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 누구도 발자크의 펜 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처절한 기자 정신으로 자신마저 해체한 대문호의 풍자와 독설!
기자와 언론의 생리를 직격하는 저널리즘의 고발장이자
명언이 솟구치는 풍자 문학의 전범!
인간의 모든 행위는 반복된 학습의 결과물이다. 1913년 존 브로더스 왓슨은 관찰과 예측만으로 인간은 물론 동물의 심리까지 객관적으로 유출할 수 있다는, 이른바 행동주의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심리학의 엄격한 자율성을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생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반세기 전 프랑스에서도 일어났다. 바로 19세기 파리 전반을 풍미한 생리학Physiologie이다.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이 장르는, 당대 부르주아와 파리지앵을 단골 소재로 각계각층의 여러 인물상을 묘사하고 풍자함으로써 다양한 사회 현상을 통찰하는 게 특징이다.
그 중심에는 인간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데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가 있었다. 그는 특유의 풍자법과 과장된 수사법으로 자신의 필력을 가감 없이 발휘한다. 발자크의 눈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비난부터 쏟아내는 ‘논객’이나 기본적인 예술 소양도 갖추지 못한 ‘비평가’ 모두 “프랑스라는 피부에 달라붙어 사는 기생충”에 불과하다. 저널리즘 종의 유일한 학습 능력은 오로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혹자는 이 책, 『기자 생리학』을 대문호가 창조한 픽션이라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처절한 기자 정신으로 언론의 생리를 끈질기게 파고든 자의 고발장이다. 분명한 건 그 누구도 발자크의 펜 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그 속의 본질을 적확하게 꿰뚫다
발자크가 살던 집의 출입문은 두 개였다. 평생 빚더미에 허덕여야 했던 그는 날마다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피해 뒷문으로 도망쳐야만 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펜으로 정복하겠다”라고 자신을 다잡을 만큼 습작에 열성을 보였던 그는, 첫 작품 『크롬웰』의 실패 이후 소설보다는 저널리즘이 돈이 된다고 판단해 문학판을 떠난다. 이후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는 저널리즘에 매료된다. 인간의 삶과 생존 방식에 대해 치밀하게 파고드는 그가 언론의 생리에 둔감할 리 없었다. 한때 “저널리즘이야말로 인간 지성의 총체”라 칭송할 정도로 발자크는 언론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권력이야말로 내리막길로 치달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카드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발자크와 저널리즘의 관계가 뒤틀린 건 비단 『키뇰라의 재력』 초연 당시 파리 신문과 잡지가 쏟아낸 혹평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자신이 창간한 《르뷔 파리지엔》이 3회 만에 파산한 게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편집, 인쇄, 조판까지 언론이 탄생하는 전 과정에 참여했음에도 별다른 성과 없이 실패하자 그는 자신이 저널리즘 세계로부터 패배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때 시작된 저널리즘에 관한 분노와 원망은 『기자 생리학』의 집필로 이어진다. 그는 “다른 이들은 글을 너무 많이 써서 논객인데, 이 자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논객”이라고 신문사 주필을 꼬집고, 똑같은 되풀이하는 언론을 향해 “지금 파리 사설에는 상투적인 연설 투 같은 관습에 찌든 미사여구만 있을 뿐”이라며 날카로운 문장을 내리꽂는다. 자신을 공격한 비평가에 대한 증오가 저널리즘의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발자크가 묘사하는 언론의 생리는 통쾌하면서도 우울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가 문단과 언론을 향해 휘갈긴 복수의 펜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기자 생리학』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은 문단과 언론을 향한 무차별적인 고발이 아닌 저널리스트로서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처절하게 해체하고 탐구한 끝에 얻어낸 연구서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만 모든 게 자기 것인양하는 언론
200년 전 문장만이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뿐이다.
『기자 생리학』은 문인 종種을 ‘논객’과 ‘비평가’로 분류하고 세분화해 언론의 메커니즘을 일거에 보여준다. “두 손 달린 동물 사회의 자연사”라는 표현만 봐도 이러한 분류법 자체에 풍자적 함의가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널리즘 세계를 마치 동물의 왕국처럼 종을 나누고 그 생존 본능이 추출한 치졸한 본성을 묘사한 대목은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실제 발자크는 저널리즘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자신의 논리만큼은 뭉뚱그려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널리즘 세계의 구조적 모순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담아냈다. ‘정치인’을 두고 “공공장소 청소 하나 제대로 시킬 줄 모르는” 인물이라 묘사하고 ‘비평가’는 “예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예술에 대해 말하는” 익살꾼이라 지칭한다. 이렇듯 생생한 표현이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200년 전 발자크의 통찰력은 가히 천재적이라 볼 수 있다.
