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펜 어워드 파이널리스트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뉴스테이츠먼, 옵저버 선정 올해의 책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대도시의 기쁨과 위험을 만끽했던 여성들을 따라 걷는 여행
“도시를 활보하는 여자들이 등장하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걷기의 서사’를 온전히 여성들의 몫으로 할당한다.”―장영은(『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그녀가 한국의 어느 도시에 와본 적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 우리에겐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로런 엘킨 방식의 기록을 우리의 도시에서 우리가 해볼 수 있을 테니까.”―김소연(시인)
“로런 엘킨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비판적 사색가 중 하나다. 그녀 세대의 수전 손택.”―데버라 리비(『알고 싶지 않은 것들』)
‘제2의 리베카 솔닛’ ‘새로운 세대의 수전 손택’
로런 엘킨이 그려낸 여성 예술가들의 초상
여성이 도시를 걸을 때, 혁명과 전복이 일어난다
걷는 행위는 오랜 세월 예찬되어왔다. 많은 사상가들과 작가들이 걷기가 지닌 다채로운 의미, 사색과 예술과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이 행위가 인류에게 갖는 의미를 탐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공장소를 걷는 일은 대단히 성별화되어 있는 일이기도 했다. 여성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는 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던 시대, ‘거리의 여자(성매매 여성)’라는 낙인이 찍히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그런 금지나 낙인이 없는 지금도 홀로 걷기는 여성에게 안전하고 자유롭기만 한 일은 아니다.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밤길의 잠재적인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대상화하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걷기의 역사와 의미를 총망라한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리베카 솔닛도 이와 같은 지적을 했다. 솔닛은 이 책의 한 장을 할애해 걸을 수 있는 공공장소가 여성과 소수자에게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를 살핀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리베카 솔닛의 이러한 작업에 발을 딛고서 이 주제를 더 깊고 넓게 파고든 책이다. 로런 엘킨은 여성이 도시에서 걸을 때 만나는 위험과 매혹을 탐구한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flâneuse)’다.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근대의 도시 보행자,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관찰하는 산보자를 뜻하는 말인 ‘플라뇌르(flaneur)’라는 남성형 명사를 여성형으로 바꾼 단어다. 단어의 성을 바꿈으로써 로런 엘킨은 이 남성형 명사를 둘러싸고 형성되어온 걷기의 서사를 전복한다. 여성은 어떻게 도시 환경에서 배제되어왔는가, 그럼에도 도시는 여성들에게 어떤 자유와 기쁨을 안겨주는가,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걷기라는 행위의 의미가 어떻게 뒤바뀌는가를 탐색한다.
엘킨은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워져온 여성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되찾기 위해 전 세계의 대도시를 두 발로 걷는다. 그리고 자신보다 앞서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누비며 위반하고 창조했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난다.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라고 정의 내린 ‘플라뇌즈’의 초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엘킨은 도시와 여성의 신산한 동시에 짜릿한 관계를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나는 만들어진 환경, 도시를 좋아한다. 도시의 경계나 도시가 끝나는 곳이 아니라 도시 자체에 관심이 있다. 도시의 심장. 여럿으로 나뉜 구역, 지구, 길모퉁이. 여성이 힘을 얻는 곳도 도시의 중심이다. 여성은 도시의 심장에 몸을 던지고 걸어선 안되는 곳을 걷는다. 다른 사람(남성)은 아무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걷는 그 한복판을 걷는다. 위반의 행위다. 여자라면 고어텍스를 입고 쭈그려 앉지 않아도 전복적일 수 있다. 그냥 문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41)
