초서집운(草書集韻∣초서요령(草書要領∣초운(草韻∣사성예운(四聲隸韻∣만안교기(萬安橋記∣취옹정기(醉翁亭記∣소흥(紹興) 미첩(米帖) 紹興米帖∣경재잠(敬齋箴) 敬齋箴∣송설첩 松雪帖
15)【부록】우리나라의 금석 【附】東國金石
(唐) 소정방(蘇定方) 평백제탑(平百濟㙮) 唐蘇定方平百濟㙮∣유인원(劉仁願) 기공비(紀功碑) 劉仁願紀功碑∣신라(新羅) 쌍계사(雙磎寺) 교시진감선사비(敎諡眞鑑禪師碑) 新羅雙磎敎諡眞鑑禪師碑∣최치원묘비 崔致遠墓碑∣홍류동(紅流洞) 제시석(題詩石) 紅流洞題詩石∣무장사비 䥐藏寺碑∣신행선사비 神行禪師碑∣창림사비 昌林寺碑∣화음석각 華陰石刻∣강당사비 講堂寺碑∣진흥왕(眞興王) 순수(巡狩) 정계비(定界碑) 眞興王巡狩定界碑∣진흥왕(眞興王) 북순비(北巡碑) 眞興王北巡碑∣낭혜화상탑 朗慧和尙塔∣개천사비 開天寺碑∣진경대사탑 眞境大師塔∣지증선사비 智證禪師碑∣낭공탑 朗空塔∣백월서운탑 白月棲雲塔∣봉덕사(奉德寺) 종명(鍾銘) 奉德寺鍾銘∣최고운(崔孤雲) 사적비(事蹟碑) 崔孤雲事蹟碑∣신라(新羅) 태종릉비(太宗陵碑) 新羅太宗陵碑∣번길묘비 番吉廟碑∣김유신(金庾信) 묘비(墓碑) 金庾信墓碑∣고려(高麗) 태조릉비(太祖陵碑) 高麗太祖陵碑∣진공선사비 眞空禪師碑∣현화사(玄化寺) 창건비(創建碑) 玄化寺創建碑∣보현사(普賢寺) 창건비(創建碑) 普賢寺創建碑∣법경대사(法鏡大師) 혜광탑(慧光塔) 法鏡大師慧光塔∣도선선사비 道詵禪師碑∣인각사(麟角寺)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 麟角寺普覺國師碑∣선림원(禪林院) 홍각선사비(弘覺禪師碑) 禪林院弘覺禪師碑∣직지사(直旨寺) 대장당기비(大藏堂記碑) 直旨寺大藏堂記碑∣정토사(淨土寺) 법경대사(法鏡大師) 자등탑(慈登塔) 淨土寺法鏡大師慈登塔∣대안사(大安寺) 광자대사비(廣慈大師碑) 大安寺廣慈大師碑∣무위사비 無爲寺碑∣광조사(廣照寺) 진철대사비(眞徹大師碑) 廣照寺眞徹大師碑∣보리사(菩提寺) 대경대사(大鏡大師) 현기탑(玄機塔) 菩提寺大鏡大師玄機塔∣흥녕사비 興寧寺碑∣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 갈기(碣記) 奉先弘慶寺碣記∣거돈사(居頓寺) 승묘선사비(勝妙禪師碑) 居頓寺勝妙禪師碑∣영통사(靈通寺) 대각국사비(大覺國師碑) 靈通寺大覺國師碑∣반야사(般若寺) 원경화상비(元景和尙碑) 般若寺元景和尙碑∣분황사(芬皇寺) 화쟁국사비(和諍國師碑) 芬皇寺和諍國師碑∣영국사(寧國寺) 원각선사비(圓覺禪師碑) 寧國寺圓覺禪師碑∣문수원기 文殊院記∣승가굴(僧伽窟) 중수비(重修碑) 僧伽窟重修碑∣북룡사비 北龍寺碑∣단속사(斷俗寺) 대감국사비(大鑑國師碑) 斷俗寺大鑑國師碑∣고달원(高達院) 원종대사비(圓宗大師碑) 