여전히 프랑스 저널리즘이 정치와 밀접한 걸 보면 신문사가 자신의 야심을 마음대로 발휘하거나 기자와 정치인이 공공연하게 결탁하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닌듯싶다. 하지만 발자크가 가장 경계했던 것은 거짓을 선동으로 몸집을 키워나가는 언론이 아닌, 자기 취향에 맞는 신문만을 구독하는 강성 구독자들이었다. 이들은 아침에 ‘타르틴’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파리지앵처럼 신문을 자신의 옆구리에 꼭 끼고 다닌다. 발자크는 스스로 편향성을 자초한 이들을 ‘편집증 환자’라고 진단하고 측은하게 여긴다. 신문 구독과 정치 뉴스 소비만이 사상의 각성이라 믿는 이들은 자신들의 움직임이 프랑스 혁명 이후 더욱더 확고한 자유로 향하는 발걸음이라 믿는다. 하지만 빈껍데기한테 줄 자유는 없다. 언론은 “오직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민족을 죽이듯 언론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자유를 줌으로써”라고 칼을 꽂는 발자크의 명제는 뼈아프다. 이러한 강성 구독자들이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논객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배부른 돼지로 만들 뿐이다. 이는 오늘날 대놓고 ‘구독’과 ‘좋아요’를 외치는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타인을 억압하고 비난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서로 편을 나누고 권력을 드러내며 집단 히스테리를 양성하는 것. 이제는 이반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언론이 종을 울리자마자 침을 흘리고 달려드는 이들을 보면 발자크는 뭐라고 말할까.
언론은 여자와 같다. 거짓말을 내놓으면서 그걸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 때에는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며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더욱이 이 투쟁에서 그녀는 항상 최고의 실력을 펼친다. 구독자는, 그러니까 대중은 부인한테 꼼짝 못하는 남편처럼 멍청하다.
- 본문 265쪽, 「결론」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오노레 드 발자크
1799년 프랑스 투르에서 자수성가한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르본 법대 입학 이후 여러 변호사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한 경험을 훗날 자신의 소설에 활용했다. 공증인이 되기를 희망하던 부모의 뜻과는 달리 독립하여 파리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1819년 집필한 첫 희곡 「크롬웰」은 작가의 꿈을 접으라는 충고를 받을 정도로 어설픈 시도로 끝났다.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전 10년간 가명으로 대중소설을 발표하거나 인쇄소를 운영하다 실패하기도 했다.
1829년 발자크라는 실명으로 첫 소설 『마지막 올빼미당원』을 출간하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20여 년간 방대한 전집 『인간희극』을 창작해나갔다. 제목이 보여주듯 단테의 『신곡』에 필적하면서 동시에 프랑스 호적부와 경쟁한다고 호언할 정도로 당대 사회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려는 기획이었다. 작가는 『인간희극』을 구성하면서 한 작품에 나온 인물을 다른 작품에도 다시 등장시키는 ‘인물 재등장 수법’을 사용했는데, 대표작 『고리오 영감』과 연결되는 『곱세크』에서도 이 같은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1850년 오랜 연인이던 한스카 부인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죽음을 맞이하면서, 당초에 의도한 130여 편이 아닌 100여 편의 장·단편소설로 마감된 『인간희극』은 미완의 전집으로 그쳤으나, 세계문학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거대한 업적으로 남았다.
작품에 『나귀 가죽』, 『사라진』, 『미지의 걸작』, 『루이 랑베르』, 『샤베르 대령』, 『외제니 그랑데』, 『골짜기의 백합』, 『잃어버린 환상』, 『사촌 베트』, 『사촌 퐁스』 등이 있다.
옮긴이 : 류재화
고려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트라스부르 2대학과 파리3대학에서 공부했다. 파리 3대학에서 파스칼 키냐르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고려대학교,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프랑스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 『심연들』, 『파스칼 키냐르의 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보다 듣다 읽다』, 『달의 이면』, 『오늘날의 토테미즘』,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등이 있으며, 뉴스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가공되는지를 다룬 플로랑스 오브나스 기자의 『뉴스공장』을 번역했고, 19세기 프랑스 언론 및 풍자 화가들의 삽화를 모아 해설한 『권력과 풍자』를 냈다.
목 차
위조자들에게 알림 7
첫 번째 종 논객 19
1. 신문 기자 23
2. 기자 겸 정치인 75
3. 팸플릿 작가 94
4. 공염불하는 자 100
5. 직에 연연하는 자 109
6. 하나만 우려먹는 자 112
7. 번역 기자 116
8. 신념 작가 118
두 번째 종 비평가 129
1. 구식 비평가 135
2. 금발의 젊은 비평가 145
3. 대비평가 157
4. 문예 비평가 177
5. 군서 신문 비평가 200
결론 260
작품해설 발자크, 언론의 생리를 직격하다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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