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역설 - 10개의 키워드로 읽는 독일통일과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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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동기
출판사항아카넷, 발행일:2020/10/03
형태사항p.391 국판:22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57336991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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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독일통일의 역사는 우리가 참고할 유일한 통일 교과서
인습적 이해를 넘어서 새로운 전망을 찾는 평화의 획기적 구상


독일통일의 역사는 우리가 참고할 유일한 통일 교과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9년 동서독에 별개의 국가(‘이중 건국’)가 들어선 뒤 1990년 독일통일에 이르는 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피면 한반도 분단의 상황과 상당한 주제들이 겹침을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로 반목하고 견고한 장벽 너머로 대결을 벌이면서도 접근을 모색했으며 주민의 인권과 평화의 이슈가 국내 정치와 맞물려 제기되고 민족의 정체성과 분단국의 정체성이 교차하는 혼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밀과 역설』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서 주목할 내용들에 초점을 맞추되 독일통일의 역사에 대한 인습적 이해를 넘어서 평화에 이르는 새로운 모험과 도전의 길을 제시한다. 독일통일의 역사를 행위자 중심으로 서술하여 동서독 간 대화와 협상의 실제 양상과 과정을 다양하게 소개해 정치적 구상과 사회적 상상력을 보조하면서도 한반도 맥락에서 중요한 함의도 각 장 말미에 더듬어 보탰다. ‘흡수통일’이 낳은 통일독일의 문제들을 딛고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제기된 오류들을 되풀이하지 않으며 동서독 교류의 역사에서 한반도 평화와 평화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분단의 극복은 ‘불안’ 대신 ‘신뢰’를 쌓아나가는 데서 출발
동서독의 ‘실용적인’ 협력관계 일군 평화정치가들에 주목


냉전과 분단이 이념과 체제 대결의 필연적 결과는 아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을 거쳐 분할 점령 및 관리 이후 분단을 맞았지만, 오스트리아는 10년에 걸친 국제 협의와 국내 조정 끝에 1955년 주권을 되찾았다. 유럽의 냉전 질서를 강화하고 동서독 사이의 대결과 적대를 키운 것은 결국 ‘불안’이었다. 독일을 중립화하는 방안이 동서 양 진영에서 단일국가 독일의 방안으로 논의되고 제시되었지만, 동유럽에서 친소 정권의 탄생, 사민당과 공산당이 합당한 사통당(SED)의 결성, 한국전쟁 발발 등은 서방측에 공산화의 우려와 상대의 진의에 대한 의심을 키웠고 결국 동서독 분단은 현실이 된다. 분단 이후 국면의 전환을 모색한 것은 양 독일 국가의 정치가와 주민들이었으며, 특히 1970~80년대 동방정책을 주도한 평화정치(가)들은 ‘불안’에 침몰하지 않고 상대와 신의와 선의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다. 그것은 긴장을 해소하고 위기를 예방하며 갈등을 조정하는 대화와 협상의 연쇄에 다름 아니었다.


동서독 협력관계에서 주목할 해는 1969년과 1982년이다. 서독에서 사민당(SPD) 정부가 본격적으로 ‘접근을 통한 변화’를 주장하며 ‘동방정책’을 (1969년) 개시하고 우파[기민련(CDU)]로 정권이 교체된 (1982년) 이후에도 동서독의 신뢰와 협력은 중단 없이 지속했다. 동방정책의 토대를 놓은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와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의 상징적 인물이 된 헬무트 콜(Helmut Kohl). 이 두 동방정치가들은 정파를 뛰어넘어 동방정책의 계승과 연속을 보장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우파 연정의 정권 교체 이후에도 파트너로 참여한 자민당(FDP)과 기민련은 동방정책을 이어갔으며 자민당의 당대표이자 탁월한 협상정치가인 한스-디트리히 겐셔(Hans-Dietrich Genscher)는 외무부장관직을 지속하면서 동독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대내외 신뢰를 쌓았다. 총리는 사민당의 슈미트에서 기민련의 콜로 바뀌었지만 서독 건축 전시회의 동베를린 전시 건, 베를린과 함부르크 간 고속도로의 건설, 양독 간 문화협정 등이 중단 없이 정권 교체 후 2~3개월 안에 지속되었으며 스위스 취리히의 은행을 중개로 서독의 자금 지원 대신 동독 주민의 서독 방문 장벽을 크게 완화하는 ‘취리히 모델’ 논의도 계승되었다.


