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시인은 "어룽어룽"(아궁이 들여다보기)한 어떤 마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의 마을 안내는 "두고 온 집"(아카시아 누나)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 빈 집에는 그가 떠나온 사람들과 꽃들과 짐승들이 가엾게도 여태 "어룽어룽"하다. 어룽어룽한 것들을 그리는 시인의 문장은 그렁그렁하다. 계절과 계절을 잇는 시인의 문장에는 해와 달, 송아지와 고양이, 아카시아와 살구 등이 "굼실굼실"(찬물구덩이의 물) 구두점처럼 찍혀 있다. 계절마다 피고 지고 살고 죽는 마음을 가득 채우는 그 모든 느낌표, 물음표, 말줄임표, 따옴표, 쉼표들. 시를 따라 읽어가다가, 그런 구두점들에 걸려 넘어진 김에 쉬어갈 수 있어 좋다. 힘든지도 모르게 이 집 저 집 기웃대느라 뻐근해진 다리를 주무르고 땀도 좀 훔칠 수 있어 좋다. 솔직히 말해, 쉬어 가고 싶어 쉬는 것은 아니다. 그냥 스치듯 지나치려다가도 마을의 풍경을 이루는 낮은 소리들에 꼼짝없이 붙들려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런 작고 희미한 등불 같은 노랫소리가 마을 곳곳을 비추며 흘러나온다. "열 밤 스무 밤이 지나가고 / 셀 수 없이 많은 열 밤이 " 지나도록 오지 않는 어른들이 돌아올 때까지 "자장자장"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우리 애기"(어른들은 언제나 오실까)가 살아가고 있는 마을의 이야기가 생중계되는 시간. 안타깝게도 지직거리며 잘 안 나오는 이야기, 자꾸만 희미해지려는 이야기를 되살리려 시인이 온 힘으로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안테나'가 이 시집이다. 시인이 내민 그 안테나에 주파수를 맞추려 했던 지난 몇 날 밤에 들은, "죽은 줄도 모르고"(죽은 줄도 모르고)사는 것들의 희미한 이야기가 여태 내 온몸에서 공명하며 떠돈다. 그 이야기들을 아무래도 오랫동안 내 안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 것 같다. "강물 위를 떠돌던 푸르던 빛들"처럼, "일렁이는 빛들"(나 잘 있어)처럼, 그냥 원하는 만큼 살다 가라고 두는 수밖에.
- 김중일 시인
작가 소개
송진권
1970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에 <절골>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라는 돌>, 동시집으로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을 냈다.
현재 <젊은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격월간 <동시마중>의 편집위원이다.
고양행주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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