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런던과학박물관이 들려주는
냉장고에 담긴 역사와 욕망의 콜드체인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던 용어인 콜드체인(저온 유통 체계)이 최근 국가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익숙한 시사용어가 되었다. 전 국민이 맞을 수 있는 수량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그 방대한 양을 온전한 상태로 유통할 수 있는 콜드체인 기술, 비용, 가능성 등이 초미의 관심사이자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는 마케팅 영역에서 크게 회자된 적이 있다. 201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에도 상륙한 미국 발 크래프트 맥주(수제 맥주) 열풍은 콜드체인을 타고 전 세계로 널리 퍼졌다. 빛과 열에 약한 맥주는 그 특성상 온도 유지가 생명이다. 미국의 소규모 수제맥주사들이 콜드체인 유통을 본격 도입하면서 맛의 변질을 최소화해 전 세계에 수출했다. ‘변형되지 않는 진정한 맛을 보장한다’는 마케팅은 취향을 타고 문화를 넘어 산업이 되었다. 그즈음 국내 수제맥주 회사들이 내세운 마케팅 포인트 역시 ‘콜드체인’이었다. 그 덕에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2013년 93억 원에서 2019년 880억 원으로 급성장했고, 맥주 양조장 숫자도 2013년 55개에서 2020년 151개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필요의 탄생》은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냉장 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지난 수천 년간 음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존해온 인류에게 냉장고의 발명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사건에 속한다. 냉장 기술은 신선 식품을 보존하고 수송하는 새로운 수단으로써 19세기부터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런던과학박물관 큐레이터인 저자는 지난날 얼음과 기계의 힘을 빌려 온갖 음식과 물품들을 차갑게 보관했던 팬트리, 수납장, 상자 들을 들여다보며 우리를 냉장고의 세계로 인도한다.
“나름대로 유용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던 냉장고는
어떻게 현대식 주방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이 되었을까?
이 책이 들려줄 냉장고의 역사는 여러 가지 과학적 발견과 응용 기술, 증기 기관을 비롯한 각종 동력 공급 장치, 얼음 수확, 산업 디자인과 대량 생산, 대중문화, 공중보건과 위생, 기술 혐오, 성 역할,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 현대인의 식습관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여러 가전 회사들이 일부 계층의 사치품이었던 냉장고를 대중의 필수품으로 만들기 위해 펼친 집념어린 홍보 전략과 그 결과다. 1930년대만 해도 극히 일부 가정에서나 볼 수 있었던 냉장고가 오늘날 어느 집에나 무조건 있는 생활필수품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낱낱이 알아본다.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등에 이어 오늘날 가전 회사들이 전 방위적으로 ‘필요’를 홍보하고 있는 스타일러를 보면서, ‘필요의 탄생’이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근대 냉장 기술이 시작된 18세기와 19세기 유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2장에서는 얼음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얼음을 만드는 기술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국면을 살펴본다. 차가운 얼음을 만들기 위해 뜨거웠던 발명 경쟁과 그 결과로 말미암아 시작된 콜드체인의 초기 역사를 담았다. 3장은 가정용 냉장고의 개발사를 다룬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필수품으로 광고, 판매되었다. 후발주자였지만, 10년간 집념어린 연구를 토대로 오늘날 가정용 냉장고의 형태와 필요를 만든 미국의 가전회사 ‘GE’의 눈부신 활약상이 펼쳐진다.
