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효율적이며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된 사회라고 오랫동안 믿어온 나라가 벌거벗은 황제라는 것이 밝혀졌다.”
저널리스트 앤 애플바움Anne Applebaum은 코로나19로 무너진 미국을 이렇게 표현했다(「애틀랜틱」 2020.6.30.). 코로나19는 허리케인처럼 등장해 서구 사회의 지붕을 통째로 걷어내 낱낱이 드러내었고, 정부들을 때 아닌 시험에 들게 했다. 몇 안 되는 나라만이 이 시험을 통과했다. 덴마크 · 노르웨이 · 스위스 그리고 놀랍게도 그리스가 잘 해낸 한편 독일이 가장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구 국가는 실패했는데,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수치스러울 정도였다. 주요 도시들을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지는데, 런던과 뉴욕 모두 인구가 서울보다 조금 적지만 올해 6월 말까지 코로나19로 뉴욕은 21,000명, 런던은 6,000명이 사망한 데 비해 서울은 6명을 잃었을 뿐이다.
어째서 서구는 그처럼 실패한 것일까? 가장 성의 없는 대답은 형편없는 지도자들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기득권층은 도널드 트럼프와 보리스 존슨이 마땅한 벌을 받는다면서 사람들이 앞으로는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백악관과 다우닝가의 주인이었다고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지금의 지도자들 탓으로 돌리기에는 서구 정부는 이미 1960년대부터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지나치게 많은 할 일에 짓눌리고 인재는 공급되지 않고 특수 이익집단들에 끊임없이 휘둘리면서 수십 년에 걸쳐 허물어져왔다. 코로나19의 창궐과 함께 든든한 보건의료 체제와 유능한 관료가 더없이 중요해졌지만, 둘 모두를 갖춘 서구 정부는 찾아볼 수 없다-특히 미국은 그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국민에게 제공할 수 없는 것을 주려고 하고, 특히 열정적이지만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신념에서 그러는 것은 좌절과 파멸의 씨앗을 뿌리는 짓이다.”
1969년 미국 연방정부의 야망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을 즈음에 모이니핸Daniel P. Moynihan 상원의원은 이렇게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정부는 더 비대해졌다. 이것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구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지 못했다. 갈수록 더 많은 것을 국민에게 약속하면서 결과적으로 신뢰를 잃어갔다. 1960년대 중반은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였다. 이후 정부들은 많은 짐을 짊어지고도 사랑받지 못한 것은 물론 자신의 발전을 위해 투자할 돈도 시간도 없이 늙어갔다. 1960년대는 또한 이들 국가에서 공공부문이 민간부문과 어깨를 겨룰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였다. 영국의 경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가 소득의 절반이 공공 지출에 쓰이고 노동력의 약 3분의 1이 공공부문에 종사했으며, 일찍이 분별이 있고 법을 지킨다면 우체국과 경찰관 외에는 국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도 일생을 보낼 수 있었던 영국인은 국가와 부딪치지 않고는 이사를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복지국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긴 호황 속에서 불만에 찬 작은 집단들 속으로 후퇴했던 포퓰리즘이 다시 전면으로 나섰다. 여러 가지가 이를 부추겼는데, 특히 세계경제를 결딴내고도 구제받은 은행가들 같은 세계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컸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네 번이나 총리를 해야 한다고 이탈리아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2016년 영국은 국민투표로 브렉시트Brexit에 찬성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을 접수했다. 이후 포퓰리즘 영향은 세계무대에서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물론 서구 정부의 쇠퇴가 근래의 포퓰리즘 정치인들 탓만은 아니다-그들의 전임자들도 정부를 개선하기 위해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연예계에 남아 있고 바이러스가 우한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미국 정부의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조금 당겨졌을 뿐이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여주는 모델은 또한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프린스턴 대학의 게리 바스Gary Bass 교수는 코로나19로 드러난 민주주의의 불안에 대해서, 역병으로 시작된 아테네의 멸망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뉴요커」, 2020.6.10.). 서구는 1970년대가 아니라면 적어도 세기가 바뀌던 무렵부터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정의한,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 것이 태어날 수 없는 ‘대공위大空位 시대’를 이어왔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나타나는 ‘병적 징후’의 발생이 코로나19로 인해 가속되고 있다. 혼돈의 민주주의 정부보다는 개화된 독재정부가 코로나19 같은 위기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도 그 중 하나이다. 한국과 타이완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보다 훌륭하게 해낸 것으로 증명되었듯이 근거가 없는 믿음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게 지금의 세계 상황이다.
