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자유 없이 부유 없다” -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부터 우리 시대의 카너먼까지, 13인의 경제학자가 말하는 ‘자유로운 부자 시민’의 사회 만들기.
경제학, 자유로운 개인을 꿈꾸다
애덤 스미스(1723~1790)로부터 비롯된 근대경제학의 주된 관심이 ‘부유’보다 ‘자유’에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경제학의 탄생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계몽주의와 시기를 같이했다. 개인들이 모두 자유롭고 서로 동등하지 않다면 강자와 약자 사이의 약탈과 착취만 있을 뿐, 경제 주체들이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장’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역사는 자유의 역사』는 애덤 스미스부터 대니얼 카너먼까지 중요 경제학자 13명의 경제학 이론을 ‘자유’를 날줄 삼아 시대순으로 풀어쓴 책이다. 책에 나오는 13명의 경제학자 모두가 자유의 신봉자인 것은 아니다. 유일하게 한 사람, 마르크스는 계급을 내세워 개인을 억압하는 사상을 주창했고, 또 한 사람 케인스는 개인 못지않게 국가(공공)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러나 역사는 ‘마르크시즘의 대실패, 케인스 경제학의 절반의 실패’를 증명했다. 개인의 자유 없이는 개인은 물론 국가의 부(wealth)도 있을 수 없다는 게 더 이상 흔들 수 없는 진리가 된 오늘 21세기, 개인과 시장의 관심은 ‘성장의 열매’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로 옮아가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오해
영국의 스미스, 리카르도, 맬서스에 의해 확립된 자본주의적 고전경제학에 흔히 따라붙는 비판 하나는, 자본주의가 착취와 제국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착취와 제국주의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두 개의 핵심 키워드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은 한마디로 그것은 오해라고 지적한다.
(아동노동이) 자본주의 때문일까? 당장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면 아이들도 돈을 벌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오히려 봉건시대에야말로 아동노동의 폐해가 더 심했다. 자본주의가 정착되면 될수록 아동노동은 사라진다. 급여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데 누가 자기 자식들을 노동 현장으로 내몰겠는가? 애덤 스미스가 ‘공교육’을 옹호했던 이유다. 아동을 노동 현장에 동원하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생존하기조차 버거운 가난 때문이며, 가난을 이겨 내기 위해선 자본주의에 대한 일방적 비난 대신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79-80쪽)
과연 봉건시대에는 일이 너무나 즐거웠을까? 힘든 농사일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시대가 가면 갈수록, 세계시장이 열리고 창조적 발상이 중요해지는 지식경제 시대에 접어드는 지금이야말로 봉건시대보다 노동이 덜 고통스럽지 않은가? 자원이 희소한 이 세상에서 먹고살려면 누구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노동을 자기성취와 자아계발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현대 시민에겐 필요하다. 개같이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함으로써 내가 무언가 이룬다’는 마음가짐 말이다. (80-81쪽)
(슘페터는)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산물이 전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근대사회에 남아 있는 과거의 봉건적 요소의 악영향이 제국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자본주의가 더 발전하면 할수록 제국주의가 사라지고 자유로운 세계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보았다. 스페인 군대가 잉카와 마야 문명 등을 몰락시키고 중남미를 식민지로 삼은 것은 그들이 자본주의자들이라서가 아니다. 봉건의 때를 벗지 못한 자본주의가 길을 잘못 들어 제국주의로 빠졌다. (85-87쪽)
대공황(1929~1939) 시대를 맞아 꽃피운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책의 평가는 차분하다. 케인스가 이론적 모델을 제공한 경기부양책인 ‘뉴딜 정책’의 핵심은 ‘공공(정부)의 개입’이다. 성립한 지 10여 년밖에 안 된 사회주의 소련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던 당시, 루스벨트와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혁명을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흔히 인정받는다. 그러나 케인스 경제학은 국가와 사회의 경제적 건전성을 훼손하는 사회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정책의 원조가 됐다. 책은 심지어 케인스가 공산주의를 막았다는 데조차 회의적이다.
