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참사랑의 인술을 펼친 의사 장기려. 이 책은 그의 아름다운 삶을 한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이야기이다. 기오는 다리가 많이 아프지만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다. 어느 날 엄마는 돈 없는 사람들에게 치료비를 아주 조금만 받는다는 복음병원의 소문을 듣고 기오를 데리고 간다. 거기서 기오는 장기려 박사를 만난다. 기오는 수술 전에 자신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며, 수술 후에도 병실에 찾아와 자신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장 박사에게 호기심과 동시에 깊은 정을 느낀다. 장 박사는 어려운 환자들이 북적거리는 병원에서 늘 따뜻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보고, 돈이 없는 사람은 몰래 퇴원시키기도 하며 희생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며 산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바보 의사라고 한다. 어느 날 장 박사의 집 앞을 기웃거리던 기오는 무의촌진료를 다녀온 박사를 만나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장 박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의료보험을 만들고 싶다는 장 박사의 꿈도 듣게 된다. 그렇게 장 박사의 삶에 큰 감명을 받은 기오는 훗날 박사의 뜻을 이어 받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참사랑의 의술을 펼치는 의사가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며 그를 기리는 사람이 많아지는 인물이 있다. ‘웅진 큰인물 그림책’ 시리즈가 발견한 인물 장기려가 바로 그렇다. 그림책으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의사 장기려. 그를 가리킬 때 흔히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이 말이 그다지 탐탁치는 않다. 그들에게 슈바이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장기려가 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장기려의 아름다운 삶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전해준다.
“당신은 성인(聖人)이 아니면 바보일거요.”
장기려가 척추 결핵으로 입원한 춘원 이광수의 주치의가 된 적이 있었다. 이때 장기려를 곁에서 지켜본 이광수가 장기려에게 한 말이다. 장기려는 환자의 신분이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오직 정성으로 돌보며, 환자의 마음까지 위로하는 다정한 의사였다. 최고의 의사라 명성이 자자했지만 수술하기 전에는 다 아는 내용이라도 꼭 다시 공부하며,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이광수는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을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돌보는 장기려를 진정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후에 이광수가 발표한 소설 <사랑>의 남자 주인공 안빈의 모델이 장기려일 것이라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장기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지만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려내고 싶었던 이광수에게 장기려는 그 모델로 넘치도록 충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장기려에 관한 일화들 중에는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비를 대신 내 주는 것은 장기려에게 별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길에서 거지를 보면 집으로 데려다 밥을 먹였고,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그런 날은 그의 부인은 밥을 굶기가 일쑤였다. 이름난 의사였지만 벌이는 모두 가난한 환자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들어가 정작 장기려의 부인은 삯바느질을 하며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다.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와서는 길에서 죽어가는 행려병자들을 끌어 모아 밤낮으로 보살폈고, 복음병원의 모태가 된 복음진료소를 연 것도 난리 통에 돈 없고 아픈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무료 병원을 세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복음병원 시절에도 그의 적자(赤字) 의사, 바보 의사의 삶은 계속 된다. 돈이 없어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를 차비까지 주어서 사무장 몰래 뒷문으로 내보낸 일, 거지에게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통째로 내어준 일도 있다. 강의와 진료 때문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바쁘고 고단한 생활 중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무의촌을 찾아가 진료를 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장기려. 그에 대한 함석헌의 말은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데 평생을 바친 바보 의사 장기려를 잘 보여준다.
“나는 감히 누구를 내 친구라고 마음 놓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기려 박사만은 내가 마음 놓고 내 좋은 친구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지극히 적은 수의 친구 중의 한 분입니다. 내가 보기엔 돈의 욕심도, 권세의 욕심도, 명예의 욕심도, 사업의 욕심도 없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하나, 어떻게든지 남에게 좋은 일을 하자는 욕심일 것입니다.”
위대한 의학자, 선각자 의사 장기려
한평생 박애와 봉사의 삶을 살았던 장기려, 그는 한국 외과의 기술적인 발전, 선진적인 제도의 창안과 실행으로 한국 의료계에 사회봉사 못지않은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국내 최초로 간에서 암세포를 잘라내는 수술에 성공했으며 이후 간 대량 절제 수술에도 최초로 성공했다. 대한간학회는 이 날을 기념해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가 된 청십자 의료보험의 실현은 가난한 환자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 받게 해 주고 싶다는 그의 고민의 결과였다. 이러한 헌신적이고 실제적인 사회봉사의 노력과 사랑의 실천이 인정을 받아 장기려는 1979년 동양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라몬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서거 10주기인 2005년,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장기려를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자에 선정했다. 이것은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탁월한 과학기술 업적으로 국가발전과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한 과학기술인을 기리는 상이다. 지금까지 19명이 선정되었는데, 오는 4월 이후에는 장기려의 공적과 유물 등 관련 자료들을 국립서울과학관 명예의 전당에서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베풀면 북에 있는 우리 가족도 누군가가 도와줄 거라 믿는다.”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었던 두 기둥은 깊은 신앙심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었다. 장기려는 누가 삶의 목적을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기독교 이상주의’로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진학을 결정할 당시 장기려는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의과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의과대학이 다른 대학보다 학비가 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방황 때문에 성적이 훨씬 못 미쳤다. 장기려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의사만 되게 해 주신다면, 의사 한 번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하나님 앞에서의 이 약속을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한평생 성실히 지키며 살았다. 그의 삶을 지배했던 유일무이한 기본원칙은 기독교적 가치관이었다.
