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어제의 노동자는 오늘도 노동자다
어제의 빈민은 오늘도 빈민이다
노동자 아브라함은 노동자 이삭을 낳고,
노동자 이삭은 노동자 야곱을 낳습니다.
오늘 노동자는 어제 노동자입니다.
그가 노동력을 팔기 위해 오늘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제 그가 공장에서 생산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노동자는 어제 노동자의 자식입니다.
부모 노동자는 자식 노동자의 근육과 뼈와 두뇌,
즉 노동력을 생산했을 뿐 아니라 자식 노동자의 가난,
즉 노동력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로서 노동자를 생산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북클럽 『자본』>이란?
천년의상상 출판사는 철학자 고병권이 ‘독자들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나가는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그간 ‘난공불락의 텍스트’로 여겨지며 수많은 독자들을 중도 포기하게 만든, 그래서 늘 미련이 남는 책 마르크스의 『자본』을 철학자 고병권의 오프라인 강의와 더불어 더 쉽게 더 제대로 읽어나가려는 기획입니다. 2018년 8월부터 2년여 동안 격월간으로 『자본』을 더 깊이 해석한 단행본이 먼저 출간되고, 책 출간 다음 달에는 오프라인 강의가 진행됩니다(이 강의는 온라인으로도 제공). 자세한 출간 일정은 책 속의 ‘일러두기’에 있습니다.
1. 자본은 어떻게 ‘다시’ 자본이 되는가
― ‘자본의 재생산’이란 자본의 생애가 무한정 반복되는 것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하는 <북클럽『자본』> 시리즈의 열 번째 책 『자본의 재생산』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자본의 재생산’에 관해 다룬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I권 제7편 제21장 “단순재생산”과 제22장 “잉여가치의 자본으로의 전화”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자본』 I권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긴 여정을 걸어왔다. 『자본』 제1편에서는 자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준비를 했고(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부’에 대한 독특한 관념으로서 ‘가치’ 개념을 배웠다), 제2편에서는 자본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했다(가치를 증식시키는 가치, 잉여가치를 낳는 가치). 그리고 이렇게 정식화된 자본이 노동력이라는 독특한 상품 덕분에 현실화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후 제3편과 제4편에서는 잉여가치가 실제로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살폈고, 제5편에서는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를 변동시키는 다양한 경우를 검토했으며, 제6편에서는 노동력의 가치가 임금의 형태를 취할 때 생기는 문제가 무엇인지 보았다. 이렇게 해서 ‘자본의 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자본』 I권의 긴 여정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의 생산’에 대해 다시 이야기한다. 다만 이번에 마르크스가 주목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생산’이 아니라 ‘생산의 반복’이다. 즉 똑같은 일이 똑같은 순서로 반복해서 일어나는 문제를 살핀다. 이전 제6편까지 ‘자본은 어떻게 자본이 되는가’, ‘자본은 어떻게 자신을 자본으로 생산하는가’를 보았다면, 이제 제7편에서는 이 물음에 ‘다시’라는 말이 추가된다. 자본은 어떻게 ‘다시’ 자본이 되는가, 자본은 어떻게 ‘다시’ 자신을 자본으로 생산하는가.
신간 『자본의 재생산』에서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제7편의 제목을 ‘자본의 증식과정’이 아니라 ‘자본의 축적과정’이라고 단 것에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자본』 제7편의 핵심 개념이 ‘축적’이라 말하고 있다. 이 ‘축적’ 개념은 그 내용 자체는 이전에 다룬 ‘증식’과 다르지 않다. 100억이 110억이 되고 110억이 121억이 되는 것, 자본은 여전히 그렇게 증식하고 축적한다. 그렇다면 ‘증식’과 ‘축적’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저자에 따르면, 축적은 ‘반복’과 관련된다. 즉, 증식이 ‘반복’될 때 축적이 일어난다. 축적은 반복의 결과, 한마디로 말해 자본의 재생산(확대재생산)의 결과다.
다시 말해 ‘재생산’이란 ‘생산의 반복’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던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이 동일한 순서로 다시 진행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의 재생산’인 것이다. 요컨대 『자본』 제6편까지의 내용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것, 그것이 이번 책 『자본의 재생산』이 다루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반복’을 통해 우리는 자본의 실체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될까.