냉전과 분단의 근본 원인은 ‘쌍방 간의 인지 오류’와 그것을 낳은 공포와 불안, 그것으로 인한 불신과 소통 실패다. 공포와 불안은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이다. …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다른 무기는 없다. 상대방과 신의와 선의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만드는 것 말고는.
― 제1장 「불안」


불가역의 통일의 길을 낸 「동서독 기본조약」의 정치적 역동성에 주목


동방정책은 서독이 상대를 인정하면서 동독의 지배자들에게 국내외의 정치 기반을 제공했고 다른 한편으로 동서독 관계를 발전시켰으며 독일통일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유지케 했다. 그런 점에서 동방정책은 모순적이었지만 나치 과거의 유산, 냉전과 분단의 현재, 그리고 미욱한 유럽 통합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동서독 주민과 물자의 교류라는 ‘실용’이라는 전략으로 해소한 정책이었다. 동방정책이 거스를 수 없는 평화와 통일의 길을 낸 것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의 체결에 힘입었다. 1970년 사민당의 동방정책은 브란트 총리의 불신임안이 부결된 이후 선거(1972년 4월)에서 승리함으로써 정치적 승인과 대중적 지지를 얻는다. 뒤이어 「기본조약」의 의회 비준과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법적인 안정성을 확보했으며, 이후 제1 야당인 기민련은 물론 극우에서 극좌에 이르는 정치세력들이 동방정책의 성과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1970년대 동서독과 달리 지난 2000년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통일에 대해서도 논의해 성과를 낳았다. 「기본조약」을 비롯한 1970년대 후반의 동서독 협정과는 달리 지난 시기 남북은 관계 개선과 협력사업 추진과는 별도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의 길이 남북통일의 가능한 경로임에 합의했다. 그 합의가 지닌 정치적 역동성에 더 착목해야 한다.
―제2장 「접근」


평화를 목적한다면 자기결정권을 부각할 ‘외교의 시간’도 필요.


브란트를 비롯해 동방정책을 주도한 서독의 평화정치가들이 서방측의 외교적 지지를 얻어가는 과정도 주목할 만하다. 1970년대 들어 동서 진영 간의 긴장 완화(데탕트) 국면이 조성되었지만, 동방정책이 서방측 특히 미국의 지지를 쉽사리 등에 업은 것은 아니었다. 민주사회주의자 브란트는 보수주의 정치가인 미국 닉슨 대통령에게 ‘빨갛게’ 보였으며 국무장관 키신저는 독일이 외교와 안보에서 소련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중립화한 핀란드의 사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그럼에도 브란트 총리는 동방정책의 기조를 담은 신정부 선언을 미국과 사전에 논의하지 않고 미리 알려준 뒤 공포했으며 평화정치의 근간이 되는 자기결정권을 놓지 않았다. 미국의 우려와 의심을 극복한 요인은 단호한 평화의지와 평화구상이었다. 안보를 위해서는 동맹이 절대 필요했지만 평화를 위해서는 자주적이면서도 동맹 국가를 더 설득할 필요가 있음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20세기 전반의 민족해방 투쟁의 맥락이 아니더라도 주권과 자기결정권 및 자주는 평화의 전제였다. 안보 때문에 동맹에 귀속될 때도 있지만 평화를 위해 자기결정권을 부각할 때도 있다. 오스트리아와 핀란드가 중립화 외교로 탈냉전의 주권을 발현시켰다면 독일은 조정과 타협의 통일 외교를 통해 주권 옹호를 더욱 발전시켰다. 둘 모두 한반도 평화외교를 위한 숙고의 자료다.
― 제8장 「외교」


