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 진중권의 비판의 칼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 ‘대안적 사실’, ‘대통령의 철학’, ‘진보의 종언’ 등 30가지 키워드로 보는 정권의 민낯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마다 언론들의 기사화로 뉴스메이커가 되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그가 정의의 사도를 자임했던 촛불 정권의 타락과 위선을 더 심도 높게 비판하는 책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를 펴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강양구 권경애 김경율 서민 진중권)가 조국 사태부터 2020년 2월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는 2020년 2월 이후 집권 세력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파헤친다. 그의 날카로운 비평은 인문적 사유를 바탕에 깔고 현실 문제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어 “날카로운 통찰력”, “냉철한 비판”, “완벽한 글”, “시원시원하다” 등의 찬사와 응원을 보내는 이들이 많지만, 그를 못마땅해하는 이들은 “변절자”, “극우논객”, “척척석사”라 비아냥대기도 한다.
애초 그는 촛불 정권이라는 긍정적인 환상을 권력이 유지하기를 바랐고, 거기에 협조하려 했다고 〈서문〉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후안무치가 도를 넘었다고 결론 내리고 싸움을 시작한다. 당사자를 도려내 부패를 감추려 한 역대 정권들과 달리 현 정권은 오히려 그들을 끌어안고 아예 그들에게 맞춰 세계를 날조하려 한다는 게 그의 의심이었다.
진중권의 진보 비판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존경하는 노무현 정부 당시 맹목적 애국주의를 조장하는 여권과 대립하며 황우석 신화 깨기의 선봉에 섰고, “누구도 ‘디워’에 관한 반대 의견을 꺼내지 않을 때 이 일에 나서며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인가?” 일갈하며 영화 <디워> 비판에 나섰으며, 이명박 정부 때는 <나는 꼼수다>와의 ‘음모론’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와 열여덟 권의 책을 함께한 편집자(선완규)에게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의 〈서문〉은 유독 애잔하게 다가왔다. 이 책의 서문은 조국 사태부터 현재까지의 마음을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문체와는 다르게 담담히 써내려가고 있다.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 …… 그때만 해도 싸울 생각은 없었다. 이미 황우석·심형래·조영남 사건을 거치면서 대중에 맞서 싸우는 일에 신물이 난 상태. 팔로워 86만에 달했던 트위터 계정마저 닫고 3년 동안 조용히 지내던 차였다. 게다가 이번엔 대중의 뒤에 권력이 있기에 아예 싸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즈음에 낸 책의 서문에 이렇게 쓴 것으로 기억한다. “불의를 정의라 강변하는 저 거대한 맹목적 힘 앞에서 완벽한 무력감을 느낀다.” …… 싸움을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주변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가방 속을 구르다가 찢어진 사직서를 테이프로 붙여 팩스로 보내고, 정의당에도 아직 처리되지 않은 탈당계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직과 탈당을 마치고 10년간 놀렸던 페이스북 계정을 되살려 글 질을 시작했다. …… 최근 세상이 많이 낯설어졌다. 얼마 전 한 가수가 고대 철학자를 불러내 물었다. “세상이 왜 이래?” 그만의 느낌은 아닐 게다.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는 바로 그 물음에서 출발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는가. 사회는 왜 아직 이 모양인가. 정권의 지지자들은 왜 저렇게 극성스러운가. 민주당은 어쩌다 저 꼴이 됐는가. 대통령은 대체 뭐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서문〉에서
2.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 진중권이 이 싸움을 시작한 이유
그는 지금 여기의 시대상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었던 ‘1930년대 독일 사회’ 같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현재의 한국 사회 역시 자기가 속할 진영부터 정한 다음, 거기에 입각해서 참․거짓의 기준과 선악의 기준을 다 바꿔버리기 때문으로 본다. 당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사회 혼란을 잠재우고 경제적 번영과 위대한 독일을 실현시켜주겠다며 국민들을 세뇌했고, 그 결과 집권에 성공해 전체주의 체제를 수립했다. 그들처럼 진영 논리에 매몰된 결과 “한 입으로 두말을, ‘내로남불’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라는 것이다.