2. 사라지는 ‘가상들’, 드러나는 자본의 ‘실체’
― ‘재생산’ 관점으로 보면 자본에 의한 시각적 기만이 사라지고 실상이 드러난다
이 책의 저자 고병권을 따라, 자본의 생산과정을 ‘재생산’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면 무엇이 보일까. 지금 자본주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 즉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된 일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 일이라면, 독자는 그 사실을 통해 무엇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자본가가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매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자본의 생산과정을 순차적으로 다루어왔다. 그러나 이제 ‘재생산’을 고려하면 이른바 ‘등가교환’이 이루어지던 그 첫 장면이 절대적 출발점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 전에 먼저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생산과정은 유통과정에서 제공된 것을 가지고 출발했던 것이다. 이렇게 ‘재생산’ 관점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기존에 나타난 외견상의 가상, 즉 생산영역과 판매영역 그리고 유통영역이 각각 ‘독립성’을 갖고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가상을 제거할 수 있다. 개별적 자본, 개별적 자본가와 노동자만 볼 때는 모든 것이 따로따로 보였으나 이제는 ‘전체’, 즉 사회적 총자본과 전체 자본가가 보인다.
또한 ‘재생산’의 관점에서 자본의 생산을 바라보면 자본가가 ‘노동력에 대한 지불자’라는 가상이 사라진다. 쉬운 이해를 위해 부역 농민의 예를 들어보자. 부역 농민이 일주일에 사흘은 자기 경작지에서 자신의 생산수단으로 일하고 나머지 사흘은 영주의 농지에서 부역 노동을 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부역 농민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누구에게 받을까. 당연히, 부역 농민 자신이다. 그는 전체 생산물 중 절반은 자기 몫으로 갖고 나머지 절반을 영주에게 준다. 자기 몫도 자기가 생산하고 영주 몫도 생산해주는 것이다. 다만 자본주의처럼 노동기금(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생활수단의 총량)이 화폐형태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부역 농민은 자신에게 지급된 생산물이 자기가 직접 키워낸 생산물임을 분명히 안다. 또 노동자의 경우처럼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판매한 것이 아니기에, 부역 농민은 영주의 몫으로 제공한 것이 ‘강제로’ 바친 것임을 안다.
그런데 어느 날 영주가 경작지, 종자, 가축 등 부역 농민의 생산수단을 모두 몰수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부역 농민은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영주에게 ‘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영주에게 ‘고용’되는 것이다. 만약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면 부역 농민은 여전히 일주일에 엿새를 일하고 사흘치에 해당하는 생산물을 임금으로 받게 된다. 일주일 중 사흘은 자신의 생활을 위해, 사흘은 영주를 위해 생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사태는 완전히 달라 ‘보인다’. 지불자의 이미지가 뒤집히는 것이다. 이전에는 부역 농민 자신이 자기 노동력에 대한 지불자였으나 이제는 영주가 ‘지불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주가 생산물을 얻기 위해 농민을 고용하고 노동력에 대해 지불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부역 농민은 임금노동자가 된 뒤에도 여전히 자기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가치(노동기금)를 스스로 생산하고 거기에 더해 자본가가 된 영주를 위한 잉여가치도 생산하는데, 비추인 모습은 정반대다. 그는 자기를 먹여 살리고 영주도 먹여 살리지만 외견상으로는 영주가 그를 먹여 살리는 듯 보인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게다가 자본가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노동자 자신에게도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재생산’의 관점에서 전체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다시 보면, 그 시각적 기만이 사라지면서 실상이 드러난다.
재생산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자본가가 들고 있는 자본은 모두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라는 점, 심지어 그것은 아무런 지불 없이 취한 불불노동이라는 점이 이렇게 드러난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로, 일반적인 상품 및 화폐의 유통만으로는 자본이 생겨날 수 없다. ‘증식하는 가치’로서 자본이 존재하려면 가치증식을 가능케 하는 상품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노동력’이다. 노동력 구매자인 자본가는 판매자인 노동자에게 일정한 값을 치르고 노동력을 ‘계속해서’ 구매한다. 구매 이후 생산과정에 머무는 동안 노동력은 자본가의 전유물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써서 끊임없이 생산물을 만들어내는데, 그 생산물은 마치 효모 노동의 산물이 모두 양조업자의 것이듯 결국 자본가의 것이 된다. 자본이 재생산된다는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노동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잃어버린 채 타인의 부를 생산한다.
이렇게 자본의 생산이 반복되면 언제부턴가 자본가가 들고 온 돈은 그 성격이 완연히 바뀌어 있게 된다. 구매자로서 자본가가 들고 있는 돈은 그동안 그가 노동자로부터 ‘등가물 없이 취득한 가치’ 즉 ‘불불노동’일 수밖에 없다. 이로써 우리는, 재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력에 대한 ‘등가교환’ 역시 단지 외관이고 형식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노동력의 거래’에 관한 한 등가로 지불한다 해도 기본적으로는 ‘착취’라는 이야기다. 즉 ‘재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기존에 ‘등가교환’이라고 생각했던 노동력의 거래마저 실은 ‘가상’이었음이 드러난다.
