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손님 없는 당구장을 지키며 보낸 20대의 여름, 잃어버린 것들의 연대기
『무덤 건너뛰기』 『노자가 사는 집』을 잇는 ‘자기 돌아보기’ 삼부작 에세이 마지막 편.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20대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학을 그만두고, 미군 부대가 떠난 소도시 손님이 오지 않는 당구장을 지켰다. 창문이 모텔 벽으로 막힌 5평 남짓한 오피스텔, 신도시 아파트 공사장, 서가에 꽂힌 책보다 바닥에 쌓인 책이 더 많은 중고 서점. 도대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는 아무런 준비 없이 어른이 된 우리 모두의 기억이자 자화상이다. 전체가 하나의 무리처럼 지내던 학창시절을 지나 세상으로 발을 내딛지만, 서퍼처럼 파도를 타고 넘지는 못한다. 한 무리에서 비슷한 다른 무리로 옮겨 가며 어떻게든 삶을 거머쥐고자 하지만 무기력해서 무료한 나날. 그것이 20대의 삶이었고, 20대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세상은 흘러가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세상과의 접점이 오로지 스포츠신문뿐이라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사건들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절에 만난 서로 엇비슷한 사람들, 전혀 동떨어진 사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분주하게 희망하고 절망하다가 이유도 의미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 책은 한 사람이 살아가며 잃어버린 모든 것들의 연대기이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나를 둘러싼 시대의 이야기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밸런타인데이. 그 의미를 전부 헤아릴 수는 없었던 일곱 개 단어가 자꾸 마음을 두드렸다. 1991년, 신해철의 「재즈카페」를 듣고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의 문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어른의 세계, 무리에서 벗어난 개체의 삶. 그것은 동경이었지만, 마침내 그 세계에 도착했을 때 상상하던 인생이 펼쳐지진 않았다. “모두가 깊이 숨겨 논 마음을 못 본 체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하네.” 이미 노랫말 속에 답이 다 있었던 것을.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이 죽었다. 그의 노래와 함께 열렸던 한 세계가 그의 죽음과 함께 닫혔다. ‘나’는 마음 한편에 「재즈카페」를 품고 살아왔던 20여 년의 시간을 돌이켜보기로 한다. 존경하는 뮤지션을 위한 애가이자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청춘가를 흥얼거리기로.
세상과 아주 멀리 떨어진 당구장
나는 대학을 그만두고 이미 가족 모두 떠나온 고향 도시에 홀로 내려간다. 친구의 당구장을 봐주며 과외를 하고, 청소와 스포츠신문으로 시간을 때운다. 어른이 되었지만 「재즈카페」의 세계는 멀리 있고, 이대로 평범한 사회의 구성원조차 되지 못할 것 같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이 불안으로부터 ‘나’를 건져내 준다.
그때 동네에 헌책방이 들어선다. ‘나’처럼 시대에 뒤쳐진 것 같은 곳. 헌책방에서 천 원짜리 몇 장으로 이런저런 책을 사서 읽으며 조금씩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당구장 매출 장부를 펼치고 볼펜을 들긴 했는데, 무엇을 써야 할까? 그러다가 장마가 시작되고, 노란 비옷을 입은 아이가 당구장을 찾아온다.
당신을 기억해요, 메리레인
아이의 이름은 메리레인이었다. 아이는 어른의 세상은 어떤지,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지 묻지만 ‘나’는 그럴싸한 답을 해줄 수 없다. ‘나’는 장마 내내 메리레인을 만나 이야기하며 준비가 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들, ‘나’ 같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2003년의 자화상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는 2003년을 배경으로 저자 보낸 특별한 한 시절을 에세이로, 때로는 소설처럼 풀어낸 작품이다. 개인의 경험담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을 병치하는 구성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과외와 산책, 음악과 영화, 소설과 프로야구로 채운 날들. 저자는 신해철의 노랫말로 글을 시작하고 하루키 소설 속 문장으로 책의 제목을 지었다. 그것만큼 당시의 자신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으므로.
『1973년의 핀볼』에서 주인공 ‘나’는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환상의 핀볼 머신을 찾아 나선다. 이처럼 20대, 젊음이나 청춘이라 바꿔 불러도 좋을 시기에는 누구나 방황하고 길을 읽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시간을 이겨낸다고 해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저 꿈꾸는 어른에서 꿈을 덜 꾸는 어른으로 거듭나 계속 살아갈 뿐. 저자에겐 2003년의 당구장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보낸 날들이 바로 그런 시절이었다.
잃어버린 것들의 연대기
미군 부대가 떠나고, 21세기에 들어섰지만 아직 21세기가 도래하지 않은 서울의 근교 도시. 외부인들은 부대 담장과 영어로 쓰인 간판만 남기고 떠났지만, 사라진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쭉 보아온 수많은 무명의 죽음, 그 안타까운 이야기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3년의 당구장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결국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자에게 그저 누군가의 개인적인 시절에 그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결국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독자는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를 읽으며 저자가 이야기하는 책, 음악, 영화로 문화적 관심사를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고, 방황하거나 반항하거나 도망쳤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잃어버린 것들의 이야기 앞에서 독자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인지 기억의 연대기를 작성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연대기야말로 지금의 자신을 대변해 주는 단어들일 수 있다.
자기 돌아보기 에세이 삼부작, 세 번째 편
『무덤 건너뛰기』 『노자가 사는 집』에 이어 이주호 작가의 에세이 삼부작이 완결되었다. 위대한 인물들의 무덤을 찾아가며 그들의 삶과 죽음을 나의 삶과 비교했던 『무덤 건너뛰기』.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삶을 톺아보고 고양이 집사로서의 일상도 그렸던 『노자가 사는 집』. 세 번째 작품인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의 시간대는 『노자가 사는 집』의 3장과 4장 직전의 1년을 다루는 작품이다. 작가가 『무덤 건너뛰기』와 『노자가 사는 집』에서 보여주는 삶에 대한 의문, 탐구의 과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무덤 건너뛰기』와 『노자가 사는 집』을 읽은 독자라면 삼부작으로서의 연속성을 느끼는 건 물론, 소설풍의 전혀 다른 작품을 읽는 듯한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이주호는 여행매거진 브릭스를 만들고 있다. 『노자가 사는 집』 『무덤 건너뛰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고, 『말 걸어오는 동네』 『홍콩단편』 『규슈단편』을 함께 썼다.
목 차
재즈카페
In my plcae
게임의 법칙
30년의 고리
2003년의 당구장
당구장 연대기
까만 봉지에 담긴 것들
내가 우주를 헤매던 시절
메리레인과 나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
그 여자의 일기
내가 너를 그리워하게 될까?
당구장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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