거짓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진실이다. 진실은 그 자체로 강하다. 아무리 많은 거짓말을 해도, 또 그 거짓말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해도, 어떤 거짓이든 그것은 결코 영원히 유지될 수 없다. 진중권은 바로 그런 이유로 자신의 싸움의 끝을 믿는다. 그가 언론에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2020년 1월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때만 해도 분위기는 무서웠다고 한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속으로 긴장부터 해야 했다는 것이다. 말을 잘못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의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던 시절 우연히 생각이 같은 이를 발견하면 마치 우글거리는 좀비들 틈에서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고도 했다. 무섭고 외로웠던 시절을 그들 덕에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이다.
랭보는 시인을 ‘보는 자(le voyant)’로 규정한 바 있다. 논객도 다르지 않다. 그의 사명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직하는 데에 있다. 논객은 나팔수가 아니라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심오한 형이상학적 진실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져야 한다. 정론(政論)의 임무는 ‘보는 자’의 눈으로 본 것을 문학적 언어로 분절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데에 있다. 여당 지지자들은 나를 ‘극우 논객’이라 부르나, 예이츠 시 속의 아일랜드 비행사처럼 “나는 내가 맞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고, 내가 위해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한쪽의 비난이 나를 슬프게 하지도, 다른 쪽의 환호가 나를 기쁘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할 때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서문〉에서
3. ‘진중권 스타일’에 주목한다
- 단검 같은 글, 인문학과 현실의 찐한 랑데부
2019년 8~9월경, 편집자는 그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과 담배 한 개비를 나누며 나에게 물었다. “나 어떻게 해야 할까?” 사적인 인연과 공적인 판단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공적 판단으로 사적 인연을 끊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그는 공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했고 편집자에게는 그런 그의 결단이 매우 크게 보였다. 이후 그의 페이스북 글과 매주 연재하는 글에서 이전의 ‘논객 진중권’의 글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더 주도면밀히 정치를 관찰하는 것 같았고 그것을 인문학적 글쓰기로 표현하고 있었다.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시대와 대면하여 몇 날 며칠 숙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글의 정신’이 보였습니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28년간 그의 글을 읽어왔지만,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2020년 그의 글을 읽으며 미학자 진중권의 인문학과 논객 진중권의 정치사회 비평이 하나의 사유로 엮이는 새로운 체험을 합니다.” - 편집자 선완규
진중권의 비판에서 그가 언어로 추는 칼춤은 경탄스럽다. 다이아몬드를 훔쳐 달아나다 열린 맨홀에 빠지는 바람에 감옥에 가서는 맨홀 탓만 하는 도둑을 조국 전 장관 부부에 빗대는 풍자나, 전 청와대 대변인과 여당 대표의 가상 대화를 신파극으로 각색하는 해학은 일품이었다.
거기서 편집자는 디지털 미학의 관점에서 미디어 이론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는 그의 인문학과 현실의 ‘찐한’ 융합을 볼 수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글은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원용해 문재인 정권의 위기관리 전략의 특성을 분석한 글이다(<03. 매트릭스와 저지전략,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재인 정권은 실은 촛불 정권이 아니라 촛불 정권의 허상을 쓰고 있었을 뿐이며, 이제는 그 허울마저 벗어버렸다는 날카로운 고발이다.
보드리야르는 저지전략의 실례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제시한다. 이 사건은 원래 미국식 민주주의의 추악함을 폭로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이 사건은 거꾸로 미국식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예로 기억된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권력이 이 사건을 철저히 ‘개인의 스캔들’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즉, 타락한 것은 권력 자체가 아니라 닉슨 개인이라는 것이다. 고로 그만 물리면 권력은 계속 깨끗한 척할 수 있다. 심지어 ‘대통령도 잘못하면 물러나야 하는 나라’라고 칭송까지 받는다. 미국의 대통령은 아마 누구나 도청을 했을 것이다.