3. ‘자본의 재생산’은 노동자의 재생산이자 가난의 재생산
― 자본관계의 재생산, 자본의 부속물로서의 노동자계급
고병권은 『자본』 제7편에 이르면 마치 카메라가 줌아웃 된 것처럼 시야가 확대된다고 했다. 자본의 재생산을 보려면 이성의 시야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또 사회적으로도 크게 넓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총자본가 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자 즉 노동자계급’의 관계에 주목해보자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노동력의 거래란 화폐와 상품을 교환하는 거래인 동시에 화폐소유자와 상품소유자 간의 거래이며, 이를 ‘계급’이라는 시각으로 치환해보자면 노동력 거래란 곧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간의 거래다.
앞서 보았듯 마르크스는 재생산의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자본의 생산과정을 둘러싼 여러 가상을 제거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본의 재생산이란 곧 자본을 가능케 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는 곧 자본의 재생산을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재생산’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자본이 재생산된다는 것, 즉 노동력이 재생산된다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을 지배하고 착취할 자본을 계속 생산하고(소외된 노동의 반복), 자본가는 그런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서 노동자를 계속 생산한다는 의미가 된다.
마르크스는 사회 전체를 놓고 볼 때 생산영역에서 생산요소들을 소비하는 것을 ‘생산적 소비’라 했고 유통영역에서 생활수단을 구매해 일상에서 소비하는 것을 ‘개인적 소비’라 했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을 생산적으로 소비하면서 잉여가치를 생산하며, 또한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로 받은 화폐로 생활수단을 구매하고 소비하면서는 자신의 노동력을, 다시 말해 임금노동자로서 자기 자신을 생산한다.
노동자에게 생산적 소비(노동)의 시간과 개인적 소비의 시간은 전혀 별개인 것처럼 보인다. 전자가 ‘자본가의 삶’을 생산하는 시간이라면 후자는 ‘노동자 자신의 삶’을 생산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그렇지만, 재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달라진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하지 않는 그 시간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에서 그것은 노동력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노동자에게 개인적 소비의 시간이 주어진 것은 사실 생산적 소비를 위해서다. 먹기 위해 일한다기보다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는 공장에 가지 않을 때조차 ‘노동력’으로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자 스스로 ‘기름칠’을 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양육함으로써 자식 노동자까지 키운다. 그 덕분에 자본가는, 마르크스의 말대로 노동자계급의 유지와 재생산을 “노동자의 자기유지 본능과 생식 본능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그런데 노동자의 개인적 소비에는 노동력을 생산한다는 것 말고도 자본가에게 유익한 점이 있다고 저자 고병권은 강조한다. 개인적 ‘소비’가 노동자를 결국 가난하게 만들고, 이 ‘가난’이라는 놈이 자본가의 하수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난’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출현하는 역사적 조건이기도 하고(생산수단을 상실한 인구의 집단적 출현) 노동력의 지속적 공급을 보장하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요컨대 노동자의 개인적 소비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면서 가난을 재생산한다. 노동자들은 소비를 통해 가난해져 다시 맨 몸뚱이로 자본가 앞에 설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도무지 자본가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임금이란 말뚝에 매어놓은 줄과 같습니다. 일하는 짐승에게 여기저기 풀을 뜯을 수 있는 여유를 주지요. 하지만 줄을 반경으로 하는 원 안의 풀을 다 뜯고 나면 별수 없이 또 일하러 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이 풀 있는 곳으로 말뚝을 옮겨줄 테니까요. - 본문 80쪽, <3장 드러나는 계급관계>에서
4. 축적과 착취와 엉터리 도그마에 관하여
― 노동자계급이 끝내 투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
이번 책 『자본의 재생산』은 그동안 살펴본 ‘자본가와 노동자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개별 노동자와 개별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을 생각하는 순간,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판매하는 일은 노동자에게 결코 벗어나기 어려운 운명이다. 그리고 이 운명은 노동자 한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운명이고, 한 세대 노동자가 아니라 전 세대 노동자에 걸쳐 있는 운명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상품과 잉여가치만 생산하는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계급관계도 생산한다.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자본의 재생산이란 자본관계의 재생산이라고.
자본의 ‘축적’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런 ‘자본관계의 재생산’을 통한 착취가 지속되고 강화된 덕분이다. 빈곤의 축적, 빈민의 축적이 무서울 정도로 이루어진 덕분에, 즉 노동자를 최대한으로 닦달한 덕분에(임금을 강제 인하하거나, 고용을 늘리는 대신 노동일을 늘리거나, ‘시간외노동’을 시키거나, 노동강도를 높이는 식으로) 자본축적도 가능했다. 착취가 늘어날수록 축적도 늘어났다.
