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는 발렌시아를 만났다
“그 해의 발렌시아를 떠올리면 나는 오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꿈이라고 하기엔 분명 1년여의 시간 동안 내 몸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신 곳이었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그 공간도 그 시간도 어딘지 아득한 느낌이 있다. 2018년의 스페인을 나는 꿈과 현실, 그 사이의 어디쯤인가로 기억한다.”
50여 개국 이상을 여행한 저자 한지은이 2018년 2월 스페인에서 운명처럼 만난 도시 ‘발렌시아’에서 보낸 꿈결 같은 한 해를 기록한 책이 바로 《스페인의 빨간 맛》이다. 정착기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긴 여행의 기록이며 다소 몽환적인 생활기다.
발렌시아에서 저자가 보낸 시간은 일상 같기도 했고 여행 같기도 했다. 그래서 성실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꿈틀꿈틀 일탈을 도모하고 있는 이들에게 청사진을,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휴식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신의 가슴속에 이미 살아 숨 쉬고 있는 여행을 불씨를 살려보자.
이 도시에서 빨래를 해야겠다
“오래 쉬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도시를 만나면 나는 그 도시에서 빨래를 돌리곤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발렌시아가 바로 그런 도시였다. 그즈음 나는 다음 여정에 대한 기약도 없이 발렌시아에서의 체류를 하루하루 늘려가고 있었다. 때마침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그리고 다시 스페인으로 이어진 긴 여정 동안 적잖은 빨랫감이 쌓여 있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그리고 다시 스페인으로 이어진 긴 여정의 끝에 도착한 발렌시아에서 저자가 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을 직감했었던 가장 처음의 순간은 바로 빨래를 돌리기로 결심했을 때였다. 블록 안에서 주택들이 자연히 서로의 후면들을 맞대고 있는 공간은 이곳 주택들의 ‘민낯’과도 같은 곳이다. 그 공간이 자못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곳에서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의 온유한 기운이 저자의 마음에도 평화를 가져다줄 것만 같았던 그날의 강한 예감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가 이 책의 내용이다. 이곳에서 빨래를 널고 화분을 키우고 바람을 맞고 주민들의 생활을 돌아보는 모습을 통해 스치듯 지나가는 여행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발렌시아의 매력을 느껴보자.
스페인의 빨간 맛
“이제 이곳은 토마토가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정도의 가벼운 사건 현장이 아니었다. 골목 일대가 ‘토마토 강’을 이룬, 그것도 무릎까지 차올라 깊고 진한 강을 이룬 대혼란의 장이었다. 진짜 토마토 싸움이 시작됐다.”
나라에도 색깔이 있을까. 그렇다면 아마 스페인의 색깔은 빨간색일 것 같다. 그것을 증명하는 사례 중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토마토로 강물을 이루는 장관이 펼쳐지는 ‘라 토마티나(La Tomatina)’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 축제에 참가한 저자는 달고 진한 빨간빛으로 오래도록 스페인을 기억하게 된다.
머리, 눈, 코, 귀가 전부 토마토로 뒤덮인 이토록 무질서한 유희의 현장! 태고의 낙원에 살던 사람들의 표정이 저토록 해맑았을까. 끝을 모르고 커져가는 사람들의 환성 소리가 스페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열을 짐작하게 한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었어!’라고 탄식하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분을 함께 느껴보자.
아아, 발렌시아여
“아마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발렌시아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 사실이 슬프지 않았다. 언제고 운명은 나를 다시금 이 도시와 만나게 하리란 은연한 예감이 내 안에 있었다. 2018년 2월에 우리의 첫 만남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 해를 살았어도 발렌시아에 대해 다 아는 것 같았지만 다 아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자에게 생소한 느낌을 주는 도시의 그 모든 요소들이 반가웠다. 보고 또 보아도 더 보고 싶은 발렌시아. 이미 여러 번 본 것 같고 이제 더 봐도 특별할 게 없을 것만 같지만, 바라볼 때마다 새롭고 바라볼수록 아름다웠던 불꽃놀이와도 같았다.
《스페인의 빨간 맛》을 통해 발렌시아에서의 단조롭고 느린 일상을 그대로 서울로 옮겨오기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생활 속의 소소한 것들을 돌아보고 소박한 만족을 구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운명 같은 여행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작가 소개
여행을 좋아한 부모님 덕에 배낭여행을 조기교육으로 배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틈이 나면 홀로 배낭을 꾸려 여행을 떠났고, 지금까지 짬짬이 5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대학생 시절, 남미 여행을 하고 싶어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 계기로 2010년 에콰도르의 한 지역 비영리기구에서 일했다. 중남미 지역 문화의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어 이후로도 해당 지역을 여러 차례 찾았고, 스페인어권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품고 지냈다.
2017년 2월 일터를 떠나 한 해 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2018년 2월 스페인에 당도했다. 《스페인의 빨간 맛》은 그곳에서 운명처럼 만난 도시 ‘발렌시아’에서 보낸 꿈결 같은 한 해를 기록한 책이다.
책, 영화, 음악, 그리고 식물을 좋아한다.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꿈꾼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서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고, 2020년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에서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다.
목 차
1. 여행의 시작
마음껏 사랑할 자유 | 그 여행자의 지갑 | 여행 아니면 이혼! | 목적지를 지운 항해의 끝에서 | 꿀 먹은 벙어리 | 나의 스페인어 이야기
2. 발렌시아는 언제나 맑음
빨래 | 무모한 시작 | 스패니시 아파트먼트 | 스페인 사람들을 만나보셨나요 | 의외의 꿀조합 | 화사한 행복 | 소로야가 그린 바다 | 발렌시아를 걷는 시간
3. 인연은 그렇게
가을이 오면 코르도바에 놀러 오세요 | 로즈메리 | 스페인의 빨간 맛 | 그녀는 어쩌다 축덕이 되었나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4. 도시와 나
나의 작은 숲 | 뮌헨 중앙역 | 발렌시아에선 길을 잃어도 괜찮아 | 그녀의 타투 | 우리가 불꽃놀이를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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