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주년 기념판 출간
2000년 5월 출간한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올해로 스무 살을 맞았다. 사실주의 동화가 우위를 점하던 시절, ‘우화’라는 낯선 형식에 ‘죽음’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어린이문학판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2010년 국내 동화로는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백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마당』은 2020년 출간 20주년을 맞아 지금껏 큰 사랑을 받아 온 김환영 화가의 그림으로 재편집한 20주년 기념판 양장본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마당』은 출간 당시에는 ‘꿈과 소망’ ‘모성’이라는 키워드로 어린이 독자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 뒤 우리 사회의 변화에 따라 『마당』은 닭과 오리라는 이족의 결합에서 ‘대안가족’ ‘다문화가족’ ‘새로운 공동체’라는 키워드를 읽어 내기도 하고, 폐계 암탉 잎싹의 당당한 홀로서기를 보여 주는 ‘페미니즘’ 동화로도 읽혔다. 또 잎싹과 나그네, 초록머리를 통해 ‘정체성’ ‘나다움’의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런가 하면 천적 관계에 있는 족제비와 잎싹이 어린 자식을 보호해야 하는 어른으로서 보여 준 ‘연대와 공감’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교과서 수록 동화로 읽었던 어린이 독자들이 성인이 된 지금, 『마당』을 다시 읽으면 어떤 키워드를 찾게 될까?
우리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읽히는 고전
이번엔 아마도 나그네와 초록머리가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족제비한테 날개를 물려 날 수 없게 된 청둥오리 ‘나그네’는 자기 무리를 따라 날아가지 못해 마당에 머무는 경계인으로 나온다. 알을 품어 병아리를 보겠다는 소망을 품었지만 결국 폐계로 버려진 잎싹을 구덩이에서 구해 준 나그네는 잎싹과 친구가 된다. ‘초록머리’는 잎싹이 품어 세상에 나온 오리로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고 지내다가 청둥오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나그네와 청둥오리는 둘 다 경계인, 소수자의 모습을 보여 주지만 방향성은 서로 다르다. 나그네가 무리에서 소외돼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면 초록머리는 당당하게 자신의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 잎싹을 비롯한 마당 식구들까지 모든 동물이 우리 사회의 인간 군상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시대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역동적이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고전이다.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지금 우리 모두의 문학
작가는 동물의 생태적 특성에 인간의 삶을 정교하게 입혔고, 잎싹과 초록머리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과 자유의지를 그려냈다. 독자들이 읽어 낸 ‘모성’은 결국 ‘소망’이었고, 그소망은 바로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며 왜 사는지에 대한 철학적 명제이기도 하다. 『마당』은 2000년대 초 급부상한 어린이문학에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한 작품이기도 하다. 당혹감으로 다가왔던, 잎싹이 족제비와 그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결말은 해피엔딩이라는 동화의 정석을 깨고 ‘죽음’을 전면에 내세워 어린이문학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고, 어린이만 읽는 책처럼 여겨졌던 동화를 어린이를 비롯해 어른들까지 즐길 수 있는 장르로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오직 알을 낳기 위해 존재했던 암탉은 스스로에게 ‘잎싹’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토록 소망하던 ‘마당’으로 나갔지만 그곳 역시 온갖 편견과 부조리한 세상임을 깨달은 잎싹은 저수지라는, 훨씬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이미 늙고 지쳤지만 야생 닭으로 존엄하게 삶을 마감한다. 평범하지만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은 이토록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하지만 잎싹의 이 위대한 여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인생의 큰 화두를 조용히 던진다.
이야기를 지을 때만 해도 작품을 창작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생각이 좀 다릅니다. 함께 살아갈 친구가 찾아온 거예요. 예술 작품에는 생명이 있다고 하지요. 나는 사실 이 말을 믿은 적은 없어요. 그러나 책 때문에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고 책을 읽고 나서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독자를 보면서 책이 납작한 물건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작가에게 창작이란 평생 좋아하고 짝이 될 수 있는 친구를 얻는 일입니다. - 작가의 말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의 힘찬 날갯짓
2000년 5월에 출간한 『마당』은 주인공 잎싹처럼 처음엔 평단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고, 교과서 등에 꾸준히 수록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5월 국내 창작동화로는 첫 밀리언셀러 작품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고, 연이어 100만부를 돌파한 작가의 『나쁜 어린이표』와 함께 축하 자리를 갖기도 했다. 그해 7월 오돌또기와 명필름 제작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했고,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다 관객 220만 명 동원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마당』은 전 세계 29개국으로 번역 출간한 작품으로, 2012년 폴란드 ‘올해의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미국 펭귄출판사에서 번역한 첫 번째 한국 작품이 되었다. 다음해 2014년에는 한국 작품 최초로 영국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마당』은 누적 판매 180만 부를 달성했다. 현재 판소리극이 제작 중인데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연극, 뮤지컬, 국악극 등 OMU(원소스멀티유즈)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특별한 그림
오늘의 『마당』을 있게 한 데는 그림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고학년 동화에서는 거의 시도한 적 없는 올 컬러 애니메이션 기법이 돋보이는 김환영 화가의 작업 덕이다. 당시 애니메이션회사 ‘오돌또기’를 그만두고 나와 애니메이션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적극 활용한 화가는 원고를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처럼 읽었다고 한다. 웅숭깊은 내용, 캐릭터들의 면면, 장면의 전개와 속도감, 다양한 공간 변화 등이 그런 애니메이션적인 상상 속으로 자신을 끌어넣었고, 그래서 그림도 평면이 아니라 3차원 카메라 시점으로 그렸다. 텍스트와 더불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그림 덕에 김환영 작가는 이후 안정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책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고, 그가 그린 『마당』 그림들은 지금도 여전히 새롭고 역동적이며 강인하면서도 따듯하다.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린이책 그림은, 최초 독자의 한 사람인 화가가 솔직하게 써 내려간 독후감이기도 하거든요. 그림이 조금 서툴더라도 글이 품고 있는 철학과 세계관을 지지하고 몰입할 때 비로소 그림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글을 읽는데 그림에도 눈길이 간다면 바로 이 때문일 거예요. - 화가의 말에서
작가 소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린이 청소년문학 작가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과수원을 점령하라』, 『나쁜 어린이 표』,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엑시트』,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등 60여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국내에서 애니메이션과 창작 뮤지컬, 연극, 판소리 등 다양한 공연으로도 제작되어 어린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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