高達院圓宗大師碑∣봉암사(鳳巖寺) 정진대사비(靜眞大師碑) 鳳巖寺靜眞大師碑∣법천사(法泉寺) 지광탑(智光塔) 法泉寺智光塔∣승(僧) 도진탑(道眞塔) 僧道眞塔∣월남사비 月南寺碑∣보림사(寶林寺) 보조선사비(普照禪師碑) 寶林寺普照禪師碑∣청평산(淸平山) 각자(刻字) 淸平山刻字∣원(元) 영종(英宗) 사시비(捨施碑) 元英宗捨施碑∣원(元) 태정황후(泰定皇后) 장경비(藏經碑) 元泰定皇后藏經碑∣월정사비 月精寺碑∣영원사(瑩原寺) 보감국사비(寶鑑國師碑) 瑩原寺寶鑑國師碑∣연복사(演福寺) 종명(鍾銘) 演福寺鍾銘∣이지현비 梨旨縣碑∣장안사비 長安寺碑∣연곡사(燕谷寺) 현각선사비(玄覺禪師碑) 燕谷寺玄覺禪師碑∣지곡사(智谷寺) 진관선사비(眞觀禪師碑) 智谷寺眞觀禪師碑∣오대사(五臺寺) 수륙정사비(水陸精社碑) 五臺寺水陸精社碑∣단속사(斷俗寺) 진정대사비(眞定大師碑) 斷俗寺眞定大師碑∣수미사(須彌寺) 무염국사비(無染國師碑) 須彌寺無染國師碑∣보광사(普光寺) 원명국사비(圓明國師碑) 普光寺圓明國師碑∣법주사(法住寺) 자정국사비(法住寺慈淨國師碑) 法住寺慈淨國師碑∣혜덕왕사비 慧德王師碑∣지공선사비 指空禪師碑∣나옹(懶翁) 석종기(石鐘記) 懶翁石鐘記∣나옹선사비 懶翁禪師碑∣매향비 埋香碑∣신륵사(神勒寺) 대장각(大藏閣) 장경비(藏經碑) 神勒寺大藏閣藏經碑∣노국(魯國) 대장공주(大長公主) 묘비(墓碑) 魯國大長公主墓碑∣창성사(彰聖寺) 천희선사비(千熙禪師碑) 彰聖寺千熙禪師碑∣칠장사(七長寺)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 七長寺慧炤國師碑∣강당사(講堂寺) 법인사(法印師) 보승탑(寶乘塔) 講堂寺法印師寶乘塔∣동화사(桐華寺) 홍진국사비(弘眞國師碑) 桐華寺弘眞國師碑∣선봉사(仙鳳寺) 승통석후비(僧統釋煦碑) 仙鳳寺僧統釋煦碑∣용문사(龍門寺) 중수비(重修碑) 龍門寺重修碑∣양릉정비 陽陵井碑∣선죽교각 善竹橋刻∣탁타교각 槖駝橋刻∣본조(本朝) 천문도(天文圖) 석각(石刻) 本朝天文圖石刻∣건원릉비 健元陵碑∣헌릉비 獻陵碑∣영릉비 英陵碑∣관왕묘비 關王廟碑∣어제어필관왕묘비 御製御筆關王廟碑∣양경리거사비 楊經理去思碑∣양경리비 楊經理碑∣태학정비 太學庭碑∣어제(御製) 어필(御筆) 태학비(太學碑) 御製御筆太學碑∣흥천사(興天寺) 종명(鍾銘) 興天寺鍾銘∣원각사비 圓覺寺碑∣원각사비 又碑∣무학선사비 無學禪師碑∣태조대왕(太祖大王) 황산(荒山) 대첩비(大捷碑) 太祖大王荒山大捷碑∣유점사(楡岾寺) 종명(鍾銘) 楡岾寺鍾銘∣소공대비 召公臺碑∣진도독(陳都督) 마애비(磨崖碑) 陳都督磨崖碑∣연복사탑(演福寺塔) 중수비(重修碑) 演福寺塔重修碑∣청룡사(靑龍寺)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 