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듯이 글도 삶도 ‘내 멋대로’ 여여생생!
양문규 시인의 세 번째 산문집『내 멋대로 생생』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산문집은 양문규 시인이 계간 『시에』에 지난 2015년 여름호부터 2020년 가을호까지「자연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연재한 내용이다.
양문규 시인은 삶터인 삼봉산 여여산방으로 든 지 만 4년, 2020년 새해가 들어서면서 스스로 몇 가지 약속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갑자를 살아낸 기념으로 시선집을 발간하고, 작은 공간을 빌려 시화전을 열고, 생일 전후 몽골이나 티베트 여행”이 그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모든 걸 접었다. 대신 낮에는 아버님을 도와 인삼 농사를 짓고 아프신 엄니를 봉양하면서 틈틈이 쓴 글을 묶었다.
여든네 살의 아버님은 평생 인삼 농사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오랫동안 함께해왔던 연장을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울컥! 뜨거움이 올라왔습니다. 아버님의 농사가 올가을 마지막 5년 근 인삼 수확으로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엄니와 나는 아버님 건강을 이유로 수년 전부터 농사짓는 것을 만류해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농사를 놓는다 생각하니 여간 마음이 아픈 게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 연장은 제가 다 써야 하니 그냥 둬요. 누굴 주긴 뭘 줘요.” 급하게 전화를 끊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버지의 연장」 중에서
이 산문집에는 ‘아버지의 인삼 농사’와 ‘엄니의 병환과 꽃밭’ 그리고 ‘아들내미의 군 입대’ 등 뜨거운 가족애가 오롯하다. 또한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의 문인과 화가, 국악인, 설치미술가 등 문화예술인들과의 다른 듯 함께인 어울림, ‘쑥파, 문파, 불파’ 등으로 불리는 친우와 동네 사람들과의 교유가 소박하게 펼쳐지고 있다. 거기에 ‘삼봉산 삶터에 집짓기’, ‘앞산 오르기’, ‘채마밭 가꾸기’ 등 자연과 상생하는 삶의 진경이 그윽하다. 특히 ‘풀 뽑기’와 ‘눈 치우기’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큰 고충임을 깨닫는 장면에 이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으로 살아내는 삶의 땀 냄새를 맡게 된다.
지난여름을 나면서 겨울이 여름보다는 수월하게 지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잡풀과 날파리와 산모기와 지네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입니다. 풀은 뽑고 뽑아도 며칠이 지나면 그 자리 하나같이 푸르고, 날파리와 산모기와 지네는 내가 그리 좋은지 같이 살자고 날이면 날마다 달려드니 견디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겨울나기가 여름나기보다 이토록 어렵고 힘들다는 걸 올겨울은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정초부터 영하 17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연사흘 눈이 내렸습니다. 첫날 눈은 혼자 치웠는데요. 식은땀이 내의를 흠뻑 적셨습니다. 장인어른 장례를 모신 이후라 심신이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날 밤새 또 눈이 내리고 나서였지요. 눈 치우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산 너머 마을 후배 성백술 시인을 불러 같이 눈을 치우고 난 이후 감기로 앓아누워 열흘이 넘도록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여여하지 않아도 여여한 겨울」 중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사랑을 사랑답게 슬픔을 슬픔답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여깁니다. 또한 만남을 만남답게 이별을 이별답게 맞이하는 것이겠지요. 나이가 들면서 즐거움과 행복이 충만하기보다는 슬픔과 아픔이 교차하는 날들이 많습니다. 환갑으로 들어서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와 같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중에서
“자연으로 가는 길은 주경야독(晝耕夜讀), 청경우독(晴耕雨讀)이다. 그 길이 비록 비탈진 가시밭길보다 험난할지라도 자연의 생명을 원한다면 농부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밝혔듯이 양문규 시인은 “이 땅의 농경을 이야기하면서 슬픔 속에 빠지지 않고 맑은 샘물을 길어 올려 생생한 기운을 얻는다. 바로 지금, 여기가 자연이고 생명이며 평화인 삶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스스로 거듭나면서 농사와 시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면서 삶이 자연으로 가는 길임을 뜨겁게 보여”주는 시편과 함께 작가의 사유가 「내 멋대로 생생」 심겨져 소박하면서도 향기로운 꽃밭을 이루고 있는데 집 한쪽 ‘엄니의 꽃밭’을 만들어 날마다 애절한 눈빛으로 돌보는 심성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어디선가 엄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낼모레가 니 환갑인데 어디가 뭘 먹을 거나. 야야, 꽃구경이나 가자. 늙으면 꽃보다 더 좋은 게 뭐 있간디”.
작가 소개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여여하였다』. 산문집 『너무도 큰 당신』,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등이 있다.
목 차
작가의 말·04
제1부
언제나 봄날·11
아름다운 노년에 대한 사색·19
감을 매달며·28
푸르른 청춘·35
봄날은 가도 꽃은 핀다·46
다시 집으로 가는 길·56
사노라면·66
봄날은 온다·74
자연과 사람 사이·83
내 멋대로 생생·92
아버지의 감나무·103
제2부
여여하지 않아도 여여한 겨울·115
은행나무 신전을 찾아서·127
엄니 꽃밭·137
별과 별 사이·149
다시 서는 봄날·159
지금 바로 여기·170
등이 반질반질한 나무처럼·179
아버지의 연장·190
눈은 어디로 갔을까·200
엄니 밥을 얻어먹는 오늘이 봄날·212
나이를 먹는다는 것·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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