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두근두근 설레는 유년의 여름날
여름 방학을 맞은 치이는 엄마와 함께 바닷가 할머니네 집을 찾는다. 정든 친구들과의 작별, 다음 학년으로의 성장을 앞둔 겨울 방학과 달리, 여름 방학은 어린이에게 온전히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한 시간이다. 기차의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는 과연 치이의 설렘을 북돋운다. 멋진 수영복과 튜브도 여름의 들뜬 분위기를 거든다. 그런데 주인공 치이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치이의 단짝, 강아지 포치가 함께 오지 못한 까닭이다. 봐 주는 포치가 없다면 아무리 멋진 수영복과 튜브도 소용이 없다. 기다렸던 여름 방학도 포치 없이는 순식간에 의미를 잃고 만다. 치이는 포치를 생각하며, 같이 놀자는 새 친구들의 부름도 뿌리친다. 그리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기로 한 치이는 포치에게 자신이 없더라도 홀로 울지 말 것을 당부한다. 포치에게 건네는 당부는 제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찬 행복의 순간을 담은 명작
너무 보고 싶었던 나머지 보고 싶었다는 말마저 미처 잇지 못하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치도록 반가운 마음은 그저 “아- 포치, 편지 받았구나”라는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작품 속에서 이 순간의 주인공은 포치다. 치이의 벅찬 얼굴은 숨겨 둔 채 포치의 표정만으로 치이의 행복감을 대신 전하는 연출은 절묘하다. 여름 방학을 그린 수많은 명작 그림책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책은 대체로 당시 주류였던 그림책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서정성이 돋보이지만, 이 책만큼은 여름 햇살처럼 눈부신 생기와 활력이 넘친다.
『포치가 온 바다』는 그간 국내에서 『치치가 온 바다』라는 제목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이번에는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시리즈를 완간하며, 번역가이자 그림책 평론가로 활동하는 엄혜숙의 빼어난 번역으로 새로 펴낸다. ‘토토’와 ‘치치’였던 한국어판 등장인물 이름은 원작 그대로 ‘치이’와 ‘포치’로 바로잡았다. 매년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방학을 기다리는 어린이에게 선물할 그림책으로 자신 있게 권한다.
잔디밭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서, 나는 이 그림책을 그렸습니다. 잔디 위에는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날마다 장난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 강아지들을 바라보면서, 또 포치 그림을 그리면서, 가끔 나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열네 살 된 늙은 하얀 개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늙은 개라고 해도, 흔히 말하는 나이 든 냄새 나는 개가 아니라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를 지닌, 아직 천진난만함이 남아 있는 개입니다. 14년 전 여름의 일, 상냥한 아주머니의 손가방에 담겨 온 그 이름 없는 하얀 개는 우리 집을 의심도 없이 자기 집이라 믿으며 자랐습니다. 내가 일하는 방 한쪽 구석에서 낡은 담요를 굳이 둥그렇게 말아 뒹굴고 자면서, 여기 또한 자신의 방이라고 굳게 믿으며 유유히 지냈습니다. 가끔 방에 여러 손님이 오면 나는 매번 미안해하면서 "개 냄새가 나는 방"이라고 변명했습니다.
문득, 이 그림책의 치이도 나처럼 포치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 주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아니에요, 치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분명히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 이 개와 함께 자란 내 아들이 그 옛날, 곧잘 개하고 서로 치고받고 다투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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