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먼저 떠나는 거야
비가 오기 전에 먼저
어른들은 창을 내다봐요.
어른들은 말해요. “비가 오겠는데.”
어른들은 날마다 말해요. “비가 올 거야.”
그래서 누르와 닐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결심하죠.
비가 와서 갇히기 전에.
강을 거슬러, 물이 시작되는 곳을 찾아서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과 구름이 들썩입니다. 저 아득히 먼 바다와 숲과 산으로부터 폭풍우가 몰려온대요. 고슴도치 가족이 창밖을 내다봅니다. 어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비가 오겠어.”라고 중얼거리고, 누르와 닐은 시냇물이 흐르는 정원을 내려다봐요.
어른들은 비가 올 것을 걱정하며 창가에서 하늘만 뚫어져라 보지만, 누르와 닐은 밖에 나가고 싶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며 졸졸 노래를 부르는 시냇물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늘 변하는 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출렁이며 춤추는 물을 바라보던 누르와 닐은 떠나기로 마음먹어요. 비가 오기 전에 먼저, 물이 시작되는 곳으로요. 현관 앞에 서 있는 도자기 개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어른들을 뒤로 하고, 둘은 용감하게 밖으로 나갑니다. 빨간 물뿌리개를 타고, 강을 거슬러 물이 시작되는 산을 향해 노를 저어요.
두려움을 이겨낸 아이들이 찾아낸 아름답고 매혹적인 세상
막상 강물에 오르니 겁이 덜컥 나요. 자기들이 물에 동동 뜬 나뭇잎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누르와 닐은 멈추지 않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물결이 거칠어지고, 나뭇잎과 잔가지 들이 휩쓸려 가요. 물이 점점 차오르고, 둥둥둥 비가 북소리를 울리며 다가와요. 둘은 언덕 위 숲속 오두막으로 몸을 피합니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고, 비가 그치고, 모닥불이 타오르고, 타닥타닥 밤이 구워집니다. 누르와 닐은 하늘과 땅, 불과 물에 편안하게 둘러싸입니다.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졌죠!
비가 오면 어른들은 비에 젖을까 감기에 걸릴까 걱정하지만, 아이들은 더 신이 납니다. 하늘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도, 곳곳에 고인 물구덩이도 아이들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놀잇감이죠. 비가 오면 밖에서 놀 수 없다는 건 어른들이 만든 생각일 뿐, 놀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신나게 놉니다. 어른들이 일러 주지 않아도, 심지어 방해하려 해도, 스스로 노는 재미를 찾아내고 온몸으로 느끼며 성장하죠. 이 책의 누르와 닐이 놀이 본능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세상을 발견한 것처럼요.
오감을 활짝 열어 주는 감각적인 그림책
작가 안 에르보는 특유의 감수성으로 독자들을 땅과 하늘과 물과 불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그림책 세상으로 초대합니다. 두려움을 이겨낸 아이들이 찾아낸 아름답고 매혹적인 세상을 잉크, 펜, 컷 아웃, 콜라주와 수채 물감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넘나들며 신비롭게 표현했죠. 안 에르보의 시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는 어쩌면 조금은 모호하고 단숨에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덕분에 독자들은 오감을 활짝 열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비에 젖은 흙냄새가 코끝에 묻어나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눈이 부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안 에르보
벨기에 위클에서 태어났습니다. 왕립 브뤼셀 미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전공했으며, 카스테르만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어 졸업과 동시에 그림책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적이며 시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림책 작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나뭇가지 아이와 하나이면서 다섯인 이야기》,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바람은 보이지 않아》, 《숲의 거인 이야기》, 《산 아래 작은 마을》,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파란 시간을 아세요》,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 등이 있으며,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로 1999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새로운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옮긴이 : 이경혜
어렸을 때 『어린 왕자』를 읽었으나 너무나 재미없는 동화라고 생각하다 중학교 때 다시 읽고 빠져들어 평생에 걸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끼는 『어린 왕자』 열혈 독자입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고, 그림책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그림책 『새를 사랑한 새장』 『행복한 학교』, 동화책 『마지막 박쥐 공주 미가야』 『사도사우루스』, 청소년 소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그 녀석 덕분에』 외 여러 권을 썼고, 『날마다 날마다 놀라운 일들이 생겨요』 『가벼운 공주』 외 여러 권을 우리 말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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