그는 한국 전쟁 중에 둘째 아들만 데리고 피난을 내려온다. 얼마 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은 40년이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은 일생을 북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혼자 지내다 1995년 크리스마스에 숨을 거둔다. 그는 집안의 가장 없이 힘들게 지낼 가족들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저렸고, 그래서 병원에 오는 어려운 환자들을 보면 모두 가족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장 박사는 자신이 그 환자들을 잘 돌보면 누군가 자신의 가족도 잘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이 추진될 당시 정부에서 사회 문화계 인사들에게 특별히 가족 상봉을 주선하며 장기려에게도 제안을 했다.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하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함께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리가 아니라고, 다른 이산가족들과 떳떳이 고향을 찾겠다며 마다했다. 그러다 결국은 평생 그리던 아내의 얼굴을 한번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슴 아픈 가족사이지만 장기려에게는 그것이 환자들을 더욱 헌신적으로 돌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삶
이 책 <선생님, 바보 의사 선생님>은 한 아이의 눈에 비친 의사 장기려 이야기로 한 사람의 아름다운 삶이 타인에게 주는 감동과 그 감동이 어떻게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책에 등장하는 기오의 이야기는 장 박사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사연을 픽션으로 구성한 것으로 실제 장 박사에게 무료로 치료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또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장 박사의 삶에 감동을 받아 자신도 그 곁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가슴으로 느낀 것은 머리로 이해된 것보다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그렇게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세대를 이어 전해진다.
“우리 주위 어딘가에 병든 이웃과 가난한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장기려 박사가 남기고 떠난 말이다. 부족한 것이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세상 어딘가 나와 똑같은 아이가 생존의 기본적인 조건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생소한 일일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과 또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편안함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낯선 이들과 이웃이 되어 만나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향한 조건 없는 건강한 애정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이 책은 한 인물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그렇게 책을 읽는 사이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자라기를 기대해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며 그를 기리는 사람이 많아지는 인물이 있다. ‘웅진 큰인물 그림책’ 시리즈가 발견한 인물 장기려가 바로 그렇다. 그림책으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의사 장기려. 그를 가리킬 때 흔히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이 말이 그다지 탐탁치는 않다. 그들에게 슈바이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장기려가 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장기려의 아름다운 삶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전해준다.
“당신은 성인(聖人)이 아니면 바보일거요.”
장기려가 척추 결핵으로 입원한 춘원 이광수의 주치의가 된 적이 있었다. 이때 장기려를 곁에서 지켜본 이광수가 장기려에게 한 말이다. 장기려는 환자의 신분이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오직 정성으로 돌보며, 환자의 마음까지 위로하는 다정한 의사였다. 최고의 의사라 명성이 자자했지만 수술하기 전에는 다 아는 내용이라도 꼭 다시 공부하며,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이광수는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을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돌보는 장기려를 진정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후에 이광수가 발표한 소설 <사랑>의 남자 주인공 안빈의 모델이 장기려일 것이라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장기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지만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려내고 싶었던 이광수에게 장기려는 그 모델로 넘치도록 충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장기려에 관한 일화들 중에는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비를 대신 내 주는 것은 장기려에게 별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길에서 거지를 보면 집으로 데려다 밥을 먹였고,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그런 날은 그의 부인은 밥을 굶기가 일쑤였다. 이름난 의사였지만 벌이는 모두 가난한 환자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들어가 정작 장기려의 부인은 삯바느질을 하며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다.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와서는 길에서 죽어가는 행려병자들을 끌어 모아 밤낮으로 보살폈고, 복음병원의 모태가 된 복음진료소를 연 것도 난리 통에 돈 없고 아픈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무료 병원을 세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복음병원 시절에도 그의 적자(赤字) 의사, 바보 의사의 삶은 계속 된다. 돈이 없어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를 차비까지 주어서 사무장 몰래 뒷문으로 내보낸 일, 거지에게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통째로 내어준 일도 있다. 강의와 진료 때문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바쁘고 고단한 생활 중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무의촌을 찾아가 진료를 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장기려. 그에 대한 함석헌의 말은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데 평생을 바친 바보 의사 장기려를 잘 보여준다.
“나는 감히 누구를 내 친구라고 마음 놓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기려 박사만은 내가 마음 놓고 내 좋은 친구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지극히 적은 수의 친구 중의 한 분입니다. 내가 보기엔 돈의 욕심도, 권세의 욕심도, 명예의 욕심도, 사업의 욕심도 없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하나, 어떻게든지 남에게 좋은 일을 하자는 욕심일 것입니다.”