도시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도시에 대해 쓰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등등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도시와 어울렸던 여자들이 많았다. [……] 도시를 돌아다니는 기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를 바 없다. 플라뇌르의 여성 버전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해버리면, 여자들이 도시와 상호작용해온 방식을 남성의 방식 안에 가두게 되고 만다. 사회적 관습이나 제약에 대해 말할 수는 있으나 여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지워서는 안 된다. 대신 도시를 걷는다는 게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여성을 남성적 개념에 맞추려 하는 대신 개념을 다시 정의한다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아까 했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면, 거리에서 보들레르를 지나쳐간 플라뇌즈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28~29)
내가 이 책에서 그리는 초상은 플라뇌즈가 단순히 플라뇌르의 여성형이 아니고, 플라뇌즈라는 자체의 개념으로 인지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플라뇌즈는 밖으로 여행을 떠나고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간다. 가정이나 소속 같은 단어가 그간 여성에게 불리하게 사용되었음을 의식하게 한다. 플라뇌즈는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다. 플라뇌즈는 존재한다. 우리가 앞에 놓인 길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영역을 밝혀나갈 때마다 존재한다.(44)
우리는 개인인가 군중의 일부인가? 우리는 두드러지고 싶은가 눈에 뜨이지 않게 섞이고 싶은가? 어느 쪽이든 뜻대로 하기가 가능하기는 한가? 성별과 무관하게, 우리 각자는 군중 속에서 어떻게 비치기를 바라나? 시선을 끌기를 바라나 시선을 피하기를 바라나? 현저한 존재이기를 바라나 눈에 뜨이지 않고 묻히기를 바라나? 돋보이기를 바라나 무시되기를 바라나?(13)
도시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동등한 가능성을 허락하는 곳이라고 이상화할 생각은 없다. 컬럼비아대학교와 주변 동네 사이의 복잡한 역사만 보아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공정한 세상을 만들 최선의 기회를 구할 수 있는 곳도 도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자유가 반드시 필요하다.(64~65)
나는 걷기가 어떤 면에서 읽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걷는다. 걷기를 통해 나와 무관한 삶을 엿보고 대화를 엿듣고 비밀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고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같이 가는 동반자가 있기 마련이다. 거리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도시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란히 걷는다.(42)
조르주 상드에서 아녜스 바르다까지, 새롭게 다시 읽는 여성 예술가들
로런 엘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여겼던 여성 예술가들을 읽어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19세기 작가 조르주 상드부터 얼마 전 타계한 누벨바그 감독 아녜스 바르다에 이르기까지, 엘킨은 여러 시대를 가로지르며 이들의 작품을 다시 읽고 이들의 또 다른 면모를 조명한다.
이를테면 엘킨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여성이 방 밖으로 나갔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플라뇌즈에 관한 탁월한 에세이를 쓴 작가, 도시 공간을 온몸으로 감각하려 했고 여성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한 작가로서 버지니아 울프를 소개한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주요 텍스트로 읽히는 진 리스의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 세계가 파리라는 낯선 곳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지극히 생생하게 펼쳐 보여준다. 남장을 하고 돌아다니고 수많은 애인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 조르주 상드는 혁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자신의 작품 안에서 사회와 젠더에 관한 이상을 어떻게 펼쳐냈는지를 파고든다. 종종 헤밍웨이의 전 부인으로만 알려지는 마사 겔혼, 대범하고 용감한 종군기자였던 그녀가 ‘여성 종군기자’로서 맞닥뜨렸던 제약이나 픽션과 사실 사이에서의 고뇌를 소설가로서는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준다. 소피 칼에게서는 ‘추적’이라는 남성적 행위가 여성의 것이 되었을 때 어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지를, 아녜스 바르다에게서는 카메라와 영화라는 매체 뒤에 여성이 설 때 시선의 의미가 어떻게 전복되는지를 읽어낸다.
잘 알려져 있는 이 예술가들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는 엘킨의 예리한 시선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녀의 따뜻한 애정이다. 엘킨은 선배이자 동료인 이 여성 예술가들을 가깝게 여기고 유대감을 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와 공명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이러한 애정 어리고 공감적인 시선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 더 경유해, 이 예술가들에게서 관계, 고독, 시선, 창조성, 사회적 저항 등의 주제를 길어 올리는 페미니즘 비평을 가능케 한다.