4장에서는 냉장고에 얽힌 사회적 변화와 욕구를 알아본다. 냉장고가 본격적으로 부엌에 자리한 시기 건축과 주부의 가사 노동 해방과 같은 냉장고가 만든 사회문화적 필요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다. 5장에서는 냉장고가 지금 같은 생김새와 구조를 갖게 된 역사를 살펴본다. 지난 100년 간 가정용 냉장고의 발달사는 내외관의 소재를 고르고 소비자의 필요에 맞는 형태, 질감, 취향, 냄새, 소리를 찾는 여정이었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업들의 다양한 시도와 기술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6장에서는 냉장고 발달로 인한 요리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20세기 중반부터 냉장고 제조사들은 판매 촉진을 위해 차가운 음식 제조법을 담은 요리책을 함께 배포했다. 이는 냉장고가 사회의 주류 소비재가 되었다는 신호로, 당대의 사회 분위기나 문화, 기술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7장에서는 냉장고와 인류 건강의 상관관계를 따져본다. 냉장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음식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다. 1920년대 말부터 냉장고 제조사들은 이 점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흰색과 깔끔하고 매끈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냉장고에 위생적인 기계라는 이미지를 담으려 한 이후로 업체들은 마케팅에 위생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서민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물건을 팔았다. 사실 냉장고는 식품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냉장고가 오히려 건강에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냉장고의 올바른 사용법과 위험성을 주지시키는 챕터다.
마지막 8장에서는 냉장 기술의 발전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정리한다. 과거에는 너무도 진귀했지만 지금은 당연시되는 냉장 기술의 위상을 이야기하고 이 기술이 산업과 과학 분야에 활용된 사례를 짚어본다. 앞으로 냉장고가 어떻게 변화할지도 살펴본다. 그 예로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 냉장고, 양자 모듈과 자기(magnetic) 냉동 기술 등을 소개하면서 냉장고의 가능성과 범용성 그리고 필요성 등을 다시 한 번 언급하며 마무리 짓는다.
작가 소개
지은이: 헬렌 피빗
런던과학박물관 큐레이터. 이 책은 런던과학박물관의 소비자 가전 부문을 맡고 있는 저자가 냉장고가 인류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까지 과정을 정리한 기술적·문화적·산업적 연구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류의 일상을 바꿔버린 ‘냉장고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었는지 탐구한다. 현대식 냉장고의 개발이 이루어진 시점부터 스마트 가전이 나온 지금까지 냉장고에 얽혀 있는 다양한 지식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풀어낸다. 또한 런던과학박물관과 제휴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총 100여 장의 진귀한 사진과 삽화를 수록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옮긴이 : 서종기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를 졸업한 후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남자의 구두》, 《광물, 역사를 바꾸다》, 《훼손된 세상》, 《마이클 조던》 등이 있다.
목 차
책을 시작하며
제1장. 얼음 장수의 왕림
냉기라는 귀한 맛 │ 차가움의 상업화 26 │ 생필품이 된 얼음
제2장. 냉각 기술의 발명
전시장으로 나온 냉각 기술 │ 콜드체인이 만든 세상 │ 냉각기술 박람회와 대중 교화
제3장. 집으로 들어온 냉장고
파티의 주역, 전기 아이스박스 │ GE의 가정용 냉장고 연구와 마케팅 혁신 │ 주방을 집 안의 중심으로 만든 냉장고 광고 │ 선망을 품은 지극히 현대적인 색깔과 이름
제4장. 꿈의 주방
전후 주택 공급 계획과 효율적이고 즐거운 가사 │ 대중 매체의 노출과 기혼 여성 취업률 │ 모든 것을 새로 사라, 가전업계의 주문 │ 여성의 전유물에서 일상의 친구로 │ 냉장고에 담긴 사회학과 취향
제5장. 냉장고의 구조
세상이 열광한, 선반을 단 냉장고 문 │ 변함없는 영롱한 하얀색의 깨끗함 │ 영원한 숙제, 냉장고의 소리와 소음
제6장. 음식 혁명
냉장고·슈퍼마켓·전자레인지의 조합 │ 냉장고 사용 방식과 식습관에 얽힌 심리 │ 차가운 요리 발명 │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 재현 요리의 유행과 신선식품이라는 믿음
제7장. 당신의 냉장고는 건강을 가져다줍니까?
위생과 청결의 시대 │ 공포 유발 마케팅과 냉각 기술 │ 관리라는 또 다른 문제 │ 환경 재해, 에너지 과소비
제8장. 냉장고가 꿈꾸는 쿨한 세상
냉각 기술이 가져온 위대한 변화 │ 냉장고가 꿈꾸는 ‘쿨’한 미래
미주
참고문헌
감사의 말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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