닉슨의 전임자도 후임자도. 그저 들키지 않았을 뿐. 부패는 권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기자가 폭로해버렸다. 이것이 돌발사태다. 실재계에서 들어온 요소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상의 가상성을 폭로한다. 그러므로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결국 권력은 그 사건을 닉슨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프레이밍 했고, 그로써 자신의 부패한 본질을 감추고 위대함의 후광까지 얻었다. 이것이 저지전략이다.
문재인 정권의 위기관리 방식은 성격이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정권은 감추려다 실패한 비리 사건의 경우 개인적 도덕성의 문제로 치부해 당사자를 도려내는 식으로 처리해왔다. 이 정권은 다르다. 그들은 부패한 자들을 도려내는 대신 외려 끌어안고, 아예 그들에게 맞추어 세계를 새로 날조하려 한다. 거기에 늘 노골적 선동과 대중의 자발적 동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정권의 전략은 다분히 전체주의적이다. 민망한 일이다.(본문 32~33쪽)
작가 소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2008년부터 기술미학연구회와 함께 “인문학이라는 올드미디어는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뉴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새로 정의해야 한다”라는 구상 아래 다양한 기획을 해왔으며 이와 연계된 교육·연구·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교수, 문화비평가, 시사평론가, 시대의 부조리에 독설을 날리는 우리 시대의 대표 논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스스로는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이야기한다.
지은 책으로 『미학 스캔들』, 『감각의 역사』, 『이미지 인문학 1, 2』, 『미학 오디세이 1, 2, 3』, 『서양미술사 1, 2, 3, 4』,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의 생각의 지도』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크로스 1, 2』,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청갈색책』, 『컴퓨터 예술의 탄생』 등이 있다.
목 차
서문
제1부 진리 이후의 시대
01 대안적 사실
실재보다 강렬한 허구
02 실재의 위기
지루한 현실과 재밌는 허구
03 매트릭스와 저지전략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04 세계를 만드는 방법
공작정치, 세계를 날조하다
05 음모론의 시대
과학을 대신하는 이야기
제2부 팬덤의 정치
06 팬덤 정치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07 소비자 민주주의
유권자에서 소비자로
08 게이미피케이션
인간장기, 게임이 된 정치
09 은유와 환유의 정치
노무현이 어쩌다 조국이 됐나
10 개인의 해체
한 입으로 두말하는 분열자들
제3부 광신, 공포, 혐오
11 종교적 광신
‘이 세상의 신’ 노릇을 하는 그들
12 정치적 주술
왕의 목을 베라
13 파니코스
공포와 혐오의 정치학
14 파르마코스
만인의 평화를 위한 마이너스 1
15 코로나 독재
K방역과 코로나 보안법
제4부 민주당의 연성독재
16 프레임 전쟁
중도층은 미신이다?
17 선전선동
“진리는 국가의 적이다”
18 기억의 정치
기억을 지워버린 기억의 연대
19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자살
20 원칙이성과 기회이성
그들은 왜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제5부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21 원한의 정치
짓밟힌 노무현의 꿈
22 포스트 노무현
노무현의 시대가 왔는데 노무현이 없다
23 대통령의 철학
대통령은 어디로 갔는가
24 편 가르기 정치
지도자란 무엇인가
25 문재인 정권의 영상전략
우상이 된 대통령
제6부 진보의 몰락
26 포스트-윤리의 시대
진보는 왜 보수보다 뻔뻔해졌는가
27 오인으로서 정체성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28 부친살해의 드라마
이제 우리가 살해당해야 한다
29 앙가주망
지식인의 묘비
30 진보의 종언
박원순의 죽음은 진보 전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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