靑龍寺普覺國師碑∣월정사비 月精寺碑∣이충무(李忠武) 전승비(戰勝碑) 李忠武戰勝碑∣신장절(申壯節) 묘비(廟碑) 申壯節廟碑∣숭인전비 崇仁殿碑∣야은(冶隱) 지주비(砥柱碑) 冶隱砥柱碑∣권(權) 도원수(都元帥) 전승비(戰勝碑) 權都元帥戰勝碑∣도갑사비 道岬寺碑∣조포저(趙浦渚) 구황비(捄荒碑) 趙浦渚捄荒碑∣정암(靜菴) 적거(謫居) 유허비(遺墟碑) 靜菴謫居遺墟碑∣노량(露粱) 대첩비(大捷碑) 露粱大捷碑∣만경리세덕(萬經理世德) 승전비(勝戰碑) 萬經理世德勝戰碑∣동해(東海) 퇴조비(退潮碑) 東海退潮碑∣심원사(深源寺) 석(釋) 경헌(敬軒) 사리비(舍利碑) 深源寺釋敬軒舍利碑∣심원사(深源寺) 석(釋) 학린(學璘) 사리비(舍利碑) 深源寺釋學璘舍利碑∣동래(東萊) 충렬사비(忠烈祠碑) 東萊忠烈祠碑∣홍양(洪陽) 정란비(靖亂碑) 洪陽靖亂碑∣동파당대사비(東坡堂大師碑) 東坡堂大師碑∣기암당(奇巖堂) 법견대사비(法堅大師碑) 奇巖堂法堅大師碑∣송월당대사비 松月堂大師碑∣서산대사비 西山大師碑∣편양당대사비 鞭羊堂大師碑∣허백당대사비 虛白堂大師碑∣풍담대사비 楓潭大師碑∣풍악당선사비 楓嶽堂禪師碑∣사선정(四仙亭) 유기(遊記) 四仙亭遊記∣만폭동(萬瀑洞) 석각(石刻) 萬瀑洞石刻∣양봉래(楊蓬萊) 석각(石刻) 楊蓬萊石刻∣조종암(朝宗巖) 석각(石刻) 朝宗巖石刻∣화양동(華陽洞) 석각(石刻) 華陽洞石刻∣삼일포(三日浦) 석각(石刻) 三日浦石刻∣유제독(劉提督) 제명(題名) 석각(石刻) 劉提督題名石刻∣이목은(李牧隱) 묘비(墓碑) 李牧隱墓碑∣고려(高麗) 서시중릉비(徐侍中稜碑) 高麗徐侍中稜碑∣민안인묘비 閔安仁墓碑∣성석린(成石璘) 묘표(墓表) 成石璘墓表∣심온(沈溫) 묘표(墓表) 沈溫墓表∣윤자운(尹子雲) 묘비(墓碑) 尹子雲墓碑∣강석덕(姜碩德) 묘표(墓表) 姜碩德墓表∣신숙주(申叔舟) 묘표(墓表) 申叔舟墓表∣정포은(鄭圃隱) 묘갈(墓碣) 鄭圃隱墓碣∣정포은 묘비(墓碑) 又碑∣이수언(李粹彦) 묘갈(墓碣) 李粹彦墓碣∣한계희(韓繼禧) 묘비(墓碑) 韓繼禧墓碑∣황희(黃喜) 묘비(墓碑) 黃喜墓碑∣성녕대군(誠寧大君) 묘비(墓碑) 誠寧大君墓碑∣허조(許稠) 묘비(墓碑) 許稠墓碑∣한계미(韓繼美) 묘갈(墓碣) 韓繼美墓碣∣송세량(宋世良) 묘갈(墓碣) 宋世良墓碣∣영응대군(永膺大君) 묘비(墓碑) 永膺大君墓碑∣양성지(梁誠之) 묘비(墓碑) 梁誠之墓碑∣한확(韓確) 묘비(墓碑) 韓確墓碑∣상붕남(尙鵬南) 묘갈(墓碣) 尙鵬南墓碣∣서사가(徐四佳) 묘비(墓碑) 徐四佳墓碑∣윤형(尹炯) 묘비(墓碑) 尹炯墓碑∣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묘비(墓碑) 德興大院君墓碑∣영순군(永順君) 묘비(墓碑) 永順君墓碑∣정지운(鄭之雲) 묘갈(墓碣) 