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시로 감정을 느끼거나 깨닫고, 때로는 통제를 벗어날 만큼 강렬한 감정에 동하거나 휩싸이며, 어쩌다 알지 못하는 사이 감정에 물들기도 한다. 사전에서 감정생활과 관련된 동사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느끼다: 마음속으로 어떤 감정 따위를 체험하고 맛보다. 깨닫다: 감각 따위를 느끼거나 알게 되다. 동(動)하다: 어떤 욕구나 감정 또는 기운이 일어나다. 휩싸이다: 어떠한 감정에 마음이 뒤덮이다. 물들다: 어떤 환경이나 사상 따위를 닮아가다.
이처럼 여러 상태로 다양하게 경험되는 감정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 혹은 아예 우리 안에 있는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가깝고 친숙한 만큼이나 멀고 낯설게 느껴질 때도 많다.
감정이란 편도의 신경 세포나 신경 전달 물질의 작용만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감정의 향유는 상상이나 공상, 몽상 등의 힘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자아의 중핵이 되기도 한다.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나 이성의 힘 안에서 자기의 존재가 모호해질 때 감정이 유력한 대안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때로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때로는 그를 잃고 슬픔에 잠긴 사람으로서, 때로는 다가올 행운에 대한 기대로 충만한 사람으로서, 어떤 때는 또 다른 어떤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기쁨이나 슬픔이나 즐거움이나 괴로움을 느낄 때 ‘나’는 비로소 그 희로애락의 감정을 정체성의 중핵으로 삼는 자기 규정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강렬하게 느낀다면 더더욱,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발견하는 일이다. 따라서 “감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해야 한다.
그런데 감정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담론이 깊어질수록, 마치 땅속 깊숙이 숨겨져 있는 보물처럼 감정이 우리 안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가 짠, 하고 나타나 진짜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상상적 기대 또한 커졌던 것은 아닐까? 감정에 관한 근대적 인식의 핵심은 감정이란 자기 정체성의 원천인데, 그것이 억압되어 있으므로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해서는 억압되거나 은폐되어 있는 감정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억압이 사라지면 감정이 자연스럽게 넘쳐흐르리라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이 책에서는 근대적 자아의 원천으로서의 감정을 둘러싼 담론들을 조망하고, 20세기 초 한국 근대소설 속에서 감정 담론들이 어떻게 실천되어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세기 초의 소설들을 읽으며 감정이 선재하는(pre-existent)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근대적 자아에 관해 오해되어왔던 퍼즐 한 조각을 풀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
목 차
들어가며
감정 혹은 ‘감정 자체’
감정과 자기 정체성
일인칭 자아의 탐구
감정의 자유와 억압
자연적 도덕 감정
만들어진 감정: 감정을 소중히 여기기
감상주의: 자연스럽지 않은 감정
사랑을 상상하기
재현에서 표현으로
수행적 감정
『무정』의 감정 수행과 자기 발견, 자기 창조
『무정』 이후, 여기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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