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델프트의 스핑크스”로 불리는 페르메이르
전원경 작가의 안내로 살펴보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페르메이르의 생애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세 명을 꼽는다면,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페르메이르라 할 수 있다. 프란스 할스가 네덜란드 초상화의 창시자로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초상화〉가 대표작이라면, 렘브란트는 설명이 필요 없는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연 대가이자 대표작 〈야경〉과 여러 점의 자화상을 남겨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벨기에의 루벤스와 함께 17세기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반면 페르메이르는 당대엔 유명하지 않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재평가 받은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진주 귀고리 소녀〉 〈우유를 따르는 하녀〉 등이 있다. 지금이야 진주 귀고리 소녀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 덕분에 전 세계인이 알고 있는 페르메이르지만, 그가 활동하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널리 알려진 화가가 아니었다. 19세기 말, 페르메이르를 처음 '재발견'한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겸 비평가 테오필 토레뷔르거는 페르메이르를 두고 알려진 게 너무 적어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 평할 정도였다.
1632년 태어나 1675년에 죽은 페르메이르는 몇 번의 출장을 제외하고는 일평생을 네덜란드의 소도시 델프트에 살았다. 가난한 직물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메이르는 스무 살에 예술가 조합인 델프트 성 누가 길드에 가입해 화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같은 해 델프트의 유명한 지주 집안의 딸인 카타리나 볼너스와 결혼한 뒤 처가의 경제적 지원에 힘입어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수천 명의 화가들이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등 자기 전문 분야의 그림을 그려 ‘아트 마켓’에서 다수의 시민에게 직접 판매했다. 그래서 대개의 화가는 1년에 십여 점의 그림을 그려야 그림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했지만 페르메이르는 처가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한 해에 최대 서너 점 정도만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작업 속도가 느려도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덕분에 페르메이르는 한 점 한 점 그릴 때마다 눈에 띄게 실력이 느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작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온 예수〉 〈디아나와 님프들〉에서 이미 빛을 활용한 공간 분할이라는 그의 특기가 엿보였고, 〈뚜쟁이〉에서 그의 실력이 최고로 발휘되는 장르가 실내 풍속화임을 증명했다. 1659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열린 창 앞에서 편지를 읽는 여자〉에서는 작은 방에 여성 한 명이 있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그를 비추는 모습을 그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빛’, ‘방’, ‘젊은 여성 모델’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후 페르메이르의 실력은 일취월장해 전성기의 문턱에서 그린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는 단순히 눈앞의 모델을 실재처럼 모사하는 실내 풍속화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페르메이르는 당시 하녀를 모델로 삼아 노동의 신성함,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페르메이르를 대표하는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는 그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 빛을 활용한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했다. 하지만 〈진주 귀고리 소녀〉 이후 그린 작품들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페르메이르가 그린 실내 풍속화에는 더 이상 빛을 활용한 생동감이나 관람객을 감동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의 천재성은 이제 서서히 내리막을 걷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1672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한 사건은 페르메이르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네덜란드는 수문을 열어 국토를 물에 잠기게 해 프랑스군의 진격을 막았지만 그로 인해 페르메이르의 장모 마리아 틴스의 농장이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처가의 경제적 지원 덕분에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던 페르메이르는 더 이상 느긋하게 그림만 그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모든 재능을 짜내 팔릴 만한 그림을 그려냈지만 집안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부인 카타리나와 열한 명이나 되는 자녀의 생계는 그를 더욱 압박할 뿐이었다. 결국 1675년 페르메이르는 경제적 고통 속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사후 그의 그림은 빚을 갚기 위해 경매에 넘어갔고, 이때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유럽 곳곳으로 흩어지게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페르메이르 사후 채무 탕감을 위해 열린 경매 과정에 남은 기록 덕분에 페르메이르의 생애를 복원할 수 있었다.
