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따른 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정부와 거꾸로 가야 돈을 번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올까마는 이때마다 전문가로서 자괴감도 든다.
지난 수십 년간 필자들은 도시·주택·건설·부동산 분야에서 대학, 공공기관, 금융기관, 건설사 등에서 이론을 가르치고 또 실무에 전념하면서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관해 깊은 논의를 하던 중에, 지난 2020년 6월에 (사)건설주택포럼과 (사)한국주택협회가 공동주최한 ‘서울 집값, 잡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발제자와 토론자, 그리고 방청객들은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문제가 서울·수도권 집값에 대한 이해 부족, 주택정책의 이념성 강화, 공급대책으로서 밀도규제완화에 대한 두려움, 외국의 실험적 임대주택제도의 무분별한 도입 등이며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이 세간의 비판을 받는 이유라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암 덩어리를 잘라내기 위해 칼을 잘못 대면 암 덩어리가 전신으로 퍼지듯, 주택정책을 내놓을수록 집값이 폭등하는, 치유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이르게 한데는, 이 분야 전문가로서 책임감도 있다는 이심전심에서 “서울 집값, 진단과 처방”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각 장 필자들의 견해를 모두 하나로 녹이기에는 시간도 짧았고, 열정도 부족했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음을 현명한 독자들이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평등의 본질이 일부 계층의 토지독점에 있다고 하는 정치인들의 오래된 주장 때문에, 집값 문제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집권층의 이해부족과 판단의 오류로부터 일부 계층에게로 돌려도 국민은 익숙해져 비판은 고사하고 동조하기도 한다. 권부에 있는 자를 비난하고 가학하는 것이 정의로운 실천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인류를 타락으로 모는 무지와 비과학을 방관하는 셈이다. 토지공개념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집값의 실질적 과제와 불평등의 본질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는 제안이 이 책의 목적이다.
모든 정부는 주택시장의 안정을 원한다. 다만 그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은 정권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건축 및 부동산 규제는 기술적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닌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자 동시에 과학이다. 주택시장이 웬만큼 안정된 스위스와 일본 사례는 집값 대책의 다양성을 일깨운다. 스위스 연방공화국은 강력한 지방분권제도를 통해서, 일본은 반대로 정부가 지방정부인 도쿄시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쿄에 주택을 대량 공급함으로써 집값 안정을 이뤄냈다. 정치인들이 희생양을 찾기보다 집값 안정의 의지를 갖고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각 지자체가 지역에 맞는 주택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자치권 확대와 더불어 지방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게 고밀화 등 주택공급 기반을 확대하는 경우의 문제점은 국토의 균형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두 가지 주요 가치 판단에 달렸다. 첫째는 헌법에 사회권의 일종으로서 규정한 서울시민 주거권 신장의 가치다. 둘째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무형의 가치다. 만약 이 두 가치를 같은 비중으로 평가하면 서울에 주택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 타당하다. 서울 집값이 전국 집값을 선도하기 때문이다.
집값 문제는 기본적으로 공급부족에서 온다. 우리나라 주요 대도시권, 특히 서울에서 집값이 높은 것은 어떠한 경제요인보다 아파트 단지에 대한 과도한 법적 밀도규제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서울에서 아파트 한 평당 공사비가 600만 원이지만, 그 시장가격은 몇 배나 된다. 공급가에 경관 파괴, 과밀·혼잡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더해도 집값의 70% 정도가 규제로 인한 공급부족에 따른 웃돈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서 아파트 단지의 주거밀도를 현재보다 최소 50% 높이는 것이 적정하다. 기본적으로 밀도규제 때문에 높아진 초과 가격은 무주택자가 유주택자에게 공급가 이상으로 지불하는 ‘잉여’가 된다. 토지공개념 미흡보다는 초과 지급되는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으로 굳어진 것이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밀도규제 완화를 억제하고 있으므로 공급대책으로는 임대주택 확대, 3기 신도시 건설과 같은 물량 공세와 토지 공공임대제, 지대 전액 환수, 국토 보유세 등 급진적 토지공개념으로 일부 계층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이론을 제공하는 계획가들의 편향적 인식이 큰 역할을 했다. 계획가가 철저히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계획가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공무원, 소속 연구기관의 연구원, 전국의 도시계획, 건축, 조경과 관련된 교수 및 전문가를 말한다.
지난 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이 제공한 것은 유동성 원인론과 결합한 투기 원인론이다. 투기 원인론은 투기 억제와 불로소득 환수 차원의 주택수요 관리론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반증 가능한 형태의 사회과학적 명제로 기술된 적이 없고, 따라서 그 명제와 정책관은 비과학(non-science)이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불평등 사회가 되고, 토지와 주택의 탈상품화 유혹은 더 커지게 된다.
서울의 고밀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 반대의 논거는 단순히 일극 중심의 부작용이다. 그러나 이 논거가 타당하려면, 현재의 밀도규제로 인해 세율 약 70%의 주택소비세를 짐지우고 있다는 점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수준의 세율은 해당 활동과 소득을 “종식”하자는 의도로 극히 일부에게 부과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주 가운데 하나인 주택이 담배와 같이 억제되거나 근절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비가치재(demerit good)인가!