도시를 더 민감하게 알아가면서 여성의 역사, 문학, 정치에도 민감해졌다. 하나를 알려면 다른 하나도 알아야만 하는 것 같았다. 시몬 드 보부아르부터 수전 브라운밀러까지 읽어 나갔다. 다른 역사를 알게 되자 어딘가 향해 갈 목표가 생겼고 그래서 전 세계에 흩어진 단서를 수집하기 시작했다.(64)
리스는 버지니아 울프가 “관점의 차이”라고 부른 것으로 세상을 봤다. 리스가 만들어낸 여성 인물에게서 이런 면이 드러난다. 이들은 옷을 제대로 입지도 말을 제대로 하지도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도 못한다. 너무 이야기를 많이 하거나 너무 적게 하거나 잘못된 이야기를 한다. 도시에 오면 우리는 이제야 나 자신으로 살 수 있구나 싶지만, 파리에서조차 다른 사람의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리스가 쓴 단편 중에 프랑스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기다리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영국 여자가 나오는 단편이 있는데, 거기에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기계 밖에서” 산다는 말이 나온다. 여자는 간호사나 다른 환자들이 “기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힘, 확신”이 있지만 자기에게는 그런 게 없으며 그들이 자신의 결함을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한다.(96)
댈러웨이 부인이 소설에서 가장 처음으로 하는 대사가 이렇다. “‘전 런던 거리를 걷는 게 좋아요.’ 댈러웨이 부인이 말했다. ‘시골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울프에게 혼자 도시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상상해보지 못한 자유였고, 울프가 본격적으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이사였다면 글쓰기의 소재를 제공해준 것은 산보였다. 거리에는 울프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울프는 머릿속에서 장면들을 그려보았다. 주변에서 보는 삶이 “거대하고 불분명한 재료 덩어리” 같았고 “나에게 전달되어 그것에 상당하는 언어가 되는 듯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하다 보니 “삶 자체”를 종이 위에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몰두하게 되었다.(127)
『자기만의 방』에는 조용하고 분리된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이 글은 여자가 방 밖으로 나갔다가 부딪히게 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성과 허구, 여성과 역사에 대해 대담한 질문을 던지는 지적 무단침입이기도 하다.(138)
바지에 부츠를 신고 나오면 날씨도 시간도 주변도 신경 쓰지 않고 군중에 섞여 들어 진정한 ‘플라뇌르’답게 도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날아갈’ 수가 있었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택한 방법이 상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된 셈이니 생각해보면 참 얄궂은 일이다. 크로스드레싱이 오로르 뒤드방을 조르주 상드로 재탄생시켰고, 그 뒤로 상드는 평생 남의 시선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상드를 시가를 물고 애인들을 거느리고 으스대며 도전하는 크로스드레서로서 생각하는 것보다 이 모습으로 떠올리기를 더 좋아한다. 높은 이상 때문이 아니라 좌절을 겪었기 때문에 남자 옷을 입게 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170)
이 영화에서 진정한 주체성의 순간은 클레오가 화면에서 사라질 때다. 이런 순간이 클레오가 보여지는 대신 보는 순간이다. 바르다는 이런 자유를 한 단계 더 넓힌다. 우리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 바르다라고 상상한다. 실제로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은 바르다가 아닐지라도 카메라가 언제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포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르다이다. 카메라 앞에서 플라뇌즈가 진화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지만, 클레오가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326)
그녀는 멈추어 있으나 언제라도 어디로든, 지금 읽은 바에 따라, 혹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따라, 알 수 없는 충동에 따라 떠날 수 있다. 그녀는 햇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가이드북을 보고 있다. 겔혼이 보는 책이 가이드북인지 아닌지는 사실 알 수 없지만. 그렇지만 이 사람은 외국에 유람 온 미국 관광객이 아니다. 유명한 종군기자 마사 겔혼이다. 계속 집을 만들려고 하지만 언제나 집이 없었던 사람, 소설가, 도망자, 이혼녀, 자신만만하고 건방진 기자, 집 나온 계집.(362)