전원경 작가는 페르메이르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 분위기를 짚어준다. 독자는 페르메이르라는 화가가 왜 실내 풍속화라는 장르를 선택하게 됐고 35점 내외의 적은 그림만 남기게 됐는지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풀어준다.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독자가 어떤 루트로 암스테르담-헤이그-델프트를 돌아보면 좋을지 실용적인 정보 역시 놓치지 않는다.
시간의 강에 가라앉은 페르메이르와 그의 걸작들
200여 년의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에게 찾아오다
페르메이르는 단순히 아름다운 작품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걸고 관람객의 호기심을 이끌어 낸다. 저자가 주목한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에 빈 미술사박물관에 걸린 〈회화의 기술〉을 빼놓을 수 없다. 1666년~1668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의 기술〉은 화가가 푸른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을 그린 작품이다. 페르메이르는 자신의 그림에서 결코 스스로를 드러낸 적이 거의 없는 화가였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등을 보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페르메이르 본인으로 보인다. 그는 〈회화의 기술〉에서 화가로서의 정체성과 스페인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 시민으로서의 자존심을 표현하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이 그림을 스스로를 소개하는 명함처럼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그림 중개상 일도 했던 페르메이르가 죽을 때까지 이 그림만은 팔지 않았고 그의 유족도 이 그림만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대상이 짙게 배인 작품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우유를 따르는 하녀〉를 들 수 있다. 당시 네덜란드는 독실한 칼뱅파 개신교 사회로, 칼뱅파의 주요 교리인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나라 전체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이는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그림의 모델은 대부분 왕이나 귀족 아니면 부유한 시민계급이었는데,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 노동계급인 하녀를 모델로 삼았다. 왼쪽 창에서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이 부엌을 밝게 비춰 주전자, 빵 바구니, 우유 항아리에 흰색 점을 찍어 그림을 ‘반짝이게’ 만들었고, 그림의 시점을 하녀의 어깨 밑으로 낮춰 관람객이 그를 올려다보는 느낌을 준다. 아무것도 없는 흰 벽에 반사된 빛은 하녀의 등 뒤를 밝게 해 마치 성인의 후광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페르메이르의 대표작 〈진주 귀고리 소녀〉는 자잘한 기교 없이 빛과 대범한 붓질로 완성한 작품이다. 모델인 소녀는 푸른 터번에 노란 웃옷을 입고 귀고리를 걸고 있을 뿐이다. 화가는 몇 번의 붓 터치로 소녀의 콧날과 흰 칼라를 그렸고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소녀의 눈망울, 입술, 귀고리를 빛나게 만들었다. 그림 속 소녀는 금방이라도 입술을 움직여 관람객에게 말을 걸듯 생생하게 살아있다. 〈진주 귀고리 소녀〉의 매력은 시간이 지나도 쇠하지 않아 1999년에는 이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이 출간되고 2003년에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개봉했다.
이름은 잊히고 작품은 흩어졌어도 페르메이르의 진가는 결국 되살아났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일어난 위작 사건의 중심에 페르메이르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위작 작가 한 판 메이헤런은 페르메이르의 화풍을 따라 그린 그림을 나치 고위인사에게 팔았고, 이 때문에 메이헤런이 재판에 회부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저자는 페르메이르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리고 죽은 이후 300년 가까이 잠들어 있다 갑자기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이야기까지 페르메이르의 삶과 작품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준다. 이제 독자도 페르메이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목 차
PROLOGUE 더 좋은 날들을 기다리며
01 일본에서 만난 페르메이르
02 근면하고 엄격한 상인의 나라 - 17세기 네덜란드
03 빛과 바람은 그대로 있었다 - 델프트
04 일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 암스테르담
05 미소 속에 담긴 수수께끼 - 헤이그
06 화가의 내밀한 고백 - 빈
07 화가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 - 런던
EPILOGUE 사랑은 가도 과거는 남는 것
페르메이르 예술의 키워드
페르메이르 생애의 결정적 장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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