실로 세계 어디서든 정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보호자로 정부를 찾기 시작했다—그리고 토머스 홉스가 예언했듯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가장 소중히 여겨온 자유를, 심지어는 제 집을 나설 수 있는 자유마저 포기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은 자유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자유와 프라이버시는 중요하며, 심지어 그것들이 때로 조금 더 많은 위험을 가져온다고 해도 그렇다. 안전에 관한 한 선의의 정부들조차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모른다. 유행병을 막기 위해 정보를 모으는 국가가 국민을 더 하찮게 만들거나 정치적 부정에 둔감하게 만들기 위해 그런다고 하지는 않는다. 안전은 항상 독재자의 구실이 되어왔다. 덧붙여 효용과 자유의 균형도 이루어져야만 한다. 단지 어떤 것이 유용하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튜어트 밀의 시대에 자유주의자들은 폭탄 테러를 일삼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우편물 개봉을 거부했는데, 프라이버시 권리가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든 결함과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는 인류가 안전과 자유의 갈등 그리고 자유와 질서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한 가장 좋은 장치이다.
서구의 지리멸렬은 중국의 기회가 되었다. 중국은 오페라 가사가 인쇄된 박스들에 의료장비를 담아 이탈리아로,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좋아하는 슬로건(‘go Hungary’)이 새겨진 박스들에 채워 헝가리로 보냈다. 많은 사람들은 서구 정부들의 비참한 실패보다 중국의 상대적 성공을 더욱 걱정한다. 인종이나 민족과 관련해서 그랬듯이, 서구는 종종 자신의 기준에 못 미쳤지만 적어도 스스로 만든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홍콩 시민이나 위구르 족의 경우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중국 공산당은 시민의 권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중국이 코로나19 위기를 틈타서 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워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체코 대통령 밀로시 제만은 “중국이 우리를 도운 유일한 나라이다”라고 선언했고, 예비 EU 회원국인 세르비아의 대통령 알렉산다르 부치치는 의료장비를 기증하려는 중국의 열성을 유럽 국가들의 거절과 비교하면서 유럽 통합은 “동화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불행히도 중국이 세계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한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는 수백 년 전으로 후퇴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안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물어라.”
미국은 1960년 케네디 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전한 이 메시지를 되살려야 한다. 그때 이후 미국은 나라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 묻는 ‘받기만 하는 이들’과 가능한 한 정부와는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회피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깊게 갈라졌다. 미국 정부는 세계의 과학기술을 앞서 이끈 국가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시대에 뒤처져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창의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뉴욕의 지하철은 2019년에 비로소 현금이 필요 없는 승차 제도를 도입했고, 보건사회복지부 IT시스템의 약 40퍼센트는 더 이상 제조회사들의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골동품’이다. 사회보장 사업이 공공 지출의 대부분을 삼켜버리기 때문이고 투자할 용기를 지닌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미국이 (그리고 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도전은, 공개경쟁과 효율을 앞세운 새로운 자유주의 질서가 정실 인사와 부패로 얼룩진 활기 없는 낡은 질서를 몰아냈던 19세기의 도전과 똑같아 보인다. 그리고 그 시대에 가장 강인했던 두 지도자인 에이브러햄 링컨과 윌리엄 글래드스턴을 합친 빌 링컨Bill Lincoln이 지도자로 나서야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빌 링컨은 ‘민중의 윌리엄People’s William’에게서는 자원을 특별한 이해관계의 낡은 부패에서 멀리 떼어놓고 온갖 특혜에 들어가는 돈을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용한 혁신 정책을 물려받고,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로부터는 나라를 결속시키고 인종차별의 불행을 없애려는 열망을 상속받을 것이다.
