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결한 딸,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간 며느리,
어린 자식을 두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
죽은 뒤에야 입을 연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라!
귀신 이야기 뒤에 숨겨진 여성의 삶을 읽다
당신은 귀신을 믿는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도 귀신 이야기에 혹하는 이들은 많다. 영화관에는 매년 공포영화가 걸리고, 인터넷을 휩쓰는 괴담은 복제되고 변형되며 계속해서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언제나 무서운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귀신이라는 미지의 존재에 호기심을 보인다.
『여성, 귀신이 되다』는 여성 귀신들의 말에 본격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책이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오래된 여성 귀신 이야기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밝힌다. 귀신은 억울함에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의 죽음 뒤에는 잔혹한 현실과 사회의 모순이 존재한다. 괴담은 우리가 현실에서 지나쳤던 지점들을 들춰내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게 한다. 엄격한 유교 질서 아래 자결하고, 쫓겨나고, 살해당한 과거의 여성들은 생전엔 스스로의 원한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대신 죽어 현실의 속박을 벗어던진 뒤에야 억울함을 호소하고, 복수하고, 신이 된다. 옛이야기 속 여성 귀신의 삶은 곧 현실 여성의 삶이었다. 이 책은 죽은 뒤에야 끈질기게 살아남아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던 여성들의 삶을 다시 조명한다.
사대부라는 이름의 왜곡된 렌즈
우리나라 귀신이라고 했을 때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이미지는 ‘처녀 귀신’일 것이다. 그러나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 처녀 귀신의 모습은 영상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전통적으로 처녀 귀신은 살해당했을 당시의 모습으로 나타나 현명하고 어진 사대부인 원님에게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한다. 훌륭한 원님이 귀신의 한을 풀어주고 나서 크게 출세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런 귀신 이야기가 많이 실린 필기·야담집은 세간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기록자도 향유자도 남성 사대부였다. 사대부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골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해 기록을 남겼다. 현대의 우리는 사대부라는 렌즈를 거친 이야기들만 알고 있는 셈이다. 사대부들에게 여성은 연민의 대상일지언정 이입의 대상은 아니었고,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그들의 위업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쓰였다. 그렇다면 실제 여성 귀신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이야기는 여성의 억울한 죽음이 아닌, 사대부들의 유능함을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셈이다. _32쪽
죽어서 목소리를 찾은 여성들
왜곡되어 기록된 여성 귀신 이야기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당대 사회를 파악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들을 그러모아 추리해야 한다. 왜 아랑은 죽어 한을 풀기 위해 원님을 찾아가야 했는지, 계모는 왜 전처의 자식을 죽였는지, 버림받은 신부는 왜 신랑을 기다리고만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후처 허씨는 전처 장씨의 딸 장화와 홍련을 살해한다. 조선 전기의 유산 상속법에 따르면 장화와 홍련이 결혼할 때 장씨의 유산을 모두 가져가 집안 재산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남성에게 연심을 고백했던 과부는 거절당하자 자결한다. 재가를 금지하는 사회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살아생전 자신의 한을 이야기하지 못하던 이들은 죽어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여성들은 죽어 귀신이 되기도 하지만, 고난을 딛고 신이 되기도 했다. 바리데기나 당금애기 같은 무속의 신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혼외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버림받지만 결국 신으로 좌정해 사람들을 돌본다. 이들이 겪는 고난은 현대의 여성이 겪는 고난과도 닿아 있다. 여성들은 사회의 억압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며 신령을 모셨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이들까지 조상으로 대했다.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죽음을 기렸다. 그렇기에 과거 여성들의 이야기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때로는 굿으로, 혹은 곡진한 위로로,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어 연대할 때 비로소 일상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_20쪽