‘대결 없는 인권’의 길로 안내한 실용책 ‘구매를 통한 정치범 석방’


가까운 시일 내에 분단을 극복할 수 없다면 분단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서독 인권정책의 출발점이었다. 인권과 평화가 길항하지 않으며 해결 가능한 방식의 고통 경감의 실용책으로 나온 것이 ‘구매를 통한 동독 정치범 석방’이다. 이 정책은 1963년에 시작해서 1989년 말 동독 체제 붕괴 때까지 정치범 3만 3,755명을 거래를 통해 석방하여 독일로 이주시켰다. 여기에는 동독 체제를 비판한 이들뿐만 아니라 동독 탈출에 실패해 교도소에 갇힌 이들이 포함되었으며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에 치른 대가는 총 34억 마르크 상당의 현물이었다. 사람과 돈을 교환한다는 비윤리적 구상이지만, 독일분단 시기 내내 지속되었던 합법 및 비합법적 이주와 맞물려 이 실용적 인권정책은 동독 주민들에게는 삶의 새로운 가능성과 분단의 벽을 넘는 상상력을 제공했다. 물론 동독의 인권문제는 서독 좌우파에서 정치적 충돌의 이슈였고 강조점이 서로 달랐지만 양측 모두 동독 체제의 붕괴를 겨냥하거나 정치 선전의 목적으로 동독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인권으로 평화의 지평을 지우거나 평화를 내세워 인권의 본령을 모호하게 만드는 길 모두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영구평화』에서 ‘정치적 도덕가’가 아니라 ‘도덕적 정치가’를 구했다. 인권개선을 위한 도덕정치를 평화정치와 결합할 줄 아는 ‘도덕적 정치가’의 시대가 한반도 남단에서 더 열려야 할 것이다.
―제4장 「인권」


동독 민주혁명에서 제시된 ‘제3의 길’, 콜의 통일강령에 맞선 ‘역사의 패자들’ 살피며
체제 이식 아닌 주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평화와 통일의 길 모색