鄭之雲墓碣∣신거관(愼居寬) 묘갈(墓碣) 愼居寬墓碣∣상진(尙震) 묘비(墓碑) 尙震墓碑∣노우명(盧友明) 묘갈(墓碣) 盧友明墓碣∣이명(李蓂) 묘비(墓碑) 李蓂墓碑∣홍부(洪溥) 묘갈(墓碣) 洪溥墓碣∣임추(任樞) 묘비(墓碑) 任樞墓碑∣권경우(權景祐) 묘갈(墓碣) 權景祐墓碣∣권근(權近) 묘비(墓碑) 權近墓碑∣정광필(鄭光弼) 묘비(墓碑) 鄭光弼墓碑∣성청송(成聽松) 묘갈(墓碣) 成聽松墓碣∣조정암(趙靜菴) 묘비(墓碑) 趙靜菴墓碑∣성세순(成世純) 묘비(墓碑) 成世純墓碑∣광평대군(廣平大君) 묘비(墓碑) 廣平大君墓碑∣조중봉(趙重峯) 순의비(殉義碑) 趙重峯殉義碑∣이희검(李希儉) 묘비(墓碑) 李希儉墓碑∣윤변(尹忭) 묘갈(墓碣) 尹忭墓碣∣서화담(徐花潭) 묘비(墓碑) 徐花潭墓碑∣이공집(李公楫) 묘비(墓碑) 李公楫墓碑∣기응세(奇應世) 묘갈(墓碣) 奇應世墓碣∣기응세(奇應世) 묘표(墓表) 又墓表∣이몽량(李夢良) 묘비(墓碑) 李夢良墓碑∣황대수(黃大受) 묘비(墓碑) 黃大受墓碑∣허엽(許曄) 묘표(墓表) 許曄墓表∣박소(朴紹) 묘갈(墓碣) 朴紹墓碣∣윤두수(尹斗壽) 묘비(墓碑) 尹斗壽墓碑∣윤두수(尹斗壽) 묘표(墓表) 又墓表∣율곡(栗谷) 묘비(墓碑) 栗谷墓碑∣안종도(安宗道) 묘비(墓碑) 安宗道墓碑∣이송복(李松福) 묘비(墓碑) 李松福墓碑∣윤방(尹昉) 묘비(墓碑) 尹昉墓碑∣홍담(洪曇) 묘비(墓碑) 洪曇墓碑∣이순신(李舜臣) 묘비(墓碑) 李舜臣墓碑∣한백겸(韓百謙) 묘비(墓碑) 韓百謙墓碑∣백인걸(白仁傑) 묘비(墓碑) 白仁傑墓碑∣유순익(柳舜翼) 묘갈(墓碣) 柳舜翼墓碣∣이완(李浣) 묘표(墓表) 李浣墓表∣정구(鄭逑) 묘갈(墓碣) 鄭逑墓碣∣홍명원(洪命元) 묘갈(墓碣) 洪命元墓碣∣김식(金湜) 묘비(墓碑) 金湜墓碑∣윤사정(尹士貞) 묘갈(墓碣) 尹士貞墓碣∣이현석(李玄錫) 묘비(墓碑) 李玄錫墓碑
16) 【부록】우리나라의 묵적 【附】東國墨蹟
김생(金生)의 글씨 金生書∣영업(靈業)의 글씨∣靈業書∣탄연(坦然)의 글씨 坦然書∣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씨 安平大君書∣김구(金絿)의 글씨 自菴書∣양사언(楊士彦)의 글씨 蓬萊書∣한호(韓濩)의 글씨 石峰書∣윤순(尹淳)의 글씨 白下書∣이광사(李匡師)의 글씨 圓嶠書
이운지 권제6 怡雲志卷第六 임원십육지 104 林園十六志一百四
골동품과 예술 작품 감상(하) 藝翫鑑賞(下)
1. 명화 名畫
1) 그림 감상 論賞鑑
2) 그림 보는 법 看畫法
3) 옛 그림의 진품은 전하지 않는다 論古畫眞迹不傳
4) 옛 그림에 사용한 비단[絹] 論古畫絹
5) 옛 그림의 색 論古畫色
6) 그림 수집 때 고려할 등급 收蓄品第
7) 분본(粉本, 밑그림) 論粉本
8) 역대의 그림 論歷代畫
