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 ‘인문학은 왜 그토록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가?’
인문학 글쓰기를 분석한 비평 에세이
메멘토의 문고 시리즈 ‘나의 독법’은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논쟁적인 주제를 저자의 관점과 시각에서 해석하는 교양 에세이다. ‘나의 독법’ 첫 책 『왜 읽을 수 없는가』는 ‘인문학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이유’를 분석한 비평서다.
5초에 한 번씩 빵빵 터지게 해주는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이 몰려간다. 왜 전문가가 조금만 재미있게 설명한다 싶으면 시청률이 그렇게 뛰어오를까? 왜 ‘넓고 얕은 지식’을 표방하는데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릴까? 사람들은 교양을 쌓고 싶어 하고 기왕이면 머릿속을 채우는 게 채우지 않는 것보다 백배 낫다는 사실을 잘 안다. 쉽고 얄팍해 보이는 프로그램이나 책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사람들의 지식욕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할 수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글, 웹소설과 웹툰 댓글을 보면 무언가를 읽고 해석하려는 욕망도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관심 분야라면 어떻게든 전문 용어를 익히고 마음만 먹으면 이 용어를 구사해 광고성 글을 쓰기까지 한다. 그런데 ‘인문 교양서’에 나오는 ‘학술 용어’는 어렵다며 고개를 돌린다.
왜 어떤 글은 읽히고, 어떤 글을 읽히지 않을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글쓴이’인가 ‘못 읽는 독자’인가? 오랫동안 편집자이자 번역가로 일한 저자는 어떤 ‘글’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은 우선 글쓴이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안 읽는’ 독자들을 탓하기보다 자신이 쓴 글에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知)에 대한 열망이 큰 일반인들이 인문학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문장에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우리 사회는 독서에 대해 지극히 모순적인 태도를 취한다. 독서는 늘 긍정적으로 여겨졌고 사회적으로도 권장되지만, 중등교육을 마칠 때까지는 입시에 필요한 만큼을 제외하면 반드시 필요한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교과서와 문제집만 파고들다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에게 독서는 여전히 매우 특별하고 특수하며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체험이다. 보통 사람들의 독서 수준이 이러한데도 전문 지식을 상당히 쌓아야 이해할 수 있는 용어나 지식이 남녀노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매체, 특히 신문에 남발되고 교양서를 표방한 인문서에 아무 설명 없이 노출된다.
2. 운동과 교양과 학술의 결합체로서 책을
소비하던 시대의 특성을 드러내는 지식인들의 글쓰기
저자는 칼럼을 비롯하여 인문 교양서의 대표적인 필자로 활동한 지식인들이 특정 시대의 학술 교양을 공유한 역사를 더듬으며 그들이 써온 글의 특징을 꼼꼼히 살핀다. 1980, 90년대는 운동과 교양과 학술의 결합체로서 책이 소비되던 시대다. 특히 다수의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간하며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신서’가 8, 90년대의 교양을 담당했는데, 당시 최신 인문학 지식과 교양을 담았다고 하나 요즘 기준으로 보면 학술서에 가까웠다. 각종 매체에 칼럼을 쓰는 필자들은 대체로 신서의 전성기인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심으로 한 사회과학 서적, 최신 평론집, 이매뉴얼 월러스틴, 프랑스 구조주의 이론가들의 책을 새롭게 익혀야 할 교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서구 사상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졌던 세대가 인문사회계 주요 필자로 활동하면서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학술 교양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써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서 세대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그런 세대가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시대·사회·언어와 동시대적으로 호흡하지 못하는 완고한 상태. ‘이 정도는 알고 있겠지’라는 안일한 전제. 배경지식을 공유한다고 생각한 ‘우리’를 대상으로 삼지만 정작 정체를 알 수 없는 ‘우리’. 공부가 직업이 아닌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을 필자 스스로도 소화하지 못하면서 문장 안에 그대로 가져오는 글쓰기 습관. 이것이 내가 그동안 부족하나마 여러 인문교양서를 읽으면서, 또는 읽으려고 애쓰면서 생각하게 된, ‘인문학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이유’다.”(99쪽)
3.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는 사람이 하는
‘언어 내 번역’, 즉 ‘바꾸어 말하기’의 필요성을 역설하다
‘언어 내 번역’, 즉 ‘바꾸어 말하기’는 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고 있는 행위이자 할 수 있는 행위다. 그런데 인문학 개념에 ‘언어 내 번역’을 적용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 개념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식인들의 문장이 달라지지 않는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일본의 근대 개념어가 조선에 폭력적으로 수입된 역사까지 거슬러 가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일본어에 대한 ‘이중 잣대’를 통찰한다. 근대화란 몇백 년 동안 사용해온 나라의 중요한 용어들을 순식간에 없애고 새로운 용어로 그 자리를 대신한 과정이기도 했다. 이 과정이 매우 급속하고 파괴적이었다. 저자는 그간 각 분야에서 일본어를 순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가장 강고함을 자랑하며 고쳐보자는 어떤 사회적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 분야가 바로 인문 사회계라고 일갈한다.
‘언어 내 번역’은 ‘언어 간 번역’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문학 내에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는 사람이 하는 번역’의 차원에서 ‘언어 내 번역’이 논의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일반 독자와 연구자를 잇는 좋은 글의 예를 제시하면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지식인들이 아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작가 소개
2001년부터 고등학교 국어과 교과서를 만들면서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다. 청소년·교양·문학·인문·실용 등 여러 분야의 책을 편집했으며, 2013년부터 일본어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당신의 자리에서 생각합니다』, 『아이디어 대전』,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 등이 있다.
번역, 한국어 문장의 변천,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목 차
들어가며: 왜 어떤 글은 읽을 수 있고, 어떤 글은 읽을 수 없는가
1장 지금 우리에게 ‘쉬운 글’이란 어떤 글인가
-현재 우리는 어떤 글을 많이 접하는가
-‘대중적인 글’의 기준점
-‘대중적인 글’은 정말로 대중적인 글인가
-가장 기본이 되는 곳으로 되돌아가기
2장 ‘인문학’은 왜 그렇게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가
-책이 운동, 교양, 학술의 혼합체였던 시대
-그들이 생각하는 독자가 과연 ‘나’일까
-최근 교양서의 경향과 ‘고전’과의 여전한 간극
3장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그 언어
-근원을 알 수 없는 ‘우리말’
-일본에서 들어온 말을 대하는 이중 잣대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한 단면에 대하여
-‘귀납’과 ‘연역’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을 만나다
-콤플렉스 없는 세대의 일본어를 위하여
4장 만나지 못한 ‘스승들’에게 배우다
-스승이 되어준 입문서들: 독자를 위한 ‘자세’가 전부다
-우치다 다쓰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노야 시게키, 『당신의 자리에서 생각합니다』
-오사와 마사치, 『사회학사』
마치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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