1989/90년 ‘전환’에서 일어난 동독의 민주혁명은 2019년 독일 선거에서 독일 민주주의 체제에 맞서 ‘전환’을 요구하는 극우 포퓰리즘 세력에 전유되었다. ‘우리가 인민이다’는 구호를 다시 꺼내든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동독 4개 주에서 제2당으로 발돋움한 것을 두고 통일 직후의 ‘통일 위기’가 ‘민주주의 위기’로 전화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30년 전 동독의 민주혁명은 1989년 9월 4일부터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10월 초부터 가속화하여 11월 9일 베를린장벽 붕괴로 이어졌다. 이러한 동독의 혁명을 독일재통일의 필연적인 과정이거나 자연스러운 상승 경로 인식하는 해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그러나 당시 혁명을 이끌던 체제비판운동 세력의 압도적 다수는 ‘제3의 길’을 고수했으며 1990년 2월까지도 이들 세력은 통일을 지지하지 않았고 동독 주민들 사이에서도 통일에 대한 입장이 단일하지 않았다.
체제비판운동이 제시한 제3의 길이 가장 뚜렷하게 제시된 때는 1989년 11월과 12월이었다. 11월 29일의 ‘우리나라를 위한 호소’ 선언과 이에 대한 지지서명 운동이 대표적이다. 콘라트 바이스, 프리드리히 숄렘머, 울리커 포페, 슈테판 하임과 크리스타 볼프 동독의 대표적 체제비판 작가와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한 “평화와 정의와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연대적 사회로의 발전”과 ‘참여민주주의’의 확산은 통일 찬성과 반대라는 선택지를 동독 주민에게 내던져 압박한 결과를 낳았고 동독 최초이자 최후의 자유선거에서 콜의 정치적 동반자들이 결집한 독일동맹이 승리를 거두면서 체제비판 운동가들의 주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묻힌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1989년 11월부터 동독의 자유선거로 통일의 과정과 방식이 결정되는 3월 18일까지 서독의 정당과 지식인 들이 내세운 주장도 통일의 길들을 사유하는 다른 고리다. 집권당의 통일강령으로 10개조를 내세운 콜과 이에 맞선 서독의 좌파들의 정책이 주요한 흐름이었다. 서독 좌파들, 즉 비판적 자유주의자와 사민당‧녹색당의 정치가들은 민족의 재발견과 국민국가로의 재통일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쟁과 홀로코스트 같은 민족사의 파국에 대한 비판적 역사의식을 매개로 하면서 초민족적 유럽통합의 실현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구현을 당시의 분단 현실과 함께 의식해야 했다. 이들에게 독일과 유럽의 평화 정착은 독일분단을 국민국가 재통일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일분단, 즉 독일의 이국가상태(Zweistaatlichkeit)에 기초해 유럽을 통합하고 블록을 해체하는 길에 있었다.
콜은 10개조 통일강령에서 독일 연방국가라는 국민국가로의 재통일 전 단계의 이행기 국가연합을 제시하지만 비판적 지식인 대부분은 국가연합을 그 자체로 독일민족 재결합의 형식으로 보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동독으로 하여금 고유한 민주주의적 발전의 길을 찾아나가도록 돕는 것이지 서독 체제를 동독에 이식하는 ‘흡수통일’의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급박한 통일 논의 속에서 비판자들의 주장은 묻히고 사민당의 베를린 선언과 녹색당의 생태국가연합 등의 대안도 주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채 연방국가 형태로의 급속한 통일을 맞았다. 지은이는 이러한 콜 주도의 독일통일 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여러 갈래로 상정된 ‘통일로 가는 길’들을 되짚고 통일 과정에서 분출되는 다양한 요구와 지향을 발현하고 반영하는 평화와 통일의 길을 모색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소수자에 주목할 때 공존하는 통합의 길 열려


1990년 10월 3일 통일독일로 ‘완성’에 이르지 못한 독일 사회의 현실은 동독의 거리와 서독의 정치무대를 매웠던 열망을 되살린다. 그날의 통일은 두 체제와 사회의 ‘통합’에 이르지 못하고 한 체제와 사회에 다른 체제와 사회가 편입된 것이다. 동독 주민의 지지를 받은 대표자들이 서독의 정치가들과 협상을 통해 통일이 이루어졌으며 통일 과정이 민주적이고 평화적이었지만, 한 세대가 지난 지금에도 사회문화 통합은 더디고 사실상 이루어지지 못했다. “상황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격차는 여전하다.”
이러한 통일독일의 현실은 통일 당시 동독의 탈산업화와 차별, 즉 동독 경제 재생력의 근본적 파괴와 사회문화적 배제와 차별이 낳은 결과이다. 40년 동안 유지하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배워야 하는 까닭에 통일 후 동독은 ‘이행사회’였다. 이행사회에서 동독 주민이 보인 정서적인 집단적 대응은 독자적인 동독정체성을 강화하는 ‘오스탈기(Ostalgie)’와 청소년 시절 동독 체제 붕괴를 경험한 젊은 세대에게 나타나는 집단적 자기인식인 ‘동독 3세대’ 개념에서 읽어낼 수 있다.
한편 이주민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미친 영향이 더 본격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1991년 여름 빈발한 외국인을 노린 적대 행위 중 동독 지역 작센주의 호이에르스베르다의 폭력 사건에 주목한다. 그저 “심심”해서 베트남 출신 상인들을 괴롭히던 네오나치들의 폭력 행위가 인근 주민들의 지지와 경찰의 방관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서술하며 지은이는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갈등과 위기의 시작을 경고한다. 또 탈북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든 한국과 북한 주민의 접촉과 교류에서든 섣불리 ‘통합’을 말하기보단 ‘화합’이나 ‘포용’으로 확장해서 통합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탈북자와 한국 사회의 관계든 한국과 북한 주민의 접촉과 교류에서든 섣불리 ‘통합’을 말할 수 없다. 통합 개념을 ‘화합(accommodation)’이나 ‘포용(inclusion)’으로 대체하거나 확장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한반도의 우리야말로 독일의 ‘통일 위기’와 ‘민주주의 위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묻혀 있는 사회 소수자의 통일 경험과 기억을 더 헤집어 살펴야 할 것이다.
― 제9장 「통합」