소설가가 들려주는 우리 옛이야기
저자는 필기·야담집, 고소설, 구비문학을 샅샅이 뒤져 여성 귀신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이 책의 본문에는 총 78편의 옛이야기가 실려 있다. 소설은 물론, 만화나 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입증해온 저자는 소설가로서의 능력을 살려 옛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원전의 내용을 최대한 살리되 현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다시 쓴 것이다. 생생한 대사와 묘사로 재구성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본문에 실리지 못한 이야기들은 부록으로 정리했다. 여성 귀신 이야기들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두었으며, 출전도 함께 정리해 원전을 살펴보고 싶다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했다. 한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여러 형태로 변형되었는지를 비교해볼 수도 있고, 시대별로 어떤 이야기가 등장하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는 물론이고 이 책을 읽고 옛 여성들의 삶에 관심이 생긴 독자에게도 귀중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소설가. 2007년, 평범한 동사무소 직원들이 귀신을 잡거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내용의 소설 『월하의 동사무소』를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고전에 관심이 많아 주력 장르인 SF는 물론, 추리나 순정만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고전이 버무려진 환상 세계를 구축해왔다. 창작을 위해 옛이야기를 수집하다가 이야기 너머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 귀신 이야기를 다시 읽고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장편 소설 『월하의 동사무소』, 『280일』, SF 단편집 『홍등의 골목』, 만화 『레이디 디텍티브』, 『PermIT!!』, 에세이 『순정 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등을 출간했으며, 『감겨진 눈 아래에』, 『책에 갇히다』, 『당첨되셨습니다』 등 다수의 단편집에 참여했다.
목 차
작가의 말
들어가는 글 -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당신은 귀신을 믿습니까 │ 원한을 품고 되돌아오는 여성들
필기·야담이란?
1 범죄의 피해자가 된 여성들 - 귀신은 끝없이 민원을 넣는다
살해당한 피해자는 귀신이 된다 │ 귀신 잡는 사대부들 │ 왜 그들은 원님을 찾았을까
공안 이야기란?
2 계모의 모함을 받은 전처 딸들 - 누명을 쓰고 자결한 이들은 돌아온다
의지할 곳을 잃은 딸들 │ 계모, 전처의 재산을 탐내다 │ 자살, 결백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다 │ 아버지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자궁가족이란?
3 권력과 차별 속에 짓밟힌 사랑 - 연심도 욕망도 여성의 몫은 될 수 없었다
권력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 │ 권력자는 귀신의 입마저 틀어막는다 │ 사랑, 이 세상과 저세상의 경계를 넘다 │ 자결로 끝나버린 연심들 │ 괴물이 된 여성, 여성이 된 괴물 │ 신부는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아닌 이류와의 사랑 이야기
4 조선 시대 가정 잔혹사 - 안채도 규방도 안식처는 될 수 없었다
부인과 첩. 총애를 위해 살인을 벌이다 │ 죽은 전처가 산 후처를 몰아낼 때 │ 시집살이가 일으킨 참극 │ 자식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
칠거지악, 남성에게만 편리한 이야기
5 전쟁과 재난의 피해자가 된 여성들 - 난세는 약자의 지옥이었다
전쟁의 희생자들이 입을 열다 │ 안식을 위해서는 장례가 필요 하다 │ 죽음의 공포가 빚은 귀신의 형상들
조선 후기 한성의 부동산 문제
6 원귀를 위로하는 여성 의례의 힘 - 산 여성이 죽은 여성을 위로할 때
굿, 여성들의 의례 │ 집을 보살피는 신령들 │ 세상 떠난 가족을 달래다
여성 중심의 무속 문화
7 지워지고 잊힌 우리의 여신들 - 여성, 신이 되다
세상을 만든 태초의 여신들 │ 여신, 나라를 세우고 수호하다 │ 인간과 닮아가는 산신들 │ 여성의 고난을 겪고 인간의 신이 되다 │ 호구신으로 좌정한 여성들
서울굿의 순서
나가는 글 - 지금도 계속되는 여성들의 이야기
부록 - 여성 귀신에 대한 자료,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필기·야담 속 여성 귀신 이야기 │ 『한국구비문학대계 소재 설화 해제』 속 여성 귀신 이야기 │ 고소설 속 여성 귀신 이야기
참고 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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