그런데 제러미 벤담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자본의 크기가 고정된 것처럼 다루면서 특히 노동기금의 크기가 정해져 있다는 엉터리 도그마를 퍼뜨려 이런 착취를 고착시켰다. 즉 노동기금은 정해져 있으니 노동자는 그 안에서만 자기 몫을 계산하면 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도그마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노동자는 사회 전체의 생산물 중 생산에 얼마를 투자해야 하는지 정하는 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떠먹을 수 있는 수프 접시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라는 그 주장에 대해, 노동자들이 떠먹는 수프는 전체 국민의 노동생산물, 즉 사회 전체 부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이 접시에서 노동자들이 더 많이 떠내지 못하는 것은 접시가 작기 때문도 아니고 접시 속 내용물이 빈약해서도 아닌, 단지 노동자들이 자기 몫을 떠내는 “숟가락이 작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힘 관계는 대칭적이지 않습니다. 자본가계급이 권력을 쥐고 있지요. […]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저항적이고 방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말합니다. 임금 인상 투쟁의 99퍼센트는 기존의 가치라도 유지하려는 투쟁이라고. 게다가 이 투쟁의 기본 성격은 노동력을 파는 것 말고는 살길이 없는 노동자가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의 가격을 제대로 받아보려는 것이라고. - 본문 174쪽, <6장 ‘노동자계급의 밥그릇’에 대한 엉터리 도그마>에서
이런 현실 앞에서 노동자는 “자본의 약탈적 침해에 대한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구제할 수 없는 가련한 무리로 전락할 것이다.” 약탈에 저항할 줄 모르고, 조금 나아질 수 있는 기회조차 이용하지 못한다면 노동자계급에게는 아무런 가망도 없다는 뜻이다.
저자 고병권은 북클럽자본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자본』을 추리소설에 비유한 바 있다.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추적하는 범죄는 체제를 위협하는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체제 자체가 저지르는 범죄라고도 했다. 마르크스가 추적하고 고발하는 범죄는 바로 그것, 자본의 범죄이고 자본주의의 범죄다. 자본의 재생산을 다루는 이번 책 『자본의 재생산』에서 독자는 드디어 ‘자본주의’라는 범죄자를 대면하게 된다. 심지어 개별 자본가조차 하나의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 거대한 착취와 예속의 기계가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 소개
서울대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사회사상과 사회운동에 늘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오랫동안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생활했고 지금은 노들장애학궁리소 회원이다. 그동안 『화폐, 마법의 사중주』,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생각한다는 것』,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1991년에 처음 우리말 번역본으로 읽었다. 그 시절 한국은 민주주의 열망이 불붙던 시기다. 어느덧 30여 년이 지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으며, ‘그 달라지지 않은 것’을 사유하고자 다시 『자본』을 읽어야 하는 시대라 믿는다.
목 차
저자의 말 ― 속물과 인질
1 자본의 생애는 반복된다
○재생산의 관점에서 본 자본의 정체 ○자본의 운동은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것 ○왜 여기서 ‘자본의 재생산’을 다루는가
2 사라지는 가상들, 드러나는 자본의 정체
○생산과정은 재생산과정이기도 하다 ○독립성의 가상이 사라지다 ○‘자본가가 지불자’라는 가상이 사라지다 ○등가교환의 가상이 사라지다
3 드러나는 계급관계
○자본의 재생산은 노동자의 재생산 ○자유로운 교환의 가상이 사라지다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도 노동자는 생산한다 ○최선의 세팅―노동자계급은 자본의 부속물 ○자본의 재생산은 자본관계의 재생산
4 자본가는 축적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잉여가치는 어떻게 자본이 되는가 ○‘타인의 노동력’ 소유를 통한 잉여가치의 사유화 ○자본축적에 대한 부르주아 경제학의 틀린 생각 ○자본가 또한 자본축적 메커니즘의 톱니바퀴 ○역사적 권리에는 날짜가 없지 않다 ○축적의 길은 고행의 길, 자본가는 수도사?
5 축적은 착취에 달려 있다
○착취가 늘어나면 축적이 늘어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왜 빨리 죽는가 ○노동생산력 증대는 축적을 가속화한다 ○규모가 커지면 축적은 탄력을 받는다
6 ‘노동자계급의 밥그릇’에 대한 엉터리 도그마
○자본은 용수철 신발을 신었다 ○노동자의 수프 접시 크기는 정해져 있다? ○노동자들의 숟가락이 작은 것 ○드디어 찾아낸 범인, 심판의 법정이 곧 열린다
부록노트
Ⅰ―‘건축물’ 비유와 재생산의 관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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