『귀환 불능 지점』이 중요한 책이면서도 그만큼 널리 읽히지는 않는 책이라면, 『리아나』는 위대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겔혼이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하며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왜 자기가 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지, 왜 세상 모든 것을 다 보고 다시 보기 전에는 멈출 수가 없는지를 알아내려고 한 것이다. 『리아나』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제국. 전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이 미치는 영향. 인종, 백인의 지배, 노예제의 유산. 젠더, 남녀 사이에, 특히 인종 문제가 얽혀 있을 때 사랑에 존재하는 불평등. 겔혼이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 전장에 못 가지 않았다면 쓰이지 않았을 소설이다.(384)
“달콤하게 날카롭고 선동적이다”
매혹적인 에세이스트의 탄생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출간 이후 펜 어워드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고 《가디언》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 에세이스트로서, 작가로서 엘킨이 지닌 탁월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예술 비평과 자전적 산문과 여행기를 수려하게 엮어내는 엘킨의 글쓰기에는 독자를 단숨에 다른 시대,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엘킨은 미국에서 태어나 파리로 이주했고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살아온 경험, 미국의 교외에서 자라나며 가졌던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선망, 이민자의 후손으로 어디에도 좀처럼 완벽하게 속하지 못하고 정착과 방황 사이를 오갔던 경험을 풀어놓는다.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도시 공간을 유연하게 누볐던 여성 예술가들을 읽어내는 예리한 시선을 직조하여 흥미롭고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짜낸다. 여기에 문학과 예술과 도시공간을 충실히 연구해온 학자의 성실함이 탄탄한 배경 지식과 신뢰성을 더한다. “달콤하게 날카롭고 선동적”(《가디언》)이며 “리베카 솔닛에 기초해 한발 더 나아간”(《파이낸셜타임스》) 작가이자 “그녀 세대의 수전 손택”(데버라 리비)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첫 번째 책은, 그녀의 글쓰기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기대하게 만든다.
1929년이다. 여자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되었을 때다. 그럼에도 이 사진은 위반의 느낌을 준다. 하루가 끝나고, 여자는 이곳을 뜨고, 사진가도 떠나고, 해가 기울고, 그에 따라 가로등 그림자도 움직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이 장소의 모습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순간이 전부다. 벽을 배경으로 뚜렷한 윤곽을 그리며 금지와 저항의 장소에서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여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여자는 불멸하는 독특한 존재로 두드러지게 남았다.(12)
우리는 단절되어 사는 느낌이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빛이 솜털처럼 부드러운 이른 아침에 발을 끌며 부엌으로 내려가 뒷문을 열고 개를 집 밖으로 내보낼 때면 몇 마일 떨어진 킹스파크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기차 소리가 들리면 우리가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림보 같은 교외의 우리 위치에 좌표를 부여해주는 소리였다. ‘여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어.’ 나는 생각했다. ‘기차를 타면 돼.’(60)
그때 그 도시에 깃든 유령이 있었다. 도로시 파커나 이디스 워튼이나 혹은 내가 아직 읽지 않은 누군가의 유령. 배로 스트리트에 있는 오래되어 기우뚱한 건물 안에, 미드타운 터널에서 나오면 바로 등장하는 머리힐의 브라운스톤 건물에 있었다. 웨스트엔드 애버뉴의 책이 빼곡한 아파트에 있었다. 낡은 화장실 네모난 타일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유령을 내 글에서 포착하고 싶었다. 내가 그 유령이 되고 싶었다. 연구조교가 되려고 면접을 보았을 때 나를 면접 본 여자가 앨곤퀸 호텔 바에서 술 한 잔을 사주었는데 그때 생각했다. ‘이거야. 나도 여기의 일부가 된 거야.’(63)
나를 걷게 하라. 내 속도로 걷게 하라. 삶이 나를 따라, 내 주위에서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하라. 극적인 일을 보여달라. 예상하지 못한 둥근 길모퉁이를 달라. 으스스한 교회와 아름다운 상점과 드러누울 수 있는 공원을 달라.