9) 장배법(裝褙法, 장황법) 裝褙法
10) 그림 거는 법 挂法
11) 그림 보관하는 법 藏法
12) 그림을 잘 관리하는 여러 방법 護惜諸法
2. 송나라와 원나라 이후의 그림 족자 宋、元以後畫幀
송 휘종(徽宗)의〈도원도(桃源圖)〉 宋徽宗《桃源圖》∣송 휘종의〈오원도(烏猿圖)〉 宋徽宗《烏猿圖》∣명 선종(宣宗)의〈어필흑원도(御筆黑猿圖)〉 明宣廟《御筆黑猿圖》∣동원(董源)의〈계산고은도(溪山高隱圖)〉 董源《溪山高隱圖》∣동원의 〈산구대도도(山口待渡圖)〉 《山口待渡圖》∣곽충서(郭忠恕)의 〈피서궁도(避暑宮圖)〉 郭忠恕《避暑宮圖》∣이성(李成)의 〈군봉적설도(群峯積雪圖)〉 李成《群峯積雪圖》∣거연(巨然)의 〈산수첩(山水帖)〉巨然《山水帖》∣거연의 〈노사도(鷺鷥圖)〉 《鷺鷥圖》∣범관(范寬)의 〈산수권(山水卷)〉 范寬《山水卷》∣곽희(郭熙)의 〈고목한천도(古木寒泉圖)〉 郭熙《古木寒泉圖》∣곽희의 산수화 두 화폭 山水兩幅∣유송년(劉松年)의 〈침이부과도(沈李浮瓜圖)〉 劉松年《沈李浮瓜圖》∣하징(何澄)의 〈귀거래사도(歸去來辭圖)〉 何澄《歸去來辭圖》∣역원길(易元吉)의 〈후묘도(猴貓圖)〉 易元吉《猴貓圖》∣조천리의 〈해천낙조도(海天落照圖)〉 趙千里《海天落照圖》∣이공린(李公麟)의〈마도(馬圖)〉 李公麟《馬圖》∣이공린의 〈연사도(蓮社圖)〉 《蓮社圖》∣미불의 〈운기루도(雲起樓圖)〉 米芾《雲起樓圖》∣미불의 산수화폭(山水畫幅) 米芾山水幅∣문동(文同)의〈묵죽(墨竹)〉 文湖州《墨竹》∣소식의 〈묵죽도(墨竹圖)〉 東坡《墨竹》∣소식의 〈해도(蟹圖)〉 東坡《蟹圖》∣양무구(楊無咎)의 〈죽첩(竹帖)〉 楊補之《竹帖》∣이적(李迪)의 〈녹도(鹿圖)〉 李迪《鹿圖》∣고극공(高克恭)의 〈산수폭(山水幅)〉 高房山《山水幅》∣조맹견(趙孟堅)의 〈산수권(山水卷)〉 趙子固《山水卷》∣조맹부의 〈도적도(陶蹟圖)〉 趙松雪《陶蹟圖》∣조맹부의 〈권수도(倦繡圖)〉 《倦繡圖》∣왕몽(王蒙)의 〈계산고일도(溪山高逸圖)〉 王叔明《溪山高逸圖》∣왕몽의 〈산수폭(山水幅)〉 《山水幅》∣왕몽의 〈묵죽(墨竹)〉 《墨竹》∣왕몽의 〈방거연산수폭(仿巨然山水幅)〉 《仿巨然山水幅》∣오진(吳鎭)의 〈묵죽(墨竹)〉 梅道人《墨竹》∣오진의 〈산수폭(山水幅)〉 《山水幅》∣왕연(王淵)의 〈바라화도(波羅花圖)〉 王若水《波羅花圖》∣황공망(黃公望)의 〈부춘산도(富春山圖)〉 黃子久《富春山圖》∣황공망의 〈천태석벽도(天台石壁圖)〉 《天台石壁圖》∣황공망과 왕연의 합작 산수폭(山水幅) 黃、王合作山水幅∣왕진붕(王振鵬)의 〈선산누각도(仙山樓閣圖)〉 王孤雲《仙山樓閣圖》∣예찬(倪瓚)의 〈십만도(十萬圖)〉 倪雲林《十萬圖》∣예찬의 〈광려청효도(匡廬淸曉圖)〉 《匡廬淸曉圖》∣예찬의 〈낙포임거도(樂圃林居圖)〉 