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몸이 없는 삶도,
몸이 없는 철학도 상상할 수 없다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
몸에 대한 사유를 바꾸다
몸이란 무엇인가? 몸은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질문이나 대답이 필요 없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마음이나 정신인데, 강아지나 고양이도 가지고 있는 몸에 대해 정색하고 질문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20세기 후반까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몸은 갑자기 학문적 조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로고스 중심주의적 문화가 지금까지 몸을 억압했다는 주장이 세를 얻으면서 몸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연구들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세기는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였다. 의료과학과 인공지능, 뇌과학이 몸을 바꾸고 교정하고 강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몸은 더 이상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몸이 없는 뇌라거나 기억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리는 마음보다 몸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몸에 관한 방대한 철학적 탐구
‘읽기’를 넘어선 ‘경험’의 철학서를 만나다
몸에 대한 열띤 관심은 관련 서적들의 붐으로 이어졌다. 몸의 사회학, 몸의 풍속사, 몸과 성차, 감각의 역사, SF의 몸, 외모지상주의, 성형, 다이어트 등 주제도 다양하다. 이러한 서적들은 대부분 급변하는 몸의 위상과 상품화된 몸의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출판물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정작 몸이 무엇인지를 묻는 철학적 연구서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 점에서 샹탈 자케의 책이 가진 시의적절성이 빛을 발한다.
이 책의 미덕은 몸을 철학적으로 폭넓게 개괄하면서도 동시에 깊이가 있고 논점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순히 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몸이기 때문에 몸을 대상처럼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몸이면서 동시에 생각하고 말하는 몸이다. 그리고 몸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다. 이러한 역설, 혹은 이중성을 정면으로 직면하지 않고서는 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한 역설의 현장이 서양철학이다. 이 책의 탁월한 장점은, 몸과 마음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가지고 고군분투하며 씨름하고 고민하는 철학의 현장으로 독자를 초대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이 책을 단순히 읽지 않는다. 우리는 이 책과 더불어서 몸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해주는 정답을 기다리기보다는, 답을 찾아 헤매는 지적 여정 자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 애정을 갖게 될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예로 들어보자. 몸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데카르트가 등장하지 않는 책은 이 세상에 단 한 권도 없다. 그리고 그는 예외 없이,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실체라고 주장한 이원론자라고 소개가 된다. 과연 데카르트가 그렇게 주장했을까? 그가 이원론에 이르게 된 사유의 과정과 논리의 압력을 생략하면 그렇게 주장한 듯이 보인다. 샹탈 자케는 이런 식의 용이한 대답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는 몸과 마음이 상이한 실체라는 자신의 주장을 보완하거나 수정하기 위해서 평생을 고민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철학자에게 지름길은 없다.
나는 욕망하는 몸인가, 사유하는 몸인가?
몸에서 시작하여 몸으로 마무리되는 세계
몸에 대한 질문은 일회성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군단(群團)으로 온다. 물질과 비물질, 관념과 연장, 유기체와 기계, 살아있는 몸과 죽은 몸, 인간의 몸과 신의 몸, 자유와 구속, 식욕과 성욕, 능력과 무능력, 능동과 수동과 같은 개념들을 경유하지 않으면 몸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몸과 더불어서 하나의 세계가 정립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이 회자되는 “나는 몸이다”라는 말. 이는 인간의 정체성을 마음에서 찾았던 철학적 전통을 거부한다. 그런데 ‘나는 몸’(I am body)일까? 혹은 나는 몸을 가지고(I have a body) 있는 것일까? 나를 몸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또 몸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책과 더불어 나와 몸에 대해 묻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샹탈 자케
파리 1대학 판테온-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곳에서 현대철학사센터를 이끌고 있다. 스피노자 및 몸 철학 전문가로 알려진 자케는 스피노자를 기반으로 몸의 기술적, 예술적 역량을 구체화하는 철학적 사유를 펼치고 있다. 『욕망』(Le Désir, 1991), 『영원의 측면에서』(Sub specie æternitatis, étude des concepts de temps durée et éternité chez Spinoza, 1997), 『스피노자 또는 신중함』(Spinoza ou la Prudence, 1997), 『베이컨과 지식의 향상』(Bacon et la promotion des savoirs, 2010), 『스피노자의 업적: 몸의 구성과 관념의 힘』(Spinoza à l’œuvre, composition des corps et force des idées, 2017) 등을 썼다.
옮긴이 : 정지은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프랑스 부르고뉴대학교에서 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연구 주제는 ‘메를로-퐁티의 표현과 존재’이다. 여러 대학과 사단법인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교양과 조교수로 있다.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유한성 이후』, 『철학자 오이디푸스』를 번역했고, 『기억과 몸』,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폭력의 얼굴들』, 『감정 있습니까?』에 필자로 참여했다.
옮긴이 : 김종갑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에서 수사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몸에 대한 이론, 포스트휴머니즘, 생태학, 인류세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혐오, 감정의 정치학』(2018), 「감정 노동과 감정 착취: 약함의 공동체와 강함의 공동체」(2018), 「외모 지상주의와 타자의 아름다움」(2019), 『당하는 여자, 하는 남자: 침대 위 섹슈얼리티 잔혹사』(2020) 등을 쓰고, 『말, 살, 흙: 페미니즘과 환경 정의』(공역, 2018)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서론・11
1부_몸들(물체들)에서 인간의 몸으로
1장_몸 또는 몸들?・45
1. 몸의 본질・45
1) 개념 연장의 영역 문제(스토아학파의 관점)・48
2) 데카르트에게서 몸(물체)에서 연장으로의 문제적 환원・58
3) 몸, 더미, 집합체, 합금・81
4) 무형적인 것(informe)에서 형태(forme)로 : 세자르의 경우・87
2. 비물질적인 몸들(물체들)의 문제・92
1)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의 영적인 몸・95
2) 정치적 몸의 관념・110
2장_살아 있는 몸・131
1) 물활론적 패러다임 : 아리스토텔레스의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개념화・138
2) 기계 몸 :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이론・154
3) 기계와 유기적 존재 사이의 칸트의 구분・169
4) 살아 있는 몸의 인과성・181
3장_인간의 몸 : 몸과 정신・197
1) 이원론적 관점 : 데카르트의 영혼과 몸의 결합의 문제・208
2)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에 의한 해결・225
3) 영혼과 몸의 결합 : 거짓 질문?・237
4) 라메트리의 유물론적 일원론・242
5) 몸과 정신의 관계들에 대한 스피노자의 모델・257
2부_인간의 몸의 역량
4장_인간의 몸의 실천적 역량・293
1. 몸의 기술적 역량・293
1) 일하고 있는 몸 : 몸 테크닉 ・294
2) 노동하는 몸・312
2. 몸의 예술적 역량・326
1) 몸의 미학적 역량 : 예술작품으로서의 몸・327
2) 몸의 예술적 역량 : 활동하고 있는 몸・342
3. 몸의 윤리적 역량・401
1) 몸의 도덕적 양면성・401
2) 공공 도덕의 몸 원칙・408
3) 진정한 윤리학의 몸 원리・421
5장_성차에 의한 몸・430
1. 성적 욕망・430
1) 섹슈얼리티, 타인에 대한 존재 방식? ・432
2) 욕망의 역량・450
2. 성차의 문제・456
1) 성구분에 대한 비판・460
2) 성의 차이에 대한 사유 가능성의 조건들・468
3) 성별들의 차이의 본성과 그 영향력・488
결론・507
참고문헌・515
옮긴이 후기・563
찾아보기・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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