현재와 같은 주택정책의 기조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행정부, 정치권, 그리고 계획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주택정책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세미나 발표대로 ‘동심원 가격구조가 고착화’된 서울·수도권의 주택시장은 한마디로 서울의 특정지역에 진입하기 위한 대기수요 시장이다. 대기수요가 곧 실질수요이다. 사는 동네와 집이 계층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주택시장은 전 세계 대도시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유사한 일본의 도쿄는 국토균형개발을 뒤로 미룬 채 고밀개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서울 특정지역의 집값이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는 한, 이와 연동해서 동심원 가격구조를 유지하면서 계속 집값이 상승하고 동심원 가격대 간 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 강남권의 특정지역 집값은 이미 평당 1억을 넘은 지 오래고 이 지역에서 매물이 나오면 매번 가격을 경신하고 있다. 그리고 지방과 해외에서까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 이 지역의 가격 상승을 멈추거나 상승률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다양한 방안 중에 본서에서는, 고밀개발, 제2, 제3의 강남 수준의 재개발·재건축, 기존 1기 신도시의 기능개선, 임대주택제도 및 공급의 현실화 등을 제안하며 더불어 혁신적 방안으로 국민 5대 보험으로 주택보험 주택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제안하고 있다.
본서 정책의 편향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구동성이다. 설문조사 결과는, 지난 수십 년간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과 재개발·재건축 규제, 분양가 상한제 등 가격 규제가 결과적으로 공급축소와 시장 왜곡을 초래하여 오늘날의 주택문제를 불러왔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 토지의 용도변경과 대폭적인 용적률 상향 조정, 재개발·재건축 규제 철폐 등을 통해 살고 싶은 곳에 살고 싶어 하는 주택을 확대 공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1, 2, 3기 신도시의 기능개선과 효율 제고를 통해 서울에서 떠밀려 나가는 수요가 아닌 스스로 살기 좋은 곳으로 떠나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도심 주택수요를 분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임을 밝히고 있다.
한 권의 책이 구습과 전통, 그리고 확신 등을 쉽게 바꾸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있다고 판단하여 여러 가지로 부족한 필자들이 감히 선학들의 논리와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에 대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반대로 본서에 대한 비판도 매우 클 것으로 생각하지만,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로 받아들여 서로가 힘을 합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졸고를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주신 박영사의 안상준 대표님을 비롯해서, 독자들이 보기 좋게 편집하시느라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편집부의 조보나 대리를 포함한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사)건설주택포럼을 대표해서 추천사를 써주신 한정탁 회장님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21년 2월
집필자를 대표하여
윤주선 씀
작가 소개
김원중
부동산학박사
건국대 겸임교수
WJ부동산연구소 대표
칼럼니스트
전 LIG, 하이투자증권 이사
윤주선
공학박사, 도시계획기술사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상임이사
2020년 ‘도시계획 명예의 전당’ 헌액
(사)건설주택포럼 명예회장
한국토지주택공사 비상임이사
국토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
이혁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서울연구원 연구원(1992~1997)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이사
독일 지역학회 학술지 Journal of Regional Research 편집위원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학술지 ‘국토계획’ (공동)편집위원장(2016-2019)
이형주
부동산학박사
(사)건설경제연구원 부원장
LHU, 단국대, 동국대 겸임교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이사
(사)건설주택포럼 명예회장
목 차
1부 진단
CHAPTER01
진보의 부동산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김원중
1. 들어가는 글 19
2. 다주택자들은 주택 부족의 원흉인가 21
3. 징벌적 세금으로 집값 잡을 수 있나 34
4. 진보가 신봉하는 부동산정책 41
5. 진보의 부동산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49
CHAPTER02
토지 및 주거공개념과 주택문제의 진단 윤주선
1. 들어가는 글 59
2. 토지공개념 63
3. 주거공개념 78
4. 토지 및 주거공개념 차원의 진단 93
CHAPTER03
고밀화와 집값 이혁주
1. 들어가는 글 107
2. 고밀화의 타당성 109
3. 기존 논쟁에 대한 시사 113
4. 밀도규제가 다른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 129
5. 아파트 고밀화 대(對) 재개발과 역세권 고밀화 136
2부 처방
CHAPTER04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한 제언 이형주
1. 들어가는 글: 주택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 145
2. 주택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151
3. 살고 싶은 주택공급의 확대 167
4. 수요분산을 통한 시장안정화 179
5. 부동산전문가 의견조사 결과 187
CHAPTER05
임대주택시장의 문제와 제도 개선 방안 김원중
1. 전월세 상한제에 대한 오해 199
2.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208
3. 부동산 규제와 집값 간 관계 215
4. 처방 232
CHAPTER06
주택가격구조론과 새로운 처방 윤주선
1. 들어가는 글 241
2. 주택가격구조론 245
3. 가격구조론적 시각의 혁신적 주택정책 266
CHAPTER07
고밀화와 토지.주택부문의 불평등 해소 이혁주
1. 문제 제기 287
2. 개발이익 및 ‘불로소득’ 감소 효과 289
3. 고밀화와 각종 주택프로그램의 효과 비교 295
4. 불평등 담론의 지수 개선 효과 300
5. 밀도규제의 자치구 간 부익부 빈익빈 악화 효과 310
6. 진보정권에서 주택부문발 불평등의 자기 강화 과정 314
7. 원인론으로서 기성 질서의 비과학 비판 318
CHAPTER08
지역 균형발전 대(對) 서울 시민의 주거권 이혁주
1. 문제 제기와 분석틀 327
2. 고밀화에 따른 비용과 편익 329
3. 시나리오 분석 331
4. 점진 처방 대(對) 충격 처방 339
부록: 4장 전문가 의견조사용 설문지 345
참고문헌 348
찾아보기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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