경제 정책은 전체주의적이거나 혹은 개인주의적이거나 두 가지 경향밖에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 중간은 없다는 말이다. 자유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한 분야에서 전체주의에게 양보하면 이 도미노는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쳐서 결국 사회 전체를 전체주의의 함정으로 몰고 간다. 그러다 보면 결국 국가 주도형, 전체주의적 경제 정책이 사회 전체에 횡행할 수밖에 없다.
케인스가 과연 공산주의를 막았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그는 개인주의 사회에 좀 더 은밀하게 전체주의로 향하는 이정표를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케인스의 처방이 사회민주주의를 낳았고 결국 수많은 나라들의 성장판을 닫게 만들었다는 분석을 볼 때, 케인스가 과연 공산주의를 제대로 막은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긴다. (149쪽)
자유를 방종과 혼동하는, 자유주의자 일각의 일탈과 반자유주의자의 공격에도 일침을 가한다.
진정으로 자유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의무를 감수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도 일정 정도의 복지 정책이나 사회부조 등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효율적으로 정책을 집행해야 더 사회정의에 맞고 효과적인지 방법을 두고 다툴 뿐이다. ‘가난을 순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행동을 건전한 자유주의자들은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하지도 않은 범죄를 씌워서 용의자를 벌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83쪽)
진짜 자유로운 자는 거리낌 없이 행동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가짜로 자유로운 자는 그 자유를 남용해 남들의 자유를 짓밟고 해치고 다닌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다가가 지갑을 훔칠 자유는 가짜다. 쓰러진 사람을 보며 앰뷸런스를 부를 수 있는 자유만이 진짜 자유다. (218쪽)
수식은 빼고 재미는 더하다
케인스를 포함해, 앨프리드 마셜 이후의 현대경제학은 과학적으로 치밀하고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입증하는 것을 생명으로 한다. 그러나 책은 작정하고 수식과 도표가 등장하지 않는 경제학 입문서를 표방한다. 단 한 군데 그래프가 나오기는 한다. 학교에서 다 배우는 수요공급곡선이다.
이를테면 마셜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첫술이 가장 배부르다’는 말의 수학적 표현이다. 책은 이것을 삼겹살 두 근을 네 번에 나눠 불판에 구워 먹는 것으로 설명한다.
처음 불판에 올린 삼겹살 반 근의 맛은 꿀맛이다. 그러나 마지막 네 번째로 불판에 올린 삼겹살의 맛은 처음보다는 덜할 것이다. 이미 충분히 배불러서 말이다. 누구에게나 다 첫 맛이 꿀맛일 것이다. 계속 먹는데 계속 꿀맛인 경우는 거의 없다. 즉, 첫 반 근이 250의 즐거움을 준다면 다음에는 200, 다음에는 100, 다음에는 50, 이런 식으로 삼겹살이 동그라미 씨 가족에게 주는 한계효용은 감소한다. 이것이 바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다. (101쪽)
케인스 경제학의 약점 중 하나인 ‘기회비용’ 설명도 이런 식이다.
동그라미 씨의 아들이 야구를 하다가 실수로 집 유리창을 깨뜨렸다. 동그라미 씨가 배시시 웃으며 아들을 칭찬했다.
“우리 아들은 역시 장해. 네가 유리창을 깨서 우리는 새 유리창을 사야만 하고, 유리공장에선 새 유리를 만들 것이고, 유리 끼워 주는 사람의 일당도 챙겨 줘야 하니 결국 전체 고용이 늘겠지.”