빌 링컨은 무엇보다 먼저 미국의 보건의료 체제를 더 저렴하고 더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기후변화협약과 세계보건기구에 복귀할 것이다. 코로나19 위기에도 비노년층 인구의 20퍼센트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하고, 온난화의 피해 규모를 고려하면 보험을 들지 않는 것은 미친 짓이며 팬데믹은 말 그대로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하여 공공부문을 줄이고 혁신할 것이다. 누구나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지만 두려워서 말도 못 꺼내는 사회보장 수급권을 개선하여 정부 보조가 꼭 필요한 절박한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특히 인종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 코로나19 대응에 못지않게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인데,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는 이론적이며 산발적이었다면 인종 차별적인 치안유지에 대한 경고는 실제적이며 반복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취할 모든 조치가 새로운 게 아니라 다른 나라와 민간부문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이듯이, 민간부문과 다른 나라에서 배우며 실천하는 정부로 변화시킬 것이다. 빌 링컨의 혁신은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서구의 모든 국가에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빌 링컨은 병역 의무에 준하는 국가봉사 제도를 도입하여 남녀를 가리지 않고 미국의 모든 젊은이가 25세 전에 18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정부를 위해 봉사하도록 할 것이다. 미국인들을 계층을 넘어 한데 결합하기 위해서인데, 하버드 대학의 상류층 대학생이 의무적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젊은이와 함께 도로를 만들고 교도소를 감시한다면, 그는 도로와 중퇴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영국도 국가봉사 제도를 통해 계층과 브렉시트로 갈라진 국민을 한데 모을 수 있다.
빌 링컨의 헌신은 미국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서구가 지정학적 의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그는 ‘미국 우선주의’나 국가주의의 프리즘을 통해 세계를 보지 않고, 동맹국과 국제기구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다. 많은 다국적 기구들이 미국 연방정부처럼 쓸데없는 조직 확대와 자기 집착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그는 이것을 기피의 빌미가 아니라 재정립의 이유로 삼을 것이다. 유엔의 모든 실패를 지적하는 한편 그것의 고귀한 임무에 대한 헌신을 약속할 것이다. 빌 링컨의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하나가 되어 중국이 다시는 홍콩에 관한 약속을 어긴 것 같은 불의를 저지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빌 링컨을 앞세운 서구는 자유무역과 자유로운 정신의 수호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세계적 상황을 다룬 외국 도서 가운데 이 책만큼 한국에 대해 많이 언급한 책은 드물 것이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나라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로 삼은 책은 더욱 그렇다. 특히 국내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 즉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한국이 거둔 두드러진 성과가 유순한 아시아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허튼소리를 정말 케케묵은 사고라고 선언한 대목과 훌륭한 시장의 본보기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꼽고 자세하게 소개한 부분을 반가워할 독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국채 발행과 재정지출 확대의 고리를 끊는 것 같은, 빌 링컨이 미국 정부를 개선하기 위해 할 일들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많은 것이 한국 정부에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거울 독자도 많을 것이다.
지난 시월 송경모 교수(고려대 기술경영전문 대학원)는 『웨이크업 콜』 영문판을 ‘CEO의 서재’(한국경제신문)에 소개하면서 이렇게 끝을 맺었다.
“이는 미국만을 향한 외침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때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한 성과를 냈던 우리나라 정부도 어느덧 그런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닌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존 미클스웨이트
블룸버그 편집장. 에이드리언 울드리지와 함께 『제4의 혁명The Fourth Revolution』, 『누가 경영을 말하는가The Witchdoctors』, 『완벽한 미래A Future Perfect』, 『기업, 인류 최고의 발명품The Company』, 『우파 국가The Right Nation』, 『돌아온 신God Is Back』 등을 썼다.
지은이 :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이코노미스트>지의 정치 부문 에디터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존 미클스웨이트John Micklethwait와 같이 쓴 《제4의 혁명The Fourth Revolution》, 《누가 경영을 말하는가The Witch Doctors》, 《완벽한 미래A Future Perfect》, 《기업, 인류 최고의 발명품The Company》, 《우파 국가The Right Nation》, 《돌아온 신God Is Back》을 비롯한 9권의 저서가 있다.
옮긴이 : 송대원
유한회사 파시브하우스 대표. 슈마허E.F. Schumacher의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A Guide for the Perplexed』, 제이 리처즈Jay Richards의 『돈, 탐욕, 神Money, Greed, and God』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1장 서구의 번영
2장 서구의 쇠퇴
3장 과부하 정부
4장 코로나19 테스트
5장 병적 징후들
6장 빌 링컨은 어떻게 할까?
결론: 정부를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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