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퍼서 아름다운 판타지
― 권지영 시집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해설을 쓴 오민석 시인은 권지영 시인의 이번 시집을 “부재의 통증과 그리움의 언어”라 명명하면서 이렇게 평한다.
“권지영의 시들은 자주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 눈물은 평면적이지 않고 피카소의 「우는 여인」(1937)처럼 입체적이다. 그것은 널리 ‘부재(不在)’에서 파생되는 눈물인데, 그에게 있어서 부재는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일 수도 있고, 세상을 뜬 아버지의 그것일 수도 있으며, 모든 문학이 꿈꾸는 ‘실재계(the Real)’의 그것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의 ‘없음’이야말로 권지영 시의 기원이자 동력이다. 권지영의 시들은 이 부재하는 중심을 돌며 번지는 바람이고 별이고 꽃이다. 그것들은 물 위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서로 연결되고 겹쳐지면서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린다. 그것은 권지영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되살아나고, 되살아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권지영의 시들은 ‘부재’가 뿜어내는 기억이고, 상처이고, 슬픔이다. 부재의 빗방울은 삶의 캔버스에 떨어져 다양한 무늬를 그려낸다. 부재는 부재이므로 ‘현존(現存 Presence)’을 호출한다. 현존 앞에서 부재는 늘 결핍이고 고통이므로 욕구와 욕망과 그리움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권지영의 시들은 부재와 현존 사이의 팽팽한 길항(拮抗)이고, 빈번한 왕복 운동이다.
(…중략…)
권지영의 시들은 부재를 횡단하여 현존에 이르는 여정에서 쓰여진다. 그러나 부재의 횡단은 슬픔과 통증을 유발한다. 생각해보라. ‘없는 것’을 어떻게 가로지른단 말인가. 그것은 일종의 ‘헛발질’이어서 슬프지만, 문제는 부재를 경유하지 않고 현존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존의 아름다움은 부재의 슬픔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
(…중략…)
권지영의 시에서 부재의 통증이 아름다움으로 건너가는 다리는 바로 ‘그리움’이다. 슬픔이 슬픔으로만 주저앉을 때, 슬픔은 아름다움으로 전화되지 않는다. 권지영은 슬픔의 고체를 흔들어 그리움의 액체를 만들고 현존에 다가갈 문을 조금씩 연다. 그 과정에서 슬픔은 자신의 ‘뼈’를 서서히 잃어가고 그리움으로 형태 변용(metamorphosis)한다.
(…중략…)
권지영에게 있어서 사라짐은 사라짐으로 끝나지 않고, 부재는 부재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삶의 한 축에 멈추지 않으며 서로 다른 축들을 끌어당겨 섞이게 한다. 이 이질적인 것들의 ‘섞여 있음’, 상호모순적인 것들의 동시적 존재야말로, 우리가 ‘배리(背理)’라 부르는 삶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권지영은 삶의 배리들을 이곳저곳 들쑤시며 슬프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들어낸다.”
나로서는 아주 적확하게 권지영의 시를 읽어냈다고 생각하는데, 평범한 독자 입장에서 보면 전문적이고 학제적인 용어를 써서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쉽게 풀어 말한다면 이런 얘기다. “사랑한/사랑하는 혹은 있는/있어야 할 사람이 당신이 지금 여기 당신의 곁에 없다면 당신의 심정은 어떨까? 아픔과 그리움이 뒤섞이지 않겠는가. 가버린 것에 대한 원망과 다시 올 거라는 희망이 뒤섞이지 않겠는가. 삶이란 결국 그런 뒤섞임과 뒤엉킴을 버티고 견디며 살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물에 잠겼을 때 비로소 공기를 내 몸이 알아채듯이, 물 바깥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알아채듯이, 당신이 가버리고 나서야 당신을 알아채는 것이니. 삶이란 반박자 혹은 반걸음 늦게 찾아오는 깨달음, 뒤늦은 후회 그런 뒤섞임과 뒤엉킴을 살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권지영의 시집이 그려내고 있는 풍경이 바로 그런 삶의 풍경이다.” 뭐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다.
권지영 시인은 이번 시집의 제목을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이라 지었지만, 나는 이번 시집을 이렇게 명명한다.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퍼서 아름다운 판타지”라고.
여기서 ‘판타지(fantasy)’는 음악 용어일 수도 있고, 문학 용어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둘을 모두 포함한 용어일 수도 있겠는데, 선택은 물론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인도양의 숨겨진 보석
나의 손가락은 지구본의 좌표를 읽는다
표류하듯 떠 있는 섬나라까지는 스무 시간
당신의 눈망울까지 한달음에 내달리는 나는
어느새 태평양을 건너 연중 이십 도가 넘는
당신처럼 온화한 곳에 다다른다
나무껍질을 이은 파라솔 아래
금빛 모래사장에 앉아
두 눈 속으로 에메랄드빛 바다를 채우고
서로의 등을 덮는 석양에 서서히 파묻혀간다
뜨거워지는 바다의 끝에서
당신과 나의 길고 긴 고백이
마지막 작별처럼 흩어져간다
기다림의 끝에 가닿을 숨겨진 섬
먼 그리움을 이끌고 다시 떠오른다
― 「당신의 모리셔스」 전문
분명한 것은 시집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문득 당신이 살면서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렸던 유년의 어떤 판타지들이 당신 안에서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당신 몸이 알아채게 될 것이라는 것. 당신의 모리셔스가 다시 떠오를 거라는 것.
■ 달아실출판사는…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
작가 소개
울산에서 태어나고 매일 여행을 꿈꾸며 살고 있다. 영화와 음악, 사람과 풍경에 깃든 이야기를 좋아한다. 경희대 국제한국언어문화학과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전공하고 지은 책으로는 시집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누군가 두고 간 슬픔』, 전자책 작은시집 『당신, 잘 있나요』, 동시집 『재주 많은 내 친구』『방귀차가 달려간다』, 실용서 『꿈꾸는 독서논술』 등이 있다.
목 차
시인의 말
1부
월광 소나타
키르케의 주문
당신의 모리셔스
Someone like you
모래맨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여름의 외부
하리보에 대한 단상
박각시나방의 우주
볼리비아 우표
방화
슬픔에 상상씨를 뿌려요
별의 소식
철쭉을 따라 나비를 따라
2부
우리의 날갯짓은 정적으로 흔들린다
풍경
물고기의 통증
노래의 길
독전을 독람獨覽하다
달래간장
에어컨 광고
걷고 있는 피아노 소리
소안도의 거침없는 물결
팬데믹
아버지의 뒷모습
글자 놀이
기억 속의 너
민들레
표류하는 오월
3부
허기진 밤
시간의 바깥
천 개의 바람
엄마, 엄마
미망에 관하여
살몬색 제라늄
스펀지
슬픔 없는 카톡
살아가는 동안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그의 이름
증명사진
우주의 행복을 누린다는 건
봄밤
해파리의 노래가 울려요
4부
한 줄의 시
바라봄
라일락 편지
꽃 피는 아몬드나무의 바탕
오랜 일기
오 촉 전구 같은 사람
연기가 아니라 수증기입니다
사이프러스의 별자리
소풍 가는 날
달빛
이별의 방정식
사랑이 그런 거라면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대라는 시
도심의 직박구리
사랑,
침묵에 대하여
해설
부재의 통증과 그리움의 언어 / 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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