동그라미 씨의 말에 따르면 기존에 존재하던 어떤 물건이든 자본이든 없애고 다시 만드는 것은 사회 전체의 유효수요를 증가시키는 일이고 결국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바로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동그라미 씨의 아들이 유리창을 깨뜨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동그라미 씨는 유리창 갈 돈으로 새 옷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면 옷 공장이나 요식업 종사자 쪽에서 수요가 창출되었을 것이고, 동그라미 씨는 그 나름대로 유리창과 옷, 요리 다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우리는 항상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 기회비용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막상 많은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원한다. 그러다 보니 멀쩡한 도로의 아스팔트를 부숴 고용을 늘린다고 말하고, 전쟁이 나면 자본가들이 돈을 번다고 비난한다. (151-152쪽)
1998년의 IMF 사태를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로 정부의 과도한 개입(고정환율제 같은) 때문으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를 ‘돌려막기의 최후’로 설명하는 대목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책은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강제인상, 52시간 근로제 같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수식과 도표 대신에 책은 잘 알려진 영화나 소설을 실마리 삼아, 딱딱하기 쉬운 경제이론에 재미를 더했다. 19세기 아동노동의 진실과 관련해서는 <올리버 트위스트>, 분업은 <모던 타임즈>, 대공황은 『위대한 개츠비』, 사회주의의 허상은 <인턴>,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은 <스타트렉>을 실마리 삼아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식이다.
작가 소개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고등수학 강사를 하다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글만 쓰는 삶을 한동안 살았다. 단막 뮤지컬 <버무려라 라디오>(2010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의 대본을 썼고, 지은 책으로 철학과 경제학?수학 등을 버무린 성인 우화집 『동그라미 씨의 말풍선』(2013)이 있다. 그 밖에 <자유마당>, <독서신문>, 국민대통합위원회 블로그 등 잡지와 웹진에 영화 칼럼과 여행기를 연재했다. 지금은 작은 NGO에서 일하고 있다.
수학과 경제학과 친숙한 삶을 살았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서 자연스레 경제학의 역사를 ‘자유’의 관점에서 조망한 이 책을 쓰게 됐고, 수학의 역사를 가지고 비슷한 후속작을 준비중이다.
목 차
시작하며_ 경제학, 자유로운 개인을 꿈꾸다
1_ 개인의 탄생
새로운 시대의 도래 / 중상주의 대 중농주의 / 계몽의 시대 / ‘왕이 없는 나라’ 미국의 탄생
2_ 이기심은 어떻게 모두의 이익이 되나 - 애덤 스미스
이기심은 인간의 본성 / 교환과 분업 / 왜 다시 스미스인가
3_ 부자와 빈자가 함께 윈윈하려면 - 리카도와 맬서스
혁명 시대의 두 친구 / 대륙 봉쇄의 여파 / 비교우위와 종속이론 / 미래는 과연 어두운가
4_ 자본주의의 저격수인가 예언자인가 - 마르크스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 / 대전제: 착취 / 폭력을 실천하는 사상 / 자본주의는 정말로 악한가 / 제국주의
5_ 과학이 경제학을 춤추게 하다 - 마셜
과학의 세기 / 첫술이 가장 배부르다: 한계효용 체감 / 욕망은 무한하다: 한계이론 / 왜 마셜인가
6_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 - 케인스
전쟁의 시대 /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위기 /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 / 뉴딜 정책 / 공산주의를 막은 수정자본주의 / 정부 개입의 명암
7_ 기업은 어떻게 사회까지 변화시키나 - 슘페터, 커즈너, 리프킨
창조적 파괴와 혁신 / 시장은 살아 있다 / 커즈너 “불균형이 정상이다” / 사회주의는 도래할 것인가 / 신용사회와 국제금융위기
8_ 문제는 자유야, 바보야 - 미제스, 하이에크, 프리드먼
집단주의 대 자유주의 / 미제스 “질투는 나의 힘” / 하이에크와 시장의 자생적 질서 /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설계자 프리드먼 / 신자유주의와 IMF 사태 / 자유주의는 진화한다
9_ 성장의 열매를 공유하려면 - 카너먼
풍요의 시대, 호혜적 인간 / 행태경제학: 심리학과 경제학의 만남 / 새로운 지평
끝내며_ 자유의 ‘무게’를 생각한다
참고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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