위대한 의학자, 선각자 의사 장기려
한평생 박애와 봉사의 삶을 살았던 장기려, 그는 한국 외과의 기술적인 발전, 선진적인 제도의 창안과 실행으로 한국 의료계에 사회봉사 못지않은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국내 최초로 간에서 암세포를 잘라내는 수술에 성공했으며 이후 간 대량 절제 수술에도 최초로 성공했다. 대한간학회는 이 날을 기념해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가 된 청십자 의료보험의 실현은 가난한 환자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 받게 해 주고 싶다는 그의 고민의 결과였다. 이러한 헌신적이고 실제적인 사회봉사의 노력과 사랑의 실천이 인정을 받아 장기려는 1979년 동양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라몬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서거 10주기인 2005년,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장기려를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자에 선정했다. 이것은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탁월한 과학기술 업적으로 국가발전과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한 과학기술인을 기리는 상이다. 지금까지 19명이 선정되었는데, 오는 4월 이후에는 장기려의 공적과 유물 등 관련 자료들을 국립서울과학관 명예의 전당에서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베풀면 북에 있는 우리 가족도 누군가가 도와줄 거라 믿는다.”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었던 두 기둥은 깊은 신앙심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었다. 장기려는 누가 삶의 목적을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기독교 이상주의’로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진학을 결정할 당시 장기려는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의과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의과대학이 다른 대학보다 학비가 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방황 때문에 성적이 훨씬 못 미쳤다. 장기려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의사만 되게 해 주신다면, 의사 한 번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하나님 앞에서의 이 약속을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한평생 성실히 지키며 살았다. 그의 삶을 지배했던 유일무이한 기본원칙은 기독교적 가치관이었다.
그는 한국 전쟁 중에 둘째 아들만 데리고 피난을 내려온다. 얼마 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은 40년이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은 일생을 북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혼자 지내다 1995년 크리스마스에 숨을 거둔다. 그는 집안의 가장 없이 힘들게 지낼 가족들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저렸고, 그래서 병원에 오는 어려운 환자들을 보면 모두 가족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장 박사는 자신이 그 환자들을 잘 돌보면 누군가 자신의 가족도 잘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이 추진될 당시 정부에서 사회 문화계 인사들에게 특별히 가족 상봉을 주선하며 장기려에게도 제안을 했다.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하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함께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리가 아니라고, 다른 이산가족들과 떳떳이 고향을 찾겠다며 마다했다. 그러다 결국은 평생 그리던 아내의 얼굴을 한번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슴 아픈 가족사이지만 장기려에게는 그것이 환자들을 더욱 헌신적으로 돌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삶
이 책 <선생님, 바보 의사 선생님>은 한 아이의 눈에 비친 의사 장기려 이야기로 한 사람의 아름다운 삶이 타인에게 주는 감동과 그 감동이 어떻게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책에 등장하는 기오의 이야기는 장 박사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사연을 픽션으로 구성한 것으로 실제 장 박사에게 무료로 치료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또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장 박사의 삶에 감동을 받아 자신도 그 곁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가슴으로 느낀 것은 머리로 이해된 것보다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그렇게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세대를 이어 전해진다.
“우리 주위 어딘가에 병든 이웃과 가난한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장기려 박사가 남기고 떠난 말이다. 부족한 것이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세상 어딘가 나와 똑같은 아이가 생존의 기본적인 조건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생소한 일일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과 또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편안함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낯선 이들과 이웃이 되어 만나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향한 조건 없는 건강한 애정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이 책은 한 인물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그렇게 책을 읽는 사이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자라기를 기대해 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상희
1960년에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이후 시와 그림책 글을 쓰고, 외국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간 시집 『잘 가라 내 청춘』『벼락무늬』그림책 『내가 정말 사자일까?』『도솔산 선운사』『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등을 썼고, 『작은 기차』『최고로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씩씩한 꼬마 기관차』를 비롯한 많은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 살면서 어린이를 위한 독서 운동으로 ''패랭이꽃 그림책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린이 : 김명길
1972년에 태어나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리며 장기려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또 전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린 책으로 『개구리 논으로 오세요』『밤섬이 있어요』『사막에서 북극까지 첫걸음 동물백과』등이 있습니다.
1960년에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이후 시와 그림책 글을 쓰고, 외국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간 시집 『잘 가라 내 청춘』『벼락무늬』그림책 『내가 정말 사자일까?』『도솔산 선운사』『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등을 썼고, 『작은 기차』『최고로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씩씩한 꼬마 기관차』를 비롯한 많은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 살면서 어린이를 위한 독서 운동으로 ''패랭이꽃 그림책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린이 : 김명길
1972년에 태어나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리며 장기려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또 전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린 책으로 『개구리 논으로 오세요』『밤섬이 있어요』『사막에서 북극까지 첫걸음 동물백과』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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