도시는 우리를 달뜨게 하고 계속 가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원하고 참여하게 한다. 도시는 삶 그 자체다.(65)
미국인은 자기 정체성을 설명할 때 자기의 기원이라 할 다른 장소를 미국과 결합한다. 미국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우리를 정의할 수도 포괄할 수도 없는 것 같다. 멕시칸-아메리칸, 이탈리안-아메리칸 등등 하이픈 앞에 놓는 장소가 뒤에 오는 장소보다 더 명확히 나를 정의하는 듯하다. 우리 언니와 나는 유대-이탈리아-아일랜드 혈통이 뒤섞여 있어 우리가 자란 동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민족적으로 ‘순수’하지가 않았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유대계 미국인이거나 이탈리아계 미국인이거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었다. 우리는 혼종이라 우리를 가리킬 말이 없었다. 문화적 정체성이 지나치게 많아서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407~408)
이런 순간에 보조적 정체성들이 무너지고 우리가 진정한 ‘미국인’이 되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다’ 혹은 ‘나는 저것이다’라고 본질을 내세움으로써 다양한 역사들을 통합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글을 쓸 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 같다. 정체성과 소속감의 기이한 조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저항감이나 후회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디에서 방향을 돌릴까, 어떤 길을 따라갈까. 어떤 길을 따라간다면 다른 길로는 가지 않게 된다. 어떤 것에 대해 쓴다면 잘 읽히게 하기 위해 배제해야만 했던 다른 많은 것들을 저버리게 된다. 문장 하나하나가 교차로다.(408)
도시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는 여행 에세이
이 책은 탁월한 도시 비평이자 독특한 여행기이기도 하다. 예술 비평에 더해 책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은 엘킨은 그녀 스스로가 플라뇌즈로서 걸어 다닌 도시들이다. 엘킨의 여행은 우리를 파리, 런던, 도쿄 등의 풍경 속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직접 마주하는 것보다도 더 생생하게 이 도시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파리의 도시계획을 일별하고 미국에서 교외의 확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훑어보는 대목은 각 도시 공간의 역사에 대한 입문으로도 손색이 없다.
한편 우리는 도시 안에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정체성과 입장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관광객이 되기도 하고, 동네 주민이 되기도 하고, 이민자가 되기도 한다. 엘킨의 숨김없고 솔직한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것이 이 대목이다. 그녀는 베네치아에서 “괜찮은 종류의 관광객”이 되려고 애쓰며 느끼는 당혹감을 털어놓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주하게 된 도쿄라는 낯선 도시와 평등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취약해지는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여성이 힘을 얻는 곳도 도시의 중심”이라고 말하며 대도시를 향한 사랑과 매혹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를 거울삼아, 우리도 우리의 도시를 탐색하는 새로운 여행을 떠나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파리를 가장 진하게 경험한 것은 문학을 통해서도 음식을 통해서도 박물관을 통해서도, 파리 부르스 역 근처 다락방 시절에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 연애를 통해서도 아니었다. 수도 없이 걸어서였다. 파리 6구 어딘가를 헤매며 평생 도시에 살고 싶다, 특히 파리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행동이 나에게 안겨준 전적인 자유의 느낌 때문이었다.(19)
런던에 볼 게 뭐가 있다고들 가지?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러나 2004년 6월에는 런던이 처음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들추고 잘생긴 발목을 보여주었다. ‘아, 이제 알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중고책방에서 1파운드를 주고 낡은 오렌지색 표지의 펭귄 클래식 몇 권을 샀다. 펍 바깥쪽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서 처음으로 핌스 컵을 맛봤다. 패스트푸드점 프렛에서 조리음식 몇 가지를 사서 해가 쪼이는 러셀 스퀘어 잔디밭에 앉아 먹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다. 외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기가 사는 도시를 즐기는 런던내기들처럼 보였지만 누가 아나, 나처럼 천천히 런던의 매력을 발견해나가는 중인, 런던에 두 번째로 온 미국인일지도 몰랐다.(115)
