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우리 시대 탁월한 문필가 원철 스님이 4년 만에 펴낸 신간!
5년간의 답사를 바탕으로 60여 장소와 1백여 명의 이야기를
씨줄 날줄로 엮은 역사문화 기행기
‘노마드’ 원철 스님과 떠나는
방구석 역사문화 기행
‘우리 시대 탁월한 문필가’, ‘법정 스님을 잇는 불교계 문장가’로 잘 알려진 원철 스님. 9권의 저서를 펴내면서 스님의 수식어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노마드(Nomad) 스님’. 산사에서 도시를 오가며 수행승과 수도승首都僧으로 변신해온 스님의 이력 덕분이다. 장소의 이동이라는 1차적 의미만이 아니다. 한문 경전과 선어록 풀이 등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해온, 생각의 이동과 변화에 막힘없는 저자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의미가 더 크다.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는 원철 스님의 ‘노마드’ 면모가 돋보이는 책이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장소의 이동은 물론 선비, 임금, 승려, 예술가, 문필가 등 옛사람들의 숨은 이야기,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오래된 유물과 유적지 등 시공을 넘나드는 사유의 진폭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 바탕에는 모든 장소를 일일이 답사하고 관련 문헌을 뒤져 역사적 의미를 고증하고, 명문과 선시를 찾아 더한 수고로움이 있다. 물론 기대하고 길을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온 적도 여러 번이다. 영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 자체로 좋았다고 말한다. 기대를 머금고 가는 길도 길이요. 헛걸음치고 돌아오는 길도 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적 해석과 문학적 감흥이 어우러진 이 책의 미덕은 이러한 저자의 은근한 치열함 덕분이다.
낡아가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세상은 언제나 새롭게 흐른다
이 책에 수록된 62편의 글 속에는 60여 개의 장소와 1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장소는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오래된 곳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야기가 쌓이고, 그럼으로써 더더욱 의미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한 예로, 서울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는 조선 시대 집현전 학사들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템플스테이’하고, 박팽년이 와서 한양 도성을 내려다보며 시를 짓고, 성삼문이 객실에서 묵었던 곳이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 주는 수륙재가 열렸고, 6 ? 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 젊은 비구니 스님이 우연히 이곳에 머물며 오늘의 진관사에 이른다. 저자는 하나의 장소에 거듭되는 인연을 씨줄 날줄로 엮어 풀어간다.
익히 보는 나무, 사찰, 정자, 계곡, 암자, 어느 곳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갈피마다 이야기가 서려 있기에 ‘특별한’ 장소로 거듭난다.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이백과 시골 선비 왕륜의 우정이 서린 중국의 도화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병사들을 위해 켠 남해바다의 연등, 초의 선사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가 만나 차와 곡차를 나누며 불교와 유가(儒家), 동학과 서학이 교류하는 현장이었던 전남 대흥사 일지암, 추사 김정희와 존재 박윤묵이 비 오는 날이면 물을 구경하기 위해 찾은 인왕산 수성동 계곡 등. “알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반드시 찾게 된다(知之必好之 好之必求之).”는 송나라 정이 선생의 말처럼 장소와 옛사람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평범한 장소는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 된다. 그리고 우리처럼 또 다른 누군가 찾아가 새로운 의미를 덧대며, 뒤이어 누군가는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낡아지게 하지’ 않는 것이다.
“시대와 사람이 만났고 터와 인간이 만났고 또 인간과 인간들이 만났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옛이야기는 지금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각색된다. 지금도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또 누군가에 의해 보태지면서 켜켜이 쌓여 가고 있을 터이다.” (본문 중에서)
‘아버지 생각나면 냇물에 비친 내 얼굴 바라보네’
옛것에서 찾아보는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저자 원철 스님은 장소와 사람의 내력과 그 감상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속에 숨겨진 가치를 에둘러 짚어준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 등 만남을 통해 새로워진 것들, 시간이 흐름에 변하거나 사라진 것들, 그리고 그 가운데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불교의 주요 교리 중 무엇도 홀로 생겨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연기(緣起)’와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은 장소와 사건에도 예외는 아니다. 윤선도의 녹우당, 조려의 서산서원,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처럼 누군가의 삶이 함께하며 의미를 지닌 곳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오대산과 한국의 오대산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동일한 지명으로 신앙적 의미를 공유하는 장소도 있다. 반면 지금은 예전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장소도 생겨났다. 과거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으로 꼽히던 ‘장의심승(藏義尋僧, 장의사로 스님을 찾아가다)’ 속 장의사(藏義寺, 莊義寺)는 초등학교로 변하여 당간지주만이 사찰의 자리를 짐작하게 해주고, 송파강과 신천강은 1925년의 대홍수와 매립 사업의 결과 호수로 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연기와 무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흔한 힐링이나 위로, 어떤 충고도 쉽게 하지 않는 스님은 이 책에서 우리 스스로 그 답을 알아내도록 넌지시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우리 삶도 시간의 흐름에 사라질 테지만 무엇을 보태고 가겠느냐는 물음이다. 저자는 책의 첫 꼭지에서 연암 박지원의 시를 소개한다. 죽은 형을 생각하며 연암이 지은 시다.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이 그리우면 어디에서 볼 것인가.