평화정치는 모험과 실험의 연속, 평화정치가의 대담한 결정과 실행이 중요
경색의 한반도 분단 현실을 타개할 평화의 능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때


지은이 이동기 교수는 독일 예나 프리드리히실러 대학교에서 독일통일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통일 전문가이자 옛 동독 지역에서 수학한 점에서 극히 드문 동독 전문가이다. 또 현재는 강원대학교 평화학과 교수로 냉전과 평화의 역사를 중심으로 연구한다. 1949년 ‘이중건국’에서 1990년 10월 3일 통일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일통일의 역사를 살피며 줄곧 강조하는 것은 ‘평화’다. 오해와 불신을 해결하고 조정할 줄 아는 다양한 평화 행위자들이 등장하여 상호 공존의 고리와 방법들을 하나씩 찾고 쌓았으며 상대의 이질성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해와 불신의 고리를 끊어내는 평화능력을 키운 것이 독일통일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할 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정치는 모험과 실험의 과정이며 평화정치가의 대담한 결정과 실행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4개 장은 독일 평화정치가들의 숙고와 모험, 논쟁과 행동에 집중하면서 열강에 대한 태도, 진보와 보수의 합의, 인권과 평화의 관계를 다루고, 2부 4개 장은 동독 체제비판운동과 주민들, 서독 정부와 좌파 야당들, 열강과 주변국들의 주장과 입장, 갈등과 고집을 다루었으며, 3부 2개 장은 통합과 통일에 대한 열린 관점과 전망을 찾고자 독일통일에 대한 평가와 국가연합 논의를 다루었다.  

작가 소개

이동기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 아시아학부 초빙연구원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 연구교수,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강원대학교 평화학과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Option oder Illusion?: Die Idee einer nationalen Konf?eration im geteilten Deutschland 1949-1990(선택 가능한 길인가 망상인가: 1949-1990년 분단 독일의 국가연합안)』, 『20세기 평화텍스트 15선』, 『현대사 몽타주: 발견과 전복의 역사』가 있고, 옮긴 책으로 『하버드-C.H.베크 세계사: 1945 이후?서로 의존하는 세계』(공역), 『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 역사는 끝났는가』, 『근대세계체제 Ⅲ』(공역) 등이 있다.

 

목 차

책머리에

 제1부 평화가 길이다
 제1장 불안: 공포와 오해가 냉전을 낳다
 제2장 접근: 작은 걸음으로 친구가 되다
 제3장 신뢰: 보수가 실용을 펼치다
 제4장 인권: 평화와 인권이 만나다

 제2부 통일로 가는 길들
 제5장 혁명: 체제개혁 분출이 통일 요구에 지다
 제6장 공세: 총리가 통일열차를 몰다
 제7장 대안: 우회로를 들었지만 묻히다
 제8장 외교: 설득과 유인으로 독일문제를 해결하다

 제3부 더 나은 길을 찾아서
 제9장 통합: 통일이 새로운 분열을 낳는다면?
제10장 연합: 국가연합의 백화제방을 열자!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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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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