《樂圃林居圖》∣명나라 서분(徐賁)의 〈갈필죽석(渴筆竹石)〉 明徐幼文《渴筆竹石》∣구영(仇英)의 〈이죽도(移竹圖)〉 仇實父《移竹圖》∣심주(沈周)의 〈풍우귀주도(風雨歸舟圖)〉 沈石田《風雨歸舟圖》∣심주의 〈도화정(桃花幀)〉 《桃花幀》∣문징명의 〈수묵남궁도(水墨南宮圖)〉 文衡山《水墨南宮圖》∣황도주(黃道周)의 〈고송권(古松卷)〉 黃石齋《古松卷》∣이유방(李流芳)의 〈선책(扇冊)〉 李長蘅《扇冊》∣나빙(羅聘)의 〈오청도(五淸圖)〉 羅兩峯《五淸圖》
3. 【부록】우리나라의 화첩 【附】東國畫帖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이조화명도(二鳥和鳴圖)〉 冲菴《二鳥和鳴圖》∣학림정(鶴林正) 이경윤(李慶胤)의 〈석상분향도(石上焚香圖)〉 鶴林《石上焚香圖》∣탄은(灘隱) 이정(李霆)의 사죽(寫竹, 사생기법으로 그린 대나무) 灘隱寫竹∣허주재(虛舟齋) 이징(李澄)의 〈노안도(蘆雁圖)〉 虛舟齋《蘆雁圖》∣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춘산등림도(春山登臨圖)〉 謙齋《春山登臨圖》∣정선의 산수폭(山水幅) 山水幅∣정선의 〈대은암도(大隱嵒圖)〉 《大隱嵒圖》∣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금강산도(金剛山圖)〉 玄齋《金剛山圖》∣심사정의 〈화조초충도(花鳥草蟲圖)〉 《花鳥草蟲圖》∣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의 〈춘지세마도(春池洗馬圖)〉 駱西《春池洗馬圖》∣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의 〈선인취적도(仙人吹笛圖)〉 毫生館《仙人吹笛圖》∣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만접도(萬蝶圖)〉 圓嶠《萬蝶圖》∣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난죽(蘭竹)〉 豹菴《蘭竹》∣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금강산도(金剛山圖)〉 檀園《金剛山圖》∣김홍도의 〈삼성도(三星圖)〉 《三星圖》∣김홍도의 〈음산대렵도(陰山大獵圖)〉 《陰山大獵圖》∣김홍도의 이속도(俚俗圖, 풍속도) 俚俗圖∣이명기(李命基)의 〈호접도(蝴蝶圖) 李命基《蝴蝶圖》∣이인문(李寅文)의 〈산수폭〉 古松流水館《山水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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