두건 쓰고 옷 입고 나가 냇물에 비친 내 얼굴을 봐야겠네.
내 얼굴에서 그리운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것처럼, 삶의 길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무수한 세월을 견디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쌓인 바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옛것 속에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시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코로나19로 오랜 마스크 생활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숨 쉴 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박하게 밝히고 있다.
작가 소개
1986년 해인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대승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며 번역과 강의를 통해 한문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해왔다. 월간 『해인』 편집장 소임을 맡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간지와 여러 종교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주요 저서로는 『선림승보전』 등의 번역서와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스스로를 달빛 삼다』 등 몇 권의 산문집을 출간한 바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및 해인사승가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목 차
∙ 들어가며
기대를 머금고 가는 길도 길이요,
헛걸음치고 돌아오는 길도 길이다
1 만남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다시 만남을 만든다
아버지 생각나면 냇물에 비친 내 얼굴 보네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불가근불가원의 지혜
정은 도화담의 물보다 깊어라
집현전 학사들의 템플스테이
문을 닫은 자가 다시 열 것이다
전쟁 영웅 사명 대사의 귀거래사
물소리 듣기 위해 수성동을 찾다
덕을 쌓는 집안에는 좋은 일이 많다고 하더라
봄날 하루해는 기울고 갈 길은 멀기만 하네
사월 좋은 날 누군가 봄비 속에서 찾아오리라
달빛은 천년을 이어 온 군자의 마음이라네
친족의 그늘은 시원하다
향 연기도 연기고 담배 연기도 연기다
사찰과 향교와 관청의 목재가 다르랴
가정식 우동집과 백운 선생
인물은 가도 글씨는 남는다
마음을 감춘 안경
때가 되어야 비로소 붓을 쥐다
눈에 보이는 다리, 보이지 않는 다리
오대산과 가야산, 만남과 은둔
걸리면 걸림돌, 디디면 디딤돌
2 길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녹번동,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고갯길
복우물에도 도둑 샘에도 맑은 물이 넘친다네
천 년 전 재앙이 오늘의 축복이 되다
가만히 물을 바라보는 재미
좋아하면 반드시 찾게 된다
영원한 ‘중심’은 없다
사찰에 카페와 갤러리를 덧입히다
조선왕조 탯자리를 찾아가다
고사목 그루터기에서 사람 꽃이 피다
소소한 갈등은 호계삼소로 풀다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거문고
장의심승, 서울에서 제일가는 풍광
‘갑’절이 있으면 ‘을’절도 있다
한문・몽골어・만주어로 동시 기록된 글로벌 비석
같은 강물도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네
길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스마트폰 속에서 떠오르는 새해 일출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르쳐 준 연기의 법칙
이순신의 후예들이 광화문광장에 연등을 밝히다
탄천에는 동방삭이 숯을 씻고 있다
3 삶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부음정에 깃든 조선 선비의 의리
지혜로움은 까칠하지만 자비로움은 부드럽다
통달한 자가 석가와 노자를 어찌 구별할까
숨고자 하나 드러난 김시습, 숨고자 하여 완전히 숨은 김선
다리 밑에서 하룻밤을 묵다
한국 수묵화 대가의 아틀리에에서
출출하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눈을 붙인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비록 땅 위에 살지만 날개를 잊지 말라
촉석루에 앉은 세 장사
어계 할아버지가 낚시 오는 날엔 푸르름이 더하니
한 눈이라도 제대로 갖추고 살라
세검정 맑은 계곡물 위로 자동차도 흐르네
만릿길을 걷는 것은 만 권 책을 읽는 것
서호에 버려지고 태호에서 꽃을 피우다
안심을 복원하다
도인무몽, 건강한 사람은 꿈에 매이지 않는다
‘디지로그’, 도장과 사인
노란 국화 옆에 하얀 차꽃이 피었더라
세우는 것도 건축이요, 부수는 것도 건축이다
서울 종로 거리가 탑골공원에 진 빚
∙ 부록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장소)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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