파리에서 도로 공사 현장을 지날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이번에는 또 무얼 파냈나 들여다본다. 녹색과 은색 가림막 틈새를 기웃거리며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거리 지층의 단면을 본다. 아래쪽에서 1968년 봉기 이후에 얹힌 포장 아래 감춰진 돌길 층을 찾아본다. 전통적으로 파리 사람들은 봉기가 일어나면 길바닥에서 돌을 파내 공화군이든 진압 경찰이든 권력자를 향해 던졌다. 그래서 어떤 동네에는 돌길을 감추기 위해 위에 아스팔트를 덮었다. 도로 공사로 그 길이 다시 드러나는 걸 보면 어쩐지 짜릿하다. 보면 안 되는 것, 감추어져 있는 것, 은폐된 것을 보았을 때에 느끼는 전율감이 든다.(149~150)
아카사카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Y 교차로 건너편에 있고 이 건물도 모리 회사 소유다. 여기는 아파트-호텔이 아니라 아파트였다. 하지만 가구도 우리 것이고 그랬는데도 여전히 임시로 사는 느낌이었다. 내가 뉴욕에 살 때 살았던 비행기 일등석 크기 아파트하고 비슷했다. 한동안 그곳에서 마치 드라마 속의 삶을 사는 듯한 기분으로 살다가도, 일단 그곳을 떠나면 아무 기억도 안 남는다. 아무 특징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새 집도 아무 특징이 없고 집을 흉내만 낸 무슨 시설 같은 곳이라 아파트-호텔은 아니라도 호텔-아파트라고 할 수 있었다.
호텔은 외국인, 부적응자, 동화되지 못하는 자의 거처다.(243)
히라가나에 속하는 46음절을 열심히 외웠지만, 가타카나 48음절에 들어갈 단계가 되자 이미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 들었다. 글자를 한 가지 이상 배우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히라가나만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히라가나는 원래 간지를 읽는 데 필요한 고전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여자들이 쓰는 언어였다. 세상이 바뀌긴 했지만 나는 5만 개에 달한다고 하는 간지를 다 익힐 수 있을 만큼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히라가나로만 읽고 쓰는 중세 일본 여자가 되기로 했다.(253)
나로서는 뉴욕과의 관계를 정립하기가 힘들다. 내가 뉴욕을 떠나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힘든 것과 비슷하다. 너무 익숙하고 몰랐던 적이 없고 객관적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396)
내 도시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나의 것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 발로 알아가지만, 우리가 도시를 떠나면 지형이 바뀐다. 그렇게 되면 자신 있게 발걸음을 떼놓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냥 보는 것, 보면서 다른 것을 보기를 기대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전부 다 아는 척하지 않고 늘 약간 안 맞는 채로 있는 게 좋다.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도시 아래에 우리가 알아보는 도시가 겹겹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413~414)
작가 소개
지은이 : 로런 엘킨
작가이자 비평가. 책, 예술, 문화, 여행에 관해 쓴다. 《뉴욕타임스 북 리뷰》 《가디언》 《하퍼스》 《르몽드》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러먼트》 등의 매체에 기고하며 《화이트 리뷰》의 객원 편집자로도 활동한다. 1930년대 영국의 여성 문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리버풀대학교의 명예연구원으로 있다. 뉴욕 태생이고 2004년에 파리로 이주했다. 좌안에 오래 살다가 지금은 우안에 살며 벨빌 근처를 배회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파리와 리버풀을 오가며 살고 있다.
옮긴이 : 홍한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야누시 코르차크의 아이들』 『우먼 월드』 『먹보 여왕』 『밀크맨』 『달빛 마신 소녀』『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바다 사이 등대』 『페이퍼 엘레지』 『몬스터 콜스』『가든 파티』 『하틀랜드』 등이 있다.
목 차
프롤로그 · 여성이 도시를 걷는다는 것
롱아일랜드 · 뉴욕
파리 · 그들이 가던 카페
런던 · 블룸즈버리
파리 · 혁명의 아이들
베네치아 · 복종
도쿄 · 안에서
파리 · 저항
파리 · 이웃
모든 곳 · 땅에서 보는 광경
뉴욕 · 귀환
에필로그 · 도시를 다시 쓰는 여성의 걷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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